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4)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24화(24/150)
“후우…….”
복도에 긴장 가득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똑똑―.
서류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서 하준은 긴장한 얼굴로 문을 두들겼다.
평상시에 덥수룩한 머리와 체크 남방이 아닌 단정한 슈트가 스스로도 어색한 듯 몇 번이나 복도의 창문에 자신을 비쳐보았다.
그의 가슴엔 이제 개발팀이 아닌 [제2관리팀 GM 한]이란 명찰이 달려 있었다.
‘하…… 혼나는 거 아니겠지?’
교무실로 불려온 학생처럼 한숨을 내쉬며 하준은 문 앞에 섰다.
[제2관리팀 팀장실]‘끙…… 혼나긴 무슨…… 애냐. 털리면 털리는 거지 뭐…….’
“들어오게.”
문이 열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보, 보고드리겠습니다! 팀장님.”
“일단 들어오지 그래?”
“네? 아……! 네!”
하준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꿀꺽.
며칠째 깎지 않은 건지 관리되지 않아 덥수룩한 수염과 피곤으로 움푹 파인 눈.
책상엔 겹겹이 쌓여 있는 커피 잔들뿐만 아니라 재떨이와 술병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회사 안에서 담배에 술이라니…….’
분명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게 지금 눈앞에 남자에게는 허용되고 있었다.
바로 고준철 팀장이었다.
꿀꺽.
관리팀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도 ‘미친개’로 유명한 그를 앞에 두자 하준은 더욱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칸을 직접 게임에서 봤다지?”
흠칫.
하율은 자신을 바라보는 고 팀장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긴장할 필요 없어. 문책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까. 관리팀도 아니고…… 개발팀에 있던 자네에게 꽤나 수고스러운 일을 부탁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도 인력이 필요했거든. 워낙 말이 많았던 사람이라…… 자네처럼 편견 없이 그를 관찰할 사람이 필요했어.”
신기했다.
그의 목소리엔 묘한 신뢰가 있었다.
사원들 사이에서 무섭기로 소문이 난 팀장인데…….
그의 말 한마디에 왠지 신임을 받는 기분이 들어 하준의 어깨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직 애로군.’
그런 그의 모습을 준철이 모를 리 없었다.
‘다른 녀석이 이딴 짓을 했으면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후릅.
잔을 들며 그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한 이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감시할 사람까지 모두 뽑았는데 도중에 명단을 바꾸라니…….’
[이블 테일]를 총괄하는 두 명의 축 중 하나인 한미호 이사.‘조사해 보니 그녀의 사촌 동생이라던데.’
끄나풀이라도 심어두려는 걸까?
고준철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하나 묻지. 그가 관리자 호출이라도 했나?”
아래층에 있을 부하를 족칠까 싶다가 쯧, 하고 혀를 차며 하준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네?”
둘의 시선이 그대로 잠시 머물렀다. 준철은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만났는지를 묻고 있는 거야.”
“아…… 그게……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확인?”
“그의 이력을 살펴봤습니다. 고블린의 둥지에서 말도 안 되는 타임 어택을 성공했더군요.”
“그래서?”
“사실 그 기록을 봤을 때 관리자라기보다 개발자로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둠숲의 3대 던전을 디자인할 때 저도 있었거든요.”
“불가능한 기록이다?”
“네. 그런데 마침 그 사람이 연금술사의 실험실에 있더군요. 그래서…….”
“몰래 던전에 들어가서 훔쳐봤다.”
“하하.”
“……하하?”
콰앙―!!!!
준철이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책상에 내려쳤다.
“지금 장난해? 자네에게 맡긴 건 칸의 행동을 모니터링하라는 것뿐이었어!! 관리자가 아무렇게나 플레이어의 뒤를 밟고 있었다는 게 소문이라도 나면 어쩔 거야!!”
‘한 이사, 이거 나 물 먹이려는 거 아냐? 어디서 이런 생각 없는 애를 꽂아서는…… 비밀리에 조사해도 모자랄 판에 아주 대놓고 관리자들이 지켜본다고 광고를 해버렸잖아.’
준철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한숨을 함께 물었다.
플레이어 칸.
로그아웃 사건 이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는 여전히 [이블 테일]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인물이었다.
만에 하나 커뮤니티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이 일을 가지고 물어뜯을 하이에나들이 천지일 것이다.
“9분 40초.”
“……뭐?”
“플레이어 칸이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공략한 시간입니다.”
꿈틀.
그 순간 팀장의 눈썹이 움직였다.
“9분? 확실해?”
“네. 제 눈앞에서 공략을 했으니까요.”
“미친…….”
준철은 하준의 보고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모레티 광장에서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도와달라고 울던 인간이…….”
므하의 순례자와 함께 오크 성채의 히든 몬스터를 사냥한 건 그렇다 쳐도, 무려 2개의 던전 기록을 갈아 치운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 밖의 일이었다.
‘케르가의 기록이야 대단하다 해도 몇 년 전의 기록이니 순위가 바뀔 수도 있어.’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했다.
‘어떻게 한 거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의 머리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이상하죠? 그래서 제가 가서 본 겁니다.”
“시끄러워. 지금 자네가 한 게 그럼 잘했다고 말하는 거야?”
하준은 노려보는 준철을 향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데 연금술사의 실험실이면 혼자서 공략할 수 없을 텐데? 속성 공격이 필요하잖아.”
쯧, 하고 혀를 차며 그가 하준에게 물었다.
“그게…… 용병을 고용한 모양이었습니다.”
“용병?”
준철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 파티를 하지 않으면 용병을 고용하는 것밖에 없을 테니.”
“그런데…….”
“왜?”
하준은 슬쩍 그의 눈치를 보더니 긴장으로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그냥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용병으로 고른 NPC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NPC가 왜? 어차피 어둠숲에서 고용할 수 있는 용병들이라고 해봐야 다 저렙들인데, 특별한 사항이 있었던가?”
“아마 팀장님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개발팀이 아니면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니까요.”
“얼씨구? 지금 관리팀, 개발팀 편 가르기라도 하자는 거야?”
“설마요. 그게 아닙니다.”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수룩해 보였던 하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흐음?’
준철은 그런 그의 변화에 묘한 흥미가 생겼다.
“루엔 피르바스.”
하준은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그 이름을 말했다.
“그녀는 다음 2차 시나리오 업데이트 중 하나인 [울딘의 부흥]의 메인 캐릭터입니다.”
“……2차 업데이트? 나는 그런 게 있다는 걸 들은 적 없는데?”
“당연하실 겁니다. 개발팀에서도 만들기만 했을 뿐 언제 업데이트가 될지는 모르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대규모 업데이트는 [에단]의 판단하에 시작되게 설정되어 있거든요.”
“흠…… 또 그 A. I인가.”
고준철은 하준의 말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뭐, 좋아. 그럼 만들었다는 말은…… 업데이트 데이터는 개발이 끝났다는 뜻인가?”
“네. 개발 자체는 [이블 테일]이 오픈하는 시점에 이미 3차 업데이트까지 끝났었습니다.”
“3차?”
꿈틀.
그의 말에 준철의 뺨이 씰룩였다.
“그리고 3차 업데이트까지의 모든 시나리오와 데이터 역시 이미 게임 내 클라우드에 설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당장에라도 업데이트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제 생각엔 쉽진 않을 겁니다. 저희가 업데이트를 실행하지는 못해도 진행도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으니까요.”
[이블 테일]의 업데이트는 단순한 버그 픽스가 아니었다.“그야말로 격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될 겁니다.”
그만큼 수많은 조건이 필요했다.
“최소 조건 중 하나가 미궁탑 30층을 공략하는 겁니다. 이블 테일이 오픈하고 5년 동안 이제 겨우 10층을 공략 중이니…….”
적어도 지금까지 걸린 시간만큼 더 걸릴 것으로 개발팀은 예상하고 있었다.
“최소 5년이라…….”
‘그 정도면 플레이어들도 충분히 강해질 시간이야.’
“다음 업데이트의 주요 NPC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문제 될 정도는 아니겠군.”
고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또 보고할 게 있나?”
“어, 없습니다.”
“앞으로는 나대지 말고 조용히 관찰만 해. 알겠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탈칵―.
“후우…….”
팀장실의 문을 닫고 난 뒤에 하준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관리팀에서 무섭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고준철의 눈빛을 잊고 싶은 듯 하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그것도 말씀드렸어야 했나?”
그는 팀장실을 바로 떠나지 못한 채 잠시 머뭇거렸다.
‘에이, 아냐. 아직 어떻게 성장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말할 필요 없지.’
하준은 낮게 중얼거렸다.
2차 업데이트를 개발하던 당시, [에단]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루엔 피르바스의 전직은 모두 72가지였다.
지금처럼 용병에서부터 사냥꾼, 모험가, 정령술사, 뿐만 아니라 도둑, 수배자와 같은 악인까지…….
그녀가 선택할 루트에 따라 앞으로 가지게 될 직업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2차 업데이트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되겠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엘프의 여왕.
* * *
“……여왕님?”
우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희를 수집가들로부터 지켜주신 분입니다.”
허리를 숙인 고운의 앞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서 가볍게 목례를 하는 엘프.
우진을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루엔이잖아?’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그가 기억하는 앳된 모습이 아닌, 눈앞에 그녀는 확실히 성숙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머리색도 완전한 금발이 아니라 옅은 레몬색깔이고…….’
무엇보다 그녀의 기운이 달랐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우진이라도 그녀에게서 풍기는 이질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루엔이 엘프족의 여왕이 되어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건 이것대로 놀랄 일이네.’
“무리하지 마시지요.”
몇몇 엘프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창백한 얼굴.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마혈병은…… 치료하지 못한 건가.’
“이걸 전해 주겠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이 주머니 안에서 시그 엘릭을 사냥하고 얻은 [평범한 포션]을 고운에게 건넸다.
“이 귀한 걸…….”
고운은 포션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귀하다고?’
게임에서는 보지도 못한 룬이 회색 늑대에게서 나오는 세계였다.
그런데 상급도 아니고 고작 평범한 포션이 귀하다니…….
우진은 무슨 소린가 싶었다.
“50년 전 연금술 연합이 괴멸되고 난 뒤로 더 이상 포션 제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걸 아직도 가지고 계셨군요.”
‘그랬군.’
시간이 흐른 미래라고 해서 과거에 있던 게 모두 있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었으니까.
오히려 게임 속에서 흔한 것이 이 세계에선 귀한 물건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다음엔 거래소에서 포션을 좀 준비해놔야겠군.’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오게 될 줄 몰랐던 우진은 고운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루엔은 우진이 건넨 포션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들고서 조금씩 나눠 마셨다.
“어찌 된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내가 실수를 한 건가? 뭔가 말하지 못할 정도의 중요한 일인가?’
아니, 그랬으면 처음부터 이곳으로 자신을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고운이 우진을 이곳에 데리고 왔다는 건, 오히려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터.
분위기에 휩쓸려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강하게.
“말씀해 주시죠.”
그 순간,
루엔의 입술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