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3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33화(333/374)
334화 멸망의 파편(1)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이상하게도 밝은 공간이었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 모두 나무로 이루어진 공간.
나무 자체가 탁자가 되기도 하고, 의자가 되기도 하는 공간이 퍽 이상하게 느껴진다.
“뭔가 인위적인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생긴 공간이네.”
엘레노어의 신성력을 따라 이 공간에 도착한 준의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세계수의 내부니까요.”
“……세계수?”
준도 세계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게임 <블랙아웃> 내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되기도 했고…….
당장 동료들이 준을 찾으러 오면서 썼던 세계수의 정기의 존재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나보단 얘가 먼저 눈치챘어.”
엘레노어가 에이든을 가리켰다.
“에이든?”
“……저도 들어서 알았습니다.”
“아, 바람의 정령한테?”
“예. 그리고…… 폐하께, 들었습니다.”
에이든이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분명 나무로 사방이 꽉 막혀 있던 벽면 중 하나가 스르륵 열렸다.
마치 나무 자체에 의지가 담긴 듯한 모습.
“……자세히 들려줄래?”
과거 에이든은 황성의 보고에 들어갈 기회 대신, 황제와의 독대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에이든은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에 대해 물었고, 황제는 그에 대한 답을 내줬다.
그때 황제를 만나고 나온 에이든은 동료들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없었다. 그런 제약이 걸린 것이다.
“그 제약이, 이 장소에 온 직후에 풀렸습니다.”
“……대장, 예전에 에이든에게 고대 엘프의 피가 섞여 있다고 했지?”
“응.”
“그게 이 세계수랑 관련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 모양이네.”
그러면서 일행들의 시선은 에이든에게 몰렸다.
에이든은 동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설명보단, 먼저 바깥의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그래, 한번 가 보자.”
게임 속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준이지만, 그에게도 세계수와 관련된 지식은 얼마 없었다.
애초에 게임 내에서 등장했던 세계수의 지식도 모두 파편적인 것이었으니.
‘아까부터 전생자의 기억이 자꾸 꿈틀거리는데.’
애초에 전생자가 고대의 탑으로 오라고 했던 이유가 분명 있을 터.
아니, 사실 절반 정도는 알아차렸다.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지만.’
당장은 에이든의 일에 보다 집중해야 할 때다.
그것을 재차 상기하며 에이든의 뒤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갔을 때.
“우, 와…….”
“……뭠미까?”
“…….”
그들을 맞이해 준 것은 푸르디푸른 하늘과 그런 하늘을 감싸고 있음에도 전혀 어둡지 않은 연녹빛의 천장.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수로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그 풍경에 준을 포함한 동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에이든의 몸에서 한 줄기 바람이 흘러나오더니 바람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에이든이 직접 레오라는 이름을 지어 준 바람의 정령.
그 이름에 어울리게 늑대의 형상을 한 레오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해진 모습을 드러냈다.
“펜릴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내가 놈보다 더욱 위용이 넘치기 때문이지!”
직접 성대를 만들기라도 한 것인지, 뚜렷한 음성이 일행들 앞에서 우렁차게 터져나왔다.
“으음……! 그보다, 아주 친숙한 공간이구나.”
그리 말하는 레오의 눈동자에서 진한 그리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엘레노어가 물었다.
“너, 세계수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고 했었나?”
“정확히는 세계수의 힘에 의해 봉인되어 있었다!”
“에이든한테 이곳이 세계수라고 했잖아? 여긴 정확히 어떤 곳인데?”
결과적으로 고대의 탑 또한 블랙아웃의 또 다른 형태. 따라서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방금까지 일행들은 기계 장치의 존재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었으니까.
“와 보면 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기운이 느껴져.”
“그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유일하게 에이든만이 긴장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래.”
에이든과 레오의 대화. 둘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애초에 고대의 탑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말인가?
‘가능성이 있다면 엘프.’
준의 눈빛이 빛났다.
게임 내에서는 알지 못했던 에이든과 관련된 비사.
과거 고대의 탑을 찾기 위해 사막을 횡단하던 중 만났던 악령…… 고대 엘프들은 에이든에게 엘프의 핏줄이 이어져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에이든이 저토록 동요하는 것으로 보아선…….
‘어머니. 혹은 살아남은 엘프인가.’
과연 그 엘프는 적이 아닌 걸까.
몬스터가 아닌, 인격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최소한 블랙아웃에서 발견됐던 대부분의 인격체들은 모두 인류에게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진. 그렇게 알고 있었지.’
하지만 아니었다.
당장 반지 밖으로 빠져나온 꿈의 정령, 몽환도 본래는 이곳 블랙아웃 출신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반지 안에 스스로 갇혀 자신만의 자아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고대의 탑은 어째서인지 황실이 매번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장소. 덱스터의 말에 의하면, 고대의 탑은 선대 황제의 힘을 대대로 전수받기 위한 곳이기도 해.’
말인즉슨, 에이든의 탄생의 비밀 또한 이곳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일 터.
“일단, 그곳으로 가 볼까.”
“……예.”
준의 말에 일행들은 바람의 정령, 레오를 따라 수로를 걸었다.
“여긴 엘프의 도시라든가 뭐. 그런 건가?”
“맞다. 주인의 주인은 역시 똑똑하군.”
“…….”
의외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곳저곳에 생명체가 활동했다는 흔적이 너무 적나라했으니.
“이 나무는 세계수라고 했고. 세계수의 안에서 엘프들은 살아왔던 건가. 그런데 왜 다른 엘프들은 보이지 않지?”
“그건, 우리의 존재가 실패했기 때문이지요.”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유려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에이든의 눈빛이 떨렸다.
“오랜만이네요. 얼마만이죠? 레이너스.”
“난 레이너스가 아니다. 레오다. 네르메데스.”
산들거리는 바람이 근처의 나무를 흔들었다.
그러자 나무는 마치 의지라도 지닌 것처럼 옆으로 휘어지더니, 그 안에서 다소곳이 앉은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저런 미모는, 처음 보는 검다.”
엘레노어와 마야조차 잠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의 미색.
찬란한 백금발의 머리카락이 유유히 부는 바람에 흩날리며 허공을 수놓았다.
“어서오세요, 여러분.”
“……당신들의 존재가 실패했다는 건. 그 연금술사들처럼 무언가에 실패했다는 겁니까.”
“네. 우리는 실패했고, 따라서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없었죠.”
그리 말하는 여인의 표정에는 한 치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같은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에이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뿐.
“저는 당신들이 말하는 고대 엘프…… 네. 엘프족의 정상에 서 있는 자. 엘프의 여왕. 네르메데스랍니다.”
그리 말한 엘프 여왕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이 왕국의 마지막 생존자이기도 하죠.”
* * *
최후의 엘프이자, 동시에 엘프들의 여왕. 네르메데스.
그녀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건물로 동료들을 안내했다.
“이미 레이너스…… 아니, 레오가 설명했겠지만. 이곳은, 예.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세계수의 내부가 맞답니다.”
“세계수……. 제가 전해 듣기로는 세계를 지탱하는 나무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여러분들의 세계에 신이 존재하듯, 우리 엘프들에겐 이 세계수가 신이자 곧 세계. 하지만 우리는 끝내 지켜내지 못했죠.”
“그럼 이 나무는 무엇입니까?”
“마찬가지로 세계수입니다. 제 기억에 의해 유지 중일 뿐인, 모형에 불과하지만.”
“모형…….”
“그렇다곤 해도, 세계수의 힘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가진 기억은 특별해서, 세계수의 힘 중 일부를 온전히 끌어낼 수 있죠.”
궁금한 것이 여러 가지로 많았다.
하지만 당장 하나하나 들으려면 밑도 끝도 없을 터.
준은 먼저 에이든을 바라봤다.
‘지금은 나보단, 이 녀석이 더 궁금한 게 많겠지.’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는 황제에게 들었을 터.
다만 저 복잡한 표정을 보자 하면, 전부 들은 건 아닌 듯 보였다.
“다들 궁금한 점이 많은 표정이네요. 네,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도록 할게요. 먼저…… 고대의 탑. 본래의 의미인 영웅의 탑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그리고 영웅의 탑에는 어째서 세계수로 이루어진 공간이 있는가.
“그리고 에이든. 당신과 관련된 이야기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답니다.”
그리 말하며 싱긋 웃는 네르메데스.
그녀의 이야기의 첫 시작은, 블랙아웃의 존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 *
블랙아웃.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불리지만, 제국의 지하에 뿌리 깊게 내린 이 공간은 다양한 차원으로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우리 차원에서는, 멸망의 기록이라고 불렸지요.”
“멸망의 기록이라. 당신들의 세계가 멸망한 것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멸망의 기록…… 블랙아웃의 정체는, 본론부터 말하자면 멸망한 세계의 먼지 같은 것입니다.”
“고작 먼지 따위로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말입니까?”
“처음에는 단순한 티끌에 불과했을 테지만…….”
그게 억겁의 세월이 흘러 뭉치고 뭉쳐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외우주, 라는 공간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고 들었어요.”
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은 엘레노어였다.
그녀는 이미 죽음의 신, 라네리우스와 마주하며 외우주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
“네.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 달리 말하자면 그곳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러한 공간에, 멸망한 세계의 티끌들이 뭉치고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블랙아웃이다.
“블랙아웃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기억’이 뭉치고 뭉쳐 만들어진 허상의 공간이죠.”
“…….”
문득 아까 네르메데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수라 했던가.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허상의 공간 따위가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 아닙니까?”
“아뇨, 우리의 세계에는 존재하잖아요. 허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에 준은 순간 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지구의 기억 때문인지 나도 마법사로서 생각을 못하고 있었군.”
그랬다. 허상의 힘으로도 세계에 물리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
바로 마력이다.
“우리의 세계에도 마력은 존재했어요. 그리고 마력은 곧 블랙아웃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한마디로, 외우주에서 정착할 장소를 찾고 그곳에 기생한다는 말이로군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째서 멸망으로 이어지는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기억 때문이죠. 블랙아웃의 근본은 기억. 멸망한 세계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면, 무엇일 것 같나요?”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고 한다면…….”
생존 욕구.
그것이 가장 우선시되지 않을까.
죽음 앞에서 모든 생명체는 생을 떠올리기 마련이니.
“그래요. 그렇기에 그들은 살아남고 싶다는 기억을 가지게 되죠. 정확히 말하자면, 멸망하지 않은 세계를 떠올리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에 블랙아웃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세계를 기생하고 있는 세계에 대입하게 되고.
“그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디멘션 리버스인 건가…….”
“디멘션 리버스. 우리 엘프들은, 멸망의 징조라고 받아들여졌죠.”
외우주를 떠돌다, 생명의 빛을 보고 찾아오는 멸망의 파편.
그 파편은 해당 세계의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부터 자신들의 세계를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이, 멸망의 단초가 될 줄은 상상도 못한 채, 말이죠.”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