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08)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08화(308/374)
309화 조사대
이토록 피곤함을 느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익숙하지도 않은 8계층에 찾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다.
엔도는 이 피로가 육체에 의한 것이 아닌 정신적 피로임을 금방 깨달았다.
그것은 나름 익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의 그는 언제나 정신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달래고자 눈을 감는다.
딱히 도움이 되진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것 외에는 별다른 방편이 없었기에 그랬다.
“…….”
눈을 감자 금방 수마가 찾아왔다.
잠시 어둠이 내려앉고,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어린 시절의 자신이다.
어린 자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비쩍 마른 사체다.
어린 엔도는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묘할 정도로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불쾌감이 어린아이의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도련님. 저것이 평범한 인간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 온 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뒤에서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 또한 들려온다.
-네가 저들을 구할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면, 분명 그리 할 수 있을 게다.
처음으로 시체를 봤다는 공포감보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더욱 무겁게 엔도의 어깨를 짓눌렀다.
금방이라도 발이 땅에 처박힐 것만 같은 무게감.
그 안에서 성인이 된 엔도가 눈을 떴다.
역시, 피곤함은 그다지 회복되지 않았다.
“도련님.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랬나 보군.”
“어휴, 큰일을 하셔야 하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이거라도 좀 드십시오.”
오랜 친우, 란이 영약을 품에서 꺼내 그에게 넘겨주었다.
엔도는 그런 영약을 한입에 삼켰다.
상쾌하고 청아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피곤했던 정신이 잠시나마 회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엔도는 알고 있다.
“란.”
“예, 도련님.”
“회의 중 불만이 많던 귀족들이 보이더군.”
“후우. 그러게나 말입니다. 후작께서 분명 이번 일의 중요성을 그들의 가문에 단단히 일러 뒀을 터인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 걸까요?”
엔도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재차 란에게 물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지평에 필요한 존재들인가?”
“하하……. 글쎄요. 쉽게 단언하기 힘들군요. 굳이 따지자면, 예. 필요합니다. 그들의 존재가 사냥개가 되어 줄 것이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집을 지켜 주겠죠.”
단.
이라는 말을 끝에 붙인 란이 말했다.
“후작께서 생각하신 그림은 그렇습니다. 제 생각과는 다르지요.”
“그런가.”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 저들은 필요치 않습니다. 단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필요한 공구 같은 개념이죠. 예를 들면, 못 같은 거 말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소모품이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저들은 소모품에 불과해.”
당연한 말이었다.
실제로 엔도는 그런 식으로 귀족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한 적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그러라고 배웠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소모품이 됐던 귀족들 또한 일반 백성들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버리길 반복한다.
이용하고, 버리고, 이용하고, 버리고.
엔도는 방금의 꿈을 다시금 떠올렸다.
꿈속 자신이 보았던 아사한 시체는 어째서 생겼을까.
“도련님 말씀이 맞습니다. 소모품이죠. 다 쓰이고 버려질 겁니다.”
-소모품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쓰임이 다해서 버려진 것 같아요.
현실의 란과 과거의 란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고, 눈을 감고 있던 엔도가 현실의 란을 바라봤다.
“그렇지. 버려진 것이지.”
쓸모를 다했으니 버려졌을 뿐.
평소처럼 엔도는 웃었다.
웃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그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양쪽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 *
조사대 편성은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보자는 쪽으로 넘어갔다.
둘째 날에 시작된 침식자들의 침공에 보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그사이 준과 동료들은 베이스 캠프의 보강을 마쳤고, 이따금 찾아오는 라네스의 어린 제자들을 상대해 주며 시간을 보냈다.
혹은 지금처럼 에이든과 함께 체크 포인트 바깥으로 나가 몬스터를 상대하기도 했고.
“학명 프리즈너(Prisoner). 흔히 부르는 이름은 죄수.”
준은 평원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하나의 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이름처럼 사지가 쇠고리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철근에 감긴 거대한 두 팔이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저것에 대한 정체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분분하다고 해. 타락한 정령이라느니, 신에게 버림받은 존재라느니, 이것저것 많지.”
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가까워졌던 것인지.
프리즈너가 이쪽을 응시하기 무섭게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달려왔다.
두 다리에 무겁디무거운 쇠고리를 달고서도 바람처럼 움직인다.
“사실 그런 건 우리 같은 용병에게 중요한 건 아냐. 내가 설명해 준 건, 어디까지나 미지의 상대를 경험하는 데 있어 녀석에 대한 평가를 말해 준 것뿐이니까.”
준의 담담한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에이든이 바람을 일으켜 검을 뽑아 놈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가능하면 내가 어느 정도 설명은 해 주겠지만, 8계층부터는 불가해의 영역. 따라서 내 말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 실전은 네가 직접 알아가야 해.”
콰앙!
에이든의 검이 프리즈너의 거대한 팔과 맞붙었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기운이 폭풍처럼 둘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에이든의 검은 그 짧은 사이 프리즈너의 거대한 철근 팔을 몇 번이고 베어 냈다.
“……!”
그러자 찌그러지고 베인 철근 너머, 텅 비어 버린 프리즈너의 팔 안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닿기만 해도 생물을 죽이는 강렬한 기운에, 에이든은 발에 바람을 휘감아 거리를 벌렸다.
-주인! 저놈의 팔은 영력 덩어리다!
에이든의 내면에 깃든 바람의 정령이 소리쳤고, 에이든도 그 사실을 인지하며 재차 거리를 좁혔다.
놈의 주변으로 폭사되어 나오는 검은 기운에 맞서, 에이든도 바람을 일으켰다.
사납게 울음을 터뜨리며 들판을 질주하는 늑대처럼, 에이든의 마력이 담긴 바람이 그의 검을 타고 흘러 세상 밖으로 나와 프리즈너의 검은 기운과 부딪혔다.
치열한 싸움은 금방 종지부를 찍었다.
먼저 기운이 다한 것은 프리즈너였고, 끝내 녀석의 머리는 에이든의 검에 의해 일도양단되었다.
스르르…….
“직접 상대해 보니까 어때?”
“조금만 방심했어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같습니다.”
프리즈너를 제외하고도 필드에 널린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에이든이 느낀 감상이었다.
“맞아. 그게 바로 8계층의 테마라고 보면 돼. 미지 그 자체지. 그걸 넘어서야 하는 것이 현 인류의 목표고.”
“그렇다면 9계층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기습적으로 물어오는 에이든의 질문.
준은 그런 에이든의 푸른빛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봐야 하고, 극복해야 할 존재.”
그리고 지금은, 그가 다스리던 군대와 마주봐야 할 시간이었다.
저 멀리.
또 다시 붉은 파도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준과 에이든은 짧은 여흥을 끝내고 체크 포인트로 돌아갔다.
* * *
“이전 침공 때보다 숫자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특히 덴트라스 마탑 측 용병들의 피해가 제법 컸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흉영의 기세가 이전보다 더욱 거세진 듯하다고 하더군요. 무슨 차이가 있던 걸까요?”
“그것도 문제지만, 현재 놈들의 출현 방식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분명 침식 현상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 침식자들만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재로선 놈들이 지속해서 생성되는 구역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소.”
3일의 텀을 두고 두 번째로 시작된 침식자들의 침공.
회의의 내용은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졌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양상.
적들은 명백히 더 강해져서 왔고, 마법사들은 각각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대로 방비에 더욱 힘을 굳혀야 한다, 혹은 외부에 생긴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등.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번에도 방어에 굳건했던 라네스가 발언했다.
“먼저, 조사대를 편성해야 함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부의 방어부터…….”
“우리 모두 지난 3일 동안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조사대를 움직일 정도의 여력은 충분히 있습니다.”
“끄응…….”
애초에 체크 포인트의 규모가 그리 큰 곳도 아니다.
이미 빈틈없이 방비는 끝내 둔 상황.
“만약 적들의 공세가 계속해서 강해진다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지기 전에 해결해야 함이 맞다고 사료됩니다.”
“강해진다면, 얼마나……?”
“최악의 경우에는 이번과 같은 규모로 계속해서 강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오?”
“끄응, 아예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지.”
“올해 소멸된 체크 포인트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들었소.”
“……그럼 조사대 편성을 서둘러야겠군.”
이전에도 몇 번이나 나왔던 안건인 만큼, 조사대 편성은 신속하게 끝났다.
그리고 그 최상단에는, 흰고래 용병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 *
조사대 편성 인원은 총 10팀으로, 한 팀당 20명씩 인원이 배정되었다.
다만 아쉽게도 라네스와 준이 바랬던 조사대의 전권은 가지고 올 수 없었다.
비록 공략된 땅 중 하나긴 하나 아직까지 미지가 많은 엔드 필드의 특성상 딱딱한 명령 체계보단 그때그때 맞춰서 선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흰고래 용병단은 1팀에 배속되었고, 자라 용병단 16명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반갑소. 자라 용병단을 맡고 있는 알키몬드요.”
“흰고래 용병단장 준이다.”
“소문이 대단한 용병단과 함께하게 됐으니 안심이로군. 역시 용병단 이름을 잘 지었어.”
자라. 말 그대로 거북이를 닮은 자라과로, 오래 사는 동물으로도 유명하다.
제법 우스꽝스러운 이름이지만, 그런 이름과 별개로 자라 용병단은 8계층까지 올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쁘지 않군.’
인사를 마치고 준은 자라 용병단의 면면을 훑어봤다.
6서클 마법사 다수와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사수 다수. 그리고 나머지는 후방을 지키는 근거리 전사들로 구성되었다.
사수들이 근거리 전사들을 지원하고, 전사들은 마법사들이 한 방을 준비할 때까지 지켜 주는 역할을 하는 아주 정석적인 파티다.
“반갑습니다. 흰고래 용병단원 에이든입니다.”
“마찬가지. 베른이오! 함께하게 되어 반갑소!”
“엘레노어야. 부상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
그에 비해 흰고래 용병단은 고작 4명으로 구성된 용병단. 하지만 어느 누구도 흰고래 용병단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의 저력을 몇 번이나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조사대가 체크 포인트 밖으로 나가고, 엔드 필드에 있을 창천교의 흔적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날은 별 이상 없나.”
어지간한 전투는 피해 다니면서, 그럼에도 동선상 어쩔 수 없는 전투를 제외하면 나름 쾌적한 여정이었다.
첫날은 그렇게 적당히 전투에 있어서 합을 맞췄다.
그런데 서로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수준에 가까웠다.
자라 용병단은 그들만의 전투 스타일이 있었고, 흰고래 용병단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신경써야 할 것은 서로의 영역에 말 없이 침범하지 않는 것 정도.
모두가 뛰어난 이들이었고, 그렇게 첫날은 지나갔다.
2일 차.
이른 새벽부터 3팀에게 통신이 왔다.
침식 현상으로 의심되는 구역을 찾았고, 근처에 있는 팀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머지 않은 곳에 5팀이 있었고, 약 반나절 정도 지났을 때 침식 현상을 소멸시켰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다만 전투 중 부상자가 다수 발생, 사망자도 둘 정도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격렬한 전투였다고.
3일 차.
흰고래 용병단도 드디어 침식 현상을 발견했다.
자라 용병단장 알키몬드는 지원을 부르는 게 어떻겠냐 했지만,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다른 팀과도 많이 벌어졌어. 지원을 기다리려면 반나절 정도 걸리겠지. 시간이 부족해. 우리도 복귀할 시간은 벌어 둬야지.”
그 의견에 알키몬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