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06)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06화(106/150)
[그대는 누구인가.]석벽 안으로 들어온 우진은 눈앞에 나타난 영혼을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늘거리는 머리카락.
깊은 눈동자.
기품과 강인함이 느껴지는 몸.
그리고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이름을 알려준 것도 아닌데 우진은 눈앞의 그를 본 순간 직감했다.
테칸 왕국의 초대왕, 칼라.
대륙 역사상 유일하게 펜릴을 다루었다는 인간.
‘펜릴과 유대가 쌓인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그라면 가능한 일이었겠군.’
그의 영혼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한 일이었기에 우진은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초대왕을 뵈옵니다.”
[이곳은 인간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일 터인데…… 어찌 당도할 수 있었지?]“펜릴이 산맥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테칸 왕국의 신하들이 이곳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는 왕국의 신하로 보이진 않네만?]“네. 저는 이곳을 찾은 아스웰 발란과 함께 온 자이옵니다. 그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발란 가문이라…… 아직 건재한 것인가.]칼라는 그리운 듯 발란 가문의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펜릴의 힘을 빌리고자 이곳을 찾았습니다.”
[펜릴의 힘을? 원시 성령의 힘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제가 알기로 테칸 왕국은 곧 나머지 두 왕국들과 전쟁을 벌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펜릴의 도움이 있다면 나머지 두 왕국도 쉽사리 백기를 들 것입니다.”
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우진은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펜릴의 힘을 전쟁에 쓰겠다는 것이냐.]“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처사입니다.”
우진의 대답에 칼라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퉁―.
그러더니 그가 뭔가를 가져와 우진의 앞에 내려놓았다.
커다란 유리관.
안에는 마치 불꽃처럼 하얀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건……?”
[나와 함께했던 펜릴의 영혼이다. 지금 너희가 만난 것은 그의 자식이지.]‘칼라가 다루던 펜릴은 다른 개체였구나.’
[펜릴은 평생을 살 수 있는 영물이다. 그런데 어찌 되었지? 나와 함께한 결과 그에게 남은 것은 이 작은 영혼 조각뿐이다.]솨아아악―――!!
그가 우진의 앞에 다가왔다.
[위로 올라가는 길을 열어줄 테니 너희 동료들을 데리고 돌아가거라.]손을 들어 올리자 석벽의 한쪽 공간이 일그러졌다.
콰앙―――!! 콰가강――!!
일그러진 공간 뒤로 요란한 전투 소리가 들렸다.
‘아직 싸우고 있구나.’
다행이었다.
분명 힘든 상황이겠지만 전투가 진행 중이란 건 아직 그들이 살아 있다는 의미기도 했으니까.
“죄송하지만 그리할 순 없습니다.”
[……왜지?]“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펜릴이었습니다. 그는 뭔가를 찾는 듯 산맥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우진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아기 펜릴을 안아 올렸다.
“보이십니까?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펜릴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크르릉…….]칼라를 알아보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진이 말을 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분명 크게 잘못될 겁니다. 오히려 칼라, 당신께서 펜릴에게 오해 말라 전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치료하겠다고 말입니다.”
콰아앙――!!
하지만 그 순간 우진이 앞에 새하얀 번개가 떨어졌다.
[얄팍한 거짓말이로구나. 펜릴을 치료해? 네가 어찌? 아무리 대단한 인간도 성령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인간이 아니라면요?”
[……뭐?]“요정족이라면 방법을 알지도 모릅니다.”
우진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째서 펜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말이다.
그 의문은 병든 아기 펜릴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건 흑룡 때문도, 자신 때문도 아니었다.
‘요정족이 나타났기 때문이야.’
흑룡전이 마무리되고 난 뒤 페어리 퀸은 잘린 그의 팔을 고쳐줬었다.
펜릴은 아마도 그때 그녀의 힘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페어리 퀸이라면…… 펜릴의 치료도 가능할지 몰라.’
그리고 지금 요정족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그대는 새끼의 치료를 빌미로 펜릴을 이용할 생각인가.]우진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저는 테칸 왕국의 사람도 아닙니다. 펜릴의 힘을 빌리는 건 저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상처 입은 새끼를 치료하고자 할 뿐입니다.”
[캉! 캉!]아기 펜릴이 우진의 주위를 맴돌았다.
“아마 펜릴과 싸우면서 그의 냄새가 묻어 그런 가 봅니다.”
[아니. 제 어미의 냄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네? 그럼…….”
[그렇군…… 너는 환요의 주인이로구나.]칼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카밀라의 냄새다.]분명 세츠나를 부화시킬 때 필요한 재료 중에 카밀라의 털이 있었다.
세츠나에게서 카밀라의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녀와 함께 있던 우진에게까지 그 냄새를 찾았다면 정말 대단한 후각이 아닐 수 없었다.
“맞습니다. 제가 카밀라의 털을 써서 환요의 알을 부화시켰었습니다.”
[과연…….]칼라는 우진을 다시 살폈다.
[환요의 주인이라면 조금은 다르겠지. 좋다. 새끼를 데리고 저들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마.]“감사합니다.”
우진은 칼라가 만든 일그러진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파앗―!!
문이 사라지자 석벽 안은 다시 어둠이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로군…….]칼라는 펜릴의 영혼 조각이 들어 있는 유리관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저자는 어찌하여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이곳의 문을 여는 열쇠는 분명…… 펜릴의 배 속에 있을지언대.]그의 혼잣말에 대답을 하는 듯 펜릴의 영혼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는 발아래 놓여 있는 상자를 바라봤다.
이름 : 성령 살해자의 상자
설명 : 원시 성령 중 하나인 펜릴을 사냥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어쩌면 다른 보상을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군.]솨아아악……!!
그 말을 끝으로 칼라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콰앙―――! 콰가강―――!!
뒤틀린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귀를 찢을 듯한 요란한 굉음이 들렸다.
“멈추세요!!!! 멈춰요!!”
우진은 황급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펜릴이 거대한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아스웰이 검을 겨누고 서 있었다.
“과연 성령이로구나. 그대의 힘이 있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을 텐데…….”
자세를 잡은 아스엘의 모습이 어쩐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였다.
“맹목적인 적의를 가진다면 어쩔 수 없지.”
오싹―.
아스웰 발란에게서 처음으로 살의가 느껴졌다.
‘위험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펜릴을 회유하기 위해 방어적이었지만, 그 마음을 접은 순간 이제 그는 펜릴을 하나의 사냥감으로 볼 뿐이었다.
“잠깐!! 다들 멈추세요!!!”
우진이 펜릴과 아스웰 사이로 몸을 날렸다.
[케겡!!]그 바람에 안고 있던 아기 펜릴마저 우진과 같이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터뜨렸다.
[크아아아아――!!!!]그 모습을 본 펜릴이 엄청난 포효를 터뜨렸다.
“헉…… 헉…….”
오금이 저릴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도 그 힘에 짓눌린 듯 미동도 하지 못했다.
파앗―!!
아스웰을 제외하고 말이다.
‘저 괴물……!!!’
[특성 : 용맹이 발동됩니다.]▶ 공포로부터 보호됩니다.
“푸하!!”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리자 우진이 소리쳤다.
“검을 멈추세요! 펜릴이 경계하는 건 모두 다 병든 아이 때문이었어요!!”
펜릴의 발톱과 아스웰의 검이 만나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둘이 멈추었다.
“이거 보세요. 펜릴의 새끼가 병에 걸린 모양이에요.”
그가 아기 펜릴의 치아와 듬성듬성 빠진 털을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펜릴이 극도로 예민해진 것 같아요.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마 자기 새끼를 치료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진은 자신의 말에 동의하냐는 듯 펜릴을 향해 계속 눈짓을 주었다.
“그렇다면 더욱이 우리에게 힘을 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로 아스웰은 우진의 말에 납득이 가지 않은 듯 되물었다.
“왕국의 사제와 마법사, 필요하다면 연금술사까지 싹 불러 이 아이가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지.”
[크르…….]하지만 아스웰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펜릴은 고개를 저었다.
“외람되지만 펜릴의 치료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제가 요정족에게 부탁을 해보겠습니다.”
우진은 펜릴을 바라봤다.
“그게 네가 산맥 밖으로 나왔던 이유지? 안 그래?”
[크르르르…….]하지만 그의 물음에 펜릴은 여전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새끼를 내게 맡겨. 그럼 이 녀석을 데리고 요정의 숲으로 가 치료를 부탁해 보겠어.”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진의 눈을 바라보던 펜릴이 천천히 그의 뺨에 코를 가져갔다.
킁― 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마도 칼라가 말했던 카밀라의 냄새일지 모른다.
같은 성령의 냄새가 나서일까?
[크르르…….]펜릴은 천천히 무릎을 웅크리며 자세를 낮추었다.
‘돼, 됐다…….’
우진은 천천히 펜릴의 털을 쓰다듬었다.
“네 아이를 볼모 삼아 너를 이용하려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펜릴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츠나. 네가 이곳에 남아 있어줘.”
-네? 제가요?
“응. 펜릴이 믿을 수 있도록. 아이를 데리고 가면 불안해할 테니.”
우진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내가 남도록 하지.”
그 순간 아스웰이 나섰다.
“경!! 아닙니다! 차라리 제가……!!”
하지만 그는 이더의 어깨를 다독였다.
“자넨 돌아가서 휴식하게. 애초에 나의 일이었으니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내가 남아 있는 것이 맞아.”
그는 펜릴에게 겨누었던 자신의 검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펜릴이여. 조금 전 일은 잊어주면 좋겠군. 서로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펜릴은 아스웰을 바라봤다.
“검을 그대에게 맡기겠노라. 이제 나의 목숨은 그대의 것이다.”
그러고는 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칸,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