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77)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77화(77/374)
77화 성지(3)
“솔직히 나는 자네가 왜 그 전투에서 무력감을 느꼈는지 모르겠네.”
베른의 말이었다.
에이든은 가만히 서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
“마법사에게 들었다네. 검을 잡은 지는 이제 겨우 1년이란 것을.”
거기에 교황인 엘라힘에게도 추가로 들은 정보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금발의 사내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 초대 황제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검술 실력과 별개로 오러를 깨우쳤고, 심지어 꽤 좋은 성능의 스킬까지 익혔다.
그게 고작 1년만에 이뤄진 일이다.
“너무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러니 베른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랜 시간 교단의 성기사로서 살아왔고, 숙련된 성기사인 만큼 많은 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그저 평범한 재능을 가진 이들도 있었고.
에이든만큼은 아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성장에 욕심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베른은 그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좋지 못했다.’
순식간에 성장하는 능력.
거기에 심취해 더 높이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
하지만 그 재능의 끝에 도달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갈증.
아무리 마셔도 가시지 않는 그 갈증에 무리하며 달리기 시작하고.
끝내 탈진해 쓰러진다.
그렇게 한 번 쓰러지면, 다시 달리지 못한다.
적어도 베른이 봐 왔던 이들 중 그 고통을 다시 겪겠다며 달리는 이들은 없었다.
‘분명 큰 재능이다.’
눈앞에 있는 이 금발의 청년은 자신이 봐 왔던 그 어떤 인재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안정적인 환경과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머지 않아 자신을 따라잡을 터.
그럼에도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이든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 * *
베른의 질문을 받은 에이든은 잠시 눈을 감았다.
초원의 바람이 기분 좋게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에이든의 정신은 이 평온한 초원에 있지 않았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금방이라도 귀곡성이 들릴 것만 같은 지하실에 있었다.
그곳에서 전투를 펼치는 베른과 파계승이 보였다.
사실, 에이든은 그들이 얼마나 강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오로지 준에게 쏠려 있었다.
블랙아웃에 온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따르기로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위기에 빠졌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느꼈던 무력감은, 에이든으로 하여금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다시금 그를 감싼 풍경이 달라졌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어두컴컴한 지하실과 달리, 이번에는 휘황찬란한 복도다.
시선을 돌려보자, 그곳에는 창가에 몸을 기댄 채 고개만 빼꼼 내밀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어린 자신은 혹시나 주변에 들킬까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높은 건물인 탓에 자그마하게 보였지만.
그곳엔 기사들의 연무장이 있었다.
“에이드리안 님.”
그때, 젊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어린 자신은 화들짝 놀랐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들려오는 발소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갈색 머리카락에, 평범하게 생긴 여인은 잠시 그런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이내 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바깥은 봐선 안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미, 미안해. 보모…….”
숨기려 하면 끝까지 숨길 수 있었으나, 그러면 저 잔소리가 더욱 길어진다.
그걸 깨우친 어린 에이든…… 에이드리안은 고개를 푹 숙였다.
당시의 그는 보모가 무서웠다.
“당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가르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야 깨달았다.
보모는 에이드리안의 재능을 알아본 황실의 유일한 사람이었고.
어떻게든 에이드리안을 살리고 싶어 했던 사람이란 걸.
하나 그마저도 유배지로 보내지며 잃어버렸다.
무력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그저 증오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뛰쳐나왔고.
검을 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감았던 눈을 뜬 에이든은 여전히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베른을 바라봤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
“저는 무력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권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드리안 룬 와이본 아르시오.
버려진 황태자로서 하는 말치곤,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베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에이든의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죽을 만큼의 고통이 잇따를 걸세.”
“빼앗길 바엔 차라리 죽겠습니다.”
준의 곁에서 에이든은 언제나 밝은 면을 보여 줬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오해였다.
그의 혈관에는 엄연히 전 인류를 통합시킨 초대 황제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진하게 그 피를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사 속 초대 황제는, 한 번 이루고자 한 것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베른이 망치를 잡았다.
“그럼, 알려 주겠네. 죽을 만큼의 고통이 무엇인지.”
베른이 망치를 휘둘렀다.
하나 에이든이 본 것은 베른의 어깨가 움직였다는 것뿐이었다.
한 번 눈을 깜박였을 뿐인데.
베른의 거대한 배틀 해머는 어느 새 그의 눈앞에 들이닥치고 있었다.
* * *
아아아아아악――!!!
에이든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된 비명에 눈을 떴다.
“……!!”
본능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검집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에이든은 금세 그 비명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커……헉!”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에이든의 머리는 터졌다.
뇌수가 흐르고, 그의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은 피에 젖어들었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를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두개골이 깨지고 뇌가 형체를 잃었다면, 도대체 자신은 왜 살아 있는가.
가까스로 팔을 들어 머리에 손을 올리자.
“아악……!!”
또다시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다시금 이상함을 느꼈다.
고통에 의해 터져 나온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
자신의 손에서는 단 한 방울의 핏방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황금빛 입자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겐가.”
베른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에이든의 발이 움직였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야수의 신체]가 극도로 발현되어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지키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겠다고.”
그리 말하는 베른에게서는 그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에이든은 어느샌가 자신이 베른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머리가 완전히 으깨졌어야 할 자신이 어떻게 그를 보고 있는지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베른의 배틀 해머가 재차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졌다.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마야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철저히 이쪽을 죽이겠다는 신념.
그 각오가 여실히 느껴진 것이다.
살아남고자 발악하는 뇌가 에이든의 신체를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후웅―!
피했다, 라고 생각한 순간.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어야 할 배틀 해머가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고 궤도를 비틀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콰직―
머리가 터졌다.
* * *
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아악――!!
자세히 들어 보니 마야의 비명임이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하고 있기에 저렇게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까처럼 에이든은 생각을 길게 이어 가지 못했다.
후우웅―
살기에 반응할 틈도 없이 짓쳐들어오는 배틀 해머 때문이었다.
본능처럼 다음 이어지는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콰직-
에이든은 베른의 배틀 해머에 머리를 잃고 말았다.
이전과 같은 결과였지만, 그 과정이 조금 달라졌다.
이번에는 두 번을 피하고, 세 번째 공격에 당해 죽었다는 것이다.
* * *
베른은 나직이 읊조렸다.
“여섯 번이라…….”
여섯 번.
에이든이 죽음을 맞이한 횟수였다.
이곳은 치료의 신, 아리클로토스 교단의 성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땅이었다.
베른은 그것을 신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다만, 단순히 부상을 치료해 준다거나 하는 원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신성력이 있다 하더라도 죽음은 되돌릴 수 없으니.
만약 준이 그 원리를 이해했다면, 그는 이것을 ‘백업’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이곳 성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들의 육체 정보가 저장되고, 신성력으로 그 정보를 끌어와 복구하는 것이었으니.
“보통 독한 게 아니군…….”
말인즉슨, 에이든은 무려 6번이나 머리가 터지는 고통을 겪은 것이다.
남들이었으면 이미 쇼크로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에이든이 마지막으로 쓰러졌을 때, 5번이나 공격을 피했다는 점이다.
“저쪽도 끝난 모양이군.”
어느 순간부턴 준과 마야가 있는 쪽에서도 더 이상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베른은 정신을 잃은 에이든을 들쳐 메고 준과 마야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니.
“크헉.”
“……죽어!”
마야의 검에 목이 꿰뚫려 쓰러지고 있는 준이 보였다.
* * *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실전.
이것만큼 실력을 늘리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다만, 이곳은 게임 내에서도 그리 자주 쓰긴 힘든 장소였다.
한 번 죽을 때마다 캐릭터의 정신력이 확률적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은 이곳에 올 때면, 캐릭터들의 정신 방어력을 높이는 아티팩트로 무장시켰었다.
‘근데 그것도 게임의 후반부에서나 가능했지.’
보통 게임 속에서는 7계층이나 8계층에 도달한 캐릭터들을 데리고 왔었다.
그때 쯤이면 아티팩트를 준비할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준은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정신력이 높은 녀석들이니.’
둘 모두 정신력 측면에서는 굉장히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다.
너무 많이 죽으면 안 되겠지만, 몇 번 정도로는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준이 한 가지 놓친 게 있다면.
“어…… 마, 많이 화났니?”
이번에 마야에게 하고 있는 작업 자체가 여러 차례의 시행 착오를 필요로 한다는 점과.
“캬아아아!”
그 과정이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실험은 실패했다.
그에 대한 결과로, 현재 마야는 폭주하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다행이라면, 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준은 알고 있었다.
‘한번 죽어 줘야겠다.’
부디 두 정신력 보조 스킬이 버텨 주길.
준은 이성을 잃은 마야를 향해 말했다.
“오냐. 어차피 나도 한 번은 겪어 봤어야 할…… 크헉!”
막아서려는 골렘을 [혼령질주]로 통과해 버린 마야는 준의 목에 두 자루의 검을 꽂아 넣었고.
“……죽어!”
그렇게, 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의 생각대로 두 정신력 스킬이 잘 버텨준다는 점이었다.
물론 끔찍한 고통 앞에선 그다지 위로가 되진 못할 사실이다.
맨정신으로 그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야만 했으니.
‘돌팔이가 이래서 위험하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준은 눈을 감았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