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36화(36/150)
“이거……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진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조금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초심자 마을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말이야.”
“크큭, 모름지기 등잔 밑이 어둡다잖습니까.”
그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모레티였다.
[이블 테일]의 모든 시작점이자 초보자들만 있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마을.하지만 이런 곳에 은밀하게 암시장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끼이이익―.
페론이 그를 이끌고 온 곳은 모레티 마을 광장 안쪽에 있는 허름한 가게.
한 달 넘게 광장에 서 있었던 그조차 그저 마을 NPC의 집이라고 생각했지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뭐…… 그땐 내 문제로 정신없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시오?”
건물 안에는 중년의 NPC가 앉아 있었다.
잡화들이 책장에 놓여 있었지만 딱히 알려진 상점처럼 공개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은 아닌 듯 보였다.
“여기.”
페론이 품 안에서 작은 씨앗 같은 것을 꺼내어 그에게 건네자 그가 그것을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와그작―.
그게 뭔지 모르지만 표식이 될 만한 증거는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고, 남자가 페론에게 눈짓으로 뭔가를 물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동료야. 앞으로 종종 보게 될 테니까.”
남자는 우진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르륵―.
그리고 바닥을 들추자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재밌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우진은 조금 전 상황이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그냥. NPC들은 그냥 게임 속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플레이어들이 만든 일들에 NPC가 관여하고 있으니 신기해서.”
“그게 이블 테일이 인기 있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 NPC들 말이죠.”
우진의 그의 말에 루엔을 떠올렸다.
이세계에선 진짜 살아 있는 존재지만 이곳엔 그저 만들어진 NPC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페론의 말처럼, 진짜 게임 속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말이다.
“단순히 퀘스트 제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인가.”
우진은 다시 한번 곱씹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오랜만이군. 페론.”
계단 아래엔 제법 큰 공간이 있었고, 그곳엔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NPC인가?’
플레이어인지 아닌지 쉽게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곧은 자세로 서 있는 노인이 페론에게 물었다.
“어쩐 일이지?”
“경매에 올릴 물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자네 건가?”
“아닙니다. 의뢰를 받아서 온 겁니다.”
노인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페론을 보며 우진은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판매자의 신원이 확실해야 물건을 올릴 수 있네만.”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물건을 보시면 마음이 달라지실 겁니다.”
“흐음?”
그 순간 페론이 품 안에서 [용마석]을 꺼냈다.
“자, 자네 이걸 어디서……?”
“의뢰자가 누군진 모릅니다. 저희도 몇 번이나 건너건너 받은 물건이거든요.”
“……위험한 물건은 아니겠지.”
“그것도 저야 모르죠. 그냥 암시장에 물건을 대신 올려두라는 의뢰일 뿐이니까요.”
노인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고서 페론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뭐, 어차피 나머지는 큰손들이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녀석이 뭘 안다고요.”
“흐음…… 경매 대금은?”
“제가 받아서 파르타에 있는 보관소에 맡기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의뢰자에게도 이 사실은 암시장에 알리겠다고 언질해 둔 상태구요.”
페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노인에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괜히 날 잡으려 하지 마시고 궁금하면 그 때를 노리십시오.”
“……알겠네. 방식은?”
“경매로 할 겁니다.”
“조금 기다리게. 중앙 대륙 쪽에 연락을 보내고 참가자들이 모이면 바로 시작할 테니.”
노인은 황급히 몸을 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잘 둘러대는걸.”
“살려면 당연한 일이죠. 경매가 끝나면 낙찰을 받은 놈이든 못 받은 놈이든 모두 저희를 노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돈을 파르타로 옮긴다고 설명한 것이었다.
“나는 시키는 것만 한다. 그저 운반책 정도가 딱 좋은 법이죠.”
우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경매가 시작될 걸세.”
생각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노인이 그들을 다시 찾아왔다.
* * *
“이거 안 돼.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모니터에 뜬 붉은 경고창을 가리킨 남자가 시트의 등받이를 뒤로 밀며 말했다.
퉁― 퉁― 퉁―.
마치 대기업의 회의실처럼 엄청난 규모의 방에 순 차적으로 불이 들어왔다.
회의실 안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홉 명은 그의 말에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시뮬레이션하고 실전은 다르니까…… 한 번 더 트라이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섣불리 죽었을 때 아이템 드랍을 방지해 주는 수호의 보주도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
“그래, 경수야. 장비야 잃지 않을 수 있다 쳐도 경험치를 떨구는 건 치명적이야. 언제까지 우리가 항상 1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저번 트라이 실패로 넌 렙 다운됐잖아. 그것부터 다시 복구하는 데 집중해.”
“……알겠습니다.”
말을 꺼낸 남자는 주위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대륙 통합 랭킹 35위.
드루이드 최경수는 어딜 가든 플레이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존재였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저 평범한 막내에 불과했다.
서초구에 있는 [불새단]의 사옥.
[이블 테일]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세상이 게임에 열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게임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불새단]은 그야말로 하나의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미궁탑 공략에 수많은 언론과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었으니까.
“데이빗. 브리핑 수고했어.”
탁자 앞에 한 남자가 일어서자 모니터 옆에서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하던 데이빗이 자리로 돌아갔다.
차분하게 내린 갈색 머리.
은색의 안경테와 잘 다려진 셔츠의 남자의 모습은 무척이나 사무적으로 보였다.
그가 바로 [이블 테일]의 No.1 플레이어 케르가.
도경훈이었다.
“다들 경험했고, 또 지금처럼 시뮬레이션을 봐서 알거다. 지금 우리가 10층을 공략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해.”
그는 회의실에 모인 공대원 중 한 명을 바라봤다.
“세린. 너도 알겠지.”
사무적으로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범접할 수 없는 수많은 업적과 기록을 세웠으며 누구보다 게임에 열광한 그였기에, 누구보다 게임에 대해 냉정할 수 있었다.
“미궁탑 10층인 푸른 사원의 보스, 아란말을 잡기 위해서는 녀석의 보호막을 제한 시간 내에 부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네 마법이 중요하다.”
그의 말에 [불새단]의 정예 멤버이자 5등급 마법사인 세린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란말의 보호막은 마법으로만 부술 수 있어.”
10층 공략에 도전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사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법사를 한 명 더 늘리는 건 2페이지 공략 때문에 무리야.”
세린 역시 대륙 통합 77위로 분명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모두가 50위권 내에 있는 [불새단]의 공대원들에 비한다면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아니라 적색 마녀였다면…….’
대륙 통합 24위이자 마법사 랭킹 1위.
스즈키 하나.
계속된 실패로 [불새단]의 사람들의 머릿속엔 자꾸만 그런 생각이 머물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세린 역시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차라리 적탑과 연합 제의를 해보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네?”
“적탑은 경쟁자일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강해지라는 뜻이었어.”
울먹이던 세린이 도경훈을 바라봤다.
“국가, 성별, 나이 상관없이 너희들은 내가 직접 뽑은 최고들이야. 나는 너희들과 함께 탑을 오를 거다.”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의 말에 동료들은 자신도 모르게 뭉클거리는 기분이었다.
‘과연…….’
‘우리와는 달라.’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서둘러야 할 겁니다. 적탑에서도 지금 전위들을 공개 모집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보스도 보스지만 몬스터들도 마법 계열이 많아서 적탑이 유리한 상황이긴 하죠.”
“방법이 없을까요?”
그때였다.
“저…… 형님.”
최경수가 핸드폰을 쥔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미에게 연락이 왔는데요. 아무래도 다들 게임에 접속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경매장에 이상한 물건이 올라왔답니다.”
경수는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그들에게 보였다.
“……!!!”
* * *
“이거…… 진짜야?”
“이번 달 모레티 암시장의 관리자가 누구였지?”
“케이 님입니다.”
“엔킬라 클랜의 서브 마스터? 그 양반네라면 허투루 물건을 올릴 리 없는데…….”
[불새단]의 길드 하우스.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조금 전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귀환하기 시작했다.
-이번 경매품의 정보는 모두 받아보셨을 겁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순간,
귓속말이 들렸다.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케르가를 바라봤다.
[시작 입찰가 500골드] [현재 입찰가 550골드.] [현재 입찰가 580골드.] [현재 입찰가 600골드.] [현재 입찰가 630골드.]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올라가는 입찰가가 귓속말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쩌죠?”
“경수야. 백 단위로 따라붙어.”
“네. 알겠어요.”
케르가의 말에 드루이드, 최경수가 입찰금을 적어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 입찰가 730골드.] [현재 입찰가 750골드.] [현재 입찰가 850골드.] [현재 입찰가 880골드.]쉴 새 없이 올라가는 입찰가에 그들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현재 입찰가 1,000골드.]“이거…….”
금액을 적기도 전에 들려오는 가격에 경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케르가를 바라봤다.
“적탑이 입찰에 들어온 모양이군.”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군지도 뻔했다.
“데이빗, 길드 하우스에 보관된 자금 이외에 사용 가능한 자금이 얼마인지 알아와.”
케르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적색 마녀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돼!”
[현재 입찰가 1,200골드.]말하는 와중에도 금액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