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32)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32화(132/150)
“구해달라니…… 무슨 말이지?”
이루린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펼쳤다.
“칸 님 덕분에 열흘이 넘는 전투를 끝낼 수 있었어요. 겨우 악마종을 물리치고 중앙 대륙으로 잇는 마법진을 완성하긴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열악해요.”
탁―.
그녀는 지도 위에 가고일 모양의 말을 하나 놓았다.
“아직 악마들은 움직이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들이 상대한 건 악마들이 만든 변종 몬스터에 불과했다.
“이곳이 악마들의 거점이에요.”
“여긴…….”
우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말의 위치는 브리안 왕국의 수도가 있는 ‘로어헤븐’이었다.
5대 왕국 중 성국(聖國)이라 불리며 영광의 기사 샤를로가 있었던 왕국.
“보란 듯이 이곳에 터를 잡은 거군.”
악마들의 치졸한 수법에 우진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놈들은 저희를 그저 유희거리로 생각하고 있어요. 중앙 대륙을 잇는 마법진을 구축하는 동안 악마종만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에요.”
얼마 남지 않은 장난감을 쉽게 부수고 싶지 않은 마음.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루린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마도 우리가 중앙 대륙으로 넘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놈들이 우릴 얕잡아 보고 있다는 것이 반대로 우리에겐 무기가 될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가장 중요한 건 중앙 대륙에 새로운 거점을 구축하는 거예요.”
그녀는 엘프군의 깃발을 마법진이 있는 위치에서 중앙 대륙의 경계를 지나 대각선 위로 이동시켰다.
“악마들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미궁.”
말의 위치를 본 순간 우진이 눈을 살짝 흘겼다.
“……카이샤의 무덤?”
“맞아요. 이곳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 생각이에요.”
“이곳은 미궁이 공략된 건가?”
“아뇨. 용 사냥꾼에 의해서 용들이 죽었을 때, 용의 힘이 깃든 장소들은 모두 파괴되었어요.”
‘미궁 말고도 용과 관련된 장소들이 더 있는 건가.’
“혹시 그럼 그 안에 있던 묘실은?”
“묘실은 영원히 열 수 없어요. 그곳을 열기 위해서는 흑룡의 열쇠가 필요한데……. 그것 역시 용이 죽으면서 사라졌거든요.”
“……그래?”
우진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칸 님이 사라진 뒤에 저희는 라탄의 실험실에서 이걸 찾았어요.”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구슬을 꺼냈다.
“이게 뭐지?”
“반다리우스의 눈물이라고 해요.”
“반다리우스……?”
이세계에서 미궁탑을 반다리우스의 탑이라고 부르던 것을 우진은 기억했다.
“탑과 관련이 있는 건가?”
“비슷해요. 한때 탑을 연구한 연구가들이 말하길, 탑은 나무와 같다고 했죠. 씨앗이 뿌리를 내려 만들어진 거대한 던전이라고요.”
“나무라…….”
“그리고 탑이 나타난 뒤 세상 곳곳에 이러한 구슬들이 뿌려졌어요.”
우우우웅…….
구슬은 이루린의 마력에 반응하는 듯 옅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구슬은 씨앗처럼 땅에 흡수되면서 또 다른 던전을 만들어냈죠.”
“던전을 만들어냈다고……?”
“네. 던전이 만들어질 때 균열이 일어나며 공간 자체가 새롭게 창조되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걸 다른 말로 부르기도 해요.”
“……균열석.”
이루린은 우진의 말에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거기까지도 아세요?”
“뭐, 내가 있는 곳에도 균열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거든.”
“하긴…… 당신이 있는 곳이 우리 세계의 과거와 같다고 하셨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카이샤의 무덤에 균열석으로 새로운 던전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녀는 두 손가락을 펼쳤다.
“새롭게 던전이 생성되면 균열석은 그에 맞는 던전의 보스를 정하게 돼요.”
“설마…….”
“네. 그곳의 보스는 제가 될 거예요.”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인간이 던전의 보스가 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게 남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녀는 이미 각오를 다진 듯 보였다.
“저는 카이샤의 무덤을 더 깊은 미궁으로 만들 거예요. 그곳은 악마와 싸울 수 있는 땅이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거고요.”
“……북벽의 섬은? 사자왕이 만들고 있다던 마지막 보루 말이야.”
우진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찾지 못했어요.”
“30년이나 지나는 동안? 어째서? 듣자 하니 위치가 표시된 지도도 있다던데?”
“그랬죠. 하지만 모두 허탕이었어요.”
꿀꺽―.
우진은 그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신기루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좇고 있었던 걸까.
“균열석이 뿌리를 내리고 던전을 활성화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일. 그 시간 동안 악마들의 공습을 막아야 해요.”
“내 도움이 필요한 게 그것이었군.”
“네. 맞아요.”
“마법진을 지킬 수비병을 제외하고 나머지 병력은 후방에 있는 일족의 생존자들을 데리고 와야 해요.”
“악마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미궁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가고요.”
“누구누군데?”
루엔이 자신을 가리켰다.
“이루린과 저, 그리고 고운와 칸 님. 이렇게 넷입니다.”
“옛날 생각 나는군.”
다들 그의 말에 라탄의 실험실을 공략하던 때를 떠올렸다.
-저도 있어요!!
세츠나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하이톤의 목소리에 조금 무거웠던 분위기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여왕님. 호송 부대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허가를 내려주신다면 바로 출발한다 하십니다.”
“곧 가도록 하지.”
막사의 문이 열리고 엘프군 병사가 루엔에게 보고했다.
“잠시 대화들 나누고 계세요.”
루엔이 두 사람을 두고 막사를 빠져나가자,
“혹시 할아버지를 보신 적 있으세요?”
이루린이 지도를 정리하며 넌지시 물었다.
대수롭지 않은 척.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우진은 알 수 있었다.
“……아스웰 발란?”
“네. 그때 그러셨죠? 그때로부터 우리의 세계는 30년이나 지났지만…… 칸 님을 보니 그쪽 세계는 거의 시간이 멈춘 것 같으니까요.”
“맞아. 기껏해야 한 달 정도 흘렀을 뿐이니까.”
대답을 기다리는 이루린을 보며 우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알다마다요. 마스터는 검제께…… 웁, 우웁…….
“검제는 대륙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지. 나도 멀리서 본 적이 있어.”
“언제요?”
“안타리안 연방이 곧 전쟁을 시작할 것 같거든.”
“아아…… 그즈음인가요.”
이루린은 대충 우진이 있는 시간대를 가늠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다 고개를 젓고는 입을 다물었다.
‘왜요? 그냥 아는 게 아니잖아요. 마스터께서는 검제께 훈련도 받으셨는데.’
세츠나는 이루린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세계의 아스웰은 죽은 지 오래야. 굳이 그녀를 심란하게 하고 싶진 않아.’
우진이 그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녀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스웰의 미래를 바꾸려 할 것이다.
“당신이 이곳에서 얻는 것만큼 당신의 세계에서 잃게 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엘프의 숲에서 니센이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그의 마음에 걸렸다.
‘아스웰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그녀가 과거를 발설했을 때, 만에 하나 니센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니센은 과거를 그에게 얘기해 준 뒤 소멸했다.
마치 과거를 발설한 대가처럼.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
“이루린. 혹시 내게 이 반지를 주고 난 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하진 않았어?”
“어머, 그 반지를 아직 가지고 계셨어요?”
“물론이지.”
이루린은 추억을 되새기는 듯 우진이 건넨 [늑대 반지]를 어루만졌다.
“안 좋은 일이야 잔뜩 있었죠.”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떠나고 30년. 저희는 많은 곳을 돌아다녔어요. 악마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남은 엘프들을 찾기 위해, 그리고…… 싸우기 위한 무기를 얻기 위해.”
어두운 안색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진이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요정의 숲을 지키던 사람을 만났어.”
그는 니센과 했던 대화들을 그녀에게 전했다.
“등가 교환과 인과율이라…….”
그녀는 놀람과 동시에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 자들은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모두 죽었어.”
라울과 니센.
그 둘은 원인은 다르더라도 모두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물으셨던 거군요. 걱정이 되셨나 보죠?”
“……당연하지.”
이루린은 그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다행히 일신상의 문제는 없었어요. 어쩌면 운이 좋았던 걸지도요.”
그녀는 반지를 다시 우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펜릴의 둥지에 대한 건 칸 님의 세계에서도, 이곳에서도 모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 괜찮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군.”
“앞으로는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미래를 발설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를 깨는 행위. 칸 님의 말씀대로라면 그 대가가 목숨일 수도 있으니까요.”
우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규율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게 중요하겠어요. 다른 분들은요? 고운 님과 루엔 님이 칸 님께 뭔가 알려준 적은 없었나요?”
“그런 적은 없었어. 물론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알아낸 것들은 있지만 말이야.”
마혈병에 관한 것이나 고운의 지도에서 본 미개척 지역에 대한 것들 말이다.
“인지하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까요. 어렵네요.”
“뭐, 분명 조심해야 할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움츠리고 있을 생각은 없어.”
“……그럼?”
“조금 전에 네 말대로, 내가 있는 곳과 이곳 모든 곳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과거든 미래든 비틀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그런 일이 있을까요? 칸 님이 계시는 세계는 결국 과거. 이곳에서는 모두 일어난 일일 텐데요.”
“아니. 있어. 그것도 방금 네가 말한 것 중에.”
“……네?”
“무덤의 묘실. 그곳은 열린 적이 없다고 했었지?”
“설마…… 칸 님이 계신 세계는 묘실을 열었나요?”
“아니. 내가 있는 곳도 묘실을 열진 못했어. 묘실은 커녕 미궁도 아직 공략 안 됐지.”
“미궁도 공략이 되지 않았다니…… 과거는 과거네요.”
이루린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공략되지 않았다는 건 미궁이 힘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기도 해.”
툭―.
그는 벤시나에게서 받은 묘실의 열쇠를 꺼내었다.
“그러니 이것도 존재할 수 있지.”
우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설마 그거…….”
“맞아. 묘실의 열쇠야.”
“……!!”
“우리는 각자 과거와 미래의 삶을 살지만 온전히 똑같은 세상이 아니니까.”
그녀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내 세상은 이 세계로 인해 이미 바뀌었어. 그러니…… 이번엔 내가 이 세계를 바꿀 차례야.”
그는 묘실의 열쇠를 그녀에게 밀었다.
“흑룡이 그러더군. 묘실의 안에는 용기사의 무구가 잠들어 있다고 말이야. 만약 묘실의 문을 열 수 있다면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도움이 되다마다요!!”
이루린은 소리쳤다.
“다른 것도 아니라 용의 보구라구요!”
처음이었다.
이렇게 격양된 그녀의 모습은 말이다.
“만약 얻을 수 있다면 전세를 크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열쇠를 두 손으로 꼭 쥐며 소리쳤다.
“다행이다.”
마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우진은 이내 웃고 말았다.
설령 이 열쇠를 사용해서 자신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관없어.’
멸망해 가는 세계에,
아주 작은 희망이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