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28)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28화(128/150)
제목 : 특별 권한 요청이 수락되었습니다.
보낸 이 : 시스템 최고 관리자
내용 : 귀하의 특별 권한 요청이 수락되었습니다. 새로이 부여된 ID: A9781-DV90771-M0NJ로 최초 로그인하는 코드에 한해 [에단]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저를 만나러 오시겠습니까?
메일의 마지막 문장은 나름의 장난인 걸까.
그다지 우습지도, 설레지도 않는 글귀를 보며 하준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치이익―――.
캡슐의 뚜껑을 열었다.
지금까지 모니터로 게임을 보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보안 유지를 위해 직접 접속해야 했다.
“뭐, 사실 대단한 것도 아냐. 에단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이지. 최초로 에단을 개발했을 당시 그가 외로울까 봐 심어놓은 관리 코드거든.”
하준은 캡슐 안에 몸을 밀어 넣으며 한미연 이사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좀 우습지? A. I가 외로울까 봐 말동무를 해주려는 생각 말이야. 정말 사람 대하듯이 했다니까. 뭐…… 그런 개발자의 태도 덕분에 에단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겠지만.”
“에단을 만든 사람이 팀장님의 아내였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치이이익――.
증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뚜껑이 닫혔다
[ID: A9781-DV90771-M0NJ] [접속 중…….]검은 시야에 나타난 글자.
꿀꺽―.
하준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표정으로 글자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반갑습니다. 에단입니다.]“……·어?”
그때였다.
[접속 중]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자 마치 채팅을 하듯 깜빡이는 커서 위로 글자가 나타났다.하준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을 말씀해 주시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왜 그러시죠?]“아, 미안. 뭔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들었거든.”
[죄송합니다.] [초면에 얼굴을 보여 드리는 건 부끄러워서요.] [좀 더 우리가 친해지면 가능할까요?]‘까다롭네…….’
[제게 궁금하신 것이 있으실까요? 죄송하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리 오래 대화를 나누진 못하겠네요.]“칸이란 플레이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무엇을요?]“현재 저희에겐 그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블랙아웃으로 인해 그의 개인정보가 유실되었습니다. 현재 복구 중이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그렇다면 접속 IP라든지 다른 정보는 어떻습니까? 그는 지금 한 달이 넘도록 접속을 유지 중입니다. 플레이어의 상태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로그아웃 했던데요?]“……네?”
[오늘 새벽에 로그아웃 기록이 있습니다.]“그, 그게 무슨…….”
[그리고 플레이 타임으로는 정확히 29일입니다.] [물론 권장하는 사항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본사에서 이미 캡슐 내에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키트를 판매하고 있으니까요.] [로그아웃 로그를 살펴본 결과.]하준의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현재 칸이란 플레이어가 사용한 캡슐은 No.A-99710로, 가장 상위 모델로 판명됩니다.] [영양 키트뿐만 아니라 대소변 장치까지 달려 있는 제품이죠.]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여러분들이 판매 중인 제품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말로 들립니다만…….]하준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판매 중지 요청을 먼저 진행할까요?]기분 탓일까.
마치 놀리는 것처럼, 커서의 깜빡거리는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았다.
“……아닙니다.”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으시다면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거든요.] [연구팀께 제 복사판이라도 여러 개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려 주세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질감만 더 느껴질 뿐이었다.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
하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에단]은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냈다.
“뭐, 뭐야.”
캡슐에서 나온 하준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와의 대화에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땠어?”
접속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준철이 하준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준은 멋쩍은 듯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대로 1패네요.”
“……그래?”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걸까.
하준의 대답에 고준철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참 타이밍도 얄궂네요.”
“무슨 말이야?”
“칸 말이에요. 지금까지 계속 로그인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로그아웃 기록이 있답니다.”
“……뭐? 오늘 새벽?”
고준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에단]이 특별 권한 요청을 허가한 시간이었다.***
-휴, 운이 좋았네요.
잔뜩 긴장한 세츠나의 말처럼 펜릴의 둥지까지 올라오는 길에 특별히 몬스터를 만나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할 정도.
“운이 좋은 건지 애초에 마물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쭉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발도아에서 만난 실패작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도 같은 그녀의 말을 누군가 들어준 걸까.
둥지 안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츠나.”
우진이 그녀를 부르자 눈치 빠른 그녀가 [은빛 불꽃]을 시전했다.
살아 있는 횃불이 되어준 그녀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둥지의 내부를 밝혔다.
다행히 길은 우진의 기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손쉽게 펜릴이 머물던 안쪽 공간에 갈 수 있었다.
-윽.
둥지가 있던 자리엔 악취만이 남았다.
사용한 지 오래인 듯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들은 이미 축축하게 썩은 지 오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세계의 펜릴은 죽었으니까.
주인이 없는 공간은 사라져 갈 뿐이었다.
엘프의 숲처럼 말이다.
“…….”
우진은 애써 망가진 둥지를 외면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마스터!!
그 순간, 세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보세요!!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세츠나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가리키는 바닥에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욱신―.
이미 썩을 대로 썩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시체였지만, 우진은 그것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부패한 시체의 손에 들려진 검 한 자루.
낯이 익은 물건이었다.
-설마…… 아니죠?
그리고 세츠나 역시 그 검을 알아본 듯했다.
“아니. 맞아.”
울상을 짓는 세츠나를 뒤로한 채 우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은색의 오묘한 검날과 낡았지만 화려하게 세공된 손잡이.
카르란이 쓰던 마검(魔劍)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토른 바흐에서 버려진 저주받은 검이, 안타깝게도 이 세계에는 끝까지 주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우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며 저며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었다.
석벽에는 검을 그은 듯한 투박한 상처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는 반지도 없이 석벽의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검술도 마법도 모두 잘하지 못하셨는걸요.”
이루린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께서 펜릴을 사냥하시면서 깨우친 비기가 남아 있다고 했어요.”
어째서……?
뒤늦게라도 강해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걸까.
-적탑 아래에서 애원하는 카르란 님의 모습이 보여요.
“……뭐?”
-딸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어요. 빼앗긴 걸까요……? 늙은 마법사가 카르란 님께 소리치고 있어요!
주르륵―.
세츠나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적탑에서 쫓겨나 수년을 헤매다…… 여길 발견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만.”
우진은 세츠나의 손을 검날에서 떼어냈다.
“이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겠어.”
기껏 찾아낸 둥지.
하지만 이미 딸에게 반지를 내어준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문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마스터…….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
-기억을 읽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어요.
[세츠나가 고대의 지혜를 사용합니다.]현실은 게임처럼 한 줄의 안내 멘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흐아아아앙……!!!
물건에 남아 있는 기억은 절절하게 세츠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를 묻어줄 수 있겠어?”
우진은 세츠나를 다독여 주었다.
눈물을 훔치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그그그…….
카르란의 시체 옆으로 두 개의 손아귀가 솟아올라 그를 감쌌다.
“카르란.”
뒤덮인 흙더미를 바라보며 우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딸이 보고 싶어도 조금만…… 아니, 아주 많이 더 참도록 해.”
그녀는 살아 있으니까.
끼릭―.
우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상처투성이인 석벽에 보이는 작은 구멍에 반지를 밀어 넣었다.
쿠그그그그…….
카르란이 죽을 때까지 열지 못했던 석벽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열렸다.
퉁― 퉁―.
치직…… 치지지직…….
석벽 안에 발을 들여놓자 양쪽 벽에 불빛이 일었다.
하지만 몇 개의 횃불들은 작동이 되지 않는 듯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깜빡였다.
게임과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풍경.
세월이 흐른 흔적이었다.
‘이세계로 가는 건 그저 룬이나 얻고 미래의 정보를 알아내는 치트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인연이 생겨날수록 이세계에 오는 것은 잔혹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이 세계에서는 그들이 NPC가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마치 그를 시험하듯 니센의 죽음과 카르란의 시체는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짝―!!!
우진은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정신 차리자.’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보다 지금 중요한 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까.
“펜시르는…… 없는 건가.”
일말의 기대를 안고 들어왔지만 아쉽게도 석벽 안에서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스웰이 펜릴을 사냥하고 반지를 얻은 거라면…… 석벽 아래까지 확인을 했다는 뜻일 테니까.’
어쩌면 펜시르까지 그에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진은 착잡한 마음으로 석벽 안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바라봤다.
“이건가?”
철컥―.
상자를 열자 그곳엔 낡은 두루마리 하나가 있었다.
“검제의 비기…….”
게임 속 아스웰은 펜릴의 공격을 본떠 탐랑(貪狼)이라는 검술을 창안했다.
하지만 이곳에 남긴 그의 비기는 펜릴을 죽이면서 깨달은 검술이었다.
탐랑과는 전혀 반대의 검술.
‘익힐 수 있을까.’
우진은 상자 안에 담겨져 있는 낡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
그 순간, 놀랍게도 그의 머릿속에 빼곡하게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었다.
검을 쥐는 방법, 검을 드는 자세, 심지어 검의 궤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하게 두루마리 속 검술의 모든 것이 차곡차곡 그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용을 사냥한 라울의 검술이 직선적이고 패도적이라면, 볼튼 가문의 검술은 반대로 기교가 중점이 되는 검술이다.
하지만 검제의 검술은 결이 달랐다.
“이거…….”
그러나 우진이 놀란 건 비기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 전 일어났던 현상.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 검술이 그려지던 그 감각 때문이었다.
바로,
고대 지식.
펜시르와 계약을 맺었을 때 얻었던 특성이었다.
“……살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