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6)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26화(26/150)
“……꼭 이런 걸 해야 하나요?”
“해서 손해 볼 게 없으니까. 일단 지금까지 쫓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건 후발대가 없다는 거잖아.”
우진은 호수로 출발하기 전에 조금 전 수집가들이 있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다면 챙기는 게 당연하지.”
그는 시체의 주머니와 가방들을 샅샅이 뒤지며 이루린에게 말했다.
“자.”
우진은 시체에서 찾은 단검을 그녀에게 건넸다.
“전 마법사인데요.”
“5등급 마법사라면서? 네 마력이 샘처럼 계속 솟아나는 게 아니라면 필요할걸.”
게임에서 5등급 마법사는 50레벨이 되어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얘기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녀의 실력은 이제 막 미궁탑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
사실 큰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호수에서 뭐가 나올지는 너도 모른다면서? 누구를 보호해 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냐.”
“…….”
그녀는 우진의 말에 낡은 단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없이 그것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어?”
그런 뒤 그녀가 지팡이를 잡자, 수집가들의 시체가 떠올라 한 곳에 모였다.
“이러면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겠죠.”
이루린이 손수 자신의 앞에 떨어진 시체의 장비를 뒤지며 말했다.
‘자존심만 있는 녀석은 아닌가 보군.’
우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되도 안 되는 실력에 콧대만 높은 마법사라면 차라리 혼자 던전에 가는 게 낫다.
던전 공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난이도나 플레이어의 실력이 아니니까.
바로,
‘분열’이었다.
엄청난 격차라면 모를까, 서로의 합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게 마련이었다.
최소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할 줄 알고 굽힐 줄 아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법은 편리하군.”
“생각이 있으면 배우시면 되죠.”
“마법을? 마력이 없는데 어떻게?”
“마력이 없다뇨? 도대체 어디서 왔길래 마력 체계에 대해서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지?”
우진의 말에 이루린은 뒤지고 있던 시체에서 손을 떼며 그를 바라봤다.
“마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단지 마력을 담아내는 그릇의 차이일 뿐. 마력을 느끼기만 하면 누구라고 마법을 쓸 수 있죠.”
‘마력을 모두가 쓸 수 있다고?’
우진은 그녀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연금술사의 실험실에서 시그 엘릭에게 낙인을 썼을 땐 마력이 없어서 사용 불가능이라고 했었는데…….’
이세계는 다른 걸까.
우진은 그녀의 말에 뭔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움이 되질 못해서.”
두 사람을 보던 루엔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녀는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지만 마혈병으로 제대로 된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게다가 정령들을 소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사실상 전력으로 따지자면 그녀는 전력 외에 가까웠다.
‘게임에서는 단계별로 마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걸까?
상태로만 본다면 오히려 지금의 그녀는 게임 속 루엔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이번 기회에 신록의 피가 마혈병의 치료제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이곳의 루엔뿐만 아니라 게임 속의 루엔 역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시 성령의 시체를 찾아야 한다.
“호수로 가는 길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고운이 시체에서 빼앗은 갑옷과 검을 착용하면서 말했다.
검을 잡은 모습이 어색했다.
한눈에 봐도 그가 전투에 익숙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호수로 가는 인원은 이렇게 넷인가.”
우진과 고운, 그리고 이루린과 루엔.
‘그나마 싸울 수 있는 건 얘 하나뿐이겠군.’
“……?”
이루린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진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해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는 우진이 내민 손을 잡았다.
거칠고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 * *
핏빛 동굴을 지나 산등성을 타고 일행은 계속해서 이동했다.
“괜찮나?”
“네. 버틸 만해요.”
우진은 계속해서 루엔의 안색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삼 일째가 되었을 때쯤 일행 앞에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조심하세요. 이 입구부터 결계가 쳐져 있습니다.”
이루린이 가리킨 방향엔 알 수 없는 장식이 덕지덕지 붙은 기다란 막대가 바닥에 꽂혀 있었다.
“일단 이걸 해제해야 하겠군.”
우진은 키하리에게서 받은 순례자의 십자가를 막대기 앞에 가져갔다.
우우우웅…….
십자가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자 막대기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입구를 막고 있던 막대기가 사라지자, 연녹색이었던 호수의 색깔이 파랗게 변했다.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거야. 저주 해제는 하루에 한 번뿐이라서.”
“엑? 정말요? 나중에 또 결계가 나오면 어쩌죠?”
“하루 자야지.”
“……아하.”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호수 속으로 걸어가는 우진을 보며 이루린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도 채 오지 않는 깊이의 호수는 커다란 웅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쉽게 찾을 수 있겠는데요?”
고운은 호수의 물을 발로 찰방거리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예요.”
선두에 선 이루린은 마법사들만 볼 수 있는 표식이라도 있는 듯 호수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더니 한 지점에서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찾았다.
철컥―.
레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쿠그그그그그…….
바닥이 흔들리더니 놀랍게도 싱크대처럼 호수의 물이 그 안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이 빠진 호수 밑으로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쉽지 않겠네요.”
고운은 입맛을 다시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바라봤다.
“불이 필요할 것 같은데.”
파르르…….
이루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바닥 위로 작은 빛 무리를 만들었다.
계단 아래로 들어가자 일행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고 말았다.
“욱…….”
벽면으로 빼곡하게 동물과 마물들이 박제되어 있었고, 안에 있어야 할 내장들은 그 아래 유리병에 담겨져 있었다.
“뭐가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군.”
우진이 그것들을 보며 짧은 감상을 말했다.
“너, 너무 걱정 마세요.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죽은 거니까…….”
‘안심시키기엔 목소리가 너무 떨리는데…….’
이루린은 일행 중 가장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지팡이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죽은것들이지. 그런데 그래서 더 불안한 거야.”
“네?”
“여긴 흑마법사가 쓰던 연구소니까.”
사자(死者)와 흑마법.
너무나 찰떡인 조합이 아닌가.
‘게다가 결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건…….’
다른 마법들도 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가령…….
[캬아아아악―――!!]복도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쯤 양쪽 벽에 박제되어 있던 마물들이 입을 벌리며 포효를 하기 시작했다.
위로 솟아나 있는 송곳니와 길쭉한 턱.
트롤이었다.
“……!!!”
갑작스러운 마물의 등장에 놀란 것도 잠시,
“비켜!”
우진은 본능적으로 왼쪽 벽에 있던 트롤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콰직―!
놈의 목에 검을 박아 넣고서 있는 힘껏 옆으로 그었다.
[크아아아――!!]트롤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시체가 무슨……!”
하지만 우진은 여지없이 녀석의 목을 잘라 버렸다.
“프라메라!!!”
곧이어 이루린의 지팡이에서 불꽃이 일었고, 나머지 트롤이 그대로 시커멓게 통구이가 되었다.
마법사의 스킬 트리 중 화염 마법 2번째 줄에 있는 공격 마법이었다.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쓰다니. 등급은 낮아도 재능은 뛰어나군. 적탑의 수장이 제자로 들일 만해.’
우진은 트롤의 시체 앞에 서 있는 이루린을 바라봤다.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영창이 필요하다.
영창의 길이는 고위 마법일수록 길고, 그것을 짧게 줄일 수 있느냐가 마법사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작곡을 하듯, 공식을 풀듯 영창의 줄임은 플레이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마법사란 클래스의 어려움이자 대우를 받는 이유기도 했다.
“거부감이 들진 않나 보지?”
게임처럼 마물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끔찍하게 타버린 트롤을 가리키며 우진이 말했다.
“네. 사람도 아니고 마물인걸요. 마물의 시체는 해부학 시간에 질리도록 봤어요.”
이루린은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
어쩌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 * *
덜덜덜…….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이루린의 어깨.
조금 전 우진의 기대는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었다.
‘동요하지 않긴. 개뿔…….’
하긴, 눈앞에 저런 게 보인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통로를 지나자 나타난 거대한 공동(空洞).
그 안에는 온갖 실험체들이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잘린 오크의 머리부터 노움의 손가락, 날개가 잘려 나간 요정과 드워프의 이빨 등등…….
실험실 안에 쌓여 있는 시체와 잘린 사지들은 수집가들도 놀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패닉에 빠진 것이 아니다.
“스, 스승님…….”
시체 밭 맨 안쪽에 앉아 있는 한 명.
그곳엔 적탑의 수장이었던 라탄 그레이가 있었다.
실험대처럼 생긴 커다란 판 앞에 앉아 있는 그는 생전 모습 그대로였지만, 여느 시체들과 다르지 않게 생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진정해.”
우진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지만 떨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멈춰! 저건 더 이상 네 스승이 아냐.”
당장에라도 달려갈 것 같은 이루린을 우진이 막았다.
“제. 자. 여.”
그때였다.
가까스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이루린의 틈을 헤집는 목소리가 들렸다.
퉁― 퉁― 퉁―.
어두운 방에 불이 켜졌다.
끼릭…… 끼리리릭…….
공동의 중앙까지 불이 켜지자, 라탄 그레이가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저…… 저기 보이십니까?”
고운이 라탄의 뒤를 가리켰다.
실험대처럼 생긴 판 위에 놓여 있는 흐릿한 무언가.
카밀라의 시체였다.
“정말로 있었다니……. 살았습니다! 이제 괜찮을겁니다! 여왕님!”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고운의 뒷덜미를 잡아 당기며 우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정신 차려!!!”
모든 곳에 함정이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진은 흥분한 그들을 자제시키기 위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제. 자. 여.”
그 순간 라탄이 다시 한번 이루린을 불렀다.
“나. 나는…… 속…… 속…… 속았…… 다. 부. 디 나…… 나를…….”
라탄 그레이가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이루린을 향해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손을 뻗었다.
“도…… 와…… 다오.”
“이봐. 설마 저 개소리를 믿는 건 아니겠지?”
우진은 이루린을 바라봤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을 보니 어쩐지 불안해졌다.
“그래, 언제나…… 너를…… 딸처럼 여겼지. 이리…… 오거라. 이루린.”
“스, 스승님……!!”
이루린의 발이 결국 움직이고 말았다.
“젠장!!”
말릴 새도 없이 이루린이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 래!!! 그러…… 니…… 이제 내…… 피와…… 살이 되…… 어…… 주…… 키…… 키륵……! 키르르라…… 카아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라탄의 몸이 기괴하게 꺾였다.
쩌적……! 쩌저적……!!
입꼬리가 귀 아래까지 갈라지더니 벌어진 입이 그대로 이루린의 머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퍼엉―――!!!!
그때였다.
놀랍게도 이루린에게 달려들던 라탄의 머리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
[컥…… 커컥…….]머리 반쪽이 날아간 채로 라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하나 남은 눈알을 굴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님. 무슨 개소리를 하세요.”
동요할 거라 생각했던 동료들의 걱정에 보란 듯이,
화르륵……!!
이루린의 지팡이에서 맹렬한 불꽃이 일었다.
“한 번도 저를 딸같이 여긴 적 없잖아요.”
콰앙!!
콰가가가강―――!!!
지팡이에서 소환된 화구(火球)들이 화살 모양으로 변하더니 라탄을 향해 쏟아졌다.
“이제야 만났네. 적탑을 망하게 한 쓰레기 새끼.”
[자…… 잠깐…….]너덜너덜해진 시체 위로 다시 한번 수십 다발의 불화살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