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5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53화(53/374)
53화 아돌프
“그 말을 내가 믿어야 할 근거가 있나?”
일전의 나름 친근했던 목소리와 대비되는 냉정한 말에 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쪽이 아쉬운 입장이라는 걸 잘 아는 거지.’
백작에겐 이번 사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정대로 의심받고 있는 아로바티 상회를 묵사발로 만들어, 지엄한 황실의 뜻을 선보였다며 선전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준과 클로이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역시 쉽지가 않군.’
새삼 클로이의 존재가 아쉬워졌다.
현재 비조의 도시까지 찾아온 것은 준 혼자였으니.
클로이는 뒷수습을 위해 검은 숲에 남기로 했다.
때문에 백작을 설득하는 것은 오로지 준에게 달린 일이었다.
이 까다로운 백작을 어떻게 구슬려야 할까.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백작의 도움은 필수야.’
그렇다고 너무 비굴하게 나갈 필요도 없다. 백작은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내다.
즉, 이번 사안을 대충 처리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준이 백작을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아쉽게도 증거는 없습니다. 단지, 제가 화속성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를 상대했다는 것뿐이지요.”
만약 준의 서클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면, 하다못해 [마신지체]에 대한 깨달음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야기는 편해졌을 것이다.
그냥 백작의 이름으로 볼카토르닉 마탑 소속의 마법사를 불러, 현장에 남아 있는 마력의 흔적을 비교 분석해 보여 주면 됐을 테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준은 그 정도 실력에 도달하진 못했다.
‘적어도 6서클 끄트머리. 넉넉히 7서클은 돼야 가능한 기예다.’
그러니 준은 이제부터 자신의 세 치 혀로 저 백작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정황상의 증거는 충분히 존재합니다.”
“정황상이라…….”
“볼카토르닉 마탑은 아로바티 상회와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아로바티 상회와 볼카토르닉 마탑은 수십 년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아로바티 상회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볼카토르닉 마탑이 그리 행동할 이유가 없네.”
이것이 이번 사태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볼카토르닉 마탑이 우호적인 관계를 접고 그렇게 움직일 명분이 없다는 것.
만약 그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볼카토르닉 마탑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황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은 마법사 협회조차 지켜주지 못할 사건이니까.
그뿐인가? 상회를 배신한 집단치고 파산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결국 마탑을 운영하는 데 돈이 필요할 테고, 그 돈은 대부분 상회에게 나오는 법이었으니.
따라서 이번 사태의 진범을 증명해 내기만 한다면, 일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진다.
그리고 준에게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
‘내가 [마신지체]라는 사실만 밝힌다면.’
백작 또한 마법사들이 가진 탐구심과 그에 대한 탐욕을 잘 이해하고 있을 터.
마법사들 사이에서 전설로만 내려오던 [마신지체]라는 체질이라면, 볼카토르닉 마탑이 수십 년의 동맹을 깨고 움직일 명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드러낼 수 없어.’
어떻게 보면 백작은 현재 가장 강력한 우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백작에게 준이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황실에서 준의 스킬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럼에도 황실은 준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특등급 위험 분자로 분류되겠지. 어쩌면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며 아예 죽여 버리려 할지도 몰라.’
그러니 이것은 결코 밝혀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럼 그것 외에 놈들이 움직일 명분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준이 대답했다.
“확실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그리 움직일 리 없겠지요.”
“음? 그럼 자네는 볼카토르닉 마탑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고 있다 말하는 건가?”
당연하지. 사람 심장을 무슨 감자 캐듯 뽑아 가려는 놈들이 제정신일 리가.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입을 연 게 아니다.
“저는 현재 볼카토르닉 마탑이 창천교와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으음?”
백작 또한 길레느 상회가 무너진 현장에서 창천교 세력이 있었음을 보고받았다.
하지만 그게 볼카토르닉 마탑과 연루되어 있음을 말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이번 사태에서 볼카토르닉 마탑이 나섰다는 증거는 없었으니.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각하. 최근 저희 용병대의 행보에 대해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네. 이번에도 히든 던전을 발견했다지? 그것으로 이번 경매장에 참여하는 마탑이 많아졌다고 들었네. 설마 그것 때문에?”
“아닙니다. 그랬다면 보다 다양한 마탑을 의심했겠지요. 그때 보고를 들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당시 우리 용병대와 블랙가드 출신의 사냥꾼들은 창천교 일당과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것도 들었네. 하지만 그게 볼카토르닉 마탑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가?”
“애초에 이번 사태의 본질을 바꿔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길레느 상회에서 열리는 경매를 견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창천교가 일으킨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심. 그것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고작 그런 것으로 마탑의 미래를 건다고?”
“백작님. 생각보다 인간들은 그리 똑똑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가치를 매기고, 수지타산에 맞게 살아가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런 말로 나를 움직이려 들지 말게. 슬슬 화가 나려고 하니까.”
실제로 백작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일분일초가 금보다 가치 있다.
그러니 준이 내뱉는, 말도 안되는 허언을 들어 주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준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무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볼카토르닉 마탑이 순전히 종교적인 이유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
“젠카르 마탑. 마탑주 중 ‘왕’이라는 이명이 붙은 몇 안되는 존재, 샤일록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숲 요새에.”
여태껏 식어 가던 흥미가 뒤늦게 되살아난 듯, 백작의 눈동자가 빛났다.
* * *
검은 숲 요새를 떠나 비조의 도시로 향하기 전.
준은 샤일록을 만나기 위해 예의 하수구로 향했다.
그러나 이게 무슨 마법인지.
“악!”
분명 이전에는 뚫려 있던 하구수의 거처가 벽에 꽉 막혀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준은 오물과 곰팡이가 묻은 이마를 거칠게 닦으며 짜증을 냈다.
“뭐야. 어디 갔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혹시 샤일록이 먼저 떠난 걸까.
준은 조용히 주변의 바람에 귀를 기울였다.
휘이이이…….
바람소리가 들렸다. 하수구 전체에 퍼지는 소리가 아니라,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분명 벽 너머에는 공간이 있었다.
콰르르!
자그맣게 [아이언 피스트]를 시전해 벽을 허물자, 예전처럼 샤일록의 거처가 드러났다.
그러나 그곳에 있어야 할 샤일록은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쪽지와 하나의 반지만이 남아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이곳을 떠난다. 언젠가 연이 다시 한번 닿는다면 만날 수 있겠구나.
-본론으로 들어가서, 네가 이곳에 찾아왔다면 필시 그 이유가 있을 터.
-별의 흐름이 이 반지를 이곳에 두길 원하는구나. 이것을 두고 갈 테니, 요긴하게 쓰거라.
-주는 건 아니다. 이건 내 거다. 그러니 간수 잘하거라.
Ps. 내 이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써도 된다.
그러한 내용의 쪽지가 오물로 찍힌 지장과 함께 있던 것이다.
당시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원하던 것은 얻을 수 있었다.
* * *
“……이건 정말, 샤일록의 편지로군.”
진정 그자가 살아있었단 말인가.
모르데나인 백작은 일이 본격적으로 복잡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에 대해 아십니까?”
“물론. 15년 전에 내 그를 직접 두 눈으로 봤었으니까.”
그러면서 그가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여 주었다.
“아버지께서 직접 그에게 의뢰해 제작한 목걸이라네. 아버지가 이 목걸이를 건네받았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지.”
그러면서 그가 서류로 가득한 서랍을 잠시 뒤지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한 장의 고급스러운 서류를 뽑아 들었다.
제법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게, 아마 아티팩트에 대한 진품서인 듯 보였다.
“지장도…… 똑같아. 진정 살아 있었군, 부여왕 샤일록…….”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머리를 굴렸다.
준이 어째서 샤일록과 알게 됐는지까진 모르겠으나, 부여왕 샤일록의 실종은 15년 전 황제가 진노했던 사건이기도 했다.
만약 그가 이번 일과 연루되어 있다면…… 더 이상 심증이라는 핑계로 물러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여전히 백작으로서는 섣불리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아로바티 상회와 달리, 마탑은 나 같은 사람이 섣불리 건들기 힘들다네.”
“마법사 협회 때문입니까?”
“그래. 내가 움직이는 즉시, 협회가 강경하게 대응할 걸세.”
마법사들은 바깥 활동이 적은 만큼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 마탑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일단 득달처럼 달려들어 막으려 한다.
물론 황실의 이름을 어깨에 짊어진 백작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으나…….
“나로서는 최악의 상황도 생각할 수밖에 없네.”
그만큼 백작 또한 쉽사리 움직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만약 준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황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으니.
“증거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각하. 대신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십시오.”
“여건?”
“비밀스럽게…… 아로바티 상회의 회주와 만남을 주선해 주십시오.”
* *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아로바티 상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씨발!! 길레느, 그 황금 돼지 새끼는 왜 혼자 뻗어나간 거냐고!!”
그도 그럴 것이, 블랙아웃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모르데나인 알베르트 백작에게 의심을 받고 있었으니까.
다름도 아니고 모르데나인 가문이다. 무려 초대 황제가 시대부터 황족을 받들던 가문.
즉, 순수 혈통의 가문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백작은 쉽게 움직이는 일이 없으며, 그런 백작이 직접 움직인다면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피바람이 불었다.
이는 그들이 걸어왔던 역사가 말해 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시선이 당장 아로바티 상회에 꽂혀 있다는 점이다.
“이걸,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아로바티 상회의 회주, 아돌프는 그야말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에 차는데, 문제는 그가 완전히 깨끗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돌프의 계획대로라면, 경매가 무사히 끝나고 백작의 이름값이 떨어질 때쯤 행동에 나설 작정이었다.
포션 사업 쪽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만큼, 여타 다른 상회들과 볼카토르닉 마탑의 이름값을 빌려 길레느 상회의 시도를 완전히 무산시킬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미 관련된 서신이 몇 번이고 오간 상황.
그것만으로도 정황은 확실하다.
아직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꿍꿍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백작의 화를 피할 수는 없을 테니.
잘못하면 상회의 목이 잘려 나가고, 잘해도 팔이 잘린다.
“아직 볼카토르닉에서는 연락이 없더냐?!”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답변 외에는 없습니다!”
“개X 같은 놈들!!”
벌써 다른 상회들도 이러한 소식을 듣고 손을 떼는 분위기다.
자칫하면 자신들도 연루될 가능성이 있었으니.
그런 와중에,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대, 대담?! 대담을 하자고?!”
변명할 말이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는 백작의 편지가 온 것이다.
이러면 어떻게든 가서 자신들의 무고를 입증해야 했다.
‘만약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큰 손실을 각오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길레느 상회의 등장으로 봐야 했던 손해만큼 토해 내서 무고를 입증해야 할 수도 있었다.
‘손목 정도로 해결해야 하나…….’
아마 그 손해는 아로바티 상회의 기둥 하나를 뽑아내는 것일 터.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지만, 아로바티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마차를 준비해라!”
그렇게 2계층에서 한달음에 1계층까지 내려가 비조의 도시에 입성했다.
얼마만에 이런 땀을 흘려 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평소라면 몸단장에 신경 써야 할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모습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굴욕적이지만, 황실이란 이름은 그가 살아온 세월을 송두리째 흔들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오, 친애하는 아돌프 경.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땀이 많이 났군.”
다행히 백작의 표정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했으나.
‘아뿔싸. 정신 차려라! 여긴 그냥 호랑이도 아니고 블랙 타이거의 굴이다!’
저 능글맞은 표정 뒤에 얼마나 거대한 의심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아돌프는 감히 땀을 훔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이, 이런 몰골로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닐세. 본래 훌륭한 상인일수록 직접 발로 뛰는 것 아니겠나? 자네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안심일세.”
“감사합니다…….”
“그래도 땀내는 좀 역하니 정리해 주게.”
“…….”
결국 가볍게 정돈을 마치고 나서야 그는 백작의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내가 접객실에 앉아 있었다.
아깐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때도 있던 사내다.
“자넨 표정이 참으로 솔직하군.”
“시, 실례했습니다.”
“무얼. 내가 그리 꽉 막힌 귀족은 아니지 않나.”
‘내 목줄은 꽉 쥐고 있지.’
그러나 그런 생각까지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조심스럽게 준에게 물었다.
“혹시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셨소?”
“길레느 상회의 대변인으로 찾아왔습니다.”
“……!”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