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71)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71화(371/374)
372화 최종장(3)
초대 황제.
여태까지의 여정 속에서 수없이 존재감을 드러냈던 존재이자, 홀로 9계층을 지키고 있는…… 사실상 게임 <블랙아웃>의 최종 보스.
하나 플레이어가 진행한 스토리에 따라 초대 황제의 모습은 하나같이 달랐다.
어쩔 때는 현 황제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면.
어쩔 때는 덱스터의 모습을, 또 어떨 때는 하비에르의 모습을. 그리고…… 간혹 에이드리안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게임 내에서도 여러 번 언급이 되긴 했으나, 정작 그의 진짜 모습은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최초로 진짜 그의 모습을 보게 된 에이든은, 세상을 오시하며 서 있는 초대 황제, 에이드리안 반 루드 베네시오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진정…… 일말의 의식조차 남아 있지 않군요.”
분명 이쪽을 바라보고 있으나, 생명체로서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 오연한 시선조차도 그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 뿐.
황제 베네시오는 그저 껍데기만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저것은 더 이상 생명체라고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일 터.
[의념:만검-절(切)]이어서 에이든은 덱스터에게 정신 간섭을 하고 있는 초대 황제의 마력을 끊어 냈다.
직후 덱스터가 숨을 토해 내며 정신을 차렸다.
“허억, 허억……!”
“괜찮으십니까.”
“에, 에이든……?”
식은땀이 가득한 모습으로 겨우 에이든을 알아본 덱스터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세워 일으켰다.
“하아, 하아……. 무슨…… 일이 있던 거냐?”
“이야기하자면 깁니다만…… 저건 저희가 알고 있는 초대 황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저것……?”
그제야 에이든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덱스터가 침음성을 내뱉었다.
일전에도 본 적이 있던, 황성에서 초상화로 수없이 봐 왔던 초대 황제가 그곳에 있었다.
“너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겨 낸 거냐?”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덱스터의 당연한 물음에, 에이든은 어디서부터 설명할지 고민하는 대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전하. 저는 이제부터 저 초대 황제를 외우주로 쏘아 낼 생각입니다.”
“외우주……? 그게 무슨 소리냐.”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시간이 짧습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그래. 간단하게만.”
“블랙아웃은 외우주가 이 세계를 침범하기 위해 만들어진 탑입니다.”
“외우주……. 세계의 바깥이라 알려진 공간이더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조이신 초대 황제는 그런 외우주의 침범에 대항하고자 신들이 벼려 낸 화살입니다.”
“방금 보았던 환영 속에서는…… 스스로가 실패했다고 하셨지. 신들의 계획이 잘 안 됐던 모양이구나.”
“맞습니다.”
“넌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겠지.”
그제야 덱스터는 흰고래 용병단이 이토록 급히 이곳까지 달려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덱스터 홀로 이곳에 올라와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덱스터의 표정에 씁쓸함이 차올랐지만, 지금은 그딴 감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뭘 하면 되겠느냐.”
“곧, 마야가 초대 황제와 연결되어 있는 가장 강력한 연결 고리를 끊어 낼 것입니다.”
“연결 고리?”
“폼멜입니다.”
“……그자로군.”
폼멜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당장은 그에 대해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냐.”
“폼멜은 초대 황제가 지닌 이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입니다. 그게 끊어진다는 것은…….”
“초대께서 이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비로소 초대 황제를 10계층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존재를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지?”
“그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걸 파괴해야 합니다.”
“저건……?”
에이든이 가리킨 방향은, 초대 황제의 뒤쪽에 놓여진 왕좌였다.
“현재 이곳 9계층을 이루고 있는 핵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곳은, 하나의 던전인 셈이죠.”
준은 이곳을 가리켜 공략전이라고 일컬었다.
특정 조건을 해결해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공략전이라…… 하하. 그 마법사다운 평가로구나.”
누구보다 지적일 것 같은 마법사면서, 동시에 용병 업계에 전에 없던 반향을 일으켰던 자.
아니, 그 걸음은 이제 제국의 현재와 미래에 깊은 족적을 남길 자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구나.”
“예. 맞습니다.”
과연 저 초대 황제가 자신의 왕좌가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것인가, 였다.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척.
“그럼 그렇지…….”
이쪽의 대화라도 들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력을 끊어 낸 두 황족을 침입자로 판단한 것인지.
초대 황제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정확히는 에이든을 향해서였다.
“에이든…… 저 존재를 우리가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불가능하겠죠.”
다른 존재라면 모를까, 초대 황제 에이드리안 반 루드 베네시오는 두 사람의 근원과 가장 가까운 존재다.
두 사람이 쓰는 마력은 저 존재에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을 터.
“본래라면,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면 준은 애초에 두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거 아십니까, 전하.”
“무어냐.”
“우리 인간의 몸에는 암이라는 녀석이 자란다는 것 말입니다.”
“……들어 본 적 있다.”
“그 병은 인간의 몸에서 생성되는 녀석인데, 이상하게도 제 숙주를 죽이는 형태로 성장한답니다.”
이제와서 뜬금없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 터.
덱스터는 금방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 마법사가 말해 준 것이냐?”
“하하…… 그렇지요.”
“그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초대 황제를 상대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겠지?”
“예. 있습니다. 받으십시오.”
“이건……?”
에이든이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찬란하게도 빛나는 나무함이었다.
“태양교단에서 대대로 내려져 오는 성물입니다.”
“……분명 태양교단에서도 몇 개 없다고 들었는데.”
“예. 그게 마지막 열매입니다.”
“이걸 나보고 먹으라는 거냐?”
진심이냐는 덱스터의 물음에 에이든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뢰오나…… 전하께선 의념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크큭……. 그건 그렇지.”
남들과 똑같이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9레벨이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부끄러운 이야기였으나, 덱스터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 받아들이마. 너의 말을 들어 보니, 저 존재를 상대하려면 의념과 흡사한 힘이 필요한 모양이야.”
“그렇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준에게 들었던 설명에 의하면 초대 황제의 힘은 일종의 신성력처럼 발현된다고 한다.
이곳에 단둘이서만 찾아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존재들은 초대 황제의 마력에 노출되면, 그 기이한 열기 속에 빠져들어 자칫 적이 될 수도 있었으니.
반대로 말하자면 초대 황제의 마력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스스로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거나 신의 비호가 있을 때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서 창천교가 교단을 그토록 물어뜯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지.’
준이 알고 있는 지식 속에서도 교단은 예전부터 창천교의 견제를 받아왔다.
더불어 의념 혹은 심상 세계를 구축한 존재들에게도 날카롭게 칼날을 세웠으니.
아삭.
이어서 덱스터가 태양신의 열매를 씹어 삼키고,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초대 황제와의 전투에 돌입했다.
“가자, 에이든.”
“예, 전하.”
둘이 동시에 양쪽으로 나뉘어 초대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맞서 초대 황제는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검을 소환하더니.
연결 과정도 없는 ‘베기’라는 행위를 결과만 남겨 둔 채 두 사람에게 쏘아냈다.
그 순간 에이든은 미리 검을 양손으로 교차해 들고 있었고, 덱스터는 마찬가지로 베어 내는 결과를 만들어 반격했다.
‘미리 동작만 알고 있으면……!’
카가가각-!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검 앞으로 무형의 기운이 부딪혔다.
본래라면 에이든이 막든 피하든 ‘베였다’라는 결과만이 남아 있어야 했지만, 스스로의 의념을 일으켜 그 결과를 비틀어 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다.
“크윽……!”
분명 막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덜덜 떨려 왔다.
그저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막아 내기엔 한없이 거대한 힘이 강제로 에이든의 육체를 뒤흔든 것이다.
이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
그저 의념을 일으켜 버티는 수밖에.
반면 덱스터는 사정이 그나마 괜찮았다.
스스로가 초대 황제의 마력을 한계까지 흡수한 터라, 대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거……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을 것 같다, 에이든.”
태양신의 열매가 쥐어 준 신성력이 뭉텅이로 빠져 나갔다.
이대로는 얼마 싸우지도 못하고 신성력이 바닥날 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덱스터는 전력 외, 혹은 오히려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겠군요.”
두 사람 모두 각오를 다진 채, 재차 움직였다.
목표는 왕좌.
이 세계의 정점에 섰던 존재의 찬탈이었다.
* * *
“……빨리도 돌아왔군.”
아직 동료들의 전투가 한참 진행되는 와중.
준은 뒤에서 요동치는 에델의 기운에 고개를 돌려 그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정말이지, 애먹게 만드네요…….”
다시금 돌아온 에델은 이전보다 훨씬 더 육체에 균열이 가 있었다.
순식간에 하위 계층,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이니.
“설마하니 그 많고 많은 곳 중에 4계층으로 떨어뜨리다뇨. 아주 난감했다니까요?”
“네가 가진 격이라면 하위 계층에 떨어질수록 발휘할 수 있는 힘이 한정될 테니까.”
“하하……. 정답, 예. 정답입니다…….”
준의 말처럼 덕분에 또다시 인과율을 어기게 되었다.
여기서 더 어겼다간, 정말 위험해지겠으나.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
“당신도 많은 걸 포기하고 이곳까지 왔죠. 인정하겠습니다. 예, 당신이란 존재는 하나부터 열까지 제 의지를 여러모로 꺾어 버렸군요.”
여태까진, 여러 변명이 있었다.
그저 예상하지 못했다, 신이 만든 변수다, 한낱 필멸자에 불과한 놈이었기에 방심했다…….
하지만 이젠 그조차도 불가능해졌다.
준을 인정한다는 마인드로 10계층까지 그를 끌고 왔는데, 보라.
그땐 방심한 것조차 아니었음에도 당하고 말았다.
“해서, 저도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그저 조금 특이할 뿐인 필멸자라고만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결국 이 세계를 지키는 신들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인다.
그 강력하던 폼멜이 끝내 마야에게 소멸당했고.
본래라면 초대 황제의 먹잇감이 되었어야 할 두 황족이 도리어 초대 황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유도한 것이, 눈앞의 인간이다.
심지어…….
“블랙아웃을 소멸시킬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니,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답니다…….”
마치 블랙홀처럼 기운이 끝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에델의 머리가 정확히 준에게 향했다.
“단순히 간지럼이나 일으키는 벌레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이젠 저라는 존재조차 죽일 수 있는 게 바로 당신이죠…….”
극찬이라면 극찬일 것이다.
에델은 비로소 눈앞에 있는 이 마법사가 자신을, 더 나아가 억겁의 시간을 외우주에서 떠돈 블랙아웃마저 소멸시킬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다.
여태까지 자신이 침략자인 줄만 알았는데, 상대도 이쪽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꼴이지 않은가.
“그러니, 저도 많은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이 육체 하나쯤, 가볍게 포기하겠다는 말이에요.”
동시에 에델의 육체 전체에 퍼져 있던 균열이 점차 그 크기를 불려 갔다.
신들이 정한 법칙에 따라 인과율이 이 세계에 허락되지 않은 힘을 추방시키려 한다.
하나, 그에 맞서는 에델의 기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아니,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에델의 기운이 인과율의 법칙마저 밀어내고 있었으니.
“…….”
다른 시간선이 존재하지 않냐고?
그 시간선이 선택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에델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자신의 실패는 얼마든지 인정한다.
혹여 이 세계를 흡수하지 못하는 이 미래가 걸린다 하더라도 인정할 수 있다.
또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르겠지만, 다른 세계를 흡수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저 이번에 찾은 먹잇감이 생각 이상으로 컸을 뿐이라고 자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블랙아웃이 소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블랙아웃의 소멸은 엄연히 이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그 바깥의 세계, 즉 외우주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사건이었으니, 그 사건을 기점으로 다른 시간선들은 모조리 소멸하고 지금 그들이 있는 이 시간선으로 좌표가 고정될 게 뻔하다.
“…….”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에델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고작.
채 30년이나 살았을까 싶은 저따위 필멸자에게 굴복한 것이다.
수백 년, 그리고 블랙아웃의 역사로 보자면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끝에는…….
한 필멸자의 죽음으로 장식될지니.
블랙아웃.
수많은 세계를 흡수한 멸망의 기억이 한 필멸자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 * *
‘놈이 진심이 돼서 나를 죽이려 하면, 피할 방법은 없다.’
처음 네르메데스에게 에델이란 존재에 대해 듣게 됐을 때, 준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필멸자인 준은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불멸자, 에델을 죽일 수 없다.
그러나 불멸자 에델은 필멸자 준을 죽일 수 있다.
에델 또한 그 대가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테지만.
놈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준의 죽음은 확정이다.
그렇다면 놈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준을 죽이려 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고작 쥐에 불과한 줄 알았던 준이, 정확히 제 심장을 향해 화살을 겨눌 때다.
불멸자인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리고 놈이 결심하는 그 순간은…… 에델이 이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한 인간의 죽음이 세계를 구원할 수도 있다니. 그것만큼 남는 장사도 없겠구만.”
문득 지구에 있던 시절, 인터넷 상에 떠돌던 유명한 질문이 떠올랐다.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한 명의 인간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희생되어야 할까?
당시의 이정준은 뭐 이딴 질문이 다 있냐며 비웃었다.
그딴 철학적인 고민 따위보다, 당장 내일 먹고살 걱정이 우선이었으니까.
“설마하니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이야.”
그래도 준은 여전히 그 질문이 싫었다.
듣는 사람 피곤하게 만드니까.
결국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어지는 질문이 이따위임에야.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도, 그런 선택을 할 겁니까?
뭐 저런 성격 더러운 질문이 있단 말인가.
“하.”
때문에, 동료들에게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만큼은 설명하지 않았다.
중요한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저런 성격 더러운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근데 어쩌냐. 나도 성격 더러운 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데.”
오랜만에 용병의 몰상식함을 보여 줄 때였다.
외우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저 존재에 비하면, 준은 쥐는커녕 벼룩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물어뜯을 줄 알았다.
0%의 확률과, 0.0001%는 엄연히 다른 법이었으니까.
[심상 구현:세계 단절]이제부터 특급 벼룩이 물어뜯으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 * *
그극.
“……!”
에이든의 황천검이 비명을 질렀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그러나 에이든은 더욱 오러를 불어넣으며 앞으로 도약했다.
이번에는 찌른다는 과정이 생략되어 결과만으로 돌아왔다.
이미 초대 황제의 마력을 수차례나 막아 준 황천검이지만, 그런 황천검 또한 결국에는 황제의 마력으로 벼려진 검이다.
이만큼 버텨 준 것이 용한 일일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버텨 줘.’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제 몇 걸음 남지 않은 왕좌와의 거리.
그러나 그럴수록 초대 황제의 움직임 또한 점차 커져 간다.
덱스터조차도 이미 몇 번이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정도였으니.
공격을 흘려 내느라 두 사람 모두 상처로 가득했다.
“허억, 허억…….”
“후우…….”
체력적인 한계와 상관없이, 한 치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이 상황이 두 사람을 정신적으로 몰아붙였다.
죽음의 공포보단, 그 이후에 벌어질 사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자신들이 이곳에서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 자칫 이 세계에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 압박감이 어쩌면 그런 실수를 불러냈을 지도 몰랐다.
‘온다!’
덱스터가 검을 들고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와야 할 공격이 오지 않았다.
뒤늦게 초대 황제의 움직임을 읽은 덱스터가 스스로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멍청한……!’
베는 동작에서 찌르기로 넘어가는 아주 간단한 페이크 기술.
그러나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경험이 많은 에이든이라면 통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덱스터에게는 달랐다.
그 작은 차이를 알아본 초대 황제의 검이 정확히 비어있는 덱스터의 심장을 향해 쏘아지려던 찰나.
[돌진]두 눈이 커진 덱스터가 돌풍을 느낀 직후, 어떤 충격이 덱스터를 밀쳐 냈다.
그리고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로 에이든이 끼어들었다.
콰직-!
불길한 소리는 끝내 황천검에서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덱스터의 얼굴로 자신의 것이 아닌 피가 튀었다.
“에이든!!”
허공으로 날아가는 에이든의 오른팔.
아예 마무리를 짓겠다는 초대 황제의 다음 동작이 이어지려던 찰나.
크허엉-!!
거대한 늑대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터져 나감과 동시에, 거대한 바람의 늑대가 아가리를 벌려 초대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큭……!”
팔이 뜯겨 나간 충격에도 불구하고 에이든의 눈빛에선 아직까지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런 에이든에게 달려가려던 덱스터는 그 눈빛을 봤고, 방향을 바꿨다.
“으아아아아아!!!”
순간의 상황 속에서 덱스터가 마력을 쏟아부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분노가 치솟아 올랐고, 그의 발걸음이 움직이는 순간 과정이 소멸되어 초대 황제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으니.
막 레오의 목덜미에 검을 꽂아 넣어 역소환 시킨 초대 황제의 움직임 또한 과정을 소멸시키고 덱스터의 검을 막아 냈다.
분노에 사로잡힌 듯 수차례 검을 내려치는 덱스터.
그러나 둘의 실력 차이는 명백했다.
그간 아끼고 아껴 왔던 태양신의 신성력마저도 소멸되어 빛을 잃은 순간.
푸욱-!
“컥!”
초대 황제의 검이 기어코 덱스터의 가슴을 꿰뚫고 나왔다.
“끄…….”
그런데, 분노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보이던 덱스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끄흐흐……. 죽을, 뻔했군…….”
마지막 순간에 소멸시킨 태양신의 신성력.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초대 황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수단임과 동시에.
“역시, 네놈은…… 그분이, 아니야……”
초대 황제가 덱스터를 죽여야 할 이유가 되었다.
하나 태양신의 신성력이 사라진 지금, 덱스터는 다시금 초대 황제에게 흡수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은 물리적 형상을 포기하고, 하나의 기운이 되어 그대로 덱스터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정해진 질서대로만 움직이는 골렘과도 같은 행동.
희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덱스터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망령 따위가 아닌…….
“에이든…….”
콰직-!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켜 왔던 왕좌를 부러진 검으로 파괴하고 있는, 에이든에게 향하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7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