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3)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3화(13/150)
“후우…….”
성곽 위로 올라온 우진은 낮게 숨을 토해냈다.
성채의 성곽은 제법 높았다.
카앙―!! 카가가강――!!!
성곽 위에는 주로 오크 궁수들이 리스폰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녀석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확실히 1층보다는 적네.’
5마리씩 오크 무리가 소환되는 메인광장과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엔 1마리씩 궁수들이 소환되고 있었다.
리스폰되는 시간도 길고 소환되는 마물의 수도 적으니 좋은 사냥터는 아니었다.
안전하다며 안전하다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여기서 사냥할 바에는 차라리 한 단계 아래의 마물을 많이 잡는 게 나아 보였다.
‘자리 찾으려고 눈치 보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에 가깝겠어.’
말마따나 우진이 성곽 위로 올라오자, 관심 없던 1층과 달리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경계 하듯 바라봤다.
“흠.”
그들의 눈치를 무시하며 우진은 성곽 끝에 있는 부서진 누각을 살폈다.
‘딱히 특별해 보이는 건 없는데…… 아직 새벽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모르는 일이지.’
단순히 시간과 장소만이 붉은 눈의 오크를 출몰시키는 조건이 아닐 것이다.
우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나머지 조건을 이곳에서 찾아야 한다 생각했다.
뭘까?
사람들이 놓친 마지막 조각.
원형으로 되어 있는 성채의 성곽에 세워진 누각은 모두 4개였다.
그중에서 부서져 뼈대만 남은 것은 하나뿐.
‘어째서 여기만 부서졌을까.’
나머지 누각들을 살핀 우진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멀쩡한 누각엔 없지만, 여기만 가운데 나무 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다.’
붉은색의 기둥.
무엇에 사용된 것일까.
우진은 기둥을 천천히 살폈다.
“색을 칠한 건가?”
성채만 보더라도 그냥 통나무를 깎아 세운 것뿐이었다. 심지어 미학(美學)이라곤 없는 오크들이 색을 칠했다?
이상했다.
“일부러 색을 칠한 게 아니라면…….”
얼룩덜룩한 검붉은색.
‘저절로 색이 입혀진 것이겠지.’
우진은 눈을 흘겼다.
기둥에 묻은 붉은색은 다름 아닌,
“혈흔.”
그때였다.
우진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그는 주위를 살폈지만 여전히 보이는 건 오크 궁수를 사냥하는 사람들뿐.
“오크들이 제물의 피를 빼기 위해 메달아 두었던 흔적이지.”
목소리는 가까웠다. 우진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부서진 누각 한편이 일렁거렸다.
“자네 같은 인간들 말이야.”
“……!!!”
마치 공간이 잘리듯 벌어진 틈 속으로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있었다.
“신기한 일이군. 며칠째 성채에 머물렀지만 누구도 누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는데 말야.”
붉은 로브.
짧은 다리와 두툼한 팔뚝.
허스키한 목소리에 우진은 단박에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카히라군요.”
“……나를 아나?”
“모레티 마을의 잡화점 주인에게 들었습니다. 특이한 재료를 찾는다 해서 말이죠.”
“고블린 가죽에 마력이……? 도대체 이걸 어디서 얻은 거지?”
우진이 [마력을 머금은 고블린 가죽]을 꺼내자 카히라는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드워프는 드워프로군.’
조금 전 경계하던 것과 달리 가죽을 본 순간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에 우진은 생각했다.
“고블린 로드를 잡았습니다.”
“신기한 일이군…… 나도 고블린 로드를 잡아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던데. 인간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그냥 당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겠죠.”
저레벨 던전에서 고레벨이 사냥 시 전리품이 드랍되지 않는다는 건 플레이어들이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NPC들이 그런 설정을 알 리 없었다.
“하하! 그렇지. 약자의 영역을 강자가 물 흐리는 건 므하의 규율에 어긋나는 법이니까.”
카히라는 우진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이 재료로 갑옷을 만들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흐음. 특이한 재료지만 재료 자체의 등급은 높지 않아. 결국은 고블린의 가죽인 거니까.”
그녀는 가죽을 살폈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내게 의뢰를 하고 싶은건가?”
“네.”
“확실히 재밌는 재료이긴 한데…… 주인에게 들었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겠지?”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있는 장소를 찾을 정도라면 눈썰미가 제법인 것 같은데. 어때, 나를 도와주겠나? 그렇다면 제작비는 받지 않겠네만.”
자신을 향해 내민 손.
띠링―.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연계 퀘스트를 발견하였습니다.] [므하의 순례자 카히라 → 붉은 눈 사냥] [퀘스트를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퀘스트의 이름을 보며 오히려 우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누구도 사냥하지 못한 히든 몬스터.’
그걸 잡게 되었으니까.
[카히라(Lv.65)가 합류하였습니다.]그것도 최고의 파티원과 함께 말이다.
* * *
“균열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틈. 그곳에서 마물이 태어나고 혹은 새로운 종족이 태어나기도 하지.”
성채의 누각 위로 서서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밤을 새며 누각을 조사했지만 아쉽게도 피로 적셔진 기둥 이외에 특별한 것을 찾진 못했다.
“우리는 그걸 공허라 부르고. 므하의 순례자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공허를 찾는 일을 하지.”
세계와 세계가 연결된다…….
NPC인 그녀가 하는 대사는 게임 설정에 불과한 것임을 알면서도 우진은 묘하게 그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 자신이 겪었던 이세계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도 허탕인 모양이야. 일주일이나 이곳에 머물렀는데…… 오늘 하루는 도시로 가서 쉬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듣자 하니 자네도 도착하자마자 성채로 왔다면서?”
“그렇긴 한데…… 사실 이 시간이 지나면 성채를 조사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이지?”
우진은 도시에서 들었던 [창세단]의 이야기를 카히라에게 전했다.
“……사냥터를 점유한다고?”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그런 개소리가 다 있어?”
그리고 자신이 했던 생각을 시원하게 육성으로 내뱉었다.
“므하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냥이다.”
그녀는 두툼한 팔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상대와 나 모두 목숨을 걸고 행하는 일이니까! 죽음 앞에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신성한 행위인 것을…… 그걸 자신들 멋대로 하겠다고?”
“모든 인간이 당신 같은 순례자라면 모르겠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요.”
“흥, 순례자가 뭐 대수라고 치켜세우긴.”
그렇게 말하지만 카히라는 우진의 말에 꽤 기분 좋은 듯 보였다.
“걱정 말게. 누가 되었든 간에 성채를 조사하는 것을 방해할 순 없을 테니까.”
“해결책이 있습니까?”
“그럼. 순례자는 순례자의 방식이 있는 법이지.”
“…….”
그녀의 말은 다부졌지만 어쩐지 우진은 석연치 않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돌아가지. 정비를 하고 오늘 밤에 다시 성채로 오자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성곽에서 내려와 성채의 입구를 향했다.
* * *
“그럼, 저녁에 만나지.”
파르타의 아침은 우진이 도착했던 저녁과는 달리 조용했다.
며칠때 성채에서 노숙했던 카히라는 당장에라도 씻고 싶은 듯 인사를 마치고 여관으로 달려갔다.
“그럼 가볼까.”
밤을 샌 까닭에 우진도 피곤했지만 그는 파르타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성채로 가기까지 남은 귀중한 시간을 잠을 자는 데 쓸 수는 없었다.
똑똑―.
우진은 나무로 된 데스크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졸고 있던 사서가 그의 인기척에 황급히 입술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드물어서…….”
우진이 향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어둠숲의 유일한 도시답게 무려 7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엔 빼곡하게 책들이 꽂혀 있었다.
“책을 찾으려고 하는데…… 혹시 관련된 내용을 검색할 수도 있습니까?”
“네. 이곳에 찾고자 하는 내용을 적어주시면 가능합니다.”
사서는 낡은 마법책 한 권을 펼쳐 그에게 보였다.
[ _]책 안쪽 페이지엔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드르륵―.
그리고 책이 놓인 아래 서랍을 꺼내자 낡은 타자기 한 대가 나타났다.
마법책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사실상 검색어를 입력하는 칸이었다.
탁― 탁탁―.
타자기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깜빡이는 커서에 글씨가 채워졌다.
[사르반딘]탁―.
앤터를 누르자 마법책이 저절로 덮혔다.
[일치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근접한 단어들을 포함한 책을 찾습니다.]우우우우웅…….
가볍게 책이 떨렸고, 다시 펼쳐졌을 땐 책의 안쪽에서 새하얀 빛 가루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가루들이 위로 솟구치며 벽면에 채워진 책들에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루가 포개진 책이 책꽂이에서 튀어나와 우진의 앞에 놓였다.
‘편리하네.’
꽤나 신경 써서 만든 이팩트에 우진은 피식 웃으며 쌓여진 책들을 바라봤다.
모두 3권이었다.
‘이 정도면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혹시나 아무것도 없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툭―.
우진은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사서의 말처럼 도서관엔 그 혼자뿐이었다.
하긴 빨리 레벨을 올리는 데 급급한 초심자 지역에서 느긋하게 책이나 읽는 별종이 흔하진 않을 테니까.
사그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이블 테일]에서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의 빛』
『정수마법학(精髓魔法學)의 연구』
『이민족의 주술론(呪術論)』
우진은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갔다.
『세상의 빛』
세상을 창조한 3명의 신.
빛의 신 라신, 어둠의 신 하덴, 무(無)의 신 므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용은 그리 대단한 것은 없었다.
7일 동안 세상에 빛이 가득했고 7일 동안 어둠이 있었으며 그 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14일이 지난 뒤 이 세계, 아케도니아가 창조되었다는 이야기.
홈페이지에 있었던 게임 설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런 글귀를 찾았다.
[아케도니아는 세 명의 신과 최초의 인간, 사르반의 피로 이루어졌다.]‘비슷한 이름이지만 글쎄……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우진은 다음 책을 넘겼다.
『정수마법학(精髓魔法學)의 연구』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마법이 특별한 것이라 여기지만, 실상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신을 부리는 족속들이다. 우리는 남쪽 끝에서 그 힘을 가진 이민족들을 보았으며 그들은 자신을 최초의 후예 사르반트라고 칭했다.]두 번째 책을 읽었을 때 우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의 눈이 마지막 책의 제목을 향했다.
‘최초의 인간, 최초의 후예, 그리고 이민족…….’
서로 다른 내용이라 여겨졌던 처음과 달리 3권의 이야기는 신기하게 모두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민족의 주술론(呪術論)』
[사르반트는 고대부터 전해진 자신들의 술법으로 이름 없는 신을 만들었다.]“…….”
마지막 책의 내용까지 읽은 우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라…….”
그와 계약을 맺은 존재는 고대 신수였다.
‘이민족이 창조했다는 이름 없는 신과 관련된 것일까?’
아직은 모든 게 불투명했다.
‘대륙 북쪽은 어둠숲이 있는 초심자 지역, 그리고 그 다음이 미궁탑이 있는 중앙 대륙이다.’
이민족들이 발견된 곳은 남쪽.
아직 대륙의 남쪽은 탐사 자체도 이뤄지지 않아 월드맵에도 흑색의 구름으로 가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쪽에 있어야 할 고대 신수의 영혼이 어째서 북단에 있는 어둠숲에 숨겨져 있는 걸까.’
그건 누군가 인위적으로 옮겼다는 말일 것이다.
……도대체 누가?
“조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소문으로는 남쪽을 탐사하려면 최소 2차 전직은 해야 한다.
결국 답은 레벨을 올리는 것.
툭―.
그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나자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왔나?”
광장에 서 있던 카히라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몸을 움직일 때였다.
* * *
“거기 멈춰!”
“여기서 부터는 출입 불가다. 다른 곳으로 가서 사냥을 하도록 해.”
성채로 향하는 길목.
우려했던 일은 언제나 벌어지는 법이었다.
“저들인가? 밤에 얘기했던 성채를 점령하겠다는 정신 나간 녀석들 말이야.”
카히라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우진에게 물었다.
“그럴 겁니다. 그리고 저들이 다가 아닐 거고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째. 진실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야.”
그녀는 가로막은 두 사람의 앞에 다가갔다.
“나는 므하의 순례자, 카히라다.”
로브를 벗자 드러난 드워프의 모습에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성채에 볼일이 있는데 길을 터주지 않겠나?”
“분명 출입 금지라고 경고했을 텐데?”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카히라를 노려보며 되물었다.
“죽어도 안 되겠나?”
“당연하지!!”
“흠.”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퍼억―!!!!
“……!!!”
그 순간 그녀의 망치가 소리치던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순례자는 순례자의 방식이 있는 법이지.”
우진은 새벽녘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허의 순례자답게.
툴썩―.
남자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상대를 공허로 보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