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0)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30화(30/150)
“와…….”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우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안에는 마도구뿐만 아니라 각종 아티팩트와 장비들이 가득했다.
상태창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장비들의 효능을 알지는 못하지만, 한눈에 봐도 평범한 것들이 아니었다.
“조심하세요. 이것들 모두 저주가 걸렸으니까요.”
“저주?”
“네. 아무래도 흑마법의 재료로 쓰려면 저주 걸린 물건들이 필요하니까요.”
이루린의 말에 우진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혹시 룬도 있으려나?’
저주받은 물건들이야 그렇다 쳐도 이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것은 역시 룬이었다.
장비는 결국 교체하게 되면 효과가 사라지지만 룬의 효능은 영구적인 것이었으니까.
“으흠…….”
하지만 아쉽게도 상자 안에는 룬은 없었다.
“……이건 뭐지?”
그 순간, 우진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사과처럼 생긴 커다란 보석이었다.
“용마석이네요.”
이루린이 우진의 손에 들린 보석을 아는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적탑의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던 건데…… 사라져서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역시나. 여기로 빼돌린 모양이네요.”
“이게 뭔데?”
“한때 마법사들에게 꿈의 보석이라고 불리기도 한 물건이에요. 마력의 감응도를 높여주는 물건이죠.”
“꿈의 보석? 그렇게 대단한 거면 네가 쓰지 그래?”
우진의 물음에 이루린은 고개를 저었다.
“한때였으니까요. 이후에 용마석보다 좋은 게 수두룩하게 나왔거든요. 뭐, 지금이야 이것도 구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이거예요.”
그녀는 용마석을 들어 표면을 만졌다.
우우웅―
그러자 용마석의 표면에 붉은 점이 두 개 나타났다.
“이건 혈점이라고 해요. 최대 열 개까지. 혈점이 많을수록 순도 높은 용마석이죠.”
“두 개뿐인 건…… 별로 좋진 않은 물건이군.”
“맞아요. 게다가 용마석을 먹으면 감응도를 높여주는 다른 물건들을 쓸 수 없거든요.”
그녀는 [용마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요정수를 마셨어요. 요정의 날개에서 얻을 수 있는 가루로 만든 건데 하급 용마석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죠.”
이루린이 살짝 어깨를 으쓱 올렸다.
‘요정의 날개…… 요정수…….’
우진은 그녀의 말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50년 전이라면?”
“……네?”
“50년 전이면 이것도 쓸 만할까?”
“으음.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보질 못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때쯤이면…….”
이루린은 살짝 턱을 괴며 말했다.
“다들 가지려고 난리 날걸요?”
“됐어. 그럼.”
우진은 그 대답에 말없이 주머니 안에 [용마석]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루엔은?”
그러고 보니 창고 안에는 그녀가 없었다.
“루엔 님은 카밀라의 상처를 봐주고 계세요. 창고 안쪽에서 소환 의식에 사용되었던 대규모 마법진을 발견했거든요.”
“마법진?”
“네. 루엔 님께서 마법진의 술식을 바꾸고 계세요.”
“그걸 왜?”
“카밀라의 치료를 위해서요. 음…… 엘프의 마법은 저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직접 보시겠어요?”
* * *
“이, 이게 다 뭐야?”
놀랍게도 실험실 안쪽엔 마치 숲을 방불케 할 정도로 커다란 나무가 자라 있었다.
그리고 나무를 중심으로 자라나 있는 풀들.
시체가 우글거리던 던전 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일어나셨군요!!”
루엔이 그를 보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카밀라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살펴보고 있었어요. 다행히 여기 고위급 마법진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죠.”
중앙에 자라나 있는 나무 아래엔 커다란 마법진이 보였다.
‘저건…… 고블린 둥지에서 봤던 것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우진은 슬쩍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바라봤다.
커다랗게 자라난 나무 아래에 괴로워하던 신록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터로 잡기엔…… 좀 그렇지만, 여기만큼 안전한 곳도 없으니까요. 몸을 회복하는 동안 머물기엔 충분할 거예요.”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들이 쌓여 있는 곳 밑에 생명의 나무라…… 묘한 풍경이긴 하네.”
“이거 마시세요. 카밀라의 피로 만든 치료액이에요. 몸이 조금 나아지실 거예요.”
루엔이 작은 유리병을 그에게 건넸다.
‘흠?’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
‘어디서 맡아본 것 같은데.’
코끝을 간질거리는 풀내음을 맡으며 잠시 갸웃거리던 우진은 곧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치료액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마법진을 바꾸고 있다며?”
“네. 저도 몰랐는데 이 마법진…… 엘프의 것이에요.”
“……이게?”
우진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마법진을 바라봤다.
“엘프들은 중앙 대륙에 있던 게 아니었나?”
50년 전인 게임 속에서 대부분의 엘프들은 중앙 대륙에 숨어 지내고 있었으니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원래 울딘이 세운 엘프의 왕국은 어둠숲에 있었거든요.”
“그래?”
“200년 전 금정 전쟁(禁精戰爭)이라 불렸던 사건이 있었어요. 어둠숲이 어둠숲이 아닌 엘프의 땅이었을 때 일어난 전쟁이죠.”
루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인간이 울딘을 습격하고 엘븐 하임을 불태웠던 전쟁이요.”
“엘프가 멸망한 이유가 그 때문인 건가.”
그녀의 시선이 우진에서 이루린에게로 옮겨졌다.
차가운 눈빛이 닿는 순간 이루린의 어깨가 본능적으로 떨렸다.
더 이상 그녀는 병에 걸린 약자가 아니다.
99레벨.
두말할 것 없이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그 때문에 어둠숲 곳곳엔 생각보다 엘프의 잔해가 많이 남아 있어요.”
루엔은 주위를 훑었다.
“이곳도 엘프의 유적 중 하나에요. 흑마법을 연구하는 곳으로 변해 버렸지만.”
차가운 눈빛이었지만 살기는 없었다.
오히려 슬픔이 더 강했으니까.
“그나저나 마혈병은 모두 치료된 건가.”
“네. 사실 그동안 이것저것 치료제를 찾느라 고생했었는데…… 궁극적으로는 카밀라의 피만 있었어도 충분했었을 것 같네요.”
‘카밀라의 피만으로 충분하다?’
“운이 좋았던 거예요. 사실 카밀라의 시체에서 뽑은 피였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거든요.”
이루린의 말에 우진은 잠들어 있는 신록을 바라봤다.
“혹시 피를 나도 가져갈 수 있을까?”
이곳에서 신록의 피를 가져가면 루엔의 마혈병을 바로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불가능해요. 신록의 피는 신록이 받아들인 자에게만 효과가 있거든요.”
“하지만 라탄은 신록의 피를 강제로 썼잖아?”
“그래서 괴물이 되었죠.”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우진은 이루린의 대답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제 여왕님의 병이 치료되었으니 다시 왕가를 일으키실 때입니다.”
고운이 가슴에 손을 얹어 예를 갖추며 루엔에게 말했다.
“과연…… 세상이 죽어가는 이 시점에서 왕가의 의미가 있을지…….”
고운은 희망 섞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지만 루엔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사자왕의 보루로 가는 건 어때?”
“네?”
“나를 도와주셨던 분도 그곳에 가려 했다.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던데…….”
그 순간, 우진은 수집가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놈들은 그저 헛소문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라울은 단순히 헛소문에 휘둘릴 사람은 아니었다.
“정말 그곳이 있는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기댈 곳이 없으면 무너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기대마저 무너지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지금 무너지는 것보다는 나중에 무너지는 게 낫지 않아?”
루엔은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사자왕의 보루는 북벽의 섬에 있다고 했어.”
그러고는 이루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함께 가지 않으실 건가요?”
“난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
“고향으로…… 가십니까?”
“아니. 원래 내가 있던 세상.”
무슨 소리인가 싶은 그들의 표정.
“다른 세상에서 오셨단 말인가요?”
“맞아. 뭐…… 설명하기엔 복잡한 일이야. 이곳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상이지. 한 50년 전쯤의 세상이랄까.”
그리고 더욱더 구겨지는 얼굴들.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믿기 어려운 거 알아. 사실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알아가는 중이니까.”
이루린은 우진에게 뭔가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내 곧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 말을 믿어?”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우진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당신이 쓴 낙인. 정황이 없어서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고대술 중 하나니까요.”
“사르반딘에 대해서 알고 있나?”
고블린의 둥지에서 얻은 그의 힘.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힘이었다.
“으음…… 우리가 있는 이 땅, 아케도니아가 세 명의 신과 최초의 인간, 사르반의 피로 이뤄졌다는 걸 아시나요?”
파르타의 도서관에서 읽었던 3권의 책들 중 첫 번째인『세상의 빛』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우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르반. 그것은 의지라고 불리는 힘이에요. 무형이지만 무형이 아닌…… 여러 형태로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힘.”
이루린은 말을 이어갔다.
“그 힘에 닿은 인간들 중 일부는 신을 다루기도 하고 혹은 신을 창조하기도 했어요.”
“혹시…… 사르반트를 말하는 건가.”
“아시네요?”
이루린이 그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맞아요. 그리고 그 의지가 비단 인간에게만 닿은 것은 아니에요. 사르반의 의지에 닿은 동식물을 가리켜 사르반딘이라고 해요.”
“아…….”
파르타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사르반딘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신을 부리려던 이민족인 사르반트를 벌하기 위해 신이 만든 사자라고도 하죠. 단 3마리에 불과한 사르반딘에 인해 사르반트가 멸망했거든요.”
“3마리라…… 아직 둘이 더 있다는 건가? 혹시 나머지가 뭔지 알아?”
이루린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진 저도 몰라요. 적탑의 대도서관이 남아 있었었다면 모를까. 모두 불타 버려서요.”
‘적탑이라…….’
“어떻게 고대술을 익혔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하세요.”
“왜지?”
“사르반은 의지예요. 그 의지에 닿은 자들은 강한 힘을 얻지만 결국 그 의지에 모두 잡아먹혔다고 했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고블린의 둥지에서 [혼각술]을 얻어 사르반딘의 영혼을 불러냈을 때도 그의 육신을 먹어치우려 했었으니까.
“명심하지. 그래도 덕분에 궁금했던 걸 알 수 있었어. 고맙다.”
“별말씀을요.”
“여왕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배낭을 멘 고운이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디 가려고?”
“남아 있는 엘프들을 이곳에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서요.”
“이동을 한다 하더라도 일단은 신록을 치료하고 난 뒤에 생각하려고요.”
우진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참, 드릴 게 있어요.”
“음?”
고운이 먼저 떠난 후, 카밀라의 숨소리만 들리는 정적을 깨고 루엔이 말했다.
“받으세요.”
카밀라가 잠들어 있는 마법진에서 뭔가를 꺼낸 그녀가 우진의 앞에 섰다.
“이게 어떻게?”
놀랍게도 그건 라탄과의 전투에서 완전히 박살 난 [현자의 돌]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라져 있었다.
마치 붕대로 감싼 것처럼 조각조각 난 돌들을 나뭇가지들이 감싸고 있었다.
“다시 만들었어요.”
“뭐?”
이루린의 대답에 우진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이걸 네가?”
“정확히는 카밀라의 영력으로 소환진을 발동시키면서 부서진 돌에도 생명을 깃들게 한 거지만요.”
“생명이라니 무슨 소리야. 골렘은…….”
연금술로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한데.
쿵― 쿵― 쿵―.
“……?!”
놀랍게도 돌 안에서 심장 박동과 같은 떨림이 느껴졌다.
“자, 잠깐! 이거…….”
우진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진짜 살아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