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61)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61화(61/374)
61화 영멸루
-이제 곧 만나겠구나.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엘레노어는 ‘어느 존재’의 의지를 접해 왔다.
어떨 때는 그게 문자처럼 보여지기도 했고. 육성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엘레노어는 그 존재가 어떤 자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문자처럼 느껴질 땐 필체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힘차게 써 내린 굵은 필체인지.
아니면 여린 필체인지.
목소리로 이해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이인지, 노인인지.
그 무엇 하나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 현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녀의 양아버지이자, 어릴 적 버려진 자신을 주워 준 사람.
아리클로토스 교단의 교황이 말했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무섭다는 말이냐?
그 소리를 듣곤 그가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이 있단다. 너에겐 조금 귀찮은 일이 될 게야. 그래도 하겠느냐?
당시 어렸던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양아버지는 어디선가 가지고 온 검은 붕대로 그녀의 두 눈을 가렸다.
-눈이라는 것은 말이다. 지금 네가 어디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게 해 준단다. 그리고 너의 몸 속에 있는 그 존재도, 너의 눈을 통해 네가 있는 곳을 인지하고 있는 게지.
그러니까 눈을 가리면, 상대방도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거란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횟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만이지.’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지나, 순식간에 현재에 가까워졌다.
마치 시간이라는 계단을 몇 개나 한 번에 뛰어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려왔던 기억은.
-엘레노어!
아저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금은…….
타닥―
불꽃이 튀는 소리와 함께 엘레노어가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여전히 검은 시야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주변의 풍경이 훤히 느껴졌다.
다 썩어 가는 목조 건물의 냄새.
피부를 감싸는 온기.
타닥, 하고 불똥을 튕겨 내는 장작의 소리.
마지막으로.
‘바다.’
한평생 바다라는 것을 본 적은 없었으나. 아마 듣기만 했던 바다가 눈앞에 있다면 저런 풍경일 것이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느껴졌다.
엘레노어는 곧장 그 바다가 펼쳐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요란하게도 일어나네.”
몇 번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도 기억력이 좋은 그녀지만, 저 목소리만큼은 쉽게 잊질 못할 것 같았다.
“아, 사제님. 일어나셨군요!”
덜 익숙한 목소리에 그쪽을 바라본다.
이쪽은 붉게 이루어진 산이다.
아직은 그 존재감이 옅으나.
자세히 보면 수없이 많은 시체로 이루어진 산이었다.
그 업(業)의 시작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에이든. 저쪽에 죽 좀 가져다 줘라.”
“예!”
“아님다. 여깄슴다.”
또.
불과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낯설었다.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다.
마찬가지로 그쪽을 바라보니, 여기서도 업이 느껴졌다.
한데, 단 하나의 업이 아니다.
수십, 수백, 수천의 업이 긴 실타래처럼 뭉쳐져, 그 크기가 막대했다.
지금은 단단히 얽혀 있지만, 언젠가 저게 풀린다면.
저 목소리의 주인이 버틸 수 있을까.
“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곳에 특이한 영혼이 셋이나 모여 있었다.
‘아니, 넷인가.’
자기 자신도 그리 평범한 업을 지니고 있지 않을 테니.
엘레노어는 자신의 앞까지 온 접시를 받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거야 우리도 모르지. 그냥 흔적을 쫓아와 보니까 댁이 여기 누워 있더라고.”
“……다른 사람은?”
“정신을 잃은 성전사들은 있었어.”
“아저씨를 따라왔던 건가.”
“아저씨라면, 그때 그 덩치 큰 성기사를 말하는 건가?”
“맞아.”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듣고 싶은데.”
“…….”
엘레노어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는지 제대로 감이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준이 먼저 물었다.
“봉인 의식이 실패한 건가?”
“그래…… 거기서부터 말하는 게 맞겠지. 본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한 건 맞아.”
“완전한 실패는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직 개기 일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 말에 준이 창밖으로 시선을 흘낏 던지곤 담담하게 말했다.
“아슬아슬하겠네. 길어 봐야 이틀인가?”
“그게 예측이 돼?”
“그냥, 알고 있는 게 좀 있어서.”
엘레노어는 고작 실버 등급의 마법사가 어떻게 개기 일식의 날짜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자세히 들어야겠는데. 고작 의식이 좀 망가졌다고 성전사들이 저렇게 미친 사람마냥 돌아다니진 않을 것 아냐.”
다름도 아니고 성전사다.
사제나 성기사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이들이 사기에 오염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배가 오염됐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
봉인 의식은 엘레노어와 같은 상급 사제 다섯 명. 그리고 총괄하는 주교 한 명이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바로 아리클로토스 교단의 성물 중 하나인 ‘성배’였다.
“아, 그거.”
그러자 준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한 낌새가 느껴졌다.
“성배에 대해서 알고 있어?”
“대충은.”
성배는 아리클로토스와 연결되어, 끊임없이 신성력을 흡수하고 뿜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다섯 상급 사제가 성배에 마력을 몰아넣고, 그것을 주교가 흡수한다.
그리고 주교가 막대한 신성력을 다스려 적성의 다섯 네임드의 봉인 의식을 마무리한다.
그것이 봉인 의식의 절차였다.
“그런데, 성배에 이상이 생겼어. 어느 순간부터 사기를 뿜어내기 시작했지.”
스며 들어간 신성력이 사기로 변했다.
그 여파로 엘레노어를 포함한 상급 사제의 혼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엘레노어는 버텼으나, 다른 네 명의 상급 사제들은 즉시 혼절해 버렸다.
“남은 사람은 주교님뿐이었지.”
그러나 주교도 오래 버티진 못했다. 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성배로부터 흘러나오는 사기를 막으려 했다.
“꼴을 보니까 그것도 실패한 모양인데.”
“……그래. 실패하셨지.”
그 즉시 사기에 오염된 신성력이 캠프 내부를 가득 채웠고.
“그곳에 있던 성직자들이 모두 오염됐다는 건가.”
“응.”
그러자 준이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난 가는 곳마다 고생하는 것 같냐.”
저 한탄하는 소리에 엘레노어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공략전 때도 그랬고, 저번 만남에서도 그랬지.’
당시에도 준은 꽤 치열한 전투를 했었다.
어째서인지 그때보다 영혼의 격이 커졌는데, 아마 그 뒤에도 큰 사건이 잇따르지 않았을까.
“후우……. 기껏 불렀는데, 이런 상황이네. 미안해.”
그에 엘레노어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그녀가 준을 부른 이유는, 지팡이 때문이었다.
비탄의 종말.
그 지팡이에 대한 비밀을 풀게 되면,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도 함께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던 존재의 정체도.
“어쩔 수 없지.”
다행히 마법사는 금방 상황을 인지했다.
이젠 계층을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냉정하게 보아서, 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계층을 내려가, 교단에 이 소식을 알려야만 했다.
그리고 지상에도 대비를 해 두라 해야 할 것이다.
봉인 의식이 실패했으니, 곧 있으면 다섯 네임드들이 풀려나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행위를 시작할 터이니.
디멘션 리버스가 일어날 것이다.
그걸 고작 여기 있는 네 사람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호위 임무는 그대로 이어 가 줘. 아래 계층으로 내려가서 이 상황을…….”
“무슨 소리야?”
“어?”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엘레노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들려오는 정체 모를 목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준의 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너희 교단 사람들은?”
“그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사기를 흘리는 사이에는 언데드들이 공격하지 않으니.
교단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당연히 엘레노어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녀가 반평생을 의지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마저 죽게 된다면, 50년에 일어났던 재앙이 재현될 것이다.
신을 따르는 사제로서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아마, 저 사람들 오래 버티진 못할걸.”
“무슨 말이야?”
“아직은 신성력이 뇌를 보호하고 있어. 그런데 신성력이 무한한 건 아니잖아.”
길어봐야 3일. 짧으면 이틀 안에 사기에 완전히 잠식되는 이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니까.”
거대한 마력의 바다를 품은 남자가 말했다.
“아직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남아 있다는 거야.”
* * *
준은 전에 봤던 성전사들을 떠올렸다.
‘만약 뇌까지 완전히 사기에 범벅이 됐다면.’
언데드가 됐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명백히 검을 들고 있었고, 무엇보다 [슬립]에 잠이 들었다.
이는 뇌가 아직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건 그렇지만…….”
“사기에 오염됐다던 성배. 그걸 고치면 그 사람들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 아냐?”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베이스 캠프 주변으로는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고.
그중에는 분명, 상급 기사에 해당되는 아저씨, 즉 베른도 있을 테니까.
“고작 이 네 명의 인원으로는 감당이 힘들 거야.”
“확실히 네 명이라면 힘들지.”
무려 성기사다. 일반 기사도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전력으로 덤비는 성기사들을 지금의 에이든과 마야가 막기엔 역부족일 터.
한 명을 감당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
“방법?”
“잠깐 기다려 봐.”
그렇게 말을 남긴 준이 에이든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이내 인근에서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 사람들은…….”
“근처에 떠돌고 있더라고.”
세 명의 성전사들을 데리고 왔다.
[슬립]으로 잠재웠던 이들인데, 다시금 깨어나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그들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요지부동이었다.
“한번 신성력으로 치료해 봐.”
“음.”
그 말에 엘레노어가 신성력을 일으켰다.
신성한 황금빛이 그녀의 손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성전사들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식은땀까지 흘리던 엘레노어가 탄식을 내뱉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성전사들의 몸에 스며든 사기는 일반적인 사기가 아니다.
신성력을 흡수하고 내뱉는 성배에 섞여 들어가서인지, 본래라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밀어내야 할 두 성질이 완벽하게 뒤섞였다.
이걸 분리시키려면 하루 이틀은 족히 걸릴 터.
고작 성전사들이 이럴진대, 성기사들은 얼마나 더 위협적이겠나.
“음. 역시 안 되나.”
하지만 준은 예상했다는 듯 그리 중얼거리곤, 손목에 걸린 팔찌를 조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앞에 검은 공간이 드러났다.
“아공간?”
쉽게 구하기 힘든 물건이다.
거기에 주머니도 아니고 팔찌 형식이라니.
“인연이 있어서.”
그리 말하며 검은 구멍에 손을 집어넣은 준은 이내 한 금속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몇 개 없으니까 딱 한 번만 보여 줄게.”
그 안에 담긴 것은 총 열 개의 회색빛 보석이었다.
마치 눈물처럼 생긴.
하지만 그 기운을 본 순간.
“흡…….”
엘레노어는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저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마치 죽음처럼 느껴졌기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꺼리고 있었다. 한 평생 자신의 몸안에 살고 있는 무언가가.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엘레노어가 잔뜩 긴장했다.
준은 엘레노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확인하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효과가 있겠어.’
이내 열 개의 보석 중 한 개를 집어 든 준은 망설임 없이 그걸 꿀꺽 삼켰다.
“으음…….”
그대로 잠시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하던 준의 몸에 점차 변화가 찾아왔다.
“엇, 선배?”
또 무슨 마법을 보여 주는 것일까. 에이든은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준을 바라봤고.
“저건…….”
준의 몸에서 회색빛 입자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그것을 본 엘레노어가 재차 숨을 삼켰다.
“……시끄러워.”
마지막으로 마야는 무언가 거슬린다는 듯 귀를 막았다. 그녀의 내면에 깃든 선조의 영혼들이 비명과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당장 준에게서 멀어지라고 마야에게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준은 엘레노어와 마야의 반응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 제대로네.”
마녀의 숲에서 얻은, 죽음을 죽이는 눈물.
영멸루(靈滅淚).
그 레시피가 빛을 볼 순간이 찾아왔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