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15)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15화(315/374)
316화 패배
콰아앙-!
아까와 달리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폼멜의 움직임.
에이든은 놈의 움직임이 이전과 달라진 이유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피해를 감수하고 왔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어.’
상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가 약해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에 소환되어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상대의 공격을 버티고 시간을 끄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터.
육체적 능력 또한 8레벨의 중간쯤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가능한 일일까?’
준의 보조 마법, 그리고 엘레노어의 신성 마법까지 육체에 깃들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폼멜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기세는 8레벨에 불과하건만, 그가 본격적으로 검술을 펼치기 시작하니 결코 8레벨로 보이지 않았다.
후웅-!
거대한 대검은 분명 강검과 중검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새삼 엘레노어의 신성 마법이 저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아 낸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묵직한 검법.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폼멜의 검은 이따금 대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내며 몰아쳐 오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느릿하게 바뀌며 타이밍을 빼앗기도 한다.
마치 검 그 자체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어떻게 저런 형태의 검술을 펼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
‘이게…… 초대 군단장의 검술.’
현재 제국의 모든 기사들이 가진 검술의 근본.
마치 검을 휘두르는 데 아무런 제약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베른을 아무렇지 않게 휘몰아친다.
카가각-!
가까스로 베른의 빈틈을 막아 낸 에이든이 바람처럼 부드럽게 검을 휘둘러 폼멜의 기운을 털어 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이어졌고, 에이든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놈의 빈틈을 찾아 쾌속하게 검을 휘둘렀다.
하나…….
카강-!
첫 기습의 성공 이후, 에이든의 검은 단 한 번도 녀석에게 닿지 못했다.
분명 빈틈이라 파악하고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녀석의 검은 에이든의 공격을 막아 냈고, 더 나아가 반격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그 반격 한 번 한 번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수준이다.
미리 알아차리고 반응하지 못했다면, 순식간에 팔이나 다리 한 쪽이 날아갔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좋지 않아…….’
반면 아까부터 베른의 움직임은 점점 더 느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이든은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지난 죽음의 신과의 전투 이후, 베른은 8레벨에 진입했다. 하지만 그 당시 라네리우스의 일격을 막아 내는 데 대부분의 기운을 소모했던 상황.
그것이 육체적 성장에 영향을 끼쳤고, 그의 육체는 아직 완벽한 8레벨의 영역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향이 이제 와서 발목을 붙잡고 있었으니.
“크음……!”
결국 폼멜의 기운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한 베른이 내상을 입고 뒤로 밀려났다.
“베른!”
속절없이 밀려나는 베른을 향해 쏘아지는 폼멜의 검.
위험.
저 일검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베른이 밀려나는 와중에도 방패를 비스듬이 치켜 들었다.
그러나 놈의 대검은 신성력으로 휘감긴 베른의 방패를 꿰뚫는 것도 모자라, 그의 어깨까지 뚫어 버렸다.
“커허…….”
순간 패도적인 폼멜의 기운이 베른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며, 그의 육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음…….”
그와 함께 폼멜은 텅 비어 버린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피처럼 붉은 기운에 휩싸인 에이든이 폼멜의 한쪽 어깨를 완전히 소멸시킨 것이다.
“그분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군.”
“…….”
“거기에, 일차적인 시험도 통과한 듯하고. 한데 신기하군. 그럼에도 능력을 사용하는데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나?”
“당신이…… 알 바 아니야.”
초대 황제의 마력을 끌어올린 에이든.
폼멜이 말한 것처럼, 에이든은 아차원에서 초대 황제를 마주한 이후, 그의 몸에 흐르는 황제의 마력이 더욱 강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덕분에 그 힘을 아주 잠깐 끌어 쓴것만으로도 정신이 온전치 않았으나, 필사의 의지로 지금 이 순간을 견디고 있었다.
‘목을 베려고 했는데…….’
그곳을 베었다면, 필시 반격당했다.
폼멜은 베른을 쓰러뜨리는 사이에도 에이든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고 있던 것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정교한 인지 능력과 그것을 고스란히 육체로 옮길 수 있는 힘.
여태까지 막대한 존재감에 압도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실력으로 압도된 경험은 없었다.
“과거였다면 그분의 명맥이 완벽히 이어지고 있단 사실에 축배를 들었어야 함이 맞으나…… 너는 그 힘을 거부하고 있구나.”
“내, 힘이…… 아니니까.”
“불리하면 써먹는 힘을 부정한다니. 그야말로 배은망덕의 절정이로군.”
“상관 없어, 타인의, 시선 따위……. 결국, 내가 걷는 길이야.”
“……실로 할 말이 없군. 아쉬운 일이다. 또한 아주 기쁘다. 최근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이토록 살아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거늘. 더 이곳에 있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폼멜의 기운이 베른의 내부를 헤집었던 것처럼.
에이든의 일격을 허용한 폼멜 또한 패도적인 마력으로 인해 더 이상 이 육체를 유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길 바라지.”
그림자처럼 일렁이던 놈의 육체가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놈이 완전히 소멸된 순간. 에이든은 손을 덜덜 떨며 황천검을 놓치고 말았다.
손잡이가 흥건한 피로 가득했고, 검을 쥐었던 양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힘을 썼더라면…….’
아니. 그나마 베른이 녀석의 힘을 빼 주었기에 가능한 일격이었다.
시작부터 초대 황제의 힘을 사용했다면, 녀석을 막아 낼 수도 있었을 터.
에이든은 어떻게든 떨어진 검을 다잡았다.
당장이라도 베른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스으으…….
방금의 전투로 시선이 끌렸음일까.
수많은 침식자들의 붉은 눈이 안개 사이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마치 이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들판의 하이에나처럼 빈틈이 가득한 에이든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
검 하나 제대로 쥘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육체였으나, 에이든은 그럼에도 검을 움켜쥐고 섰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순간을 넘어서겠다는 각오.
스스로의 확고한 믿음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몸을 이끌어 움직이려던 그때.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침식자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인영이 안개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유령처럼 움직이는 그것들은 순식간에 침식자들을 베어 내고, 찢어 내고, 으깨곤,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안개처럼 사그라들었다.
“……마야.”
두 달 사이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 마야가, 쓰러지려는 에이든의 몸을 부축했다.
* * *
심상 결계 내부에서 눈을 뜬 준은 마치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 선 마법사들을 지나 천막 내부로 발을 들였다.
그곳에는 타락한 정령에 의해 한참 폭주하고 있던 엔도가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가까스로 진정시켰나.”
[심상 결계:흡옥구강(吸獄球疆)]심상 결계라 했지만, 어떤 대단한 술식이나 무거운 마법 패턴이 가미된 마법은 아니다.
그저 순수한 [흡명] 속성으로 이루어진 공간.
지정한 공간의 모든 기운을 소멸시키고, 오로지 [흡명] 속성만 가득 채운 공간일 뿐.
하지만 그렇기에 이곳에서 존재할 수 있는 기운은 단 하나뿐. 흡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락한 정령의 기운에게도 해당되는 일.
나오는 족족 흡명에게 삼켜지는 정령의 기운은 마력으로 치환되어 준의 서클올 휘감고, 재차 이 공간을 더욱 단단하게 옥죄어 주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인지.
타락한 정령은 더 이상 마력을 뿜어내지 않고 조용히 잠들었고, 지금의 상태로 이어진 것이다.
“이걸로 체크 포인트의 상황도 조금은 나아졌으려나.”
엔도의 육체에서부터 어떤 기운이 외부로 퍼져 나가고 있것은 진작에 확인했다.
아마 폭주한 정령의 기운이 체크 포인트를 소멸시키기 위해 그쪽 방향으로 흘러간 것일 터.
“확실히 창천교도 급박해지긴 한 모양이야.”
준이 알 게 모르게 줄곧 해 왔던 일들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창천교라는 거대한 왕국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접어들기 전까지, 준은 사실상 자신이 그들을 조금 귀찮게 한 것뿐이라 생각했거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드높게 지어진 건물이 초기 단계의 지반 다지기에 소홀하면 무너지는 것처럼.
창천교 또한 준의 발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중, 되돌아오는 리바운드에 화들짝 놀라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고래들 사이에 낀 게 바로 당신이란 말이지.”
준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엔도를 바라봤다.
당장은 조용하지만, 준의 심상 결계가 소멸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번 폭주가 일어날 터.
지난 두 달의 여정은 지금 이 순간 준에게 달려 있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저 허리춤에 달린 단검을 뽑아 들고, 엔도의 목. 혹은 심장에 꽂으면 끝나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준은 아직까지 그러지 않았다.
단순한 변심? 아니면 눈앞에 있는 엔도의 측은지심?
모두 아니다.
‘창천교에게 반격의 칼을 간직하고 있는 칼집.’
그게 바로 준이 보고 있는 엔도의 가치였다.
분열되어 있는 귀족들.
그리고 그 귀족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마법사 사회.
그들은 창천교와의 전쟁에서 빠져서는 안 될 귀중한 전력이다.
엔도는 바로 그들을 규합시킬 유일한 열쇠였고.
준은 이 자리에서 놈을 살리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창천교와의 전면전을 말도 안 되게 끌어당길 수 있다.
황제가 가장 경계하던 제국 본토의 타격.
그리고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그것을 주도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제국의 귀족들이다.
황제의 발걸음에 제 한 몸 지키려고 발악하던 이들.
그런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은 이 세상에 단 두 명뿐.
하나는 오웬 후작이고, 남은 하나는…….
그런 후작의 정식 계승자, 엔도 뿐이다.
준은 피곤한 기색으로 엔도의 침상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몽환.”
-응, 주인.
이전과는 달리 확연히 목소리가 또렷해진 몽환.
언제나 졸린 듯 하던 그 목소리가,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준의 부름에 응답했다.
“준비하자.”
-응.
* * *
천지개벽.
고대 혹은 신화에나 내려오는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8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일으키는 이적(異跡).
그것은 단순히 말로 표현될 무언가가 아니다.
말 그대로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기에 벌어지는 풍경.
인간으로서 마법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
라네스가 그간 숨겨 왔던 본신의 힘을 전력으로 해방했다.
그러자 현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차원이……?”
몇몇 뛰어난 마탑주들만이 체크 포인트 결계 밖, 상공에 떠오른 라네스의 주변으로 공간이 일렁이는 것을 확인했다.
차원의 균열.
오랜 시간 단절되어 있던 두 세계를 이어 주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차원 너머에서 나타난 그들은, 군단이라 해야 함이 마땅할 터.
수많은 그림자가 그녀의 주변으로 일렁인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 속 일부가 의지를 지닌 채 현현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은 단절됐던 시간 동안 이곳이 그리웠다는 듯, 자신들의 기운을 마음껏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정령이다.
불의 정령.
바람의 정령.
물의 정령.
땅의 정령.
번개의 정령.
그림자의 정령.
얼음의 정령.
빛의 정령.
어둠의 정령.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자연 속 의지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이 세상에 현현하니.
마법사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라네스……. 8서클에 이른 마법사였단 말인가…….”
그것도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는 8서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다.
저 정도로 능숙하게 기운을 다스리는 것을 보면 최근에서야 8서클에 이른 것은 아닐 터.
여태까지 그 힘을 숨기고 살아왔음이 더욱 믿기지가 않았고, 어느 늙은 마탑주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았다.
“결국, 우리가 걸어왔던 길은 모두 무엇이었단 말인가.”
7서클에 이른 대마법사조차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허망함을 느꼈다.
자신들이 가진 그 어떤 지식을 총동원하더라도, 저만한 경지의 마법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반대로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마치 하잘것없는 쓰레기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런 마탑주들의 반응은 마치 주변을 오염이라도 시키듯 번져 나갔다.
한편, 그런 마법사들과 달리 한참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라네스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그쪽! 패턴이 비었다!”
“젠장, 마력이 부족해! 유동체 어디 있어!”
“빨리빨리 움직여!”
“으아아앗!!”
저만한 대규모 마법을 단순히 라네스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마탑 전원이 덤벼들어야 할 규모였고, 그들은 숙련된 기계처럼 움직이며 모든 빈틈을 메꿔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라네스의 마력에 반응하는 정령들이 지상에 현현해 재해를 일으켰다.
불의 정령이 모여 들면 거대한 화마가 되어 장막처럼 적들을 휘감았고.
빛의 정령은 이곳에 모여든 삿된 기운을 모조리 날려 버렸으며.
그런 빛의 정령이 내뿜는 빛을 번개의 정령이 흡수해 뇌격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형상을 취했다.
단신으로 막대한 숫자의 적군을 막아 내는 8서클의 대마법사.
모두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단 한 명. 그것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던 인물이 있었으니.
“카드를 숨기고 있던 것은 저뿐만이 아니라는 말이로군요…….”
란은 순순히 라네스의 존재를 인정했다.
혼돈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체크 포인트의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킨 여인.
체크 포인트의 그늘진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낸 란이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처음 체크 포인트의 마법진을 무력화시켰던 장치를 다시 한번 가동하기 위함이다.
사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힘을 발휘하긴 힘들 테지만, 라네스의 독주를 어느 정도 방해할 수는 있을 터.
억지로 가동시킨 장치가 결국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며 파괴됐지만, 상관없다.
“또 마법진이 먹통이야!”
“젠장, 빨리 다시 채워 넣어!”
이미, 체크 포인트엔 재차 혼란이 찾아왔으니까.
그러나 그 광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란은 끝까지 알지 못했다. 자신의 등 뒤.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음을.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