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9)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19화(19/150)
다섯 명.
수적으로 분명 열세였지만 우진은 아무런 고민 없이 그들의 앞에 섰다.
“거기 너희들.”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수풀들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나와.”
스릉―
우진이 검을 뽑았다.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들었겠지? 시간상 중앙 대륙에서 넘어 왔을 리 없고…… 여기 있는 놈들이라면 과연 내 상대가 될까?”
“……기고만장한 놈이군.”
수풀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가죽 갑옷과 전신에 치렁치렁하게 짧은 무기들이 달려 있는 걸 봐서 레인저인 듯싶었다.
“창세단 놈들이냐?”
“난 블란 클랜의 페론이라고 한다. 한 번은 들어봤겠지? 어둠숲에서 가장 큰 연합이니까.”
“몰라. 모레티에서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너희들을 알아야 하나?”
“……뭐?”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거들먹거리던 페론은 우진의 대답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그렇고, 어둠숲에서 잘나가시는 양반들이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이유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스슥― 스스슥―.
풀잎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였다.
‘녀석들. 일부러 저러는 거군.’
자신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창세단]의 의뢰다. 그들의 수장이 널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운이 좋은 줄 알아. 우리는 원래 척살 의뢰가 아니면 안 받는데 말야.”
그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며 비릿하게 웃었다.
“값이 커서 특별히 수락했거든. 그러니 괜한 짓 할 생각은 마라. 죽고 싶지 않으면.”
“그러군. 너희는 죽일 생각이 없구나.”
우진은 그를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있는데.”
슈욱―!!!
그 순간 수풀 사이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카앙―!!!!
엄청난 속도였지만 놀랍게도 페론은 몸을 꺾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날아든 화살을 쳐냈다.
“이 새끼…… 다짜고짜 화살을 날려?”
“날 죽이러 온 놈에게 그럼 뭘 해야 하는데?”
우진은 그를 향해 코웃음을 쳤지만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루엔의 화살을 막았다?’
우진이 눈을 흘기며 그를 노려봤다.
‘레인저 자체가 민첩이 높긴 해도 웬만한 레벨로는 울딘의 특성을 익힌 루엔의 공격에 반응하는 것도 힘들 텐데.’
그렇다면 최소 40레벨 이상.
사실상 초심자 지역에서 가장 강한 레벨이다.
어둠숲을 졸업하고 중앙 대륙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시기였으니까.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군.’
“수작 부리긴. 파르타에서 나올 때부터 너희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런 게 통할 것 같나?”
“모르니까 해보는 거지.”
파앗―!!!
우진이 그를 향해 달려들며 소리쳤다.
“루엔!! 사정 봐주지 말고 머리통을 날려 버려!!”
그의 외침에 페론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우진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날아드는 화살을 막을 자신은 없었던 모양이다.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찾아!!!!”
그의 외침에 수풀이 분주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굶주린 낙인을 사용합니다.]▶ 레인저 페론에게 낙인이 찍힙니다.
▶ 가장 높은 능력치(민첩)의 1/3을 빼앗습니다.
▶ 당신의 민첩이 15 증가합니다.
▶ 레인저 페론의 민첩이 15 감소합니다.
“……억?”
품 안으로 파고드는 우진을 피하려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페론은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 잠깐……!!”
황급히 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우진이 검을 틀어 궤도를 바꾸었다.
가슴을 찌르려 했던 검이 그대로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이번엔 진짜다.”
우진의 경고에 옆구리의 통증 따윈 잊은 채 페론이 황급히 팔을 들어 머리를 막았다.
“화살 말고 내 검.”
“제길!!”
페론의 뒤에 선 우진이 그의 허벅지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다리에 검이 박힌 채로 페론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스킬을 쓸 수준도 아니군.”
그런 그를 바라보며 우진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죽는시늉하지 마. 어차피 통각 조절 때문에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바닥에 쓰러진 페론의 등을 밟고서 우진이 허리를 숙였다.
“40레벨 이상부터는 죽으면 경험치를 떨구는 거 네가 더 잘 알겠지. 부하들 당장 불러. 죽고 싶지 않으면.”
“빌어먹을…….”
페론의 얼굴이 구겨졌다.
낭패였다.
의뢰 성공률 100%라며 창세단에게 호언장담한 그였다.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고작 어둠숲에 있는 저레벨에게 당했다고?’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기 위해 장비까지 최상급으로 갖춘 그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나.”
우진은 가볍게 허벅지에 박힌 검을 있는 힘껏 아래로 그었다.
콰드드득……!
뼈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페론의 다리가 몸과 분리되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상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말이다.
“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보면 몰라?”
우진이 남은 다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둘.”
“자, 잠깐!! 불러! 부른다고! 새끼들아! 당장 튀어나와!!!”
창백해진 얼굴로 페론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하나, 둘, 셋…….’
이윽고 수풀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루엔의 말대로 페론을 제외한 넷이었다.
“왜 놈들이 두 다리 멀쩡하게 걸어 나오는 거지?”
우진은 숲 어딘가에 숨어 있을 루엔을 향해 말했다.
보이진 않지만 그의 한마디에 어디선가 불안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툭―.
나무 위에서 내려온 루엔이 후드로 얼굴을 가리며 그를 향해 꾸벅거렸다.
“분명 각오를 하라고 했을 텐데.”
“크큭…… 아주 지랄하고 있네. 각오는 무슨…… NPC한테 별걸 다 시키는군.”
페론은 그런 우진을 향해 입술을 씰룩였다.
“죽여.”
“……네?”
“우릴 죽이려던 놈이다. 그리고 이 새끼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자, 잠깐……!!”
“뭘? 남을 공격했으면 이 정도는 당연히 각오하고 있었던 것 아냐?”
“아냐! 우린 널 붙잡아 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뿐이다. 절대로 죽일 생각은 없다고!!”
우진은 페론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그는 다리에 박혀 있던 검을 뽑고서 페론의 뒷덜미를 잡아 질질 끌며 숲길 안쪽으로 걸어 들었다.
“함정 해제는 50레벨 이상부터 가능하다. 네놈들이 깔아 놓은 덫도 중앙 대륙에서 쓰는 물건이란 말이지.”
“자, 자……!!”
“운이 좋으면 다리가 날아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야. 그런데 죽일 생각이 없어?”
“흐익……!!”
우진이 바닥에 깔린 덫 위로 페론의 얼굴을 밀어 넣었다.
“개소리는 너나 하지 마. 어차피 사당 쪽에도 부하들을 풀어놨겠지. 부활하면 그쪽에서 붙잡을 생각으로.”
그가 페론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이렇게 보니 궁금하네. 덫은 보통 발로 밟는 건데 그걸 머리로 누르면 어떻게 되려나.”
“이런 미친 새끼……!!”
그리고 우진은 거리낌 없이 페론을 깔아놓은 덫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컥―!!
콰드드드득―――!!
지면으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송곳들이 그대로 그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머리가 날아가 버린 몸이 그대로 기울어졌고, 바닥에 깔려 있던 덫들이 연쇄적으로 작동하며 요란한 굉음을 터뜨렸다.
“헉……!”
“크읍…….”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린 그를 보며 부하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자존심이 목숨을 지켜주진 않지. 안 그래?”
우진은 페론의 시체에서 떨어진 전리품을 챙겼다.
이름 : 치타의 반지
등급 : D
설명 : 민첩을 소량 상승시켜 준다.
[치타의 반지를 착용하였습니다.]▶ 민첩 수치가 5 상승합니다.
▶ 민첩 수치가 35(+35)이 되었습니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그는 남은 동료들을 바라봤다.
“페론이 당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거 말이 다르잖아.”
“교단의 NPC 때문이라고 저놈은 별거 없다더니…… 무슨, 완전 괴물인데…….”
“어쩌지……?”
난감한 표정으로 그들은 중얼거렸다.
‘끝났군.’
이미 전의를 상실한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을 해할 수 없었다.
“창세단이 너희에게 한 의뢰 내용이 정확히 뭐야?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그냥 돌려보내 줄 수도 있는데.”
그의 제안에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의뢰는 간단하다. 너를 붙잡아서 이틀 뒤에 넘겨주는 것이었어.”
“이틀 뒤? 내일이 아니라?”
“장소가 먼 곳이라서 이쪽도 이동을 해야 하거든.”
“어딘데?”
“……핏빛 동굴.”
그의 대답에 우진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숲에 존재하는 3개의 필드 던전 중 마지막이자 입장 레벨이 40이상인 고레벨 던전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레벨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둠숲의 다른 던전과 달리 핏빛 동굴은 초심자 지역에서 유일하게 살인이 가능했다.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기 전에 PK를 경험해 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언제부터인가 49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던전 안에 죽치고 저레벨들을 사냥하는 바람에 버려진 던전이 돼버린 곳이었다.
중앙 대륙은커녕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무법지대인 것이다.
“성채에서 당한 게 어지간히도 분했나 보군. 어떻게든 날 죽여보려고 PK가 가능한 던전으로 끌고 가려 했다니.”
우진은 차갑게 웃었다.
“좋아. 거기 너. 창세단에게 날 잡았다고 해라.”
“그, 그게 무슨……?”
“이틀 뒤에 핏빛 동굴에서 만나자고 전하면 된다. 도망갈 걱정은 하지 마. 핏빛 동굴은 어차피 나도 가려고 했던 곳이니까.”
어둠숲에 있는 3개의 타임 어택 중 마지막.
그곳이 핏빛 동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못하겠으면 사실대로 얘기하든가. 난 상관없지만…… 돈만 받고 의뢰는 실패한 너희들을 과연 녀석들이 가만히 둘까?”
우진의 말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녀석들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을 텐데. 평생 어둠숲에서만 썩을 게 아니라면 말이야. 너희도 중앙 대륙으로 가야지? 안 그래?”
“……제길. 알겠다. 네 말대로 하지.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 한다.”
“걱정 마. 오히려 나도 녀석들을 만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조용히 살려 보내주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꺼져.”
빠득―
불만 가득한 얼굴이지만 누구도 우진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저들을 그냥 둬도 될까요?”
사람들이 떠나고 둘만 남자 루엔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녀석들이 의회를 수락한 건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닐 테니까.”
“그럼요?”
“중앙 대륙에서 사냥을 하기 위한 든든한 뒷배가 필요해서겠지.”
자유롭게 PK가 허용되는 중앙 대륙에서 개인이 살아남는 건 사실상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중앙 대륙에 있는 던전들 대부분이 클랜들의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클랜들은 자신만의 사냥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암묵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형 클랜에 눈에 들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 거지.’
때문에 오히려 그의 제안은 옳다구나 할 일이었다.
그가 나타나 주기만 한다면 자신들의 실패를 알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들의 목숨 따위가 아니야.”
시간이지.
“놈들의 실패를 알게 되면 창세단이 이쪽으로 바로 올 수도 있어. 하지만 거짓 보고를 해준다면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지.”
타임 어택을 해야 할 던전은 이제 두 곳.
그렇게 얻게 될 이틀의 시간.
“남은 던전을 공략하기엔 충분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