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76)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76화(76/374)
76화 성지(2)
교황의 환대.
수많은 성전사, 사제들이 꿈에 그리는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준은 신실함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별다른 감상은 없었다.
“일단 성지에 들어가기 앞서,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네. 이해해 주게.”
엘라힘의 말에 준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내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었다.
성수로 몸을 경건하게 씻고, 하루 동안 이 신전에 머물러야 성지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각자 임시로 배정받은 손님방에서 입장에 필요한 절차를 걸치고, 신전의 중앙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보게 된 것은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순백의 문이었다.
‘묘한데.’
블랙아웃의 계층단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성질의 기운이 느껴졌다.
포근하고 따뜻한, 아리클로토스의 신성력이었다.
“들어오시게나.”
교황의 안내를 따라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준은 그 짧은 사이,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사멸육림에 입장할때랑 비슷한 감각인걸.’
다만 사멸육림은 강제로 끌고 가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초원이 나타났다.
저 멀리에는 울퉁불퉁한 바위 지대가 있었는데, 그 너머로는 황금빛 안개가 빈 지평선을 채우고 있었다.
‘여기가 네페르덴 산 정상이라고 했던가.’
그에 준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오랜만의 지상 공기로군.”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준의 혼잣말에, 곁에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던 에이든이 물었다.
“허허. 한눈에 알아봤군.”
엘라힘의 말에 준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달이 더 멀리 있지 않습니까.”
밝은 대낮이지만, 하늘을 자세히 보면 희미하게 빛이 바랜 달이 보였다.
블랙아웃보다 달의 크기가 먼 것은 지상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 그럼 저흰 지금 지상으로 나온 겁니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블랙아웃의 역사가 제법 길다고 해도, 인류가 그곳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고작 수백 년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교단은 초대 황제가 제국을 건설하기 전에도 존재했으니.
그런 교단의 성지가, 블랙아웃 내부에 존재할 리 없었다.
“어떻게……?”
그럼에도 에이든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했다.
기본적으로 블랙아웃은 바깥으로 나갈 방법이 굉장히 한정적이었으니까.
“완벽하게 밖으로 나온 건 아냐. 우리의 몸은 아직 블랙아웃에 묶여 있어.”
“살면서 나는 자네처럼 침착한 마법사는 본 적이 없네.”
옆에서 엘라힘이 그리 말했다.
여태까지 만나 왔던 사람들과 다르게, 엘라힘은 마법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이미 준이 평범한 마법사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그리고 성지는…… 겨우 그 정도로 놀랄 게 아니지.”
지금은 그런 기색이 사라졌으나, 준은 에이든이 마차에서 보여 줬던 모습을 기억했다.
7레벨 유저들의 전투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봐야 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던 에이든이다.
“직접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아? 7레벨 유저의 전투를.”
“예?”
“이곳에선 가능해. 7레벨 유저를 상대로 직접 싸워 볼 수 있어.”
그리 말한 준은 교황의 곁에 선 성기사, 베른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습니까?”
“허. 가능은 하네만. 별로 추천해 주고 싶진 않네.”
베른의 만류가 있었지만 곁에서 듣고 있던 에이든은 더욱 눈을 반짝였다.
“강해질 방법이 있는 겁니까?”
“으음…….”
베른이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준이 거들듯 말했다.
“정신력 하나는 끝내주는 친구입니다. 마야. 너도 마찬가지고.”
“무슨 말임까.”
이곳에 온 뒤로 마야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계속해서 선조의 영혼들이 불편해하는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 달. 우린 여기서 다시 태어날 거야.”
“……?”
성지 누아다 네페르덴.
이곳은 준 일행이 4레벨, 더 나아가 5레벨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무대였다.
* * *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지금,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내 성장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아니, 단언컨대 게임 속에서도 자신보다 빠르게 성장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완벽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블랙아웃은 팀 게임이야.’
즉, 함께 성장할 동료가 이를 따라와 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기회가 닿아 이곳 성지에 왔다.
‘그렇다면, 에이든의 성장은 크게 문제 없을 거다.’
에이든은 특별한 스토리로 성장한다기보단, 엄청난 재능으로 다양한 역경을 이겨 내며 성장하는 스타일이니.
‘문제가 있다면 마야인가.’
조경족의 소녀.
솔직히 말하자면, 마야의 성장 잠재력은 에이든과 엇비슷할 정도로 엄청나다.
물론 활약하는 영역은 조금 다르겠지만.
문제는 현재 마야의 성장이 오랜 시간 멈췄다는 점이다.
‘마야는 특수한 이벤트가 있어야 강해지는 타입이다.’
그런데 정작 그 특수한 이벤트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게 됐다.
아직 게임의 스타트 시점도 되지 않았는데, 준의 존재로 인해 벌써부터 너무 많은 점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 변수들이 있는데, 마냥 특수 이벤트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도 미련한 짓이야.’
그뿐인가?
그 특수 이벤트조차 게임 속 배경에 의하면 몇 년 후에 일어날 일이다.
그때쯤이면 준과 에이든의 성장 속도는 따라잡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
일정 조건만 갖춰진다면, 그 에이든과 비슷한 수준의 재능을 지닌 인재이지 않은가.
그런 인재를, 그저 시기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것은 아주 미련한 짓이었다.
‘그런 식으로 포기하면, 건질 수 있는 네임드 NPC가 얼마나 있겠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특수 이벤트를 대체 할 방법이 있다는 점이지.’
마야는 준이 세부 스토리까지 알고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 * *
각자의 시간을 갖고 난 뒤, 다시금 일행들이 뭉쳤다.
“엘레노어는 어디로 갔어?”
그런데 둘이 함께 나갔을 때와 달리, 에이든은 혼자 돌아왔다.
“아, 엘레노어 사제님은 따로 배워야 할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배워야 할 거라.”
타인을 해치기 싫어 공격쪽 신성 마법을 배우지 않은 것에 한탄을 하더니.
저번 사태 이후로 마음을 바꾼 모양이다.
“저, 그런데 선배. 이곳에서는 뭘 할 예정이십니까?”
“우린 여기서 세 달 동안 훈련을 할 거야. 그리고 에이든, 너를 봐줄 사람은…….”
“나일세.”
7레벨의 성기사, 베른이 에이든의 앞에 섰다.
“베른 성기사님?”
“자네의 훈련은 내가 거들어 주겠네.”
“저, 정말이십니까?”
에이든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배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나 같이 곁눈질로만 배운 검술이었으며, 언제나 배움에 목이 말랐던 에이든에게 이건 다신 없을 기회였다.
“물론일세. 따라오게.”
어딘가 홀린 표정으로 에이든은 신전의 뒤쪽으로 향했다.
“나는?”
“네 상대는 나야.”
“왜 그렇슴까?”
“어허. 내가 마법사라서 못 미더워? 그것도 선입견이야.”
실제로 탐험가로서 유명한 마법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용병업계에서도 마찬가지고.
“물론 당장 너랑 내가 대련을 하는 건 아니고. 그건 좀 나중의 일이야. 그보다는 일종의 상담이라고 해야 할까?”
“상담, 말임까?”
“그래, 앞으로 너의 성장 방향성에 대한 상담.”
“……제 앞길은 제가 알아서 함다.”
마야가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걸 무시했다.
“그래서 몇 년째 4레벨 필드인데?”
“…….”
“보아하니 너도 뭔가 목적이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준은 마야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복수다.
“혼자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마야는 그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믿는다는 행위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녀는 그만큼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조경족. 옛 고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부족이지.”
“……!”
마야의 두 눈이 커졌다.
당연했다.
여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브래던임까?”
“아니. 그 양반은 너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했어. 그 대신, 베른을 제압하던 과정에서 네가 쓴 능력은 봤지.”
준은 능숙하고 교묘하게 말을 비틀었다.
이것도 말을 잘 골라 가며 해야 했다.
조경족 앞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선조의 영혼들이 거짓말을 분별해 내기 때문이다.
‘뭐, 게임 속에서 옛 고서도 읽어 봤고, 기술을 직접 본 것도 사실이니까.’
그보다 문제는, 마야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그때 썼던 기술. 왜 지금은 쓰지 않지?”
“…….”
“말하지 않아도 돼. 대충 예상이 가니까. 신체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게 싫어서 그런 거 아냐?”
“그걸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지.”
준은 신비로운 마법사를 연기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조경족의 능력은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선조들의 영혼을 다스리는 힘이지.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있어.”
생자가 사자를 다룬다.
아무리 그게 선조의 영혼이라 한들, 죽은 자가 산 자의 육신을 탐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거기에 애당초 마야는 조경족의 핏줄을 이은 것도 아니고.’
부족장이 주워 키운 아이였던만큼, 마야는 더더욱 선조의 영혼들을 믿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마야의 육체 주도권을 탐내기보단,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다.
문제는 그 염원이 너무 오랜 시간 묵혀졌다는 것이고.
조경족의 핏줄을 타고나지 않은 마야는 그 염원에 정신이 오염될 위험이 있었다.
‘마야도 그렇게 자세한 것까진 모를 테지.’
대신 본능적으로 꺼림칙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 그래서는 안 됐다.
‘마야가 가진 재능의 근간은 선조의 영혼들이야.’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피하기만 하면, 마야는 그저 그런 4레벨 유저로 남을 것이다.
‘그걸 해결하는 게 이제부터 내 일이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준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반쯤 돌팔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이곳은 성지였으니.
몇 번쯤 실패하는 거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터였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7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