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35)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35화(135/150)
“당신…….”
쥬터가 루엔을 바라봤다.
“엘프네?”
움찔―.
그의 한마디에 루엔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놀랄 필요 없어.”
그녀의 반응에 쥬터는 오히려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미안하지만 엘프를 가지곤 더 이상 뭘 할 게 없거든. 너희는 내 관심 밖이야.”
“……할 만큼? 뭘 했다는 거지?”
“뭐긴.”
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너…… 엘프를 잡아다 실험을 한 거냐!!”
고운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엘프만 잡은 건 아닌데…… 다른 종족들도 대부분 다 실험에 써봤으니까. 아,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엘프를 인간 다음으로 많이 사용했거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음? 방금 내가 너희를 실험에 쓰지 않겠다고 해서 서운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
쥬터 보아스의 첫인상은 뭐랄까.
수다스러웠다.
그러나 본래의 성향이 말이 많은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약에 취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대화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고 있었으니까.
‘하긴…… 별 미친 짓을 다 하는데 머리가 정상일 리가 없지.’
지금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쥬터의 능력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소환 계열의 클래스들은 본체의 능력치가 달리는 편이야.’
놈과의 거리는 대략 일곱 걸음 정도.
[질주]를 사용한다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신이 움직이는 속도가 빠를까, 아니면 놈이 술법을 쓰는 것이 빠를까.
‘모험을 해도 될까?’
우진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쿵―.
하지만 그 순간, 그런 그의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 쥬터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들겼다.
[크르르르르…….] [크르르르…….]그러자 그의 등 뒤로 용아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숫자는 모두 다섯.
쿵― 쿵― 쿵―.
아니,
여섯이었다.
처음 만났던 용아병이 일행의 뒤에 서자 외길인 통로의 앞뒤를 놈들이 모두 막아선 꼴이 되었다.
‘……빌어먹을.’
시간이 필요했다.
“힘을 잃은 미궁에서 뭘 하려고 하는 거지?”
계획을 새로이 짤 시간을 위해 우진은 일단 놈에게 말을 걸었다.
“힘을 잃은 미궁……? 아아,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미궁에 있던 마물들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의외로 쥬터는 그의 물음에 흥미를 보였다.
“이야, 너희 정말 운이 좋았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먼저 여기에 오지 않았더라면 너흰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는걸.”
놈은 거창한 비밀을 혼자 알고 있는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다.
“용이 죽는다고 미궁이 힘을 잃거나 하는 게 아냐. 도대체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트린 건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미궁도 결국 던전. 균열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여긴 용의 던전이 아냐. 용은 그저 이곳을 이용했을 뿐이지.”
“그럴 리가…… 만약 미궁이 온전했다면 당연히 마물이 존재해야 해. 하지만 이곳은 수년 전부터 마물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았는데?”
“당연하지.”
놈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마치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내가 다 죽여 버렸는데.”
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아는 모양인데. 나는 너희를 모르거든?”
힘없는 목소리.
초점을 잃은 듯 멍한 눈동자.
가녀린 몸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머릿속이 공포로 짓눌렸다.
“자기소개 정도는 먼저 해야 하지 않나?”
꿀꺽.
우진은 옆을 바라봤다.
루엔과 이루린 역시 잔뜩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그래?”
후우―.
우진은 숨을 토해냈다.
여섯마리 용아병.
하나같이 괴물들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부리는 저놈은 더 괴물일 테고.
그렇기에 냉정해져야 한다.
“뭐, 됐어. 하기 싫음 말아. 어차피 나도…….”
쥬터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널 도와줄 수 있다.”
“……뭐?”
“솔직히 말하지. 조금 전엔 널 떠본 거였어. 미궁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는지 확인이 필요했거든.”
저벅― 저벅―.
“자, 잠시……!!”
쥬터를 향해 걸어가는 우진을 보며 루엔이 깜짝 놀라 막아서려 했지만, 그는 손을 들며 뒤로 물러서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용이 이곳을 이용했다, 라는 말을 듣고 알았지. 그걸 몰랐다면 미궁의 마물을 정리한 시점에서 그냥 떠났을 테니까.”
우진은 쥬터의 앞에 섰다.
[크르르르…….]용아병들이 당장에라도 그에게 달려들 듯 자세를 낮췄다.
“미궁 안에 있는 용의 보물을 찾으러 온 거지?”
그의 물음에 쥬터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너도?”
“응. 나도.”
주륵―.
우진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따금 어린아이 같은 반응이 결코 호의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기분.
눈앞의 미치광이는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스릉―.
우진은 들고 있던 검을 그에게 보였다.
“내가 알기론 이곳에 용기사의 무구가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것을 얻으러 왔다.”
“용기사라…… 맞아. 그런 얘기가 있지.”
쥬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묘실의 열쇠를 가지고 있나?”
“가지고 있진 않아.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고는 있지.”
“호오……? 어딘데?”
“그걸 얘기해 줄 순 없지. 내 목숨줄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낄낄―.”
쥬터는 우진의 말에 맞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근데 내가 너랑 같은 용기사의 무구를 찾고 있는 거라면? 우린 적이 되는 건가?”
꿀꺽.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근데 다행이네. 동료가 될 수 있겠어. 내가 찾는 건 용기사의 무구가 아니거든. 지팡이질 하는 사람이 날붙이를 찾아서 뭐 하겠어.”
긴장한 그와 달리 쥬터는 장난스레 그의 팔을 잡아 팔짱을 끼며 히죽거렸다.
‘……어찌저찌 통한 건가.’
미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용기사의 무구가 있다는, 벤시나가 했던 말이 전부였다.
쥬터의 말처럼 적어도 연금술사가 찾는 게 무구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 해본 도박이 다행히 먹힌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짜 이유,
“용은 말이야. 세상 그 어떤 현자보다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마법뿐만 아니라 연금술, 천문, 심지어 예지까지.”
“그래서?”
“그런 지식을 가진 놈들이 수명도 더럽게 기네?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레어에 처박혀 있기엔 너무 심심했던 거지.”
쥬터는 씨익 웃었다.
“그래서 놈들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어.”
“……장난감?”
“그중에서도 말이야. 벤시나가 만든 물건 중에 아주 재밌는 게 있거든.”
스읍―.
마치 마약을 하는 것처럼 쥬터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뚜껑을 열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십 년 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 속에서 이미 환각제를 만들고 있었으니까.
“흑룡은 뛰어난 마법사이자 연금술사지. 크…… 그가 쓰던 암흑 지대라는 마법을 너희가 봤어야 하는데…… 그건 단순한 마법이 아냐. 연금술이 섞인 위대한 작품이지!”
어쩐지 그는 신이 난 듯 소리쳤다.
“원래 마력은 무게가 없거든? 그런데 그걸 연금술로 변화시켜 검은 안개로 만든 다음…….”
“그래서 묘실에 있는 게 뭐냐고.”
신나게 설명을 하던 쥬터는 자신의 말을 끊는 우진을 보며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쭉거렸다.
우진은 아차 싶었다.
주저리주저리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놈의 수다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흑색 연성(Black Opus).”
하지만 그의 우려와 달리 쥬터는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다.
“엄청 궁금했구나? 낄낄―.”
‘……다행이다. 미친놈이라.’
“그건 말이지. 온갖 것들을 연성할 수 있는 술식이지.”
쥬터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수만 가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반대로 단 하나의 결과만을 이룰 수도 있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그는 아마도 [흑색 연성]인가 뭔가 하는 걸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조작, 성장, 쇠약, 소생…….”
그러고는 살짝 발을 들어 우진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죽음.”
그의 입김이 닿자 소름이 돋는 느낌에 우진이 뒤로 물러섰다.
“궁금하지 않아? 과연 용의 연금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딱히. 나는 검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어서.”
“좋아. 아주 좋아. 서로 뜻이 다르니 싸울 일도 없고…… 원하는 걸 사이좋게 나눠 가지면 되겠어. 그치?”
쥬터는 우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열쇠를 찾을 때야. 어디 있지?”
순간 놈의 눈빛이 변했다.
“어디 있냐고.”
오싹.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
“……기다려.”
우진은 성큼성큼 묘실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대충 벽 어딘가를 검으로 긁어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틈이 생겼을 때 그는 품 안에서 열쇠를 꺼내 놈에게 보였다.
“뭐야? 진짜 거기에 있었다고? 나 여기에 몇 번이나 왔었는데?”
“못 믿겠으면 네가 열어봐.”
우진은 열쇠를 쥬터에게 던졌다.
철컥―.
묘실의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쥬터는 눈을 반짝였다.
용아병들이 묘실의 문을 열었다.
“오오…….”
순수한 탄성.
그리고 그건 비단 놈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게…… 용의 보고?”
어두운 지하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쪽 벽면엔 온갖 무구들이 쌓여 있었고, 반대쪽엔 수십, 수백에 달하는 서적들이 놓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보석과 보물들, 그리고 룬석까지 있었다.
‘이걸 먹으면…….’
모두가 엄청난 재화에 홀린 듯 빠져 있는 순간에도,
‘놈을 잡을 수 있을까.’
우진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이걸론 부족해.’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자자, 마음껏 구경하자고. 어차피 서로 겹칠 일은 없잖아. 너희 쪽에 연금술사가 있진 않겠지?”
“걱정 마. 없으니까.”
“그래, 그래. 검사, 궁수, 마법사, 그리고 반병신 한 명. 딱 좋네.”
쥬터의 말에 고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우진은 그런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고운, 너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는지부터 우선 찾아봐.”
“……알겠습니다.”
“두 사람도 필요한 것들을 챙겨.”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뭘 어떻게 해.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구경이나 해야지.”
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쥬터의 뒤를 따라서.
그는 이세계에서 있었던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게임 속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했던 일.
마법.
마법을 쓸 수 없는 그가 [연금술사의 실험실]에서 봤던 마법서, [포스 나르아]를 성공시켰다.
어째서일까.
그건 현실은 게임과 달리 능력치와 특성이 딱딱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에서는 마력 능력치가 있어야 마법을 쓸 수 있었지만, 이곳에선 능력치가 없어도 라탄의 마력을 흡수해서 쓸 수 있었어.’
능력치와 특성이 없어도 이능을 쓸 수 있다.
이것이 이세계가 가지는 특이점이었다.
하지만 그가 [포스 나르아]라는 마법 자체를 알지 못했다면 마력이 얻었다 한들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한 번의 경험은 필요하다는 의미겠지.’
우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확실히 이곳에 연금술사는 쥬터 보아스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연금술을 써본 적이 없다고는 안 했어.’
우진은 게임 속에서 [말프란 주스]를 만든 적이 있었다.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되었다.
꽈악―.
긴장감에 우진은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흑색 연성(Black Opus)을 가로챈다.’
그것이 그의 진짜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