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25)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25화(125/150)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까.’
굳이 저들과 트러블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죽은 시체들이 찝찝하긴 했지만 고운 때처럼 살아 있는 자들도 아니고…….
복수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아니었으니까.
커다란 구덩이를 판 남자들은 마차 안에 있던 시체들을 하나둘 밀어 넣기 시작했다.
“제길…… 아무리 세상이 망해간다지만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죽여대다니…… 가뜩이나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다 살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사람을 죽이는 놈이나…… 죽은 사람을 묻는 우리나…….”
“빌어먹을 세상이지.”
‘저들이 범인은 아닌 건가.’
세 사람의 대화를 듣던 우진은 의구심이 들었다.
시체를 묻고 있는 이유가 뭘까.
꽈악―.
검의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는 잠시 생각했다.
‘아직 정보가 많이 부족해. 특히 중앙 대륙에 대한 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라탄의 실험실에서 카밀라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게 된 우진이었다.
지금까지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건지.
인류의 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조금 전 그들이 말했던 ‘지도’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예전에 떠돌던 지도.’
만약 정말로 북벽의 섬에 갈 수 있다면 그가 진행 중인 월드 퀘스트인 ‘황금향’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었다.
“…….”
잠시 고민을 하던 우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세츠나. 너는 주머니 안에 있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진의 품 안으로 숨었다.
“……누, 누구냐!!”
잔해 뒤로 우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체를 묻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을 들었다.
세 명 중 둘은 검을 뽑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나마 싸울 줄 아는 건 저 둘이라는 의미였지만,
‘검을 든 자세도 별 볼 일 없어.’
그리고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눈동자와 어깨.
수집가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애초에 검으로 먹고사는 자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바닥에 검을 버려두지도 않았을 테니까.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습니다. 뒤쪽 산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말소리가 들려서 다가왔을 뿐입니다.”
딱―! 따닥―!
“말소리? 으이구, 내가 그러니까 조용히 하랬잖아. 이놈들아!”
뒤로 물러나 있던 남자가 앞에 있는 두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며 소리쳤다.
“나 참, 자기도 신나서 얘기했으면서…….”
“그러게 말이야. 왜 우리한테 지랄이요? 지랄은!”
“이놈들이……! 시, 시끄럽다!”
뒤에 물러나 있던 남자가 앞의 둘보다 연장자인 듯 볼멘소리에 괜히 그들의 엉덩이를 짧은 다리로 툭툭 때렸다.
“마셸이라고 하오. 서로 검을 내리는 건 어떻소? 싸울 생각이 없다면 말이지.”
먼저 검을 집어넣은 남자가 우진에게 말했다.
“칸입니다.”
“이쪽은 타룬, 그리고 상단주이신 렉스 님이시네.”
“칸입니다.”
“크흠, 그래. 반갑구만.”
어느새 저 멀리 숨은 남자가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하던 일이 있어서 말이야. 대화를 하고 싶다면 타룬은 검을 들고 있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시죠.”
“위험한 세상이니까. 일을 하다 보면 시야를 놓칠 수 있거든.”
꼼꼼한 성격인 건지 아니면 이런 상황에 제법 익숙한 건지 마셸이라는 자는 빠르게 정리에 나섰다.
“그리고 거리를 두는 게 서로 좋겠지?”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더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니 적당한 조치였다.
“저 시체는 뭡니까?”
“의뢰를 받았네. 오해는 안 했음 좋겠군. 우린 마을에서 마을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이렇게 시체를 파묻는 자들은 아닐세.”
렉스란 자가 우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브라운 크로라는 마을의 주민들일세.”
“브라운 크로……?”
그 이름은 우진도 잘 알고 있었다.
[백색 주점]이 있는 미궁탑의 19번째 마을이었다.“……중앙 대륙에 아직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하군요.”
“그럼, 우리도 사람인데. 세상이 망했다 해도 은근 여기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산다네.”
“이게 사는 거라 할 수 있습니까. 인간답게 살아야 사는 거지…….”
마셸이란 자는 어느새 마차 한 대의 시체를 모두 구덩이 안에 넣고는 흙을 덮기 시작했다.
“이놈아. 저항군에 있다고 해서 뭐 사람답게 사는 거냐? 악마들에게 잡아먹히긴 매한가진데. 사자왕인가 뭔가 하는 작자도 패전에 패전을 거듭해서 결국 저 멀리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지 않았느냐.”
렉스는 퉷―! 하고 침을 뱉으며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그래도 악마 놈들 밑에서 굽실거리는 것보단 낫겠죠. 니미럴…….”
“쯧쯧, 기껏 풀칠하며 살게 해줬더니……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북벽의 섬이 진짜 있습니까?”
우진은 조용히 물었다.
“우리야 모르지. 한때 사자왕이 악마와 싸우기 위한 보루를 만든다는 얘기로 난리가 났었긴 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신세니.”
“……나가지 못한다고요?”
“아, 자네 혹시 ‘버려진 날’ 이후에 태어났는가? 차원문이 부서지고 난 뒤에 태어난 애들은 바깥을 모를 만하지.”
버려진 날.
그건 바로 중앙 대륙과 어둠숲을 잇는 차원문이 부서진 날을 뜻한다고 마셸이 덧붙였다.
그로 인해 두 대륙은 서로 단절되었다.
‘어둠숲으로 가려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인가…….’
카밀라를 찾으러 갔다면 괜한 시간 낭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진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문이 부서진 게 벌써 30년이나 지났으니 말이야.”
‘……30년?’
한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라울이 말하기론 20년 전 마지막 결사대가 99층을 공략했다고 했었다.
미궁탑은 오로지 중앙 대륙에서만 오를 수 있었고.
그 말은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공격대가 남아 있었다는 말인데…….
‘공격대는 어떻게 중앙 대륙으로 간 거지? 설마 몇십 년을 단절된 채 중앙 대륙에서 살고 있었다는 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진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물었다.
“탑이 무너진 건 20년 전이 아닙니까? 그때 분명 결사대가 99층을 공략하면서 마지막 층이 부유성으로 남았다고 들었습니다.”
“음? 무슨 소릴 하는 겐가. 탑이 무너진 건 50년 전이잖아. 마지막 결사대가 99층을 공략하는 순간 펑! 하고 탑이 무너진 걸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걸.”
“에이. 그때 7살이셨는데 무슨…… ,”
“어허? 짜식아. 7살이면 다 기억하거든?”
타룬의 핀잔에 렉스는 콧구멍을 벌렁이며 씩씩거렸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지만 우진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탑이 무너진 게 50년 전이라니…….’
자신이 왔었던 이세계보다 무려 30년이나 더 지났다는 말이잖은가.
쿵― 쿵―.
진정하려 했지만 충격적인 상황에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럼…… 어둠숲과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습니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직은 불가능에 가까운 방법이 있긴 하지.”
말장난인가 싶어 우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과거 차원문이 있었던 곳에 엘프군이 마법진을 새로 구축하고 있다더군. 그게 완성되면 중앙 대륙하고 어둠숲이 다시 이어진다는데…….”
렉스는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악마 놈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겠는가? 지금 그래서 그곳은 난리도 아닌 모양이더군.”
“……엘프군이요?”
“그렇다네. 엘프의 여왕이 이끈 군세가 지금 대륙에서 유일하게 악마들과 싸우고 있지.”
그 순간, 우진은 루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으음…… 글쎄. 좀 더 성숙한 모습? 게다가 처음 보는 마물들과 전투를 하고 있었어. 그리고 뒤로는 엘프군들이 있었고…….”
그녀가 봤다는 처음 보는 마물.
어쩌면 지금 대륙을 장악하고 있는 악마들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악마들과 싸우는 엘프군까지.
‘설마…… 정말 루엔이 이세계의 모습을 본 걸까?’
아직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렉스의 말을 들을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두 번째로 이세계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흩어진 엘프들을 수습하느라 급급했는데…….’
군을 일으켜 악마와 싸우고 있다니.
30년이란 세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해냈구나.’
우진은 괜히 뿌듯한 기분이었다.
“사자왕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차라리 섬에서 나와 그들을 도와주면 될 것을…… 쯧쯧, 인간과 엘프의 골이 아직도 깊으니 뭘 하겠어.”
“다 제 무덤을 판 거지. 뭐. 그만 떠들고 빨리 나머지 시체들도 어서 묻으라구!!”
이곳은 여전히 금정전쟁의 여파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엘프와 인간이 힘을 합쳤더라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사실 게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플레이어가 용병을 고기 방패 용도로 쓰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NPC들끼리도 이종족을 차별하는 경향이 심했으니까.
‘페어리 퀸이 이종족과 인간의 화합을 바란다는 말을 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세상이 멸망해 가는 시점까지 서로 협력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에이, 꼭 그렇지도 않잖습니까. 엘프군에 어마어마한 마법사가 하나 있다던데요. 어후, 힘들어. 형님, 좀 제대로 하십쇼.”
“상단주한테 시키기는…… 몹쓸 놈.”
시체를 묻은 옆에 구덩이 하나를 더 파던 도중 마셸의 핀잔에, 렉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타룬, 네놈이 좀 와서 파라!”
“……전 경계 중인데요.”
“경계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죽겠다. 녀석아. 저 친구가 우릴 죽일랬음 진작에 죽였을 거다.”
“…….”
타룬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렉스에게 들고 있던 검을 건네고는 삽을 들었다.
“후아―. 그러고 보니 마법사가 한 명 있다고 했었지. 그 뭐랬더라…….”
렉스는 냉큼 잔해에 걸터앉고서 땀을 훑어냈다.
“이루린이라는 대마법사요!”
마셸의 외침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살아 있었구나…….’
설령 30년이 훌쩍 지났다 하더라도.
그걸로 충분했다.
게다가 대마법사라니.
마치 딸아이의 성장을 들은 것처럼 우진은 묘한 기분이었다.
“대충 이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순식간에 구덩이를 완성했다.
타룬은 덤덤한 얼굴로 구덩이에서 나와 마차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 검을 든 자세는 엉성했지만 힘은 좋은 듯, 늘어진 시체들을 아무렇지 않게 짊어졌다.
“그래, 어서 마무리하고 뜨자고. 이런 곳에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렉스는 옆에 세워둔 짐가방에서 낡고 찌그러진 그릇과 커다란 병을 꺼냈다.
“크흐―.”
병에 들어 있는 물을 그릇에 따라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끝나면 와서 너희도 마셔라!”
그러고는 한 컵을 따라 우진에게 건넸다.
“그쪽도 마시겠소? 이래 봬도 꽤 발품을 팔아서 얻은 물이라오. 이 근방 호숫가가 지독하게 오염돼서 물을 구하는 게 어렵거든.”
찌그러지고 낡은 그릇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물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자,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말이야.”
렉스가 우진의 손에 그릇을 쥐여주었다.
“…….”
콕―.
그때였다.
가슴을 찌르는 느낌에 우진이 고개를 내렸다.
주머니 안에 있던 세츠나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자 우진은 슬쩍 렉스의 눈치를 보며 몸을 돌렸다.
‘……왜?’
우진이 눈짓으로 물었다.
‘차원문이 망가져서 단절되었다면서요!’
세츠나는 들리지 않게 우진을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밖의 일을 잘 알아요?’
그 순간,
우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 어서 마시게나.”
렉스가 재촉하듯 다시 한번 그에게 말했다.
안에 들어 있는 투명한 물.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졌다.
“후―.”
타룬이 마차에서 마지막 시체를 구덩이 안에 밀어 넣었다.
“뭐 해? 빨리 마시고 잔을 줘야 우리도 마시지.”
일이 끝나자 세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모두 우진에게 쏠렸다.
“별로 목이 안 말라서.”
주르르륵―――.
우진이 물잔을 기울였다.
“이, 이봐!!”
“아까운 물을……! 무슨 짓이야!!!”
그녀의 말대로 어둠숲과 중앙 대륙이 단절된 지 무려 30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저들은 어디서 소문을 듣고 이런 소식을 알고 있는 걸까.
저 멀리 있는 엘프군의 마법사 이름까지 알 정도로 세세하게 말이다.
누구에게 들은 걸까.
이곳에서 바깥을 왕래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하나 뿐이었다.
악마(惡魔).
치이이이익……!!
놀랍게도 마냥 평범해 보이기만 했던 물이 바닥에 닿자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푸욱―――!!!!
그 순간, 우진은 망설임 없이 옆에 앉아 있던 렉스의 목에 정확히 검을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