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37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373화(373/374)
374화 용사 파티의 마법사
심연의 문이 있던 광장 그 어디에서도 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야도 부족장과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곧바로 준의 흔적을 수색했다.
혹여 남아 있던 창천교의 일당이 준을 수습한 게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곧바로 길레느 상회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야도 차일스와 함께 정보 조직을 움직여 준의 흔적을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계수의 정기도 블랙아웃이 소멸되면서 사라졌고, 아무리 찾아봐도 대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
“하, 하지만……! 아직, 어딘가에!”
“그래서 성지로 먼저 움직인 아저씨한테 물어봤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성지에는…… 한 번 찾아왔던 자들의 정보를 기록하는 기능이 있으니까.”
만약 살아 있다면, 성지에도 그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었…… 어. 대장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그, 그런…….”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에이든이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나도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는데…….”
물기가 가득한 엘레노어도 부들거리는 손을 품에 넣어 반지를 꺼냈다.
그것은, 준이 항상 차고 있었던…… 반지, 몽환이었다.
저걸 찾아온 사람은, 마야였다.
“심연의 문이 있던 광장에서 발견됐대. 근데, 이 안에 꿈의 정령이 있었어.”
“……!”
“대장하고의 계약이, 강제로 끊어졌대.”
“아.”
그때가 되어서야, 엘레노어는 몽환으로부터 준이 겪었던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엘레노어는 그것을 그대로, 에이든에게 전했다.
“마야는 지금도 대장을 찾고 있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엘레노어도 그런 마야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에이든을 지켜야 했고, 더구나 이 소식을 전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어야 할 것 같았다고.
“…….”
세상은 구원받았다.
하지만, 에이든의 세상은 그 순간 끝나는 것만 같았다.
* * *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것은 거대한 바다임과 동시에, 끝없는 마력의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본능적으로 준은 자신이 마력과의 합일이 완전히 끝났음을 느꼈다.
손을 움직이려 해 봐도 손이 없고, 걸어 보려 해도 발이 없다.
끝없는 마력의 흐름 속에서 그저 유유히, 그 흐름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런, 느낌이군…….]다만 그럼에도 준이 아직까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몽환 덕분이었다.
심상 결계를 펼치기 직전.
준은 몽환을 본래 쓰고 있던 반지에 넣었다.
혹여 에델과의 전투에서 몽환이 소멸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몽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준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반지에 몸을 숨기기 전. 준에게 자신의 기운을 남겨 뒀었다.
[어떻게 되려나…….]몽환이 가진 꿈의 마력은 이 끝없는 마력의 대양 속에서도 준의 정신을 유지시켜 주었다.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몽환의 마력은 끊임없이 준에게 과거를 보여 주었다.
[큭큭. 주마등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몽환의 배려일까.
준에게 보여지는 꿈은 하나같이 그가 행복했던 순간들뿐이었다.
동물원을 데려다 주시던 부모님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생일을 맞이해 케이크의 불을 끄던 입바람.
키가 컸다며 벽지에 표시해 주던 아버지의 웃음.
아픈 배를 문질러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
친구와 함께 문방구 앞 게임기로 놀았던 추억.
또다시 시간이 흐른다.
첫 월급으로 산 술을 부모님 묘지 앞에 뿌리자 작게 떠오르는 무지개.
실수한 날 괜찮다며 격려해 주던 동료 인부 아저씨들.
기술 자격증을 따고 오자 장하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던 권춘석 아저씨.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서 켰을 때 들려왔던 기동음.
블랙아웃이라는 게임과 접해, 스스로의 힘만으로 공략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
[생각보다, 좋은 추억이 많았네.]그저 암울했을 줄만 알았던 이준석의 삶도 괜찮았다.
비록 슬픈 일도 많이 겪었지만, 그런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기쁨은 분명 공존했다.
무척이나, 괜찮은 인생이었다.
* * *
“아직!!”
“……!”
“안 끝났어.”
공허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에이든의 어깨를 엘레노어가 붙잡았다.
“그, 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안 끝났다고.”
“안 끝났다면?”
“분명, 대장의 육체는 소멸됐어. 그건 확인된 사실이야. 하지만…… 대장의 영혼은, 아직 남아 있을 거야.”
“예……?”
“몽환이 알려 줬어. 대장이 죽기 전에, 대장한테 자신의 기운을 남겨 뒀다고.”
지금의 몽환은 그 여파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겨우 보존할 수 있을 만큼한 힘을 남겨 두고, 모든 기운을 준에게 넘겨주고 온 것이다.
“하, 하지만 육체가 없다면…….”
“괜찮아. 그거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
“신들이 있잖아.”
“신이라면…….”
“이번 사태가 끝나고, 신들이 잠에서 깨어났어. 내가 직접…… 그분들한테 부탁할 생각이야.”
“그게, 가능한 겁니까……?”
한낱 인간을 위해 신들이 과연 나서 줄까?
“그냥 인간이 아니잖아, 우리 대장은…….”
다른 세계에서 강제로 이곳에 끌려와, 온갖 수난을 겪은 끝에 세상을 구해 내지 않았나.
“되든 안 되든, 밀어붙일 거야.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 없어. 지랄하지 말라 그래. 영혼이 남아 있는 인간도 못 살려 내면 그게 무슨 신이야. 만약 그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신관이고 나발이고 신들의 무능함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퍼뜨릴 거다.”
조금도 과장 없이 진심이 담긴 엘레노어의 목소리.
에이든은 멍청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방금의 자신을 탓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 하하……. 좋네요……. 예. 알겠습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엘레노어.”
방법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한없이 허무맹랑한 방법이라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느 마법사가 매번 말했던 것처럼.
0%와 0.0001%의 차이는 큰 법이었으니까.
“그럼, 지금은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성지. 꽤 먼 길이 될 거야.”
비행 마차를 타고도 한 달 이상 걸릴지도 모를 거리.
그러므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몽환이 준에게 남겨 준 기운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까지,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 * *
이준석의 삶이 끝나고, 블랙아웃이란 세계에 끌려온 이후의 모습도 나왔다.
이정준의 삶이 차라리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로 위험천만한 순간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칫 조금만 실수를 했더라도 돌이킬 수 없었을 사건들이 수도 없이 벌어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기억들은 준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준석으로서의 삶에서는 짧게밖에 느끼지 못했던 유대감을, 항상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한때는 그런 동료들과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의심했던 적도 있었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와, 동료들 또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또 다 함께 힘을 합쳐 위기의 상황을 이겨 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하하…….]문득,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복수와 불신.
그 당시 준이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이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준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두르는 것뿐이었다.
믿었다간 배신당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이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때를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지.]검은 숲에서 에이든의 정체를 알아봤을 때.
만약 그때 결심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온몸에 날카롭게 세웠던 가시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 선택을 한 자신의 미래는, 다른 시간선의 플레이어들보다도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할 줄 알았던 단 하나. 게임 속 지식에 의지하는 것……. 그것 덕분이었지.]게임 속 에이드리안은 비록 차가운 심성을 지녔으나, 먼저 타인을 배신하진 않았다.
수많은 역경과 배신을 겪으면서도, 스스로만큼은 다른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은 것이다.
그 지식 하나만을 가지고, 에이든을 거두었고.
이후로 마야와 엘레노어, 베른을 만나게 되었다.
심각할 정도로 날카로웠던 그의 가시는 이내 동료들을 만나며 차츰 그 크기를 줄여 갔고, 결국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쁘지 않네…….]분명,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던 자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자기희생이라니.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결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 녀석들한텐 미안한 말이지만…….]지금처럼, 그들과 만난 이후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만큼 행복하지 않은가.
그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이다.
[하아…….]기억이 거의 끝나 간다.
과거로 거슬렀던 그의 행복했던 기억들은 다시 시간이란 강의 격류에 쓸려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몽환이 남겨 준 기운도 점차 희미해져 갔으니.
[너무 슬퍼하진 마라. 그래도 다른 시간선에 비하면, 훨씬 나은 현실이지 않냐.]비록 전해지지 않을 말이지만, 그럼에도 남겨 본다.
어쩌면 자신의 이런 혼잣말도,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아 언젠가 동료들에게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점차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할아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거냐, 엘레노어……! 설명이라도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대뜸 찾아온 엘레노어는 교단의 성지를 점거하곤, 절대 들어오지 말라며 호통을 쳤다.
“도대체가…….”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형님.”
베른의 말에 교황 엘라힘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기야……. 그 마법사가 죽었다니, 저럴 만도 하겠지.”
“아닐 말이겠습니까.”
“미안하다, 베른. 너도 당장 저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을 텐데.”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해야지요.”
작금의 사태에 대응하기에는 엘라힘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상황.
베른도 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준을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도 덕분에 저 아이가 말한 재료들은 늦지 않게 구해다 주지 않았습니까.”
“바쁜 상황에서도 교단의 재화를 써야했지만…… 그래. 저 아이에게도 후회가 남지 않아야 하겠지.”
엘라힘 또한 엘레노어가 기적을 일으켜 준을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랐으나, 또 한편으로는 긴 삶을 살아온 만큼 상실의 고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해 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 말하며, 엘라힘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긴 잠에서 깨어난 위대한 분들이시여.
저 가여운 아이들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바라나이다.
* * *
“잘 들어. 지금 대장은 영혼 상태로 마력의 바다를 떠돌고 있어.”
“마력의 바다라는 게 정확히 뭠미까.”
“말 그대로야.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섞여 들어오는 거. 모든 공간에 반드시 존재하는 에너지. 마력 그 자체야.”
“거기서 리더를 꺼내 오면 되는 검까?”
“맞아.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대장의 영혼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거지.”
“저, 엘레노어. 그런데 마력이라는 것은, 사용자가 바라는 형태대로 따라오는 힘이지 않습니까?”
평소의 에이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그 한마디에, 엘레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솔직히 대장의 영혼이 전 세계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근데, 대장이 말했던 것처럼 마신지체는 마력 그 자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대장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
이번만큼은 에이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마야는 그보다 더한 상태였다.
“아오, 그러니까! 에이든 방금 네가 말했던 것처럼 마력이란 사용자가 바라는 형태를 취한다고 했잖아. 쉽게 말해서, 우리가 대장의 영혼을 생각하며 마력을 빚어내면 그에 맞춰 대장의 영혼이 그 끌림을 느끼고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언뜻 들어도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지만, 사실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주술이나 소환술, 그리고 정령술도 그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갔으니까.
“……그래서 저만한 양의 마력 유동체를 끌고 온 것이로군요.”
에이든은 한쪽에 줄줄이 서 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에는 마력 유동체가 한가득 들어 있었는데, 대도시 하나가 1년 동안 써도 남을 수준의 마력량이었다.
“맞아. 방법은 간단해. 에이든과 마야. 너희 두 사람이 의념을 한 곳으로 모아서, 강력한 마력의 흐름을 만들어 낼 거야.”
두 8레벨 유저가 그려 내는 의념. 그 안에 준이라는 존재의 이미지를 씌우고, 마력을 계속해서 투여하며 압축시키는 것.
마력이란 강력한 힘과 의지에 이끌려 오기 마련이니, 그 누구보다 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엘레노어는 뭘 하려는 검까?”
“나는 신들과 거래를 할 거야.”
“거래……?”
“대장의 영혼을 찾아도, 육체가 없으면 안 되잖아.”
“아…….”
지금까진 준의 영혼을 찾는 것만 생각했지, 다시 생각해 보면 현재 준의 육체는 작은 세계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소멸했다.
엘레노어의 말처럼 영혼만 끌고 와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터.
“진짜 안 해 준다고 해 봐. 신살자라도 되어 줄 테니까.”
“그, 그러지 마세요, 엘레노어…….”
반쯤 광기가 깃든 듯한 엘레노어의 말에, 에이든이 어떻게든 말리려 했지만, 에이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만약 신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평생 에이든은 신들을 증오하며 살아갈지도 몰랐다.
“이미 한 번 죽여 봤지 않슴까. 두 번 죽이지 못할 건 또 뭠미까.”
더불어 마야도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만한 마력 유동체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졌을 리가 만무하니.
저 마력 유동체 중 절반은 마야가 직접 털어 온 것들이었다.
배신한 귀족들의 흔적을 찾아서, 놈들이 빼돌렸던 마력 유동체를 모조리 훔쳐 온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길레느 상회의 도움을 받았다.
사기꾼에게 당했다며 소리치는 길레느 제이크의 등짝을 클로이가 후려쳐 가며 받아 온 물건이었다.
“후우……. 좋아, 그럼 시작한다?”
“예, 알겠습니다!”
“반드시 찾아낼 검다.”
엘레노어가 심상 결계를 펼치고, 에이든과 마야가 의념을 일으켰다.
현실의 법칙을 무너뜨리고, 의념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규칙을 이 세계에 대입시키는 과정.
에이든과 마야는 그 안에서 준의 영혼을 떠올리며 규칙을 만들어 냈다.
다른 영혼이 아닌,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염원.
어느 누구도 그것이 무의미한 희망 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치도 실패를 떠올리지 않았고, 그저 자신들을 이곳까지 이끌어 준 사람이 돌아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윽고…….
“……!!”
마야의 의식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뭘 멋대로 사라지려 하는 검까!!”
그것은, 점차 소멸해 가고 있는 준의 영혼이었다.
* * *
[흐하하하학! 들었어? 신살자라도 되겠다는데?] [왜 웃는 것입니까, 로카르…….] [오히려 물어보자. 왜 안 웃기겠어?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죽은 듯 잠만 자다가 겨우 일어났더니, 너의 충실한 신자가 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잖냐. 이게 안 웃기겠어?] [예, 안 웃깁니다.] [아리클로토스, 넌 옛날부터 그랬어. 아버지 신께서 좀 더 유한 태도로 세상을 보라는 말, 기억 안 나?] [하지만 저들의 소원은 들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헛된 희망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독이 됩니다…….]신이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외우주의 침공에 이토록 고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본래 육체란 영혼이 담기는 그릇. 소멸된 육체를 우리의 뜻대로 다시 만든다 한들, 그것은 더 이상 저들이 바라는 존재가 되어 주지 못할 겁니다.]실제로 아리클로토스의 말처럼, 소멸한 인간의 육체를 다시금 빚어 내 영혼을 되돌려 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억지로 가능하게 만든다 한들, 그것은 진정한 부활 같은 게 아니다.
육체와 영혼은 멋대로 떼었다가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신조차 제 육체를 포기하는 대가로 많은 것을 내놔야 했던 마당에.
인간이라 한들 자유로울 리가 없었다.
[우리가 만들어 준 육체라고 해 봐야,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요. 오히려 잔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잠깐의 인사를 나누도록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리클로토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쯧쯧…… 넌 항상 상상력이 부족하다니까. 오히려 저 사제가 너보다 낫겠어.] [달리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말했잖아. 넌 상상력이 부족해서 문제야. 그 인간의 몸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 안 나?] [예? 그건…….] [한 개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잖아.] [설마……?] [그러니까, 비어 있는 몸이 하나 남아 있단 말이지.] [저쪽 세계에서 그의 육신을 가지고 오겠다는 겁니까……? 그랬다간 로카르, 당신은 또다시 오랫동안 잠들어야 할 겁니다.] [그게 뭐 대수야? 난 원래 잠이 많았어. 이번에 좀 깊게 자긴 했는데, 뭐 어때. 우리 세계를 지켜 준 녀석이잖냐. 이런 것도 못해 줘선, 저 사제의 말처럼 신으로서 쪽팔린 일이지. 그래선 안 될 일이야. 유희의 신이라는 자리게 어울리게 놀아줘야지. 안 그래?]그 말을 마지막으로 로카르는 자취를 감췄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아리클로토스는 어린아이의 몸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마력의 흐름 속에서 흐려지려던 준의 의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완전한 소멸을 맞이하지 않았다.
[……어?]그것은 결코 대가 없는 기적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한 몸에 있던 두 개의 영혼.
그중, 하나의 영혼이 준을 포근하게 안아 주고 있었다.
[너……!]그러고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준의 몸에 깃들어 있는 영혼은 두 개이고, 본래라면 몽환의 꿈 속에서 두 개의 과거를 봐야만 했는데.
두 영혼 중 과거를 본 것은 오직 단 하나뿐.
‘이정준’의 과거였다.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준’의 영혼이, 이정준의 영혼을 소멸로부터 막아 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 [뭐? 그게 무슨…….]‘준’의 말에 이정준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둘이서 하나였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야.] [잠깐……!]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다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게 가능하다면, 그 대상은 바로 나여야만 해.] [헛소리 하지 마! 그게 왜 네가 되야 한다는 건데!]그 누구보다 ‘준’의 인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정준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준’의 결정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준이 알고 있는 ‘준’의 삶은, 도무지 행복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비참한 삶이었으니까.
그 순간 이정준은 과거의 자신에게 욕을 내뱉고 싶었다.
뭐?
너무 슬퍼하진 말라고?
다른 시간선에 비하면 훨씬 행복하지 않냐고?
웃기지 마라.
남겨진 사람에겐 그게 어떤 상황이어도 덜 슬플 수는 없었다.
아주 병신 같은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끝까지 열심히 살아가려 했던 너와 달리, 원래라면 나는 네가 내 몸에 들어온 그 순간, 죽었어야 했어.] [아니……!]처음 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당시.
무너진 천장과, 그런 천장의 파편이 묶여 있는 밧줄을 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만들어 낸 현장이었다.
[오히려 그때 죽지 않고 이곳까지 오면서, 네가 만들어 낸 수많은 기적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지랄 마. 그건 같이 만든 거잖아!]‘준’의 기억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정준이 있을 수 있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결코 이곳까지 도달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정준은 금방 깨달았다.
[씨발……!]결국, ‘준’의 소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준’의 영혼 중 절반이 소멸됐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둘이 하나였던 적이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준’은 선택했고.
이정준은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떠나간 부모님 앞에서 그저 울고 떼를 쓰던 못난 모습만 보여 줬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미친 듯이 싫어도.
친구의 마지막을, 그때처럼 못난 모습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고마웠다.] [나야말로. 너 덕분에 본래라면 내가 느끼지 못했을 수많은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었어.] [그래, 나도 그랬다. 네가 가진 기억이 있었기에,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 있었어.]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본디 세상이란 불공평해서, 어떤 사람은 특히나 남들보다 완벽과 거리가 먼 상태로 운명을 타고나기 마련이다.
이정준과 준.
둘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둘은 오히려 부족한 서로를 알아 보았고, 무엇을 채워 줘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 왔고, 지금은 그저.
서로가 가야 할 길로 떠나야 할 순간이 찾아왔을 뿐이다.
[잘 있어.] [……너도. 이 세계의 신이란 작자들이 양심이 있으면, 널 잘 돌봐 주겠지.] [하하, 그거 참 위안이 되네.]‘준’의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이젠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또 다른 자신이 가야 할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뭘 멋대로 사라지려 하는 검까!!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좁디좁은 길.
언제 사라질지 모를 그 위태로운 길을, 이정준은 걸어갔다.
다시금, 동료들이 기다릴.
용사 파티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완결)
작가의 말
안녕하십니까. 졸린작가입니다.
예……. 이로서 제 두 번째 작품, ‘용파마’가 완결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모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완결편을 쓰기 보름 전부터 후기를 어떻게 작성할까 두근거리기까지 했거든요.
그래도 가장 먼저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 작품,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이 함께해 주셨기에 이곳까지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라는 녀석이 제 감정을 글로 표현할 줄 몰라서 이렇게 올드하게 적습니다만…….
그만큼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죠.
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사실 이번 작품도 완결에 가까워지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음. 지금 생각해 보면 애초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완결이란 게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완결이라는 글자를 찍어 낼 때의 느낌은 마치, 장기 하나가 덜컹 몸에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더욱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작가입니다.
매번 진행이 늘어지거나, 설정 미스를 내거나, 오타를 내거나…….
하지만 그걸 다 적으려면 후기로 아예 한 편 분량이 나올 것 같으니, 이 정도로 줄여 보겠습니다.
아직 독자님들께 전해 드리지 못한 여러 이야기(클로이의 상회 정복기라든가, 흰고래 용병단 산하의 용병대들의 이야기라든가…….)가 많았습니다만, 사실 지금도 완결 시기가 무려 한 달 가까이 늘어졌던 상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