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3)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23화(23/150)
“크학!!!”
“사, 살려줘……!!!”
사방으로 튀는 붉은 핏물이 그의 눈에 가득했다.
푸욱―!! 푹――!!!
흩날리는 핏물을 보니 다시금 이세계로 왔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게임이 아닌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현실.
죽은 시체는 재가 되지 않았고, 시체들 중에 어떤 이들은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해 마치 그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저 귀…….’
우진의 얼굴이 죽은 시체들을 본 순간 굳어졌다.
뾰족한 귀.
남녀 할 거 없이 아리따운 얼굴.
인간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엘프들과 그들을 사냥하는 인간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쓰러진 엘프의 등에 검을 쑤셔 대는 그들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할 수 있을까?’
시그 엘릭을 공략하면서 도달한 25레벨.
그리고 2개의 칭호.
과연 지금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통할지 우진도 알 수 없었다.
“크아아악!!”
그때, 도망치던 엘프의 몸이 고꾸라지며 우진이 숨어 있던 잔해 앞으로 떨어졌다.
“……도…… 도와…….”
입안 가득 흐르는 핏물을 삼키면서 엘프는 우진을 향해 힘겹게 입을 뻐끔거렸다.
“…….”
그 순간, 죽어가는 엘프의 얼굴이 루엔과 겹쳤다.
꿀꺽.
우진은 쓰러진 엘프의 입에 포션을 물렸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린 액체를 마시자 엘프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누구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우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된 거 후회해도 소용없지.’
스르릉―.
그는 고민할 시간에 먼저 검을 겨누었다.
“사자왕의 보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딱히 당신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일단은 한번 떠보기로 했다.
“사자왕? 아직도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는 머저리가 있었군.”
“그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병신 같긴…… 어디 변방 촌구석에서 온 놈인가?”
“잘 들어! 그거 다 지어낸 거짓이라는 말이다! 그런 곳은 없다고!”
“키키킥――!”
남자의 말에 우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럼 라울은?’
사자왕의 보루를 믿으며 행했던 그의 여정은?
“너희가 직접 확인을 했나?”
“……뭐?”
“직접 그게 거짓이라는 걸 확인했냐는 말이다.”
“확인? 크크큭……! 그건 확인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냐! 북벽의 섬이 악마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소문은 이미 대륙에 쫙 퍼졌다고!”
“본 건 아닌 모양이군.”
“헛소리 그만하고 가진 것 모두 내놓고 꺼져.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장기도 모두 뽑아내서 악마들에게 팔아 버릴 테니까.”
“싫다면?”
“그럼 뒈져야지!!”
남자의 몸이 움직였다.
제법 빠른 속도였지만 그렇다고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군.”
우진은 검을 아래로 내려 자세를 잡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의문은 남자의 움직임을 본 순간,
‘할 수 있겠다.’
-로 바뀌었다.
파앗―!!!
우진의 몸이 그를 향해 튕겨 나가듯 돌진했다.
“……피해!!”
뒤에 있던 동료들 중 누군가 소리쳤지만,
푸욱―.
그보다 더 빠르게 우진의 검이 남자의 목을 꿰뚫었다.
“컥!!”
우진이 남자의 가슴을 발로 밀자 단발마의 비명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 채 남자는 뒤로 자빠졌다.
“쿠륵…… 쿠륵…….”
뚫린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몸을 떨며 그는 도움을 바라듯 동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직―.
하지만 내민 그 손을 가볍게 즈려밟은 우진이 나머지 사람들의 앞에 섰다.
‘가볍다.’
휘두르는 검의 느낌이 예전과 달랐다.
칭호의 효과 때문일까?
아니면 레벨 업?
뭐가 되었든 간에 중요한 건 이거였다.
그가 지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무리 속을 헤집고 있다는 것.
“크아아악―――!!”
엘프들을 사냥하던 자들이 우진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쉬이이익……!!
그 순간 한차례 발아래에서 바람이 일었고, 질주하던 그의 몸이 더욱더 빨라졌다.
‘가속도 쓸 수 있고.’
이제 우진은 게임 속에서 익혔던 스킬들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었다.
철컥―.
적의 가슴을 발로 밟아 쓰러뜨리며 속도를 줄인 우진이 허리를 꺾으며 있는 힘껏 검을 뽑았다.
촤자자작―――!!
용천(龍天)이 발동되고, 그의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격이 주위에 있던 적들을 먹어치웠다.
“크아아아악……!!”
“크아악……!!”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들 사이로 우진의 검이 또 한 명의 목을 베었다.
쿵―.
그자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일대는 정적이 흘렀다.
“크륵…… 크륵…….”
“우에엑!!”
여기저기서 무릎을 꿇은 채 피가 섞인 토를 토해내는 자들이 보였다.
“이…… 개새끼!! 이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것 같아!! 우리가 누군지…….”
“몰라.”
서걱―.
그렇게 우진은 쓰러진 자들의 숨통을 차례차례 끊었다.
“알고 싶지도 않고.”
신기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십수 명의 사람들을 죽였지만 우진은 의외로 떨리거나 긴장되지 않았다.
‘설마 살인이 천성인 건 아니겠지만…….’
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웬만하면 잘나가는 사업가로 남고 싶은데.
지금 그가 있는 세상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후우…….”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살을 베는 감촉은 결코 좋지 않았고 너부러져 있는 시체들에 그래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천성은 아닌 모양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곳곳에서 살아남은 엘프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리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모두 죽었을 겁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딱히 뭔가를 바라고 한 건 아닙니다. 그냥 아는 사람이 떠올라서…….”
검을 집어넣으며 우진이 그들에게 대답했다.
“그런데 저들은 누굽니까?”
“모르십니까?”
“모르니까 묻는 거겠죠?”
“아…….”
우진의 되물음에 엘프들은 사냥꾼들이 했던 ‘변방 촌구석’이라는 말을 떠올린 걸까.
“저들은 수집가들입니다. 이종족들을 사냥하는 자들이죠.”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엘프의 눈, 노움의 손가락, 드워프의 뼈…… 이종족의 신체는 악마들이 좋아하는 것들이거든요.”
“악마라니…….”
미궁탑의 마지막 층을 공략하지 못한 채 마물들이 범람하는 세계가 되었다.
라울에게서 들었던 이곳의 상황이…….
‘그게 끝이 아니었나.’
우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커뮤니티에서는 악마가 나온다는 건 못 봤는데…… 아직 미궁탑 초입이라서 그런 거겠지.;’
악마도 마물이니까.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쿠그그그그…….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섬은 여전히 공략되지 않은 채 상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아직은 알아야 할 것들이 많겠어.’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엘프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습니까?”
“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미로로 된 동굴이 있습니다.”
엘프가 가리킨 방향.
우진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핏빛 동굴?”
“오…… 맞습니다. 아시는군요.”
운이 좋은 건가?
엘프들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가리키다니 말이다.
“엘프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 같은데…….”
“왕국이 멸망했는데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진의 말에 그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부가 넓고 숨을 장소도 많아서 은신처로 쓰기에 좋습니다. 나머지 동료들도 저곳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게임에서도 PK 유저들이 마을까지 가지 않고 던전 안에서 생활할 정도니까.’
숨기 좋다는 건, 반대로 습격을 하기도 좋은 장소라는 것이니.
‘동굴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동굴 입구가 무너져서 수집가들이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저희들만 하는 비밀 통로가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비밀 통로?”
우진의 뺨이 가볍게 씰룩였다.
“네. 최하층인 보스 룸 근처까지 갈 수 있는 통로입니다. 부상자들을 그곳에서 치료하고 있거든요.”
엘프는 습격당하는 와중에도 소중하게 품 안에 숨겨놓은 약초를 꺼내며 말했다.
“서두르죠.”
“알겠습니다.”
우진은 엘프들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
‘비밀 통로라…….’
어쩌면 엄청난 걸 알아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 * *
“이곳입니다.”
핏빛 동굴.
지상의 입구에서부터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무수한 갈래로 나뉘어져 있지만, 모든 길은 결국 가장 아래층인 보스 룸으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PK범들은 보스 룸 입구 근처에 매복하여 그곳으로 향하는 플레이어들을 노린다.
그래서 핏빛 동굴의 보스 룸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살육장.’
보스 룸의 입구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같은 자들이 숨어 있는 곳일 뿐이었다.
‘핏빛 동굴의 보스를 잡기 위해서는 그 앞에 숨어 있는 쓰레기들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라는 것이 커뮤니티에 알려져 있는 정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핏빛 동굴은 플레이어들이 스킵하는 버려진 던전이 돼버렸다.
“……분명 그랬는데.”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핏빛 동굴의 보스 룸이었기 때문이다.
‘보스 룸으로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엘프들이 처음에 그를 안내한 곳은 핏빛 동굴의 입구가 아닌 한참 떨어진 곳에 작은 바위틈이었다.
의아했던 것도 잠시, 틈 사이로 들어가자 외길로 된 통로가 보스 룸까지 이어져 있었다.
“고운. 물어볼 게 있는데.”
우진의 옆에 서 있던 엘프가 고개를 돌렸다.
“네. 말씀하시죠.”
“여기까지 오는 통로 말이야. 얼마나 오래되었지?”
“글쎄요. 적어도 500년은 되지 않았을까요. 제 할아버지께 들었던 것이니까요.”
“500년?”
우진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500년 전부터 있던 비밀 통로라면 당연히 게임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비밀 통로에서부터 보스 룸까지 고작 10분 내외였다.
‘이거라면 타임 어택 기록을 대폭 줄일 수 있겠어.’
과연 어떤 반응일까.
벌써부터 궁금했지만, 일단은 다시 돌아가는 것이 먼저였다.
“여깁니다.”
보스 룸의 안쪽으로 난 샛길로 고운이 우진을 안내했다.
‘이런 곳도 있네.’
“핏빛 동굴의 보스인 적색오공(赤色蜈蚣)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구멍을 파서 숨는 걸 좋아하죠.”
안쪽에는 무수히 많은 구멍들이 파헤쳐져 있었다.
“아마도 지면의 냉기로 열을 식히려고 하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뒤편에…….”
고운이 쌓여진 흙더미를 파헤쳤다.
쿠그그그…….
오래돼서 단단하게 굳은 구멍들과 달리 흙더미는 이제 막 쌓아놓은 것인지 쉽게 무너졌다.
“또 다른 공간이 생기죠.”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진은 고개를 들었다.
“……?!!”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