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2화(2/150)
[게임을 종료합니다.]알림과 함께 시야를 가득 채웠던 빛이 사라졌다.
“……어?”
우진은 눈을 떴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레티…… 마을이잖아?”
분명 로그아웃을 했는데?
게임이 종료됐는데?
어째서…….
지겨운 이 풍경이 또 보이는 거지?
그의 뒤에 세워져 있는 분수대도, 거리 곳곳에 깔려 있는 길들까지.
변한 게 없다.
아니…….
너무 많이 변했다.
모든 게 부서져 있었다.
마을은 그야말로 폐허와 다름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콰아아앙―――!!!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맹렬한 폭음이 터졌다.
폭발하듯 그의 뒤에 있던 분수대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으, 으아악!!!”
우진은 몸을 던지며 바닥을 굴렀다.
와르르륵……!!!
부서진 분수대의 잔해가 그를 덮쳤다.
“헉…… 헉…….”
먼지가 솟구쳤고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웅크린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사, 살았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쩌적…… 쩌저적…….
콰가가강……!!
주변의 불타던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우진은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내달렸다.
[키에에에엑―――!!] [케에엑――!!]그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괴성과 같은 포효가 들리자 우진은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마을이…….”
온통 빨갛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고 있었고 마을 곳곳이 불타고 있었다.
다시 들려오는 포효.
그리고 눈앞에 포효의 주인이 나타나자 우진은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때였다.
“머리 숙여!!”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외침.
우진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뒤통수를 감싼 손등 위로 진득하고 뜨뜻미지근한 뭔가가 흘러내렸다.
툭―.
어깨를 부딪치며 떨어진 무언가.
“헉!”
눈을 뜨자 우진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앞에 떨어진 건 박쥐를 닮은 괴상한 마물의 머리였기 때문이었다.
“가고일 놈들! 결국 여기까지 들어온 건가. 모레티가 이 정도라면…… 중앙 대륙은 더 끔찍하겠어.”
우진은 고개를 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갑옷을 입은 노년의 남자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의 앞에 있었다.
“모험가인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잘도 이런 곳까지 들어왔군.”
“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여기까지 들어온 걸 보니 운이 좋은 모양이야. 자네도 사자왕의 보루를 찾아 가는 길인 겐가?”
남자가 우진을 향해 말했다.
“사, 사자왕?”
……그게 누군데?
“하지만 조심하게. 여긴 얼굴 없는 괴물의 영역이니까. 옛날이나 어둠숲이 초심자들의 사냥터였지. 지금은…….”
남자는 주위를 훑으며 그에게 말했다.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거든. 저주받을 뮈렌가(家) 놈…… 머저리 같은 놈들이 헛짓거리만 하지 않았어도 모레티가 이렇게까지 변하진 않았을 텐데.”
‘얼굴 없는 괴물은 뭐고 뮈렌가는 또 뭐야?’
모르는 말투성이었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우진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목숨을 소중히 여기게나. 살아 있다면 언젠가 또 만나겠…….”
“잠시만요!”
“……?”
“도대체 여긴 뭡니까? 그리고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탑은…… 탑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 세계를 아는 사람이다.
그냥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폐허가 돼버린 마을도 마을이었지만, 가장 이질적인 건 바로 탑이었다.
[이블 테일]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대륙 어디든 볼 수 있는 하늘을 치솟는 거대한 탑.
그게 보이지 않았다.
“탑이라니?”
하지만 오히려 그의 물음에 남자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궁탑 말입니다! 100층으로 되어 있는…… 마물들이 사는 탑이요!”
게임 속이든 아니든 이곳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이블 테일]의 세상이라면 분명 탑이 있어야 한다.
“100층짜리 탑……? 설마 반다리우스의 탑을 말하는 건가? 그게 무너진 지 언제인데…….”
“……네? 무너지다뇨?”
우진은 그의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0년 전에 마지막 결사대가 99층을 공략했잖은가.”
노인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투였지만 정작 우진이야말로 무슨 소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 십 년 전?’
우진은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겨우 10층을 공략하고 있는데……?’
“올해가 아케도이나력 87년 아닙니까?”
“87년?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그때로부터 50년이나 지났구먼.”
“50년이요……?”
“잠깐만요.”
그의 말은 뭔가 이상했다.
단순히 날짜 때문이 아니었다.
100층은?
99층을 공략했는데 왜 탑이 무너진 거지?
마지막 층이 아직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키에에에에엑―――!!!]혼란스러운 우진을 깨우듯 상공을 까맣게 채운 가고일 떼들이 당장에라도 내려올 것처럼 포효를 지르기 시작했다.
“서둘러야겠군. 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남자는 우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살고 싶으면 따라오게.”
“으, 으악?!”
노인은 우진의 팔을 잡아당기자, 그의 몸이 너무나 가볍게 일으켜졌다.
‘무슨 힘이…….’
하지만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어느새 노인은 저 멀리 마을을 벗어나 숲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 잠시만요!”
폐허의 밤.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아득해져 갔다.
* * *
“……뭐?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게다가 죽어도 부활을 할 수 있는 세상?”
마을을 벗어나 숲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작은 동굴 안에 머물렀다.
“거참…… 부러운 세상에서 살았군.”
심각하게 말한 우진과 달리 노인은 그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웃을 뿐이었다.
‘하긴. 믿을 리가 없지.’
우진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그곳이 게임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가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복장까지 이래서야…….’
우진은 어색한 듯 자신의 몸을 손바닥으로 훑었다.
낡은 가죽 갑옷과 허리에 채워진 검.
달그락.
그리고 반대쪽 주머니 안에는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포션들이 보였다.
지금 그는 현실의 김우진이 아니었다.
[이블 테일]의 10레벨 전사. [칸]이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분명 로그아웃이 됐다는 알림을 봤는데.’
현실이 아닌 이(異)세계.
게다가 지금 그는 게임 속 캐릭터의 모습으로 이곳에 있었다.
‘거기다 그 마을은 분명 모레티였어.’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우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은 분명 초심자 지역의 시작 마을이었다.
마을 주위의 마물이라고 해봐야 슬라임과 놀 정도였을 뿐인.
그런데…….
‘가고일이란 게 날아다니고 있었어.’
중앙 대륙이나 가야 볼 수 있는 고레벨의 몬스터.
이곳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게임 세계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런 괴물이 도대체 얼마나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들게.”
그때, 노인이 우진에게 뭔가를 건넸다.
향긋하고 고소한 내음.
꼬르륵…….
그러자 우습게도 떨림 대신 허기가 밀려왔다.
“배가 채워져야 싸울 힘도 나는 법이니까. 그게 적이든 자신이든 간에 말이지.”
우진은 꾸벅 머리를 숙이며 남자가 건넨 그릇을 받았다.
“중앙 대륙이 무너지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일세. 지금은 꽤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그릇 안에는 허여멀건한 묽은 스프가 들어 있었다.
물을 부어 양을 늘린 듯 맛도 밍밍했다.
하지만…….
꿀꺽. 꿀꺽.
우진은 게걸스럽게 스프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지?”
노인은 그 모습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
그릇을 비우고 나자 우진은 그제야 숨을 토해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따뜻한 온기가 몸 구석구석 기분 좋게 퍼졌다.
우습지만 별 볼 일 없는 이 스프가 지금껏 먹어본 음식 중 단연 최고로 느껴졌다.
“살아남은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지.”
노인은 자신의 스프를 우진의 그릇에 담아주며 말했다.
“라울이라고 하네.”
“김우…… 아니, 칸입니다.”
우진은 자신의 복장을 다시 한 번 훑으며 이름을 정정했다.
자신이 지금 모습으로 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여긴…… 도대체 어디입니까?”
“아, 그렇지. 자넨 이세계에서 왔다고 했지?”
라울이 장난스레 물었다.
“……정말입니다. 이곳과 똑같은 곳이 있습니다. 물론, 그곳도 정말 제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여튼, 그곳은 아직 탑의 10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10층? 클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정말 행복한 세계로군.”
“네?”
라울은 우진을 바라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래, 여전히 자네가 미친 소리 하는 것 같지만 조금은 장단을 맞춰주지. 나도 반년 만에 해보는 대화거든.”
그가 우진을 바라봤다.
어쩐지…… 해서는 안 될 물음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탑은 홀연히 나타났지. 그리고 많은 모험가들이 그곳에 도전했다네. 그곳에선 믿을 수 없는 보상과 자원을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왕국들은 번창해 나갔지.”
“그런데…… 왜 이렇게 변한 겁니까?”
“그 번영이 영원할 줄 알았던 거지.”
“99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진의 물음에 라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이 이렇게 망한 건 99층 때문이 아니야. 고작 60층을 공략했을 때 이미 세상이 변했는걸.”
“…….”
“탑 속에 있던 마물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
빠득―.
그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우리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네. 우리는 필사적으로 탑을 공략했지. 마물이 쏟아지던 그 순간 공략된 60층에 적혀 있던 비석의 말에 희망을 걸고서 말이야.”
“무슨 말이었습니까?”
우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탑의 100층을 공략하면 어떤 소원이든, 어떤 기적이든 이룰 수 있다.”
꿀꺽.
그의 말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정말이면…….’
마지막 100층을 공략하면,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자신의 소원도 이룰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마지막 100층을 공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마치 우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라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죠?”
“100층으로 갈 방법이 없거든.”
라울은 동굴 밖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지? 하늘에 떠 있는 부유성 말이야. 저게 탑의 100층이야.”
“……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탑의 마지막 층이 하늘에 있다니…….’
우진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라울은 그릇에 물을 담아 남은 스프를 털어 넣고는 두르고 있던 망토로 몸을 감싸며 앉았다.
“이제는 포기해야지. 하늘에 떠 있는 저 탑에 무슨 수로 도달하겠는가. 중앙 대륙의 모든 왕국은 멸망했고…… 이제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사자왕이 만든다는 피신처로 도망치는 것뿐일세.”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붙이려는 듯 몸을 돌렸다.
“식사를 대접했으니 먼저 눈을 붙이겠네. 그 정도는 괜찮겠지? 모래시계가 다 되면 깨워주게나. 2시간 정도일 걸세.”
경계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걸까.
뭐야. 벌써 잠든 거야?’
그는 눈을 감자마자 코까지 골기 시작했다.
“후우.”
정신없던 순간이 지나고, 정적 속에 혼자 남게 되자 그제야 우진은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게임 속에 갇혔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세계라니.
“착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광장에서 관리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R&C 테크놀로지] 매출 1,000억 원 달성!!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CEO TOP 20 선정!!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성장하는 김우진 사단!
한때 각종 언론의 1면을 장식했던 그였다.
밑바닥에서부터 성공가도에 이르기까지.
기사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신화였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자신이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어.’
심지의 기억 속 자신의 존재마저 흔들리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냥 게임을 좋아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부러워했지만, 사실 매일매일이 치열하고 숨 막히던 삶이었다.
그런 그에게 잠깐 동안 하는 게임은 치열한 사회를 잊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허리에 채워진 검에 손을 얹었다.
게임과는 다른 묵직함.
그리고 선명한 날.
진검(眞劍)이었다.
골프, 스쿼시, 클라이밍, 수영 등 현실에서 그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배웠고, 그중엔 검도도 있었다.
제법 큰 대회에 나가본 경험도 있어서, 검을 잡는 것에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이블 테일]에서 전사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만, 지금 허리에 채워진 검을 잡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제대로 쓸 수 있을까?
묵직하고 투박한 감촉은 목검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로그인.”
우진은 라울을 힐끔 보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어떻게 로그아웃이 돼서 이곳에 온 건지도 모르겠으니까.
“크흠, 로그인!”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해봐도 여전히 묵묵부답.
‘그렇게 게임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는데…… 정작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우진은 계속해서 자신을 다잡았다.
“상태창!!”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외쳐봤다.
하지만 역시나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잠을 청하던 라울이 몸을 일으켰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게 뭐냐면 자기 전에 하는 기도 같은…….”
쉿.
하지만 그의 말은 관심 없다는 듯 라울은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입술 위로 가져갔다.
“오늘 밤 쉬기는 글렀군.”
철컥―.
기척을 숨긴 라울이 검을 잡았다.
그러고는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며 우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물일세.”
머쓱했던 우진의 눈빛도 같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