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01)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01화(301/374)
302화 양자택일
8계층.
게임 내에서는 거의 엔드 컨텐츠에 가까웠던 장소.
“1계층부터 3계층까지는 인간의 범주에 속해 있다면, 4계층부터 6계층까진 초인의 영역이야.”
그리고 7계층은 정상의 영역이다.
인간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인 집단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가 벽을 허물어야 하는 단계.
“그리고 8계층은, 다시금 집단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해.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지.”
준은 공중 마차 아래로 펼쳐진 수천 명의 인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지의 영역. 그렇기에 인간은 다시금 집단을 형성하게 되는 거야.”
미지를 탐사하는 것은 고작 사람 한둘이 움직인다고 밝혀질 게 아니다. 집단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모여든다.
“…….”
7계층 거인의 숲.
그 위를 날고 있는 공중 마차 안.
동료들은 준의 설명을 들으며 마차 아래의 풍경을 바라봤다.
수천 명에 이르는 강자들이 거인의 숲을 횡단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봤던 메르데인에서도 상당한 강자들이 모습을 보였지만, 이곳만큼은 아니었다.
열 명 중 한 명꼴로 7레벨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
개중에는 극히 드물게 8레벨의 기운도 느껴졌다. 그야말로 별들의 행진이라 해야 할까.
그들 모두 흰고래 용병단처럼 다수의 마탑들로부터 의뢰를 받고 찾아온 이들이다.
그리고 그 기운 하나하나를 느끼며, 에이든은 어딘가 벅찬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정말, 8계층으로 향하는군요.”
예전부터 모험담에 관심이 많았던 에이든.
그런 에이든이 보았던 서적 중엔 8계층에서의 영웅담도 무척 많았다.
“드디어…….”
블랙아웃에 찾아와 향상심을 가진 자들이라면 모두가 꾸는 꿈.
8계층 진입.
블랙아웃으로 내려온 지 4년에 걸쳐 도달한 목적지가 머지 않아 보였다.
과연 저 아래로 내려간다면, 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호의? 호승심? 그것도 아니라면 시험하는 눈빛으로 볼까?
마치 새로운 산책지에 도착한 강아지처럼 눈빛을 반짝이던 에이든이 마차에 내렸을 때.
“……?!”
마차에서 가장 먼저 내린 에이든에게 수많은 적의가 날아왔다.
전신에 내려꽂히는 적의에 눈꼬리가 축 늘어진 에이든이 허망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꼭 산책날 비오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런 에이든의 모습을 보며 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에 우리 편은 없어.”
* * *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펼치고, 준은 계층단 앞에 있는 야영장에서 입을 열었다.
“마법사들은 귀족들의 또 다른 사회라고 보면 편해.”
마법 연구에는 당연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거부이거나 귀족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상인들을 경계한다.
자신들의 기술을 빼앗을 궁리만 하는 버러지 같은 족속들이라며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법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자는 대부분이 귀족이다.
“그리고 마법사 사회는 오래 전부터 귀족파들의 소굴로도 유명하지.”
그러므로 현재, 황제가 품은 검이라고 일컬어지는 흰고래 용병단은 대부분의 마탑들에게 적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 입장에서도 흰고래 용병단은 고용주들의 적이나 다름이 없던 것이다.
‘평소라면 동종업계인만큼 다른 용병들도 적당히 무시하는 수준으로 끝났겠지만.’
최근 메르데인에서 있던 일로 인해 귀족들의 적개심이 한계까지 올라간 상황.
눈치 빠른 용병들은 이 소식을 서로 공유하며 이야기를 끝냈을 터다.
“비록 우리가 하위 계층에서 전에 없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하위 계층이니까. 중상위 계층에 머물고 있는 놈들한테 우린 돌연변이나 다름없어.”
“아…….”
“서로 이어져 있는 연줄, 그리고 경험과 규모. 모두 우리가 저놈들한테 밀린다. 이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해.”
“흐하핫! 상위 계층의 녀석들. 콧대 높은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하지.”
그나마 경험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베른이 일행들에게 괜찮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단장의 말이 맞다. 저들은 우리에게 없는 무기를 쥐고, 길거리 강도처럼 우리를 몰아붙이려 할 거다.”
“짜증나네. 나중에 황제한테 어떻게 보이려고?”
“대놓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거다. 그리고 제놈들도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바로 귀족들이다.”
“끄응…….”
“하지만 아직 실망하긴 이르지. 단장도 그걸 알기에 표정에 여유가 있는 거고. 그렇지?”
“예, 맞습니다.”
베른의 말에 준은 순순히 인정했다.
저들에겐 없고, 자신들에겐 있는 것.
“실력.”
열 명에 한 명꼴로 7레벨이 보이는 곳이지만, 7레벨이라고 다 같은 7레벨일까.
“우린 실력으로 놈들을 찍어 누른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 실력을 보여 주면 싫어도 저들이 먼저 다가올 것이다.
* * *
늦은 밤. 준은 불침번을 서며 다음 순번을 기다렸다.
머지 않아 누군가가 천막 안에서 눈을 비비며 나왔고, 준은 그녀가 자신의 앞까지 오길 기다렸다.
“이젠 제가 하는 검다.”
최근 며칠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이는 마야.
준은 고개를 들어 그런 마야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보는 검까?”
“뭐, 그냥 이야기나 할까 싶어서.”
“……이야기 말임까.”
최근 자신의 태도를 인식하고 있던 마야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곤 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준이 입을 열었다.
“죽은 자들의 신, 라네리우스. 녀석의 기운에 침식됐을 때, 내가 봤던 건 과거 데이다스의 대신전이었어.”
한때 알타스 모험단이 발견했던 장소로, 죽음의 왕이라 알려진 데이다스의 제단.
“메르데인에 모습을 드러냈던 리치의 이름이 데이다스라고 하더라고.”
“…….”
그곳에서 마주한 데이다스. 놈은 죽음에 대한 예찬론을 거창하게 늘어놓더니, 스스로 제단의 제물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타인의 죽음을 보여 줬었지.”
“타인의 죽음……?”
“그래, 타인. 그리고 그 타인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어.”
준이 아닌, ‘이정준’이 겪었던 타인의 죽음.
적어도 이정준이 살고 있던 대한민국에선 타인의 죽음이란 것이 이 세계만큼 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고, 거대하며, 자연재해처럼 다가왔다.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하지만 우습게도, 내겐 그곳이 요람처럼 따스했어.”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던 장소. 비록 그 속은 화염으로 가득해, 전신을 불태우고 있었지만.
이정준이 유일하게 사랑을 느낄 수 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들의 죽음을 반복해서 겪으며, 나는 조금이라도 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
처음에는 좌절했고, 그 다음에는 이곳이 현실이 아님을 인지했다.
그렇기에 속에 담아 뒀던 모든 것들을 쏟아 냈다.
살아온 인생, 후회되는 순간, 선택의 결과…….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기적. 아마 리네리우스는 내가 그들과 함께 죽음에 취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이었겠지.”
하지만 준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준이 그곳에서 화재 현장의 부모님들에게 삶을 줄줄이 내뱉었던 이유는, 그 환상 속에서 깨어나기 위함이었다.
비록 환상에 불과하나, 그분들에게 자신의 삶을 모두 말해주고, 티끌의 후회조차 남지 않도록.
“그렇게, 나는 돌아왔어.”
“…….”
그 이야기를 들은 마야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준이 말한 말은, 그가 여태껏 숨겨 뒀던 비밀의 일부이리라.
여태까지 일행들에게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그의 일부일 터.
그리고 그것을 들은 마야는 마치 이렇게 들렸다.
-내가 본 것을 말해 줬으니, 네가 본 것도 말해 줘.
라고.
마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보고 싶슴다.”
“…….”
“부족장…… 내 아버지가, 보고 싶은 검다.”
수많은 선조의 영혼들이 그녀의 곁을 떠돌고 있는데, 정작 그녀가 가장 보고 싶은 영혼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라네리우스의 기운에 잠식됐을 때, 본래라면 라네리우스의 의도에서 벗어난 마야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네리우스의 내면에 깊게 잠들어 있던 영혼 중 하나가 마야에게 멋대로 접근했다.
“라네리우스. 놈이, 내 아버지의 영혼을 가지고 있던 검다.”
아주 찰나에 불과했지만, 마야는 분명 볼 수 있었다.
라네리우스의 구속에서 풀려나, 아주 찰나지간 그녀에게 접근했던 부족장의 영혼을.
“분명…… 살아 있는 검다. 내 아버지는, 이곳 어딘가에…….”
당장이라도 찾아 움직이고 싶었다. 부족의 복수를 갈망하여 세상 밖으로 나왔던 그녀가, 복수 이외에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렸다.
“찾고 싶은 검다……. 아버지를…….”
“……그래.”
마야는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용병단 전체를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니…….
“용병단을 나가도, 괜찮겠슴까?”
자신이 이곳을 떠나겠다.
메르데인에서부터 줄곧 고민하던 말을, 마야는 겨우 내뱉을 수 있었다.
* * *
타닥.
장작이 타오르며 온기를 주변으로 전한다.
준은 그 온기에 온전히 몸을 맡기며, 마야에 대해 생각했다.
‘게임 내에서, 조경족의 부족장은 분명 죽음을 맞이했었다.’
리네리우스와 협약을 맺었던 폼멜.
놈은 자신이 습격한 조경족의 영혼을 활용해 리네리우스를 지상에 현현시킬 방법을 구현해 냈다.
그리고 리네리우스가 지상에 강림하면서 동시에 침식 군단을 지상에 내려보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야의 아버지이자 조경족의 부족장은 영혼을 흡수당해 죽음을 맞이하고, 그 육체는 고스란히 조종당해 마야와 전투를 펼친다.
그것이,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마야의 스토리였다.
‘그런데 그 부족장이 살아 있다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마야의 말처럼 가능성이 있는 걸까?
가장 먼저 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확인하고 싶다, 였다.
준에게는…… 아니, ‘이정준’에게는 결함이 있었다.
어린 시절 화재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고, 그 죄가 자신에게 있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려 살아갔다.
어린아이가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하나뿐.
도피였다.
하지만 죽을 각오도 없었던 터라, 어영부영 살아가며 그의 시선은 게임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게임 속 세계에서, 처음 동료로 맞이했던 것이 마야였다.
마야라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잃어버린 가족을 그리워했고, 사무친 복수심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 내는 스토리를 지녔다.
이정준은 거기에 자신을 대입했다.
부디 이 아이가 그 끝에 행복을 되찾길.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마야라는 캐릭터의 스토리는 행복으로 끝맺음을 짓는다.
아니, 그것은 ‘마야’의 행복이었다.
리네리우스에게 조종당하는 부족장의 시체를 베어 냄으로써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
그것으로 마야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던 그리움이란 속박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사회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건 이정준의 행복이 아니었다.
이정준이 원하던 것은, 가족을 되찾는 일이었으니까.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가족을, 게임 속 캐릭터에 대입해 마야가 살아 있는 부족장과 만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준은 크나큰 상실감을 겪었고, 그 뒤부터는 스토리가 있는 네임드 NPC들을 피해 왔다.
더 이상 같은 상실감을 얻고 싶지 않아서. 게임이라는 도피처마저 자신을 버리게 두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랬다.
‘나는…….’
그 당시 그토록 염원하던 자신의 행복을, 지금이라면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욕심이 들었다.
마야가 살아 있는 부족장과 만나고,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
시선이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이들 모두, 막연한 미래를 향해 싸우고 있는 준을 따라와 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로지 마야의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이건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선택지를 하나 고른다고 해서, 다른 퀘스트들이 멀뚱멀뚱 기다려 주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선택해야만 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꿈을 마야에게 선사해 줄 것인가.
아니면, 여태까지 함께 따라와 준 동료들의 신뢰를 믿고 나아갈 것인가.
양자택일을 하라는 듯 강요하는 것처럼.
게임 속 마련된 선택지들처럼.
상황이 준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0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