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82)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82화(82/374)
82화 취향이 양학인가?
“아.”
졸고 있던 클로이가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전에 비해 훨씬 담백해진 자신의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 이쪽이 클로이의 취향이었다.
이전 집무실이 휘황찬란했던 이유는, 자신을 따라와 준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없었고, 새롭게 온 이들에게 그런 휘황찬란함을 자랑해 봐야 벼룩의 간을 내보이는 꼴이었다.
“으, 머리야.”
은색 잔에 담긴 커피를 은수저로 몇 번 휘저은 클로이는 남은 커피를 모조리 입에 털어 마셨다.
어차피 다 식은 커피였다.
“이제 급한 일은 대강 끝냈나…….”
얼마 전, 백작과 함께 진행했던 클로이의 경매장이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클로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인사들과 만나러 다녔고, 인맥의 풀을 한껏 넓혔다.
가장 큰 경쟁자였던 아로바티 상회는 더 이상 이쪽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아로바티 상회의 회주인 아돌프가 볼카토르닉 마탑에서 일어난 사태로 백작의 눈치를 한껏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노력을 알아준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관심이 없던 것인지.
백작은 딱히 그에게 터치를 가하지 않았다.
“가문에서도 지원이 충분히 왔고…….”
백작의 위세를 등에 업은 것은 지상의 길레느 상회가 보기에도 가시적인 성과였다.
따라서 그녀의 할아버지, 길레느 제이크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왔다.
보인 성과만큼 되돌려 준다.
그것이 길레느 제이크의 성격이었다.
덕분에 다시금 검은 숲 요새에 길레느 상회의 지부가 멋들어지게 세워졌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그 모든 과정이, 어느 한 마법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 이제 슬슬 그 녀석을 불러도 될 타이밍인가?”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작 그 마법사는 지난 몇 달 동안 연락이 없다.
3계층의 적성으로 떠난 것까진 들었으나, 그 뒤로 소식이 뚝 끊긴 것이다.
‘이쪽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조용히 지내는 게 맞긴 한데.’
연락이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뢰주가 소속된 아리클로토스 교단에서 일이 잘 해결됐다며 의뢰금을 지급했다는 점이다.
그 금액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부분에서 의아함이 생겼지만.
‘어쨌든 잘 해결됐으니까 곧 돌아오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쯤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의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전에 받았던 편지처럼 아리클로토스 교단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편지를 작성한 인물이 달랐다.
“준?”
장문의 편지에 담긴 이야기를 쭉 읽은 클로이가 다시금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조용하긴 개뿔.”
안에 담긴 내용은 도저히 단시간에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상인이었고.
이내 이것을 돈으로 연관 지을 방법을 떠올렸다.
“후우, 좋아. 그래도 무사한 게 어디야.”
새롭게 들어온 일거리에 집중했다.
몰려왔던 두통은 금세 사라졌다.
* * *
포식자를 길들이는 작업이 모두 끝났다.
더 이상 포식자는 배가 고프다고 준의 피를 함부로 빨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꼬옥…….
배가 고프면 신호를 보내 왔다.
손을 한 번 조이는 것으로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곧 맛있는 거 먹여 줄 테니까.”
그러는 준은 자신의 양옆을 바라봤다.
“후우……. 한 방, 단 한 방만…….”
왠지 모르게 눈이 조금 충혈된 듯한 에이든과.
“그건 거의 준비가 끝났어. 됐으니까 도와주기나 해.”
허공을 보며 부족어로 혼잣말을 하는 마야가 보였다.
둘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둘의 목표는 바로 7레벨의 성기사.
베른이었다.
“하하핫! 좋은 기세일세!”
지난 한달 하고도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에이든과 마야는 몇 번이고 베른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 숫자만 하더라도 거의 세 자릿수를 넘어갈 지경이니, 두 사람의 소원은 단 한 번만이라도 베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굴려진 거냐, 에이든…….’
마야야 그렇다 치더라도, 에이든이 저렇게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여 줄 줄이야.
확실히, 베른은 생각보다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는 성기사였다.
그는 일부러 자신의 한계를 낮춰 보여 주고, 에이든과 마야가 그 한계를 넘으려 할 때마다 다시 한번 한계치를 올려 버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큼 두 사람의 머리는 배틀 해머에 터져 나갔다.
“선배……. 이기고 싶습니다…….”
그리 말하는 에이든의 울먹이는 표정. 왠지 농구가 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작 농구공은 한 번도 잡아 본 기억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 나도 머리가 터지고 싶진 않구나.”
안 그래도 매일같이 [마신지체]를 한계 이상까지 끌어 쓰면서 오버 히트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온몸의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에 더해 두개골이 터지는 경험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자, 준비는 되었는가!”
베른이 배틀 해머와 방패를 집어 들었고.
이내 곧 세 사람은 베른을 향해 투지를 불태우며 움직였다.
그게, 성지에서 보낸 마지막 일과였다.
* * *
“떠났구먼.”
오랜만에 조용해진 성지를 바라보며 교황, 엘라힘이 낮게 중얼거렸다.
“적적하십니까, 형님?”
그의 곁에서 베른이 씩 웃음을 지었다.
엘라힘은 베른의 미소를 제법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20년 전 그날 이후 베른은 자신 앞에서 웃는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흘흘. 늙은이에게 적적함은 오랜 친구와 같은 녀석이지. 하지만 때론 시끌벅적한 만남도 즐거운 법이야.”
축제가 끝난 뒤 찾아온 고요함처럼, 엘라힘은 어딘가 힘없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그는 짓궂은 표정으로 베른을 바라봤다.
“나보단 오히려 자네가 아쉬워하는 것 같은데?”
“왜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들의 혈기를 코앞에서 맛봤는데.”
에이든과 마야.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어딘가 부족했다.
열기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마법사가 참여한 순간, 그들은 달라졌다.
베른은 오랜만에 목이 베이는 통증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주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들의 열정은 한때 자신이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부딪혀 내려놔야 했던 것이기도 했다.
비록 자신은 잘못된 선택, 일그러진 신념으로 그것을 내려놔야 했지만.
그들은 그 열정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그들 곁에는 그때 자신에겐 없었던 현명한 마법사가 함께할 테니까.
“자네도 따라 나서지 그랬나.”
“흐흐, 재미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가 봐야 방해만 될 거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구먼.”
흰고래 용병대는 마치 한참 성장 중인 야생화 같았다.
그리고 야생화는 야생에 둬야 잘 성장한다.
걱정한답시고 베른이 붙어 다니면, 잘 성장하던 야생화는 뿌리가 썩을 것이다.
베른은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엘라힘이 저런 말을 한 이유는, 아마 엘레노어 때문일 테지.
“엘레노어가 많이 걱정되십니까?”
“나도 많이 죽었군. 자네에게 속을 보이다니 말이야.”
상급 사제, 엘레노어.
그녀는 교단에 있기보다, 바깥으로 떠나길 선택했다.
엘라힘은 그런 그녀를 막지 않았다. 막을 자격도 없었고.
“그 아이가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길 선택했다네.”
“그렇습니다. 시간이란 게 이토록 허무하더랍니다.”
“그렇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시류를 따라가기가 힘들어. 예전과 달리 세상에 낭만도 많이 없어졌지.”
“…….”
“그런데, 우리가 앉은 자리는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될 자리이기도 해.”
최근에 겪은 사태로, 엘라힘은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교단은 달라져야 한다.
20년 전의 사건에서 그렇게 당하고서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일라이어스, 그 친구는 결국 허무하게 가 버렸지만, 우리에게 나름의 교훈을 주고 갔다네.”
지금처럼 있어서는 교단에 변화를 줄 수 없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현 시류를 읽어야 했다.
엘라힘은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지를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편지지였다.
“길레느 상회라…….”
진작 움직여야 했지만 세상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한 마법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파국으로 치달았을 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엘라힘은 늙은 몸을 이끌어 용기를 내 볼까 했다.
* * *
엘레노어가 파티에 들어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그녀의 합류를 거부하지 않았다.
단지, 무려 상급 사제나 되는 인물이 어째서 실버 등급에 불과한 용병대로 들어오려 하는 걸까 하는 의문만 있었을 뿐.
그에 엘레노어는 이렇게 답했다.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거든.”
지난 번 엘라힘과의 대면에서 엘레노어는 그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아주 거친 대화’로 풀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단에 남아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의 내면에는 아직 외신의 흔적이 존재했고, 그녀는 이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까진 너희랑 같이 다닐게.”
이번 임무에서 여러모로 받은 게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결과물은 역시 파티에 고정 힐러가 들어왔다는 점일 터.
“이제 탱커만 영입하면 되는 건가…….”
아직 팀에 제대로 된 탱커가 없긴 했지만, 사실 지금 이 수준만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파티긴 했다.
‘난 제외하더라도 두 사람이 네임드 NPC에다가…… 힐러는 미래의 월드 퀘스트급 보스라니.’
뭐 이런 혼종 파티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런 와중에 엘레노어가 물었다.
“그래서, 대장님. 우린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용병이 하는 일이야 뻔하지. 의뢰야.”
“이제 바깥에 나가도 괜찮은 겁니까?”
에이든의 물음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백작이 칼춤을 추는 동안 굳이 눈에 띌 필요가 없어 행적을 숨기고 있었다.
그로부터 벌써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그 여파가 이제 와서 흰고래 용병대로 흘러오진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클로이랑 편지를 주고받았어. 거기에 대한 답변도 받았고.”
“오오…….”
제법 기대가 된다는 듯 에이든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
에이든 또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한 달 전과 달리 무척 강해졌음을.
어서 빨리 그 힘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임무의 내용은 뭠미까.”
그런 와중에 마야가 본론을 물었다.
“흔한 호위 임무야.”
“……정말 흔한 게 맞슴까?”
“의뢰 내용 자체는 그렇다고 봐야겠지?”
미심쩍다는 듯 마야가 눈을 얇게 뜨고 준을 바라봤다.
“어허. 대장님한테 그런 시선은 불손한데.”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거 아님까?”
“그 덕분에 성장한 것도 있잖아. 원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고 했어.”
“참신한 개소리 같슴다.”
맞다.
준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살기도 바쁜 시대에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는가.
“사실 이번 임무도 그리 편하진 않겠지만, 다들 알잖아? 이제 시즌 종료까지 4개월도 안 남았어.”
그랬다.
4개월이 지나면 이번 시즌의 블랙아웃은 끝을 맺게 된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려면, 정확히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벌써 시간이…….”
에이든은 블랙아웃에 입성한 첫 날이 떠올랐는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고작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에 급급했고, 그러기 위해 준과 함께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몇 번 씩이나 죽을 위험을 겪었다.
에이든은 그게 준의 탓이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기질이 그렇기 때문이겠지.’
그는 자신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준이 걷는 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일 터.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도 무척이나 소중했다.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를 명확히 하게. 그 이유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하네. 안 그럼, 과거의 나처럼 길을 잃을 수도 있을 터이니.
대련 중 베른이 남겼던 말이었고, 에이든은 그 말을 새겨 들었다.
“그래서, 임무지는 어디임까?”
마야가 물었고.
“오르타쿠스의 전쟁 들판.”
준이 답하자.
“예?”
에이든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선배, 거긴 4계층 아닙니까? 저희가 벌써 4계층에 오르기엔 너무……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곁에 있던 엘레노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에이든을 바라봤다.
“그럼 그 실력으로 3계층에 있을 생각이었어? 왜?”
7레벨의 성기사도 꺾은 이들이 아니던가.
비록 베른이 신성력을 쓰지 않았어도, 그는 엄연히 7레벨의 강자였다.
그 실력으로 양심도 없이 3계층 필드에서 놀 작정이었나?
혹시 취향이 양학인가?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8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