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57)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57화(57/374)
57화 볼카토르닉 마탑 (4)
거칠게 흔들리는 마차.
하나 내부는 다수의 마법으로 처리한 덕분에 한 점의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흐음…….”
마차의 주인, 세르게이는 빛을 잃어 가는 원거리 통신 도구를 냉정하게 바라봤다.
“아돌프. 어리석은 친구 같으니라고.”
듣자 하니, 마탑의 장로들에게 찾아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장로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아돌프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아돌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쯧쯧…… 그 영민한 친구가 알 거 다 알면서 그러나.”
세르게이가 아돌프와 알고 지낸 시간은 꽤 길었다.
그럼에도 세르게이는 아돌프를 단번에 배신했고, 그를 이번 사태의 범인으로 몰아넣었다.
죄책감?
고작 수십 년의 인연 따위로 연연해할 리가.
그에게는 수십 년의 인연보다, 전설 속에서만 내려오던 마신지체가 훨씬 더 소중했다.
“분명 데미안과 함께 명을 달리한 줄 알았건만…….”
전설 속의 체질을 지닌 자가 살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세르게이가 그 존재를 눈치 챈 것은 지극히 우연에 가까웠다.
-어쩌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인재를 데리고 온 것 같네.
친우이자 라이벌이었던 데미안과 나눴던 대화.
그날은 마법사 협회에서 회의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는 건물 정원에서 허공을 부유하는 나비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흰 머리의 소년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미 그때부터 소년의 목에는 데미안의 언령이 담긴 초커가 감겨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봤을 뿐인 얼굴.
그 얼굴을 최근에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지.’
최근 검은 숲의 포레스트 가디언에서 히든 필드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여러모로 정보를 입수하던 중 보게 된 사진.
조금만 신경을 덜 썼다면 그러려니 지나칠 뻔했다.
‘그렇게까지 바뀌어 있을 줄은 몰랐건만.’
흰 머리카락은 검게 변했고, 언데드처럼 칙칙했던 눈빛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제 스승을 죽이고 더 나아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마탑까지 부숴 가면서 살아남은 것인가.
“데미안, 이 미련한 친구야. 보물을 두고 그리 가 버렸는가?”
말은 그리 했으나, 그는 진심으로 데미안에게 고마워했다.
결국 그 보물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비록 앞서 세워 둔 계획이 조금 비틀어지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녀석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것은 자신뿐이다.
“마신지체라…….”
지금도, 데미안 마탑의 붕괴 현장에서 봤던 마력의 잔향이 잊혀지질 않는다.
당시의 깨달음으로 오른 7서클.
고작 잔향만으로도 그만한 결과를 얻어 냈는데, 그것을 직접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법사로 태어나 싸늘하게 식어 버린 줄만 알았던 심장이 팔팔한 청춘처럼 두근거렸다.
이제 저 멀리 보이는 비조의 도시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백작이라 한들,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자신을 붙잡을 수는 없을 테니.
‘아드리안. 그 녀석이 실패했으니, 내가 직접 찾아가 봐야겠군.’
기왕 밖에 나왔으니, 돌아가는 길에 검은 숲을 들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변이 발생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눈을 감았을 쯤이었다.
“……!”
뇌리를 스치는 어떠한 장면.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심상결계]의 풍경이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심상결계]를 이루고 있는 보석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이미 반파됐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금방이라도 부서지기 직전이다.
“내 마탑에 도둑이…… 이런. 아돌프. 그냥 찾아온 게 아니었군.”
세르게이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마탑주다. 그는 아돌프가 누군가를 데리고 왔음을 직감했다.
“쯧쯧. 그냥 도망쳤더라면 어찌어찌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었을진대.”
뭘 믿고 자신의 마탑에 도둑을 들였는진 모르겠으나, 모두 허사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마력을 심어 둔 보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그의 시야가 순식간에 마차에서 벗어났다.
세상이 길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신의 [심상결계]의 풍경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하. 보물이 직접 내 앞에 나타났군.]꼼짝없이 검은 숲에 있을 줄 알았던 보물이, 자신의 마탑에 제 발로 들어왔다.
이건 함정에 걸렸다는 말도 어색할 정도다. 그냥 집안에서 덫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짐승이 제 발로 집까지 들어와 덫에 걸려 준 꼴이지 않은가.
그렇게 키메라의 몸에 정신이 거의 다 담겼는지.
이제는 [심상결계] 내부의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보았다.
아직 몸을 완벽히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코앞에 그토록 바라던 마신지체가 있었다.
보물이 입을 열었다.
“왔냐?”
“……음?”
그와 함께 녀석의 손가락 끝에서 막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쏘아졌다.
세르게이도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 * *
대부분의 사람은 탐욕 앞에서 한없이 순수해진다.
그게 제아무리 7서클에 다다른 마법사라 할지라도.
그리고 순수해진 인간들은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세르게이가 저지른 실수는 딱 하나였다.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
왜 이 마탑에 준이 제 발로 들어왔으며, 자신의 비처에서 [심상결계]를 발동시켰고, 그 [심상결계]를 유지하는 보석이 왜 반파되었는가.
그 부분을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적어도 섣불리 키메라에게 정신을 옮기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핏빛의 섬광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그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어떻게……?]보고에 의하면 고작 3서클.
그사이 성장했다 해도 최대 4서클에 불과했을 놈이.
어떻게 5서클의 마법을 쓴단 말인가?
그런 의문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 * *
조금 시간을 되돌려.
준은 키메라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획이 일그러졌음을 깨달았다.
“후우…….”
동시에 각오를 다졌다.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만 했으니.
양팔을 늘어뜨리고, 각 손의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흔히 심호흡을 할 때 하는 자세다.
동시에 아까부터 자신의 호흡을 돕고 있던 부여계열 마법을 취소시켰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흐으으읍―!”
뜨거운 공기가 입을 타고 기도로 내려가 신경을 들쑤시며 폐로 들어왔다.
“……!!!”
하마터면 몰아쉰 숨을 죄다 내뱉을 뻔했다.
잠깐 들이마셨던 아까와 달리, 깊게 들이마신 만큼 입과 기도, 폐가 모조리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이 정도로 깊이 들이마셨으면, 이미 폐는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뇌가 미쳤냐고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추하게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비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굳건한 의지], [흔들리지 않는 심장]두 스킬이 간신히 그것을 막아 줬다. 그랬다간 정말 죽을 테니까.
“후우우우……!!”
간신히 고통을 참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흐으으으읍!!”
아까보다 더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아.’
위험했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전신의 피가 끓다 못해 증발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준은 입술 한쪽을 삐죽 올렸다.
‘버텼어. 그거면 됐어.’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후우우우우!!”
고비는, 지금부터였으니까.
“흐으으으으읍――!!”
더 크게. 아까보다 훨씬 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뇌의 어딘가가 고장 난 것 같았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솔직하다.
무릎이 흔들렸다.
힘이 빠진 게 아니다. 실시간으로 몸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마력회로가 검게 타오른다.
그뿐인가? 4개의 서클이 미친 듯이 회전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화속성의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녹아 가는 것만 같았다.
얼굴은 이제 붉어진 것을 넘어 검게 죽어 가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하지만.
‘고비는, 넘겼다.’
숨을 다시 내쉬었을 때, 그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옅은 희열이 감돌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마력회로가 점차 안정되기 시작하고.
4개의 고리를 가진 서클이 보기 좋게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됐어.’
[심상결계].일정한 경지에 이른 마법사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
그러나, 이곳 또한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약 세르게이가 직접 이곳에 왔다면.’
이런 건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자신의 마력을 고작 아티팩트 보석 따위에게 맡겨 뒀다.
마력의 주도권을 지킬 권한 따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었고, 준의 [마신지체]는 아까부터 오만하게 외치고 있었다.
감히,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저 마력에게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라고.
마력이 곧 나요, 내가 곧 마력이다.
[마신지체]가 오연하게 외쳤다.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냉정하게 마법사로서의 시점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스승은 말했다.
-아주 오만하고, 불손하며, 끝이 없는 재능이로구나.
그렇다.
그는 [마신지체]의 본모습을 보고, 역겨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신지체]는 모든 마법사들의 절망이요, 재앙이다.그럴 수밖에.
마법사들은 자연에 퍼진 마력을 다루는 자들이다.
그러나 [마신지체]는 이 세상의 모든 마력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마법사는 [마신지체] 앞에서 한 마리의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신지체]의 허락이 없다면 마법조차 쓸 수 없을 테니까.그리고 지금 이 순간.
준은 세르게이의 [심상결계]를 구성하고 있는 마력의 주도권을 쥐었다.
‘내 뜻대로 부릴 수 있는 건 아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놈의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게 아니다. 그가 세르게이의 마력에 다가간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그 둘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당장도 그의 몸을 채운 마력들이 사납게 날뛰려 하고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간 아드리안처럼 온 몸이 불타올라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미친 짓이었지만, 결국 해냈어.’
마법을 영창했다.
마력 패턴을 짰다.
심상을 그렸다.
――그리고.
쏘아 냈다.
그가 가진, ‘이정준’ 시절 키웠던 마법사의 가장 강력했던 5서클 마법을.
[플레어(Flare)]한 줄기 불꽃이 레이저처럼 키메라의 가슴을 꿰뚫었다.
* * *
어릴 적,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그리 자세히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나, 준은 당시 자신이 느꼈던 불꽃에 대한 감상을 이번 [플레어]에 담았다.
‘심상이라는 게, 매번 새로울 필요는 없는 거구나.’
포레스트 가디언 공략전 당시, 준은 페어리 퀸의 시선을 끌기 위해 [파이어 볼]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고작 3서클의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페어리 퀸이 위기감을 느끼고 도주를 선택하게 했던 마법.
그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파이어 볼]의 위력을 그토록 강화시켰던 걸까?
오랜 시간 고민해 봤으나, 그런 준에게 조언을 해 줄 마법사는 없었다.
단지, 지금의 준이 저 괴물에게 한 방 먹일 방법은 오직 그때 담았던 심상뿐이라 생각했다.
“…….”
[아이스 스피어]와 달리, [플레어]는 키메라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어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그 빛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고, 가슴이 꿰뚫린 키메라는 우두커니 서서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연처럼 말려 들어간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변이 생긴 직후, 멈춘 듯한 시간이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다.
투둑―
새빨간 무언가가 키메라의 가슴에서 흘러내렸다.
놈의 내장인 걸까.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은 중심부터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안 돼……! 안 돼……!!]키메라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게이.
탐욕에 젖어, 키메라의 몸에 정신을 옮긴 세르게이가 절망하듯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도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키메라가 허물어지고 있던 것이다.
“…….”
그러나 준은 여전히 침묵한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심상결계]의 마력에 근접하고, 주제에 맞지 않는 5서클 마법을 부리는 만용을 저지른 대가가 찾아오고 있었다.하지만 신기하게도.
“……아.”
깨달음이란 녀석은,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도 찾아오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