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02)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02화(302/374)
303화 믿음
“마야.”
“……옛슴다.”
장작 타는 소리 속에서 문득 들려오는 준의 목소리.
마야는 방금 대답한 자신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놀랐다.
처음 흰고래 용병단에 들어왔을 적만 하더라도, 그녀는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뒀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곳은 부족장에게서 느낄 수 있던 가족의 정을 대신 느낄 수 있는 곳이었고, 마야에게 용병단은 가족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가족을 떠나겠다고 말한 것이고.
이 다음으로 들려올 준의 말이 무엇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비난을 할까?
아니면 자신처럼 감정에 호소하며 잡으려 할까?
혹은 이해한다고 말해 줄까?
둘 중 뭐가 되더라도 두렵다.
그러나 이어지는 준의 말은, 마야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나는 우리 용병단을 믿어.”
“……?”
“그리고 그 가족 중 하나인 너 또한, 믿어.”
“…….”
믿으니까, 떠나지 말라는 것일까.
그러나 마야가 본 준의 눈빛은 그런 의미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저 눈빛은, 정말 자신을 믿기에 나오는 것이었다.
“단정으로서 명령할게.”
“…….”
“찾아와.”
“……예?”
“너의 가족을 찾아서, 반드시 이곳에 데려와.”
“…….”
“그게 내 명령이야.”
믿기에. 마야가 다시금 돌아올 수 있음을 믿고 있기에 그녀에게 말했다.
“받아.”
“이건…….”
“8계층의 지도.”
“……!”
“너의 아버지는, 높은 확률로 여기에 있을 거야.”
준의 손가락이 지도의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이, 지도는…….”
“내가 만든 거야.”
준에 내민 8계층의 지도.
이것은 마야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지도였다.
본래라면 이보다 훨씬 더 듬성듬성 비어 있어야 할 8계층의 지도.
하지만 준이 보여 준 지도에는, 여태까지 발견된 적 없던. 혹은 공략된 적 없던 지역마저 표시되어 있었다.
“8계층 아케란. 라네리우스가 머물고 있던 계층이고, 놈의 세계 중 일부가 형성된 공간이야. 놈이 소멸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공간은 계속 남아 있을 거야. 적어도 이 시즌이 끝나기 전까진.”
“…….”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그리고 이 지도는 어떻게 만든 거냐.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믿어 주는 검까.”
“그래. 그러니까 가족을 구해서, 반드시 우리한테 돌아와.”
“……알겠슴다.”
가족이란 분명 여러 형태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욕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며.
때로는 그저 믿고 기다려 주기도 하는 것이다.
마야는 준에게서 그것을 느꼈다.
그가 믿어 주기에.
자신도 그 믿음에 부응하겠다.
“반드시, 돌아오겠슴다.”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길레느 상회에 연락해. 차일스도 데려가고.”
예정에도 없던 차일스의 고생길이 그가 없는 곳에서 정해졌다.
“꼭, 그렇게 하겠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야가 재차 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깊게 고개를 숙이곤,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곧이어 누군가가 천막에서 머리를 쏙 내밀었다.
“갔냐?”
“갔어.”
“어휴, 숨어서 엿듣는 것도 힘들었다.”
“정말 갔네요…….”
“흐하핫! 전사라면 신념에 따라 저토록 망설임 없이 걸어야 하는 법이지!”
일행들이 하나둘씩 천막 밖으로 나와, 마야가 사라진 어둠 속을 바라봤다.
부디 그녀가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있기를.
누구 하나 빠짐없이 마야의 여정을 응원했다.
* * *
당분간 마야가 자리를 비우게 됐지만, 흰고래 용병단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8계층이라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 풍경일까 싶었는데…….”
8계층 진입.
다른 용병들과 함께 올라간 8계층, 엔드 필드의 풍경이 일행들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확실히, 뭔가 대단하긴 하네.”
드넓은 평원.
적당히 구름 낀 하늘이 지상을 비추고, 방금까지 비라도 내렸던 것인지 녹청빛을 머금고 있는 대지는 축축하다.
그리고 저 멀리.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엔드 필드. 학자들에 의하면, 신들의 전쟁에 의해 생겨난 장소라고들 하지.”
학자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준은 아마 이 세계가 신들의 전쟁으로 인해 멸망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는, 신들의 전쟁 속에서 희생된 어떤 존재의 사체다.
“저, 저렇게 거대한 생명체가…… 세상에 존재했단 말입니까?”
사체는 생전에 무엇을 찬양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죽기 전 하늘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여, 이제는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구름을 뚫고 올라간 거대한 팔의 뼈. 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아…… 저것도 거대하긴 거대한데, 그. 대장. 저건……. 뭐야?”
“……!”
엘레노어와 베른은 거대한 사체의 밑으로 움직이고 있는 존재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에이든도 한 차례 본 적이 있는 존재였다.
“저건……?”
“거신병이야.”
과거, 엘레노어가 아직 용병단에 합류하기도 전.
마녀의 숲에서 봤던 성을 지키는 거신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오, 신화 속에서나 봤던 그것인가!”
경험이 많은 베른이 어디선가 들어 봤다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
거대한 사체와 비교하면 마치 어른과 갓난아기처럼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수백 미터에 다다르는 거신병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이 평원을 돌아다녔다.
“이게, 8계층이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들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사람들의 힘까지 합쳐 가며 싸워야 하는 미지의 영역.”
제아무리 강력한 7레벨이라 하지만, 혼자서 저 거신병과 싸우라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야 이길 수도 있겠지만, 질 가능성이 더 높으며.
덩달아 한 개체와 싸운 후에는 기진맥진하여, 움직이기도 힘들 테지.
그렇기에 힘을 합쳐야 한다.
유아독존의 길을 걸어왔던 존재들이 다시 한번. 힘을 합쳐 미지와 싸우고 힘을 아끼며 앞으로 조금씩 전진해 가는 것.
“한 마음으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우린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는 놈들하고 동행하며 싸워야 해.”
“…….”
심지어 마야조차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 불안감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마야를 믿었기에 보내 주었고, 마야 또한 자신들을 믿었다.
자신이 없더라도 역경에서 이겨 내고, 다시금 그녀가 돌아 올 보금자리를 지켜 주리라 믿은 것이다.
“그런데 단장. 왜 벌써부터 텐트를 치고 있는 거야?”
“마탑이 올때까지 시간이 좀 남거든. 합류한 이후에 마법사들과 합을 맞춰가며 움직일 거야.”
본래부터 상위 계층은 마법사들의 판이었다.
검사 수십 명이 달라붙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적을, 준비된 마법 몇 개 사용하는 것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었으니.
준이 평소 다른 마법사들을 ‘틀에 갇혀 있는 존재들’이라고 얕잡아 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실력이 가짜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한 실력이 있기에 지금과 같은 위세를 펼칠 수 있는 것이리라.
현재 마법사들은 7계층에서 올라오고 있으니, 머지않아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이 남은 것이고.
준과 일행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이곳저곳, 적의로 가득한 용병들 사이에서.
* * *
용병.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팔아 돈을 버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스스로의 몸을 아끼고, 실력 좋은 동료를 좋아한다.
동료가 강할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확률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확실할까?
“끼야호!”
“싸워! 죽여!”
“아주 묵사발을 내 버리란 말이야!”
마치 지하 투기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니, 어쩌면 그곳보다 훨씬 천박하게 느껴지는 환호 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투박하고, 또 투명하다.
오직 전투만이 있는 곳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무대.
스스로의 영혼을 끌어올리고, 상대방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투지만이 들끓는 곳.
“이게 무슨…….”
마법사들을 기다리는 사이 만들어진 대련장.
당연한 일이지만, 이만한 숫자의 용병들이 모이다 보면 경쟁 심리가 발동할 수밖에 없다.
강렬한 호승심에 몸이 들끓는 자.
이전 임무에서 서로 원한이 쌓인 자.
그저 남을 찍어 누르고 싶은 자 등등.
여기저기서 실력을 보이고 싶어 하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풍경인 것이다.
“이야. 이것도 오랜만에 보긴 하네.”
“흐하핫……. 아련한 과거가 떠오르는구나. 그래, 옛날엔 나도 저곳에서 몸을 풀곤 했었지. 메르데인에서 말이다.”
“어…….”
본래라면 저 사나운 투지 속에서 에이든은 살짝 기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전투에 있어서는 망설임이 없으나, 목숨이 걸리지 않은 일에는 그다지 호전성이 없는 그였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릴까.
에이든은 왠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황금빛으로 타올라 살육을 즐기는 악마……!
한때 블랙마켓에서의 투기장에서 ‘금화마살’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당시의 기억이 에이든의 투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꽈악.
자연스럽게 손이 검집 위로 올라갔다.
만약 자리만 난다면, 언제라도 올라갈 수 있도록……!
“음, 그런데 불러 주는 놈들이 있긴 하려나?”
“예……?”
더없이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준을 바라본다.
그런 에이든의 모습에 준도 머리를 긁적였다.
“저놈들, 아닌 듯하지만 대충 비벼 봐서 싸울 만한 놈들한테만 대결을 신청하고 있잖냐.”
몸이 재산인 게 바로 용병이다.
지금은 저렇게 죽일 듯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적당히 만만한 상대를 골라 적당히 하고 있는 것뿐.
피가 좀 튀는 것쯤이야,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포션의 힘으로 금방 치료할 수 있으니.
반대로 말하면 굳이 어려운 상대를 골라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흰고래 용병단이 있다.
비록 그들이 귀족의 끈을 잡고 있는 탓에 흰고래 용병단을 적대시하고 있다지만, 그 실력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흰고래 용병단이 쌓아 온 업적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세간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운이 좋을 뿐 아니냐고.
그럼 용병들은 들고 있던 술을 놈의 대가리에 쏟아부으며 말할 것이다.
-이것도 운이 좋으면 피해 보지 그랬냐!
라고.
그만큼 흰고래 용병단은 용병들이 인정할 수준의 집단이 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에이든은 어딘가 들뜬 표정이 되었다.
“과, 과연. 우리가 그런 위치까지 온 것이로군요…….”
이곳에 있는 상위 계층의 별들이, 자신들을 어려워하고 있다.
방금까지 저들에게 적대적으로 취급받고 있어 아쉽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또 준의 말을 들으니 무겁던 기분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
“그래 봐야 우리를 왕따 시키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이지.”
차라리 여기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저놈들은 적의를 품는 만큼 이쪽의 실력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친 것이 영 아쉽긴 했지만…….
‘새삼 우리 위치를 알 수 있는 점이기도 하지.’
강자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놈들은 그 시선을 허락했다. 자신들이 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그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인간들만 모여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가끔은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이 있기에 이변이란 단어가 있는 것이다.
“이봐, 거기 말라깽이.”
하위 계층에서 수준 낮은 마법사들을 지칭하는 말과 함께, 누군가가 준을 지명했다.
“나와서 한판 붙어 보지.”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0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