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7)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7화(37/374)
37화 히든 던전
게임 <블랙아웃>에는, 흔히 말하는 먼치킨 요소라는 게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전원 8레벨까지 키운 파티를 1계층 필드로 데려가 왕 노릇을 하는 것 정도일까?
준은 그 이유를 열거하자면 하룻밤을 지새울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떠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단 한 가지를 말하자면.
‘빌어먹을 상성 시스템.’
준이 [마신지체]라는 스킬을 가지고도 [마법 저항] 특성을 가진 골렘 앞에서 무력했던 것처럼.
전사에게도 카운터 몬스터는 존재했다.
카앙―!
여태껏 막혀 본 적 없던 운광검이 단단한 방패에 막혔다.
침식 현상이 많은 유저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침식자들의 타입 대부분이 상대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게임상 그 벽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껴 봤던 준이었기에, 그 당혹감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에이든도 크게 놀랐겠지.
그러나 에이든은 벽 앞에서 절망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받아들였다.
‘그래. 저게 이 게임의 주인공이 된 이유였지.’
애초에 자신의 무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고 절망했다면, 에이든은 유배지에서 빠져나올 생각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는 벽을 정면에서 볼 줄 아는 자다.
“흡……!”
방패 사이로 창이 튀어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4열이 움직인 것이다.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종류의 적 앞에서 당황할 법도 하건만, 에이든은 망설임 없이 발재간을 놀렸다.
“으랴아아아앗!!”
“막아아아아!!”
당혹감 따위를 느낄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군영을 막은 지 고작 1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콜튼과 그의 용병대원들은 벌써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게 <블랙아웃>의 두려운 부분이다.
2레벨의 유저도, 언제든지 2계층에서 죽을 수 있다.
지금처럼 극한의 확률로 마주하게 될 적들은 그만큼 게임에 큰 변수를 가져다준다.
하필 그 던전의 보스가 이레귤러이고. 하필 그 이레귤러에게 침식이 깃드는 것이 얼마나 희귀한 현상인가?
하지만 그런 현실에 절망할 시간 따윈 없었다.
에이든은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지금 내 실력으론 저 방패를 뚫지 못해.’
아마 [물리 저항] 특성을 가지고 있는 방패일 터.
지금 당장 오러라도 깨우치는 게 아닌 이상, 놈들을 뚫어 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때맞춰, 준의 마법이 발동됐다.
[부여계:엘리멘탈 아머리] [변형 마법] [강화계:엘리멘탈 바디] [부여 속성:바람]게임 <블랙아웃>은 팀 게임이다. 당연히 이곳에서도 블랙아웃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계다.
에이든은 고립되어 살아갔던 황실에서부터,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니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이게, 강화형 마법.’
예민한 마력 감응력 덕분일까.
에이든은 자신의 몸에 깃든 준의 강화 마법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게, 선배가 품은 심상.’
그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준의 의지를 읽었다.
태풍이 분다.
그 무엇이든 앞을 가로막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태풍은 집채마저 날려 버릴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에이든은 스스로가 태풍이 된 기분이었다.
폭풍의 눈.
오로지 에이든이 있는 곳만이 고요하다.
자세를 취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자다 깨도 동작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자세였다.
[돌진]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의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태풍이었으니.
단지, 대상을 정하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콜튼과 그의 용병대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군영 또한 자신들 앞에 들이닥친 태풍을 좌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군대다.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 굳건히 버틴다.
설령 태풍이 온다 한들, 진군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지.’
준은 온전히 자신의 마법을 받아들인 에이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태풍조차 버틴다고?
그래, 어디 한번 버텨 봐라.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두 눈으로 톡톡히 봐 줄 테니.
‘이 마법은 단순한 현상 변이 마법이 아니야.’
강화계 마법을 선택한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지난 한 달의 여정 동안, 준은 자신의 성장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더 나아가 동료인 에이든의 관찰도 유심히 이어 갔다.
그 결과 준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에이든은 속성력을 타고났다.
보통 마법사나 정령술사가 타고 났을 그 재능을, 에이든이 타고난 것이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에이든은 유배지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뛰쳐나왔으니까.
마치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바람처럼.
에이든이 [돌진]을 통해 [배쉬]를 창조할 수 있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그렇기에 준은 바람 속성의 4서클 마법을 직접 펼치기보다, 그에 준하는 파괴력을 에이든에게 심어 주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문자 그대로 태풍이 지나간다.
에이든의 족적 하나하나에, 바람이 남긴 자상으로 가득하다.
대지는 그럼에도 묵묵히 에이든의 발걸음을 지탱했다.
이윽고 에이든의 육체가, 그에게 담긴 태풍이 군영과 마주친 그 순간.
콰득!
톱니바퀴 하나가 일그러졌다.
방패를 든 병사 중 하나가 태풍 앞에 튕겨져 나가자, 군영이라는 정밀한 기계가 파괴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장 앞서 있던 3열이, 그 뒤를 지키던 4열이, 그다음으로는 2열이 파괴되었다.
족히 3분의 2라는 병력이 태풍에 휘말려 스러지자.
“지금이다! 다 죽여 버려!”
“으아아! 이 십새끼들!!”
“뒈져어엇!!”
“무식하게 찔러 댈 땐 좋았지? 이 씨발라 먹을 새끼들아!!”
방금까지 막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콜튼의 용병대가 울분을 토하듯 방패를 내던지고 각자의 무기를 뽑아 달려들었다.
창이라는 무구는 냉병기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지만, 그만한 전술을 필요로 한다.
하나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전술이라는 게 존재할 리 만무하니.
남은 병사들이 장창으로 어찌저찌 대응하려 했으나, 하나둘씩 콜튼과 그의 용병대에 정리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리고.
툭.
전장의 후방.
적의 배후까지 단숨에 튀어 나간 마야도 끝내 지휘관의 목을 베어 내며 승전보를 울렸다.
완벽한 승리였다.
* * *
격한 전투가 끝난 다음 찾아온 것은 휴식이었다.
콜튼과 그의 동료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가운데, 준은 에이든에게 보초를 잠시 맡겨 두고 드래곤의 머리뼈 끝 부분으로 향했다.
“여긴가?”
드래곤의 턱뼈가 존재하는 위치.
이빨 하나하나가 거대한 고목을 연상시키니, 과거 이 드래곤이 생전에 어떤 위용을 보였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이빨의 사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준은, 유독 이빨의 일부분이 깊게 파인 것을 발견했다.
“빙고.”
그곳에 손을 집어넣자, 안에서 무언가가 잡혔다.
잡힌 것을 위로 잡아당기자.
그그그긍…….
뒤편에서 미약한 진동과 함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이번 던전의 목적지 중 하나인 히든 피스였다.
“후우…… 이걸 찾기까지 한 달이나 넘게 걸릴 줄은 몰랐는데.”
이윽고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고 내부로 진입한 준은 [라이트] 마법을 켜고 내부를 둘러봤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역력한 작은 방.
있는 거라고는 소박한 선반과, 한때 책이었을 무언가가 완전히 바스라진 흔적뿐이었다.
그리고 방의 중앙.
준은 덩그러니 놓여진 솥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녀의 솥. 공략에서 봤던 거 그대로네.”
[스콜트리지의 독주머니] [코카트리스의 꼬리] [코카트리스의 안구] [독사의 송곳니] [밴트울프의 성대]그 외에도 십여 가지의 전리품들이 준의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몬스터들의 신체 일부다.
이윽고 가방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됐을 때, 준은 꺼낸 것들을 일제히 솥 안에 투하했다.
그러자 아무런 반응도 없던 솥에서부터 요사스러운 빛이 흘러나왔다.
빛은 솥에 들어간 재료들을 집어삼켰고.
서서히 그 크기를 키우는가 싶더니, 이내 번쩍―! 점멸했다 사라져 버렸다.
“이걸로 조건은 모두 마쳤구나…….”
지난 한 달의 여정은 훈련과 용병대의 임무 수행도 있었지만,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것.
2계층 던전인 [영원의 영면]에 속한 히든 피스 조건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다만 이 히든 피스는 여태까지와 달리 즉각적인 보상을 쥐어 주진 않았다.
“앞으로 일주일인가.”
일주일 후.
히든 피스 조건을 갖춘 대가로, 히든 던전이 열릴 것이다.
준의 최종 목적지였다.
* * *
2계층 잿빛 황무지의 [체크 포인트], 황야의 마을.
준과 일행들은 던전을 빠져나오고,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이곳에 미리 자리를 잡아 뒀다.
‘확실히 비인기 필드라 그런가, 별게 없네.’
그나마 간혹 마을을 찾아오는 상인들만 몇몇 있을 뿐. 전체적으로 마을은 조용했다.
여관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서 콜튼과 그의 동료들이 떠드는 수다 소리 정도가 전부.
그렇게 조용히 휴식 시간을 갖게 된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던전에서 복귀한 지도 어느덧 이틀 차.
그동안 휴식에 전념했기에 몸의 컨디션은 최상에 가까웠다.
“침식자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침식자의 존재다.
게임 <블랙아웃>은 예상치 못한 위기가 자주 등장한다.
덕분에 많은 유저들에게 원망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고인물은 존재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예상치 못한 위기’에는 모두 단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파면 팔수록 수많은 이스터 에그들이 등장했고, 그게 고인물 유저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앞서 준이 마주했던 침식 현상 또한, 단서는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침식자들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지.’
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게임의 후반부 혹은 스토리 진행도에 따라서 침식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유저들이 놓쳤을 뿐, 그 과정에 필요로 하는 디테일이 반드시 숨겨져 있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건 스토리 쪽에서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커.’
[영원의 영면]에 대한 공략을 커뮤니티에 올렸던 유저 또한 그런 경우를 기재하지 않았으니, 이는 준의 존재에 의해 생긴 변화라고 봐야 했다.‘나로 인해 생긴 변화라…….’
도대체 그 변화의 시작은 어디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마야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마야는 기본적으로 침식자들과 적대 관계의 NPC다.
때문에 그녀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라고 받아들였으나, 이 부분은 틀렸다.
그녀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된 이유는 아니다.
‘침식자들이 등장할 때면 보통 명확한 목표가 정해져 있어.’
예를 들어, ‘어떤 존재의 척살’이라면 게임 내에서는 이렇게 표시됐었다.
[침식자들이 NPC 마야를 주시합니다.]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등장한 침식자들은 명확히 준을 주시했던 상황.
그렇다면 일의 발단은 준이라는 의미였다.
‘내가 이 던전의 히든 피스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인가? 하지만 공략에는 그런 게 안 적혀 있었는데.’
가끔 신선한 뉴비를 골탕 먹이기 위해 정성스러운 함정을 준비하는 고인물 유저도 있었지만.
보통 그렇게 만들어진 게시판은 비추(비추천) 테러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봤던 공략글은 그런 것도 없었으니 낚시일 가능성도 없을 터.
‘그럼 여태까지 내가 걸어온 행보와 관련이 있던 건데…… 잠깐. 행보?’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기억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준의 생각이 더 이어지기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저, 선배. 카운터에 이런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 클로이가 보냈네?”
편지에서 미약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허락된 사람이 아닌 제삼자가 열 시, 자동 발화가 되는 기능이었다.
“…….”
이제껏 수차례 겪어 봤던, 안 좋은 감이 느껴지려 할 때.
마을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