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5)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25화(25/150)
“마혈병?”
놀랍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놀라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유하지 못한 건가.’
그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우고 있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우진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치유법은……? 찾았습니까.”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앙 대륙에 있던 무너진 적탑에서 한 가지 의심되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루엔을 살짝 보며 눈치를 살피던 고운이 대답했다.
‘적탑?’
[이블 테일]에도 존재하는 곳이었다.마법사들의 탑이라 불리며 적색 마녀라는 이명을 가진 랭커, 스즈키 하나가 속해 있는 곳.
‘적탑에 마혈병의 치유법이 있다라…….’
썩 괜찮은 정보였다.
우진은 엘프들에게서 얻은 정보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기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게 뭐지?”
“과거 어둠숲에 있었던 흑마법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설마…….’
“얼굴 없는 괴물?”
우진의 물음에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군요. 하긴, 유명한 일화니까요.”
‘또 그놈인가…….’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알다마다. 만난 적도 있는데.”
“정말입니까?”
“어둠숲 서쪽에서였어. 혹시…… 놈을 사냥해야 하는 일이라면 포기해. 당신들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냉정한 말이지만 해줘야 했다.
‘나 역시 놈을 이길 자신은 아직 없다.’
하물며 수집가라는 놈들에게도 당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 괴물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찾는 건 그 괴물이 아닙니다.”
“그럼?”
“그 괴물을 만든 흑마법사 쪽이죠.”
“그자는 죽었잖아?”
우진은 고블린의 둥지에서 보았던 흑마법사의 유골을 떠올렸다.
“네. 하지만 그의 유품이 남아 있죠.”
“유품?”
“적탑의 기록서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뮈렌 가문의 지온 뮈렌이 얼굴 없는 괴물을 만들었다.”
‘흑마법사의 정체가 지온 뮈렌이군.’
라울에게서 흑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게임으로 돌아왔을 때, 우진은 뮈렌가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뮈렌 가문의 형제는 모두 다섯. 지온이라면…… 셋째로군.’
사실 지금까지는 그들 중 누가 흑마법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기록서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온 뮈렌은 얼굴 없는 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3개의 재료를 사용했다.”
고운은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첫째, 불사자의 말뚝. 빛의 신 라신을 따르는 제3교황청에 있었던 성물. 둘째, 주귀의 각인. 사용하는 순간 상대를 옭아맬 수 있는 술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루엔을 바라봤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운은 말을 이어갔다.
“세 번째로 카밀라의 녹옥.”
“카밀라?”
고운이 말한 두 개의 아이템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쉽게 체감이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카밀라를 말하는 거야?”
“맞을 겁니다.”
신록의 카밀라.
원시성령(元始聖靈)이라 일컫는 대륙 7대 영물 중 하나이자 [이블 테일]에서 딱 1번 모습을 드러낸 유니크 몬스터였다.
“설마…… 그자가 카밀라를 사냥한 건가?”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기록서에는 그가 카밀라의 뿔인 녹옥을 재료로 사용했다고 전해질 뿐이니까요.”
“으흠…….”
백색의 털을 가지고 이마에 3개의 뿔을 가진 사습의 모습을 한 카밀라는 온후한 겉모습과 달리 무척이나 호전적인 몬스터였다.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맞다면 그 당시 카밀라를 사냥하기 위해 모인 50명의 탑 랭커들이 모조리 몰살당했었다고 했는데…….’
그중에는 [이블 테일]의 최강자라 손꼽히는 케르가도 있었다.
‘그런 영물을 잡다니…… 지온 뮈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자였던 모양인데.’
물론 게임 속과 이곳 시간의 간극은 50년이나 되었으니 장비나 스킬 등 여러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다.
“중요한 건 카밀라의 시체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지?”
스륵―.
고운은 품 안에서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지도에는 어둠숲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의 장소가 모두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우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거…… 월드 맵이잖아?’
그가 놀라는 이유는 당연했다.
현재 [이블 테일]의 지도는 30%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임에선 어둠숲과 중앙 대륙 이외에 대부분의 지역은 아직 검은 그림자로 가려져 있어.’
그런데 고운의 지도는 그 검은 영역까지 모두 그려져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걸 보게 되었는걸.’
“카밀라의 시체가 있는 곳은 어둠숲과 중앙 대륙 사이에 있는 특이 던전, 다린 호수입니다.”
우진은 고운이 손가락으로 짚은 장소를 보았다.
“다린 호수…….”
[이블 테일]엔 없는 지명이었다.“그럼 여기가 어둠숲인 건가?”
호수를 포함하고 있는 검은색으로 된 넓은 숲 지역에 대해서 묻자 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과 이곳의 지형이 조금씩 달라.’
애초에 어둠숲과 중앙 대륙 사이엔 호수가 없었다.
그 순간, 우진은 카히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던전을 생성한다는 균열석.
‘50년의 시간 동안 균열석으로 인해 새로운 던전이 생성된다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이 지도. 내가 가져가도 될까?”
그의 물음에 고운이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하나밖에 없는 거라…….”
우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그는 지도 외곽에 적혀 있던 글자들을 읽었다.
‘얼음 군도, 드워프의 방벽, 귀신 들린 항구…….’
모두 게임 내에선 아직 가려진 미개척 지역에 있는 장소들이었다.
‘지형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알아둬서 나쁠 건 없겠지.’
어쩌면 게임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몰랐기에, 그는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지도를 천천히 훑었다.
“카밀라의 시체를 찾을 수 있다면 여왕님의 병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고운의 이야기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었다.
“믿을 수 이야기인가?”
다린 호수란 곳에 정말로 카밀라의 시체가 있는가.
그리고 그 시체로 정말 루엔의 병을 고칠 수 있는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믿어도 돼요.”
그때였다.
엘프의 무리 뒤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우진의 키만큼 늘씬한 엘프들과 달리, 그의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였다.
“……아이?”
“19살. 이래 봬도 성인입니다.”
놀랍게도 여자의 몸이 천천히 떠올라 우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니, 그보다 아주 조금 더 위로 올라왔다.
내려다보듯.
‘붉은색의 로브.’
우진은 여자의 정체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이루린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우진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는 정도로 인사를 끝내고서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적탑의 마법사인가?”
“네. 그랬었죠.”
그녀의 목소리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저희가 적탑을 찾았을 때 만났습니다. 저희의 상황을 듣고 동참하기로 해주셨죠. 마혈병에 대한 정보도 그녀가 찾아준 것입니다.”
고운은 우진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말을 전했다.
“5등급 마법사이고 아마도…… 적탑의 유일한 생존자일 겁니다.”
유일한 생존자.
그녀가 어째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대륙 전역이 멸망 직전이었으니 적탑이라고 남아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밀라에 대한 정보는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저의 스승님께서 마혈병에 대한 연구를 하셨었죠. 가장 좋은 건 살아 있는 신록의 피를 마시는 것이지만…… 지금은 대안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리고?”
신뢰를 주기 충분한 말투였지만, 아쉽게도 우진에겐 통하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는 일만큼 그가 잘하는 일도 없었으니까.
“……네?”
“한 가지 빼먹었잖아. 카밀라의 시체가 호수에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그 순간, 이루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겠지. 뭔가 켕기는 게 있겠지.’
엘프들의 사정을 듣고 동참했다고?
마법사란 족속은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족속들이 절대 아니다.
위력은 대단하지만 컨트롤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 직업들보다 난이도가 높아 수가 적었다.
힐러와 함께 귀족 클래스라고 불리는 마법사.
당연히 콧대도 높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열에 여덟은 그렇지. 게임에서도 그런 대우인데 이곳이라고 별반 다르겠어?’
몸을 띄워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에서부터 충분히 그녀의 인성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건 제가 스승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과거에 스승님께서 지온 뮈렌을 가르치셨던 적이 있다 하셨습니다.”
“……뭐?”
한마디로 말해서, 그녀의 스승이 지금 어둠숲을 돌아다니는 괴물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는 뜻이다.
꽈악.
그 순간 라울의 죽음이 떠올라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 없는 괴물이 지온 뮈렌의 작품이라는 걸 아신 스승님께서는 5년 전 어둠숲으로 떠나셨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모습으로 이루린은 우진에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당신 스승이 누군데?”
“……라탄 그레이.”
맙소사.
우진은 그 이름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이름은 그도 알고 있었다.
현재 [이블 테일]에서 적탑의 수장이 바로 라탄 그레이였기 때문이다.
‘말이 되지가 않아.’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공식 홈에 적힌 정보에 적탑의 수장은 노마법사라고 했었어.’
라울은 미궁탑이 소환된 지 50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이곳에 19살짜리 제자가 있다?
라탄 그레이가 엘프와 같은 이종족이 아닌 이상…….
‘그 시대부터 살아 있으려면 다른 방법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밖에 없어.’
“생명력을 증가시키는 방법…….”
그 순간, 우진의 머릿속에 하나가 떠올랐다.
‘흑마법사의 스킬인 생명력 흡수.’
게임 내에서는 상대방의 HP를 빼앗아 회복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현실인 이곳에선 생명력을 흡수하는 행위가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어.’
가령, 수명 연장과 같은 효과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적탑의 수장이 흑마법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만약 라탄 그레이가 지온 뮈렌에게 가르친 것이 흑마법이라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의 예상이 사실이라면, 지금 대륙에 가장 거대한 마법협회인 [적탑]이 흑마법사의 손아귀에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긴장할 필욘 없어.”
생각에 빠졌던 우진이 이상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봤다.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엘프들.
“너에게 딱히 적의를 가지지도 않아. 스승의 잘못이 너의 잘못은 아니니까.”
엘프들은 그의 말에 그제야 조금 표정이 풀어졌다.
그들에게는 어쨌든 이루린이 유일한 희망이니까.
불화를 만들고 싶진 않을 것이다.
우진 또한 이루린과의 관계가 중요하기도 했고.
‘정말로 루엔의 마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니까.’
“그럼 이제 다린 호수로 가면 되는 건가?”
“그게…… 문제가 있어요.”
우진의 말에 이루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
“지온 뮈렌이 카밀라를 호수 아래에 숨기면서 결계를 걸었던 모양입니다.”
“결계?”
“네. 저주 계열의 마법 같은데…… 그걸 해제하지 못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고운이 그녀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저주?”
그 순간,
우진은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풀며 그들에게 보였다.
“그거라면 내가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순례자의 십자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