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49)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49화(149/150)
꿀꺽―.
히든 스팟을 경험하는 것이 처음인 웨든은 석벽의 문이 열리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방패를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 당겼다.
“흑룡한테도 돌진한 녀석이 뭘 그렇게 겁을 먹어. 그냥 들어가.”
우진이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등을 밀었다.
쿵―.
하지만 잔뜩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석벽의 안쪽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있었다.
“이게…… 뭐죠?”
선두에 서 있던 웨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체군.”
우진의 말대로 석벽 안에 있는 공간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 한 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남아 있는 뼈가 시커멓게 변해 있습니다. 아마도 독을 쓴 모양인데요.”
오만상을 찌푸리는 웨든과 달리 익숙한 듯 페론은 바닥에 있는 시체를 살폈다.
치이익―.
그가 품 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시체 위에 뿌리자 약이 닿은 부분이 파랗게 변했다.
“말굽풀로 만든 독이네요.”
“말굽풀?”
“네. 그런데 말굽풀로 만든 독은 즉살 효과가 떨어져 요즘은 잘 안 쓰는 독이거든요.”
그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아마도 오래된 시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 이 장소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장소니까. 미궁탑이 개방되기 전에 죽었을 가능성도 있어.”
[이블 테일]이 오픈되고 플레이어들이 50레벨이 되기 전까지 당연히 중앙 대륙은 오직 NPC들만이 있었다.미궁탑이 개방되고 본격적인 탑 등반이 시작된 시점은 플레이어들이 중앙 대륙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였고 말이다.
“신원을 알기는 어렵겠지?”
“으흠…… 아무래도 이걸로는 부족할 것 같네요.”
앙상하게 남은 뼈를 제외하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형님, 여기 보세요!”
웨든이 뭔가를 발견한 듯 우진을 불렀다.
구석에 떨어져 있던 가방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가방에 마법적인 조치가 되어 있는지 안에 들어 있는 소지품들은 모두 깨끗했다.
가방 안에는 한 뼘 정도 되는 크기의 병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게 다 뭐지?”
우진은 병을 꺼내 안을 살폈다.
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의 꽃잎과 잎사귀부터 마물의 것으로 보이는 발톱, 눈알 등등…….
온갖 것들이 들어 있었다.
“연금술사인가?”
이런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는 인물은 연금술사일 가능성이 크니까.
“……아니에요.”
“음?”
그 순간 루엔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연금술사가 아니에요. 이자…… 수집가예요.”
“……수집가?”
루엔의 말에 우진의 뺨이 씰룩였다.
낯익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세계에서 들었던 이름이 왜……?’
우진은 기억을 떠올렸다.
이종족 사냥을 하던 자들.
엘프의 눈, 노움의 손가락, 드워프의 뼈…… 등등 온갖 이종족을 잡아 그들의 신체를 악마들에게 팔아넘기던 놈들이었다.
“금정전쟁(禁精戰爭)이라고 기억하시죠?”
루엔이 그에게 물었다.
“인간과 엘프가 치렀던 전쟁?”
그 전쟁에서 패배한 엘프는 터전이었던 엘븐 하임을 잃고 강제로 중앙 대륙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수집가라는 자들이 전쟁과 무슨 상관인 거지? 무슨 짓을 했는데?”
“그들은 말 그대로 대륙을 돌아다니며 온갖 것들을 모으는 자들이었어요.”
“그런 것 같군.”
우진이 정체불명의 손가락이 들어 있는 약병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 나쁘다고 할 순 없어요. 변질이 되어서 그렇지 처음에는 달랐으니까요.”
종족의 전설, 숨겨진 비화, 전해 내려오는 소문 등…… 원래 수집가들이 수집하던 것은 잘라낸 신체 부위가 아닌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던 중 수집가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 했어요.”
“무슨 소문?”
“엘프의 심장이 영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죠.”
“그게 전쟁의 시작이었군.”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과 엘븐 하임은 우호적인 관계였어요. 볼턴 왕국의 초대 왕인 락시온이 악마들을 밀어낼 당시에 엘프들도 그들을 지원했을 정도니까요.”
악마라는 공통의 적이 있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적이 사라지자 남아 있던 자들이 서로 적이 되고 말았다.
500년 전 타락전쟁, 그리고 200년 전 금정전쟁.
그 이후로도 적탑의 수장인 라탄 그레이가 활약했던 [삭월의 밤]과 같이 무수히 많은 전쟁들이 대륙에서 일어났었다.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전쟁의 역사였다.
“금정전쟁 이후 수집가들은 모습을 감추었어요.”
루엔은 시체의 가방에 들어 있는 약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사실대로라면 이 시체는 적어도 200년 이상 된 것일 수도 있어요.”
“200년 전 시체요? 조금 이상한데요?”
그녀의 말을 듣던 페론이 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홈페이지에 보면 미궁탑이 생겨난 건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대륙에 나타나면서 미궁탑이 나왔다고 했거든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웨든이 신기한 듯 페론에게 물었다.
“어. 뭐, 보통은 배경 스토리 같은 거 잘 읽지 않지만. 나야 이것저것 정보를 모으느라 봤었거든.”
페론의 말에 우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세계도 탑이 나타난 건 지금 우리가 있는 시기쯤이랬어.’
“생겨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탑 안에 200년이나 지난 시체가 있다고요?”
“그러게요. 어떻게 된 거지?”
“누군가 시체를 넣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글쎄……. 내가 알기론 케르가의 불새단이 미궁탑에 도전하기 전까지 탑의 문이 열린 적은 없었을걸?”
“아, 그러네요!”
[게임 스테이션]에서도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터라 웨든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럼 어떻게 된 걸까요? 누군가 시체를 넣어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시체가 이곳에 있었다라…….”
웨든은 머리를 긁적였다.
“탑 안과 밖의 시간이 다르기라도 한 걸까요?”
“……시간이 다르다고?”
“네. 어쩌면 저희가 있는 이 탑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과거의 시간인 거죠. 최소 200년 전 과거.”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하, 아니에요. 말도 안 되죠? 여기가 과거라니. 제가 헛소리를 했어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웨든은 당황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시간 왜곡…….”
하지만 웨든의 말을 우진은 그 말을 쉽게 흘려듣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 그 현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웨든의 말처럼 미궁탑의 시간대가 어긋나 있다면……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도 관계가 있을까?’
아니면 자신과는 별개로 그저 게임의 설정에 불과한 것일까.
[에단]이 이세계를 인지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이제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모두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미궁탑은 [이블 테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니까.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사냥터란 의미 이상으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문에 의하면 아직 열리지 않은 메인 스토리만 3차까지 있다고 했으니…….’
이제 1차 스토리.
하지만 그조차도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그럼 이자는 초창기 수집가는 아니고 금정전쟁 시점의 수집가라는 건가?”
“아마도요. 그들이 변질된 게 그쯤이니까요. 영생의 재료를 모은답시고 이종족들을 죽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으고 다녔으니까요.”
그녀는 우진이 들고 있던 약병을 가리켰다.
“참고로 마스터께서 들고 계신 건 히드라의 손가락이에요.”
“…….”
떨떠름한 얼굴로 우진이 병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수집가 시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변질이 되었든 변질되기 이전이었든 간에 그들은 온갖 것들을 모으는 자들이에요.”
루엔은 아무것도 없는 석벽 뒤 공동(空洞)을 훑으며 페론에게 말했다.
“그 말은 이 안에 분명 뭔가가 있다는 것이겠죠.”
미궁탑 1층의 이름은 정령의 숲.
호수 아래 숨겨진 장소에서 발견된 수집가의 시체.
소문을 좇는 자가 아닌 영생의 재료를 좇는 변질된 수집가.
우진은 지금까지 찾아낸 정보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루엔. 금정전쟁이 일어나던 시점에 혹시 인간도 정령을 부릴 수 있었어?”
“정령이요?”
그의 물음에 루엔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간이 정령과 계약을 맺게 된 건 금정전쟁 이후 엘프들이 힘을 잃고 난 뒤부터예요.”
그때부터 인간은 엘프의 마법을 연구했고, 더 나아가 정령과의 계약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페론.”
그 순간 우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미궁탑은 층마다 보스 몬스터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네. 맞습니다. 층의 수호자라고 해서 던전처럼 보스 룸 안에 있기도 하고, 아니면 층을 배회하기도 합니다.”
“여긴?”
“으음…… 1, 2층 구간에는 보스가 없습니다.”
“보스가 없다는 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거야?”
“네? 아, 아뇨. 나와 있는 정보는 제가 다 봤었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일단 층에 들어오면 시작되는 퀘스트가 단순하게 숲에 있는 마물을 사냥하는 거니까…… 요?”
페론은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듯 말을 흐렸다.
“퀘스트를 하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층의 보스가 없다는 말이 될 순 없지.”
그의 말에 일행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루엔의 말대로라면 금정전쟁 시절 정령은 오직 엘프만이 다룰 수 있었어.”
그리고 이곳은 엘프만이 다룰 수 있던 그 정령들이 있는 숲속.
“이곳에 왜 수집가가 왔을까.”
우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집가들은 영생을 위해 엘프의 심장을 찾던 자들이었다.
“이곳에 엘프가 숨어 있던 게 틀림없어.”
즉 이곳은 영생을 목적으로 자신들을 사냥하던 인간들을 피해 엘프들이 피신한 장소인 것이다.
“엘븐 하임이 멸망할 정도로 엘프는 대패(大敗)했어. 그런 전쟁 속에서 도망친다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더욱이 이런 비밀 장소에 도달하는 건 도움 없이는 어렵겠지.”
우진은 천천히 석벽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그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몸을 숨긴다는 건 결코 평범한 엘프가 아니라는 의미기도 할 거야.”
툭―.
그 순간, 마치 뭐에 홀린 듯 루엔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엘프가 아니다…….”
우우우웅…….
그때였다.
놀랍게도 그녀의 손끝이 닿은 석벽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며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건…….’
마법진에 대해서 잘 알진 못하지만, 우진은 어디선가 본 듯한 문양에 살짝 눈을 흘겼다.
바로,
얼음굴에서 봤던 마법진에 있던 문양이었다.
“……엘프의 마법진.”
촤아아악……!!!
그 순간 그녀의 말에 반응하듯 문양을 완성한 붉은빛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석벽이 갈라지자, 그 안에선 놀랍게도 잠들어 있는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
우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여인의 등장에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얼굴.
그리고 그녀의 몸엔 마치 그녀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넝쿨이 감겨 있었다.
“이거…… 말굽풀이 자라는 넝쿨이네요. 그럼 저자가 죽은 게…….”
페론이 여인의 몸을 감싼 넝쿨을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님.”
루엔의 손끝이 떨렸다.
파스슥…….
하지만 그녀가 닿기도 전에 여인의 몸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하더니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툭―.
여인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은색의 왕관이 바닥에 떨어지려 하자 루엔은 다급히 그것을 받았다.
[엘븐 하임의 유산을 발견했습니다.]그녀의 손에 왕관이 쥐어진 순간,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였습니다.] [퀘스트명 : 울딘의 부흥]알림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