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92)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92화(292/374)
293화 쥐와 치즈
죽음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자신의 할 일을 마치면, 그것이 끝이라는 듯.
다만, 녀석이 찾아왔던 곳은 태풍처럼 그 주변에 있던 인간들의 마음을 너덜너덜하게 헤집다가 사라진다.
죽음의 신, 라네리우스도 그러했다.
“아…….”
문뜩 정신을 차린 엘레노어는 한참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모두 이번 전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영웅들이다.
수십 년 동안 메르데인의 정화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들.
물론 하나같이 성녀처럼 순결한 의지 때문만은 아닐 터.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늘로 향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엘레노어.”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난 성녀.
그녀가 엘레노어를 불렀다.
“네, 성녀님.”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성녀를 따라 태양교단이 만든 천막으로 향하자, 그녀는 의자에 몸을 맡기듯 앉았다.
얼굴에는 아직까지 숨길 수 없는 피로가 가득했다.
“아름다웠죠?”
“예?”
“하늘이요. 아름다웠죠?”
“아, 네…….”
아름답다.
엘레노어는 그 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곳에 자신을 있게 해 준 그 사람들은, 이런 하늘을 볼 수 없었을 테니.
죽어 가는 세상만이 그들이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었을 터.
“개운한 표정이 아니네요.”
“네……. 근데, 그건 성녀님도 비슷해 보이세요.”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요.”
“…….”
그랬다.
죽음의 신, 라네리우스로 인해 죽은 사람들은, 숫자를 감히 헤아릴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잃어버린 자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선 무수히 많은 희생들이 깔려 있었다.
‘어렵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레노어는 방금의 하늘을 보고, 자신의 부모를 떠올렸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지만, 그녀에겐 그들이 보였던 10개월의 여정이 삶의 일부분처럼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 그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메르데인과 얽혀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 대한 모독일까.
“…….”
살면서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녀는 언제나 피해자였으니까.
그렇다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 그녀가 가해자라 할 순 없겠지만, 심정적으로는 비슷한 감성이 생겼다.
“죄책감이 묻어 나온 표정이네요.”
“아, 죄송합니다.”
이런 감정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자신은 가해자 같은 입장이었으니.
“딱히 저한테 죄송할 건 없어요. 엘레노어가 느끼는 감상은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성녀는 시선을 돌려, 입구 바깥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승리를 축하하고, 메르데인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도취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아요.”
죽어 버린 동료.
지키지 못한 신념.
희생자 영혼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감.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등.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에 짓눌리고 있었다.
모두, 성녀가…… 과거의 태양교단이 메르데인을 맡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엘레노어가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이 별거 아니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
“다만, 누구나 살면서 그런 감정을 겪기 마련이고, 모두가 아닌 듯하면서 그 감정을 가슴 한편에 움켜쥐고 살아요. 그리고 매일 밤, 그때의 선택에 따른 변명을 상상 속으로 내뱉죠.”
-내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그땐 난 그저 어렸을 뿐이야.
-가진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
-몰라서 그랬어.
아주 다양한 변명들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선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그들이 살아온 삶이란 것은, 그들이 걸어온 길이 곧 역사가 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꽤 괴롭네요. 삶이란 건.”
“맞아요. 인간은 그렇게 설계됐어요. 그리고 그렇기에, 무언가에 의지하죠.”
“…….”
“엘레노어에겐, 분명 의지할 존재가 있지 않나요?”
성녀가 말하는 의지할 존재란 과연 신일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성녀의 눈빛에선, 진한 부러움이 느껴졌으니.
동료.
성녀가 곁에 두고 있는 성기사들과는 다른 개념의 것.
성기사들은 성녀를 동료라 여기지 않는다. 비록 성녀가 그들을 동료라 여길지언정, 성기사들에게 성녀란 거룩한 신의 사도였기에.
“그,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아니에요. 저도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요.”
“원하는 것이라면…….”
“흰고래 용병단장. 그는 깨어났나요?”
“아뇨, 아직.”
그랬다. 엘레노어가 이렇듯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
준은 아직까지, 라네리우스가 만든 환영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네리우스가 소멸되었음에도.
그는 긴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곤란하네요.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곧바로 말씀해 주세요. 도울 게 있으면 돕도록 할 테니. 그에게 드릴 부탁이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엘레노어는 천막을 나섰다.
동료들이 있을, 흰고래 용병단에게로.
* * *
“방금까지 성녀님이 곤란하다고 했는데…….”
분명, 이날 새벽까지도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준이었다.
“어우, 이놈의 음식들 느끼한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냐.”
“하하……. 천천히 드세요, 선배.”
“어, 고맙다.”
“이거 더 드리는 검까?”
“응. 그거라도 먹어야겠다. 젠장, 보급품은 그때 싹 다 남겨두고 왔더니 우리 먹을 게 없었네.”
“하하핫! 일어나자마자 폭식은 몸에 좋지 않지만, 그쯤이야 기세로 충분히 이겨 낼 수 있겠지!”
“우욱, 더 먹을 거니까 등 치지 마세요, 베른.”
“단장의 명령대로!”
어느새 일어난 준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위장에 욱여넣고 있었다.
아니, 사실 며칠 굶은 게 맞긴 했다.
사태가 끝나고 3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어우, 이제 좀 살겠다. 어, 엘레노어. 왔어?”
“왔냐니……. 사람 기껏 걱정 끼쳐 놓고 말이야…….”
“아아, 미안. 사정이 좀 있었어.”
“무슨 사정?”
“죽음의 신. 그놈이 죽기 전에 나는 데려가려고 발악을 했더라고.”
“대장을?”
“어.”
역시 그 미친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놈의 세계에 갇혀 있을 당시에는, 강제로 놈의 사상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영혼의 근원이 놈과의 공명을 강제로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준이 넘겨준 일기장.
자신의 부모인 그 사람들의 일지를 읽은 끝에, 그들이 원했던 것은 세계의 복구가 아닌, 엘레노어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만약 준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그대로 놈에게 감화되어 이 몸을 내줬을 테지.
그런데 정작, 대장은 그 대가로 죽을 위기를 겪지 않았나.
다시 한번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던 그때.
“그래도 다행이다. 엘레노어, 네가 놈을 거부해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어.”
“……어?”
“대충 표정 보니까 알 만하네. 넌 너 때문에 그 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했지?”
“뭣! 엘레노어. 그게 무슨 소리냐! 넌 이번 일의 피해자일 뿐이다!”
준의 말에 베른이 가장 먼저 반응하며 윽박질렀다. 물론 엘레노어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뿐이었다.
“근데 사실 놈을 죽이는 데 있어서, 엘레노어 너는 말도 안 되는 치트 키 같은 존재야.”
“치트 키? 그건 또 뭐야.”
“아, 음. 말이 헛나왔네. 아직 그 영향이 남아 있나. 아무튼, 놈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고 해야겠지.”
“유일한 돌파구?”
“어. 사실, 당시 녀석은 9레벨에 이르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어.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불완전한 상태에서 인간의 몸에 깃들었다지만 신은 신이잖아.”
베른이 한 차례 놈의 공격을 막긴 했지만, 당시 죽음의 신이 말했듯, 베른은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았음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만약 놈이 멜렌 공작의 몸이 소멸되기 직전, 물귀신처럼 우릴 데려가겠다며 발악했다면…… 우린 필시 죽었어.”
다만 놈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엘레노어 때문이다.
“네가 없었다면, 놈을 죽일 방법은 없었을 거야.”
녀석은 신이었기에, 그래도 인간과는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실패의 복수가 아닌 미래를 위한 설득을 선택한 것이다.
“뭐, 끈질기게 나까지 데려가려고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지.”
그렇게, 죽음의 신은 소멸했다.
엘레노어의 내면에 잠시 깃든 대가로.
“모두가 노력한 덕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네 역할이 가장 컸어, 엘레노어.”
“아…….”
뭐라고 해야할지.
그냥,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멍청했네.’
그저, 자기 자신에게 느꼈던 분노가 참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엘레노어는 잠시나마 라네리우스에게 잠식됐다는 사실 자체가 증오스러웠다.
한편으론 그랬기에 자신의 부모가 보냈던 10개월의 여정을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그게 고맙기도 했고, 또 그 고마움에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찌꺼기처럼 그 감정이 그녀의 가슴 한편에 남아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거늘.
준의 미소를 보니, 그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두 인간의 영혼을 한 몸에 품은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핫.”
웃었다.
그저 그럴 뿐이었다.
* * *
“어우, 너무 많이 먹었나. 역시 속이 좀 더부룩한데.”
자리에서 일어나고, 준은 잠들어 있던 사이 돌아간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라네리우스…… 라고 했던가.’
엘레노어에게 이제는 소멸해 버린 죽음의 신에 대해 듣게 되었다.
놈은 게임에서처럼, 본래 신의 그릇으로서 만들어진 엘레노어의 내면에 들어갔다.
그리고 강제로 엘레노어를 감화시켜, 자신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다행히 준이 앞서 엘레노어에게 일기장을 건네준 덕분에 그녀는 끝까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고, 끝내 놈을 거절했다.
‘그 이후가 이 풍경이라…….’
메르데인에, 약 50년이 넘는 시간 만에 푸른 하늘이 찾아왔다.
그러자 삭막하게만 보였던 도시의 풍경은 조금 다르게 보여진다.
이전에는 그저 누군가의 절규와 고통으로만 이루어진 듯 보였던 도시.
여전히 그 흔적들은 보였지만, 누군가가 저항한 흔적들 또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 묘한 기분이네.”
준은 순수하게 이 모든 일이 자신이 있기에 가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있기에 조금 더 빠르게 눈앞의 풍경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지 않았나, 정도의 생각은 품었다.
아무튼.
라네리우스의 소멸 이후, 사람들은 놈이 만든 환영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태양교단의 거처인 구르타렌 성에 모여들었다.
지금은 한참 상황을 정리하고 이곳의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중이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녀가 나를 불렀다라…….’
치하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과연. 어떨까?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준이 쓰러진 상태에서 엘레노어를 통해 준을 부를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준은 라네리우스의 영향을 받아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으니.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어렵지 않게 금방 떠올랐다.
“노란 치즈가 곰팡이로 뒤덮인 껍질을 떼어 내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온 세상의 쥐새끼들이 그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맡고 달려오지 않겠나.
아.
물론 쥐들의 치즈 사랑은 미디어 컨텐츠에 의해 생긴 오해라는 썰도 있더랬다.
하지만 실제로 쥐들은 치즈를 파먹었다.
왜?
배가 고팠으니까.
손쉽게 뜯어먹을 수 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침하고, 습하고, 숨기 좋은 공간에 있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쥐들은 치즈를 파먹었다.
“황실의 중앙 귀족들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번 사태에 대한 ‘해명’을 하라면서.”
여기서도 그랬을 뿐이다.
쥐들은 여전히 치즈를 원한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9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