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27)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27화(127/150)
솨아아악……!!
새하얀 빛이 사라지고 요정의 숲에 도착한 우진의 얼굴엔 당혹감이 가득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
“칸.”
욱신―.
그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습니까.”
혼란스러웠다.
게임에서는 편하게 말을 했었던 우진이었지만, 지금은 그에게 쉽게 말이 놓아지지 않았다.
두근…… 두근…….
“그곳에도 제가 있습니까?”
초조한 우진의 모습을 이해한다는 듯 니센은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아…….”
그의 대답에 우진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다만 말씀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는 샘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을 모아 그곳에서 한 모금의 물을 떴다.
“이곳을 찾아올 이방인이 있다는 것을.”
쪼르르륵…….
포갠 손을 가르자 그 아래로 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앞에 세워진 거대한 나무의 뿌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자, 마치 대답하듯 화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우진은 그 순간, 그의 옆에 있던 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요정의 샘이었다.
요정수를 마시고 마력 혼돈을 치유했던 그는 분명 페어리 퀸에게 요정의 샘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았었다.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니센이 아니더라도…….
‘니센이 살아온 시기는 지금 내가 있는 게임 속의 시간대와 동일하다.’
즉, 80년의 시간 동안.
그는 계속해서 샘을 지켜온 것일 테다.
“이방인이라…… 페어리 퀸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맞습니다.”
“그럼…… 지금 페어리 퀸은 어디에……?”
그 순간, 세츠나가 저지하듯 우진의 팔에 손을 얹었다.
“과연 영적인 힘을 가진 환요의 아이는 이미 알아 본 모양이군요.”
니센이 그녀의 행동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세츠나와 같은 능력은 없어도 눈치 빠른 우진은 지금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앞의 거대한 나무.
빼곡한 나무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은 한 그루의 나무는 분명 특별했다.
“50년 전, 반다리우스의 탑이 무너지면서 쏟아져 나온 악마들을 맞아 페어리 퀸께서는 요정군을 이끌고 싸우셨습니다.”
솨아아아악――――!!!
“……!!!”
니센의 말이 끝나자 풍경이 변했다.
울창했던 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황망한 모래사막 가운데 우진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이라곤 조금 전 니센이 물을 주었던 나무 한 그루뿐이었다.
‘요정의 샘이…….’
우진은 그의 옆에 있던 샘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맑은 물이 담겨 있던 그곳은 옅은 붉은색 물로 가득했다.
그리고 로브의 소매 뒤로 보이는 상처 자국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채 아물기도 전에 칼로 베고 또 벤 듯 짓무른 상처들은 끔찍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들에겐 좋은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은데…… 미천한 마력이라 계속 유지하기가 힘드네요.”
그는 손으로 다시 샘물의 물을 떴다.
손목에 그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샘을 적셨다.
샘이 조금 더 붉어졌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마르지 않게 요정의 샘을 유지해왔는지 말이다.
“너무 서글픈 눈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무엇이든 구심점을 잃으면 소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저 순리를 역행하고 있는 대가지요.”
80년.
그는 자신의 피를 쥐어짜 이곳을 간신히 지키고 있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정도군요. 먼 길을 가야 할 겁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나무의 잎사귀를 따서는 모래로 만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낡은 찻잔이 나타났고, 그 안엔 따뜻한 물이 담겨 있었다.
“잠시 목을 축이시죠.”
한 잔의 차를 내기 위해 마력을 쥐어짜낸 걸까.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니센은 방금 딴 나뭇잎을 찻잔에 넣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당신이 요정의 옷을 입고 있었던 터라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세츠나는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입고 있던 드레스를 움켜잡았다.
마을에 한해서 요정의 숲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는 [페어리 드레스]의 효과.
니센은 그녀의 드레스를 통해 자신이 있는 요정의 숲의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한 것이다.
‘……발도아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군.’
“이 세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우진은 그가 건넨 찻잔을 받고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3번째 이세계행이지만 생각보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 적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이 왔었던 시간대보다 무려 30년이나 더 지났으니, 또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지만 그리 말씀드릴 게 없을 것 같군요. 저는 제 생애 대부분을 요정의 숲에 있었으니까요.”
니센은 찻잔에서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 공중에 띄웠다. 마치 무중력 속에 있는 것처럼 떠오른 물방울을 세츠나가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현재의 이 세계가 어찌 흘러가는지…… 사실 저도 그리 많은 것을 알진 못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궁금한 건 과거니까요. 가능하면…… 80년 전의 일들 말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게임 속 시점.
그 시기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알아내는 것이 그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80년 전이라…… 그곳이 당신의 시간대로군요. 제가 어리숙하고 미숙했던 시절 말입니다.”
니센은 추억을 떠올리듯 옅게 웃었다.
“궁금한 것이 많을 테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아가려 하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모든 존재엔 등가교환이 따르고, 모든 일은 인과율 속에 있는 법이니까요. 당신이 이곳에서 얻는 것만큼 당신의 세계에서 잃게 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존재는 하나뿐이니까요.”
그 순간 불현듯 우진은 이루린에게서 받은 [늑대 반지]가 떠올랐다.
‘이세계의 역사대로라면 펜릴을 사냥하고 아스웰이 이 반지를 얻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늑대 반지를 스스로 부수었다.
그 결과 펜릴과 계약을 맺긴 했지만, 득과 실을 떠나 게임 속에서 중복이 될 뻔한 [늑대 반지]는 다시 원래 게임의 설정대로 한 개가 되었다.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라 당신이 이곳에서 가져가는 모든 것들이 당신의 세계를 크게 흔들 겁니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니센은 경고했지만 우진의 마음은 확고했다.
“한 가지.”
그는 손가락을 펼치며 대답했다.
“당신에겐 미래이자 이곳에서 일어난 과거에 대해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입니다.”
단 한 번의 문답.
우진은 신중하게 지금까지 계속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털어놓았다.
“인류가 멸망한 이유가 뭡니까? 미궁탑에서 쏟아져 나온 마물 때문입니까?”
탑을 공략하는 방법이 아닌 실패의 원인.
그것을 알아야 했다.
“60층의 날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탑을 공략하면서 일어나는 몬스터 웨이브와 달리, 60층을 공략한 날부터는 탑 안에서 직접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라울은 그때부터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확실히…… 탑에서 쏟아진 마물은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5대 왕국이 멸망한 이유는 마물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인간들 때문입니다.”
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뜻일까.
최악의 의미가 아니길 빌며 그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자멸했다는 말입니까?”
“60층의 비석에 적혀 있었던 말.”
“……탑의 100층을 공략하면 어떤 소원이든, 어떤 기적이든 이룰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우진은 그 말을 내뱉었다.
“비석의 적힌 글을 보고 인류는 필사적으로 탑을 공략했습니다. 허나 우습게도 또 다른 비석의 글이 그들을 자멸하게 만들었죠.”
“또 다른 비석이요……?”
니센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98층을 공략했을 때 사람들은 두 번째 비석을 보았습니다.”
이룰 수 있는 소원은 오직 하나뿐.
탑을 공략하겠다는 대의로 뭉친 그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같은 소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부를 원하는 자.
평화를 원하는 자.
영생을 원하는 자.
“99층의 문을 열기 전, 이제 곧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안일한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습니다.”
꽈악―.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공격대에 참가했던 자들은 편을 가르고 자신과 뜻이 다른 자들을 살해했다.
“그렇게 98층에서 정체된 10년 동안 인류의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마지막 결사대가 99층을 공략했지만…….”
니센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지막 층은 하늘에 떠 있고, 우리는 그곳에 오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조금씩 멸망해 가고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용이 사라졌다 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은 많잖습니까. 마법이라든지 정령이라든지…… 하다못해 마도공학으로 비공정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우진이 다급히 물었지만 니센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과거는 하나뿐.”
파스스스…….
“……·!!”
그때였다.
니센의 육신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세계를 구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던 니센은 우진을 향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당신은…… 그저 이 세계를 이용하면 됩니다.”
“니, 니센……!!”
“그리하여 당신을 구하소서.”
사라져 가는 니센은 천천히 그에게 허리를 숙이며 작별을 고했다.
“페어리 퀸의 유언입니다.”
“아, 안 돼……!! 멈춰!!!!”
우진은 황급히 니센을 붙잡았지만 그의 손은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니센……!!!!!!”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거대한 나무는 순식간에 누렇게 말라 버렸다.
마치 간신히 막고 있던 세월의 둑이 터져 버린 것처럼 엘프의 숲은 죽음을 맞이했다.
-마스터…… 떠나야 해요. 이러다가 저희도 붕괴에 휩쓸릴지 몰라요.
콰앙―!!!
우진은 바닥을 내리쳤다.
수없이 긋고 그었던 손목의 상처에…….
하다못해 남은 포션이라도 그에게 주었다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진은 니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감에 가슴이 아팠다.
쩌적……! 쩌저적……!!
마치 화면이 깨지듯 메마른 풍경에 하나둘 금이 가기 시작했다.
떨어져 나간 조각 뒤엔 시커먼 공허만이 보였다.
-마스터!!!
우진을 붙잡은 세츠나의 손에서 흘러나온 빛이 그의 머리부터 전신에 빛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구요!!
[영혼 수호]의 덕분일까.우진은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그녀를 바라봤다.
“……미안하다.”
-이럴 땐 고맙다고 해야죠.
단단하려 노력해도 결국 그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고맙다.”
우진은 세츠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옆에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쿠그그그그그……!!
여왕의 마지막 배려일까.
메말라 버린 나무가 서서히 무너지며 그들을 덮치는 순간, 그 안의 균열이 그들을 덮쳤다.
우진은 니센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다.
솨아아아악――!!!
새하얀 빛이 가득 채울 때까지 우진은 그 풍경을 잊지 않으려 눈을 감지 않았다.
***
-……그 괴물은 사라졌나 봐요.
세츠나의 말에 우진은 주위를 훑었다.
균열에서 벗어나자 우진은 원래 있었던 발도아로 돌아왔다.
다만 시간이 제법 흐른 것인지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었고, 시체가 들어 있던 구덩이는 괴물이 헤집어놓아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예정대로. 펜릴의 둥지로 가야지.”
니센의 소멸이 그를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우진은 페어리 퀸의 유언을 철저하게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이 세계를 이용하라는 말.
‘등가교환? 인과율?’
우진은 이를 악물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X 까라 그래.”
무엇을 빼앗아 가든…….
그 이상을 이곳에서 가지고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