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39)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39화(139/150)
“친구……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이상하네. 그런 말을 좀 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뭐라고 대답을 했더라…….”
“악마 같은…… 아니, 악마 새끼.”
연금식이 있었던 석벽을 지나니 안쪽에 작은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비밀 장소라고 하기엔 딱히 아무것도 없는 방인지라 우진은 대화를 나누기 적절한 곳이라 생각했다.
“악마? 글쎄. 네 꼴을 보면 그런 말은 못 할 것 같은데.”
우진은 쥬터를 향해 말했다.
“아…… 하긴, 보질 못하겠네.”
쥬터의 머리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눈이 달린 윗부분과 입만 남은 아랫부분으로 말이다.
“머리가 반으로 잘려도 살아 있다니…… 뇌가 부서져도 죽지 않는 걸 보면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놈인지 모르겠네.”
우진은 반으로 잘라진 쥬터의 머리를 향해 말하는 자신을 보며, 왠지 피로 얼굴을 그린 배구공과 대화를 하던 영화가 떠올랐다.
점점 무뎌지는 걸까.
사람의 머리를 가르는 끔찍한 일을 넘어 잘린 머리와 덤덤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튼 딱히 답을 해줄 것도 없어. 안타리안 연방? 그게 언제 적 왕국들인데…… 거기 놈들이 망한 건 내 탓이 아냐. 지들끼리 지지고 볶다 망한 거지.”
“80년 전쯤 그곳에서 네 추종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었잖아.”
“내 추종자? 몰라. 그딴 게 있었는지 관심 없어. 어디서 내가 쓰다 만 술법서들을 주워서 쇼를 하고 있었나 보지.”
쥬터는 코웃음을 쳤다.
“환각제? 그런 시시한 걸 만들려고 내가 아까운 시간을 쓰겠냐고.”
“그럼? 그때 넌 뭘 하고 있었는데?”
“뭐…… 그때쯤이면 아마 브리안 왕국에 있었을걸.”
“……브리안 왕국?”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오히려 우진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이세계는 악마들의 땅이 되어버렸지만 게임 속에선 5대 왕국 중 가장 성스러운 왕국이었다.
“브리안 왕국의 왕이 대악마를 소환해서 난리가 났었으니까. 열린 지옥문을 닫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갔지.”
“너도 지옥문을 닫으러?”
“미쳤나. 난 재료를 구하러 갔지. 그때 죽은 인간들 덕분에 진짜 재밌게 연구했는데.”
“…….”
우진은 쥬터의 대답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옥문…… 그리고 대악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바로,
창세단이 진행하고 있던 퀘스트였다.
“그때 소환된 악마 때문에 브리안 왕국이 멸망 직전까지 갔었거든.”
“……뭐?”
지옥문 퀘스트는 분명 B등급이었다.
대악마로 연계 퀘스트가 발동되었을 때에도 등급은 변하지 않았었다.
‘고작 B등급 퀘스트로 왕국이 사라질 위기까지 맞이하다니…….’
사실 커뮤니티에서도 B등급 퀘스트부터는 결과에 따라 대륙의 판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끼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A급이나 심지어 SSS급인 [용 군주]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던 그에겐 B등급은 크게 와닿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연계 퀘스트가 진행되면서 등급이 더 오를 수도 있고…….’
어쨌든 앞으로는 B등급 퀘스트라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브리안이 무너지면서 5대 왕국의 균형도 깨졌지. 무슨 일이 일어났겠어? 전쟁의 시대가 열린 거지!!”
손발이 있었다면 왠지 신이 나 두 팔을 벌리고 방방 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왕국들은 반다리우스의 탑에서 얻은 물자들을 모조리 전쟁에 쏟아붓기 시작했어. 사방이 시체로 널렸지. 아…… 그립다. 축제였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던 안타리안 연방이 어떻게 됐겠냐. 5대 왕국들이 하는 짓은 연방과 다를 바 없지.”
왕국들끼리 얽히고설킨 난전(亂廛).
“멍청하긴. 탑을 공략하기도 바쁜 시점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니…….”
“딱히 그렇진 않은데.”
“뭐?”
“너 역사 공부 좀 해야겠다. 하여간 날붙이 드는 놈들은 이래서…….”
푸욱―.
“야이! 미친놈아!! 말하고 있잖아!!”
쥬터의 정수리에 검을 박아 넣자 옆에 놓여 있던 놈의 턱이 주절거렸다.
“본론만 말해.”
“……전쟁 때문에 오히려 많은 것들이 발전했으니까.”
쥬터는 끝없이 과거의 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례없는 지원금을 받은 적탑.
마공포 개량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많은 발명품을 만든 마도공학.
뿐만 아니라 무역, 의학, 용병, 연금 등등…….
평화의 시대에는 나태했던 수많은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시대에 폭발한 것이었다.
“덕분에 전쟁 중이래도 그 시절은 반다리우스의 탑을 가장 빠르게 공략하던 시기기도 했거든.”
전쟁으로 인한 기술 발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번영과 발전은 별개의 문제니까.’
다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우진의 머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쥬터의 말대로라면 5대 왕국 간의 전쟁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확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시기에 얻을 수 있는 발전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
왕국의 평화와 기술의 발전.
마음 같아서는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그런데 이상한 녀석이로군. 굳이 이런 걸 묻기 위해 날 숨겨온 건가? 대륙에서 일어난 일 정도야 누구에게 물어도 상관없잖아.”
잠시 생각에 빠졌던 우진에게 쥬터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그런 얘길 했었던 것 같은데. 동료라서 묻지 못한다고.”
“…….”
“그게 무슨 뜻이지?”
쥬터의 물음에 우진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넌 죽어도 싼 놈이니까.”
그리고 그 물음에 돌아온 대답.
“……뭐?”
“연금술사니 잘 알 거다. 등가교환과 인과율에 관한 것 말이야.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 규율.”
“무슨 헛소리야? 고작 이미 일어난 일을 듣는 걸 가지고 뭐 그리 거창…….”
그때였다.
쥬터의 입이 멈췄다.
“너…….”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많은 연금술을 창안해 낸 쥬터는 천재 중에 천재였다.
“이 세계 사람이 아니냐?”
그리고 역시나 그는 우진의 말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맞아. 나는 이곳과 닮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왔다.”
“얘기해 줘.”
“……뭐?”
“네가 사는 곳에 대해서 말이야!! 내게 그냥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그래! 그럼 내가 얘기하지. 너는 대답만 하도록 해! 그래, 그게 좋겠군!”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일까.
녀석은 그 사실을 듣고 오히려 즐거운 듯 조금 전보다 더 수다스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오히려 우진이 그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이 세계에 와서 가장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라니…….
“그래, 너희 세계가 이곳과 닮았다고 했지? 80년 전 과거를 물어본 걸 보니…… 대충 너희 세계는 그즈음인 건가? 그래, 5대 왕국이 무너지지 않은 시기라는 말이군! 그러면…….”
놈은 그 전에 했던 대화들을 떠올리며 우진의 세계를 하나둘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우진은 쥬터 보아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넌 그냥 인간이잖아. 그딴 걸 어디다가 써?”
우진은 쥬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최악의 악인이지만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오직 자신의 연구를 위한 것.
오로지 연금술이 1순위가 되어 선악마저 뛰어넘어 버린 상태인 것이었다.
‘그래 봤자 미친놈인 건 변함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미친놈이기에 편하게 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혹여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세계선을 엉키게 만들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루엔이나 이루린과도 편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그였으니까.
“푸하하하―――!! 뭐? 진짜냐? 에스텐 왕국의 왕이 약에 쩔었다고? 야, 내 추종자란 놈들 일 잘하네. 나도 연금술로 만든 약을 왕에게는 못 먹여봤는데.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쥬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웃을 일이 아냐. 그것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거니까. 너도 알잖아.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마물과의 전쟁.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길고 끔찍한 여정을 준비해야 했다.
“너무 머리 싸매지 마라.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까. 인과율이란 그런 거다. 세계를 구성하는 절대 법칙이거든.”
쥬터는 의외로 담담히 대답했다.
“너 혼자 버둥거린다고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나를 봐라. 내가 연구에 인간을 사용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나 때문에 망했냐.”
“…….”
“아니거든.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대단치 않아. 항상 더 큰 뭔가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런 식으로 네가 한 일을 합리화시키지 마. 네가 죽인 생명들이 살아 있었다면 미래가 바뀌었을지 누가 알아?”
우진은 쥬터를 향해 으르렁거리듯 답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였다.
이런 그의 발버둥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
하지만 오히려 쥬터는 그런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했다.
“그럼 내가 도와주마.”
의미심장한 목소리였지만 돌아오는 우진의 반응은 싸늘했다.
“잔머리 굴리지 마. 어떻게든 살고 싶은 모양이지?”
“물론.”
“기대하지도 말고.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너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스릉―.
우진은 쥬터의 머리 앞에 검을 박아 넣었다.
“내가 말하는 건 지금의 내가 아냐.”
“뭐?”
“네 세계에 있는 나지.”
쥬터의 눈동자가 우진을 바라봤다.
“네 말대로 나는 연구에 미친놈이지만…… 80년 전의 나는 아직 인간을 가지고 실험을 하던 시절은 아니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수림에서 연금술사들이 인간 골렘을 연구하는 걸 내가 봤는데?”
우진은 쥬터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게다가 실패작들을 크림힐드 호수에 버리는 바람에 호수를 지키던 켈두안까지 오염이 되었었다고.”
“그건 내가 한 게 아냐.”
“……뭐?”
“내가 인간 골렘을 만든 건 브리안 왕국이 무너진 뒤부터다. 거기서 얻은 시체들로 연구를 시작했거든.”
“그럼…….”
“네 말대로 내 추종자들이 내가 버린 이론서를 주워서 시작한 거겠지.”
확실히 환각제를 만드는 방법이 적힌 책들도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이론서를 왜 버리는 거야?”
“그야 그걸 보고 누군가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세상에 연금술사들은 많잖아.”
쥬터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난 완벽한 결과가 궁금한 거지 독점할 생각은 없거든.”
그 순간,
우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니 네가 나를 바꾸는 거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내가…… 너를?”
대륙 최고이자 최악의 연금술사.
쥬터 보아스.
그를 동료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
“날 이용해.”
“왜지? 이제 와서 착하게 살고 싶은 건가?”
“아니. 말했잖아. 결과가 궁금하다고.”
쥬터는 그에게 말했다.
“나의 다른 미래의 결과가 말이야.”
우진은 한결같은 그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터뜨렸다.
“날 이용해. 친구.”
그 순간, 우진은 문득 니센이 했던 페어리 퀸의 유언이 떠올랐다.
이 세계를 이용하라는 말.
그건…… 어쩌면 단순히 정보와 도구를 얻어 가라는 의미가 아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