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78)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78화(78/374)
78화 성지(4)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돌팔이 의사라도 진료를 위해선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돌팔이 이전에 범죄자다.
“조경족의 힘은 선조의 영혼으로부터 나와.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살아 있는 인간이 죽은 자의 영혼을 다스리는 게 가능한 일일까?”
단언컨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준이 그리 말하자 마야가 물었다.
“왜 그렇슴까.”
“망자들은 기본적으로 욕망덩어리니까.”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응당 성불했어야 할 영혼들이 지상에 남아 있다면, 이유가 있을 터.
“망자는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싶어 해. 그게 뭘까?”
“육체, 입미까.”
“맞아. 하지만 육체만 가지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그 육체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지.”
정확히는 생전에 이루지 못한 것.
그렇다면, 조경족에게 생전에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복수.”
움찔.
순간, 마야가 몸을 떨었다. 선조들의 목표가 아닌, 자신의 목표도 그러했으니.
준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현재 블랙아웃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족들은 전부 다른 방식의 생활을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어.”
“…….”
“과거, 초대 황제의 군대를 피해 이곳 블랙아웃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그렇기에 초창기의 부족들은 제국을 증오했으며, 동시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증오는 점차 옅어지기 마련이다.
오래전에 일어났던 비사보다, 당장 눈앞에 내 자식이 굶어 죽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법 아니겠나.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며 많은 부족들이 현실에 순응했고, 복수를 포기했다.
하지만 조경족은 아니었다.
‘그 수백 년 전에 살아 있던 선조의 영혼이 있었으니.’
그들이 가진 증오심은 그야말로 뿌리가 한없이 깊다.
“무려 수백 년에 걸친 증오야. 그걸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런 영혼이 하나만 있어도 곤란할 텐데, 수백 수천의 영혼들이 똑같은 증오심을 품고 있다.
그런 걸 짊어지고 산다면, 버텨 낼 리 없다.
“하지만, 망자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알아?”
“알고 있슴다.”
준의 말에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경족이 단순히 선조의 영혼을 숭배하는 집단이었다면, 그저 사이비 단체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부족민의 정신이 오염되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터.
따라서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이 있었다.
“부족장은 말했슴다. 오직 부족의 의식을 받아야만 선조들에게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그 말처럼, 조경족에겐 대대로 내려져 오는 의식이 있다.
그 의식을 치러야만 조경족이 가진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살아남은 조경족은 오로지 마야뿐이었고.
의식을 치러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조의 영혼들을 믿지 못했고, 선조의 영혼들 또한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냐.’
게임 속에서 마야는 몇 년 후에 특수한 이벤트를 겪고 각성하게 된다.
준은 그곳에서 조경족의 부족이 치르는 의식이란 게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 알게 되었다.
“너희 부족이 치르는 의식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에 마력을 심는 거야.”
“머리 말임까?”
그녀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협 소설 표현을 빌리자면 상단전을 수련하는 거라고 봐야겠지.’
전사들이 하단전에, 마법사들이 중단전에 마력을 쌓듯.
조경족은 머리에 마력을 쌓는 것으로 영혼들과의 교감 능력을 늘리고, 더 나아가 그들이 가진 욕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깨우친다.
‘그리고 난 그 방법을 알고 있고.’
이거 참.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준은 머리에 마력을 쌓는 지식이 없었지만, 전생자에겐 아니었다.
그는 [마신지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지식들을 탐구했다.
그중에는 머리에 마력을 쌓는 방식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생자에겐 별 소용이 없었지만.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기억을 이어받은 지금. 준에겐 더 없이 소중한 정보가 되었다.
‘문제는 지식으로 알고 있다는 거랑 내가 직접 하는 거랑 별개의 일이라는 건데.’
몇 번 시도해 보면 금방 깨우칠 것 같았지만, 그 몇 번의 시도가 죽음을 부를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아리클로토스 교단의 성지였으니.
죽음이 존재할 수 없는 땅이었다.
* * *
머리에 마력을 심는다, 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실상 원리를 보자면 좀 다르다.
전사들은 몸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하복부에 마력을 ‘쌓는다’.
마법사는 대자연에 속한 마력을 위한 통로를 심장에 ‘만든다’.
그렇다면 머리는 마력을 어떻게 사용할까?
정답은 깨우친다, 였다.
‘전생자의 기억에 따르면.’
뇌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뇌가 하는 모든 일을 사람은 인지할 수 없다.
마력과 영혼도 비슷한 이치다.
뇌는 마력과 영혼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준이 지금부터 할 것은 마야의 뇌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는 그 정보를, 의식 위로 올리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준은 그 대가로 폭주한 마야에게 목이 꿰뚫리며 온몸이 난자되어야 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구만.”
“……미안함다.”
“미안하긴. 제대로 못한 나도 문제였지.”
정신을 차린 마야가 사과했다. 눈빛에는 미안함이 담겨져 있었지만, 그만큼 원망도 보였다.
“아팠냐?”
“죽는 줄 알았슴다.”
그럴 만도 했다.
준이 마야에게 했던 것은, 뇌가 무의식의 영역에 넘긴 정보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원래는 마력과 영혼을 느끼는 무의식 정보만을 의식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준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버렸다.
즉,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이고, 눈을 깜박이고, 심장을 뛰게 하고, 피를 흐르게 하는.
그 모든 과정을, 의식의 단계로 올린 것이다.
사람은 위의 저 과정들을 의식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야는 숨이 막혔고, 근육이 풀어졌으며, 눈을 감지 못했다. 또한 심장이 멎음과 동시에 모든 피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야의 무의식 속에는 선조의 영혼들이 남긴 힘도 있으니까.’
그 힘 중 일부가 튀어나왔고.
그렇기에 의식을 잃은 마야를 대신해 선조의 영혼이 폭주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준이 당한 일이었고.
“그런데 어쩌냐. 이거, 금방 끝나진 않겠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서 있던 결과로 꽤 많은 부분은 걸러 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여전히 절반 이상이 남았다.
그 안에서 마력과 영혼을 의식하는 영역만 남겨야 했고.
하루 이틀 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 * *
“너무하십니다, 선배…….”
“하하, 미안.”
그날 저녁.
돌아 온 에이든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준에게 푸념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준은 조용히 그 말을 들어주었다.
‘죽는 경험이라는 게 그만큼 충격적이었겠지.’
아무런 귀띔도 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도록 만들었다.
일부러 베른에게도 그 부분은 숨겨 달라고 했다.
“그래도, 효과는 좋았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필사적으로 움직였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는 에이든의 눈빛은 어딘가 깊어 보였다.
말은 저렇게 했어도, 여태까지 에이든은 충분히 필사적이었다.
준과 함께해 왔던 시간은 모두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투쟁이었으니.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까지 끌어올리는 건 다른 일이지. 어찌 보면 에이든도 마야랑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건가.’
아쉽게도 준이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사 쪽의 전투 능력은 준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히든 피스를 몇 개 쥐어 주기야 하겠지만, 깨달음의 영역은 오롯이 에이든의 문제였다.
“부족한 건 없고?”
“검술을 좀 더 다듬고 싶었습니다만…… 베른 성기사님께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 말처럼, 에이든에겐 따로 검법 같은 게 필요치 않았다.
에이든의 재능은 검법으로 재단할 재능이 아니니.
오로지 스스로 만든 길을 걷는 것이 그가 가진 재능을 가장 꽃피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네가 가진 재능은 말 그대로 실전을 통해 길러지는 거야. 넌 위기가 닥치면, 그 자리에서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잖아.”
실제로 그랬다.
블랙아웃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쳤던 강도들에게 죽을 뻔한 이후.
처음으로 검의 의미를 알아차리며 검술을 깨우쳤다.
숲에서 야영 중에 만났던 오크를 따돌리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
마력을 썼다.
이렇듯, 에이든의 모든 성장에는 위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태까지 배운 것들을 정돈해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여기서 에이든에게 맹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배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배우기보단, 무의식 단계에 있는 전투 센스를 뽑아내는 게 효율적이지.’
그래서 베른에게 부탁한 거고.
하지만 에이든은 무언가 아쉬운 듯 보였다.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지금 이 단계를 거친다고 해서, 그 파계승과의 전투에 내가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핫.”
그 말에 준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든은 얼굴을 붉혔다. 괜히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전 고작 3레벨인데, 7레벨을 상대하겠다니…….”
“아니, 그건 아냐.”
“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 그건 오만이 아니다, 에이든. 방금 내가 웃은 건 다른 이유 때문이야.”
“다른 이유라 하시면…….”
준이 손끝에 마력을 일으켰다.
“세상에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가, 때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지.”
“……?”
“며칠 기다리면 그 답을 알려 주마. 지금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그래야만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잡을 수 있으니까. 기회란 준비된 자의 것이야.”
“기회란 준비된 자의 것…….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에이든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베른과 마야가 보였다.
두 사람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에이든의 시선에 베른의 망치가 걸렸다.
“으음…….”
그래도 역시 머리가 터지는 경험은 다신 겪고 싶지 않았다…….
서글픈 감상을 담아 다시 준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자.
“나도 목이랑 전신이 베이는 취미는 없다고…….”
준 역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