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4)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4화(4/150)
“불가능하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라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어째서죠?”
우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 검술은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냐. 전승 스킬이거든. 그래도 배우고 싶은가?”
‘전승 스킬? 그건 또 뭐지?’
“……물론입니다.”
우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오싹―.
하지만 그 순간 라울에게서 풍겨오는 살기에 우진의 몸이 저절로 떨렸다.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
내뿜었던 살기를 없애며 라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 자네 모습을 보니 정말 이곳 사람이 아니로군.”
“……네?”
“전승 스킬이란 건 오직 1명만 익힐 수 있는 유일 등급의 기술일세.”
스릉―.
그는 검을 꺼내었다.
“하긴, 1등급 모험가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별 반응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군.”
그렇게 많은 늑대를 죽였건만 날은 여전히 새것처럼 날카로웠다.
“1등급 모험가라는 건…….”
라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을 사냥한 경험이 인정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거든.”
“……용?”
우진은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용살자(龍殺者).
아직 모든 플레이어들이 1차 전직도 하지 못한 상황이라 공홈에만 올라와 있는 정보였다.
3차 히든 클래스인 용 사냥꾼으로 전직 이후 특정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비로소 해금되는 유니크 클래스.
[이블 테일]에서 아직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12개의 클래스 중 하나였다.그 희귀 클래스의 주인이 바로 눈앞에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분인 줄 몰랐습니다.”
“클클, 아닐세. 다 지나간 과거의 영광이지. 지금 내겐 용보다 늑대가 더 두렵거든.”
“……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지.”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의 어깨끈을 풀자,
“……!!”
쇄골에서부터 가슴과 옆구리에 있는 짓무른 상처가 나타났다.
“조금 더 강해지고 싶다는 바보 같은 욕망에 손을 대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만 거야.”
“손 대서는 안 될 것이라면….”
“용의 심장.”
라울은 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용의 마력이 조금씩 날 좀먹고 있네. 언젠가 나 자신을 먹어치우겠지…….”
드래곤 하트(Dragon Heart).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담고 있다고 알려진 영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정제법을 찾지 못했다.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 용을 사냥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셨는데 어째서…….”
“그래도 부족했으니까.”
“…….”
“자네와 나는 다르지 않아.”
우진은 그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저 강함의 기준이 다를 뿐.
욕망은 똑같았다.
철컥―.
그가 우진에게 검을 겨누었다.
“잡아보게.”
꽈악―.
우진의 떨리는 손이 조심스럽게 그의 검을 잡았다.
콰가가가가강―――!!
콰가강――!!!
그 순간 머릿속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울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수많은 광경들.
그 광경들이 하나둘 그의 머릿속에 마치 쓰이듯 기억되었다.
“……헉?!!”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 이건……?”
우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라울을 바라봤다.
“내가 30년 동안 용을 잡았던 기억들일세. 전승 스킬이란 그런 거야. 단순히 스킬을 익히는 것이 끝이 아니야. 그자의 경험과 기억 그 자체를 모두 흡수하는 것이지.”
라울은 그의 반응을 마치 예견했다는 듯 옅게 웃으며 말했다.
“용천(龍天). 내 인생이 담긴 검술이지.”
우우웅…….
그의 검이 옅게 빛나기 시작했다.
“클클…… 누군가의 기억을 이어받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지.”
라울은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그자가 죽었을 때.”
“아…….”
그는 우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하지만, 그러니 아직 자네에게 내 검을 가르쳐 줄 순 없어. 난 아직 죽을 수 없거든.”
아침이 찾아온 동굴의 입구에서 쏟아지는 빛이 그의 등을 가리었다.
외로운 여정에서 만난 낯선 이방인.
그의 친절함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진은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이세계에서 허망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런 사람의 목숨까지 탐하는 건 철없는 욕심이지.’
“치료법은 없습니까?”
라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사자왕이 있는 북벽의 섬에 대신관 로렌이 있다고 하더군. 그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용의 마력에 서서히 죽어가는 그였지만 적어도 그의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목적지는 있는가?”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블 테일]의 목적은 미궁탑을 공략하는 것이지만, 이 세계는 이제 공략할 층이 남아 있지 않았다.유일한 층은 보란 듯이 하늘에 떠 있었고, 게임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럼 함께 가는 건 어떤가. 눈썰미도 제법이고 습득력도 쓸 만해. 용천을 가르쳐 줄 순 없지만…… 사자왕의 보루까지 가는 동안 기본기는 알려주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어둠숲은 넓다.
회색늑대뿐만 아니라 고블린과 오크 등 그보다 더 한 마물들도 즐비했다.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장 약한 늑대도 이제 겨우 사냥하는데…….
우진은 늑대에게 물렸던 상처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그 이빨이 자신의 목에 박힐 수도 있다.
“감사합니다.”
약자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자의 옆에 있는 것이니까.
* * *
끝이 없어 보이는 숲길.
떠 있던 해도 어느새 저물자 숲은 다시 어둠으로 그들을 짓눌렀다.
[……케겡!!!]우진의 검이 놀의 목을 베었다.
“자세를 더 낮추고. 여전히 검 끝이 흔들려. 내 검술에 욕심이 난다면 기본기부터 익히게나.”
뒤에서 들려오는 라울의 말에 우진은 이를 악물고서 남은 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헉…… 헉…….”
순식간에 세 마리의 놀이 그의 앞에 시체로 쓰러졌다.
‘기껏해야 초심자 지역인데…….’
이렇게나 고통스럽다니.
울창한 거목들부터 이따금 들리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숨 쉬기 어려울 정도의 위압감을 주었다.
“룬은…… 없네요.”
우진은 익숙하게 마물의 배를 갈라 확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첫날에 운을 다 쓴 모양입니다. 그 뒤로 하나도 나오지 않다니.”
라울은 아쉬워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자네 말대로 운이 좋았던 거지. 그날은 달이 밝았으니까. 그런 날엔 룬을 많이 볼 수 있지.”
‘시간에 따른 효과 같은 건가.’
[이블 테일]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낮이 되면 경험치가 적어지지만 몬스터가 약해지고, 밤은 반대로 경험치가 늘어나는 대신 몬스터들의 능력치도 상승한다.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하지.”
라울의 말에 우진은 조용히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 제법 검을 잡는 자세가 나오는 것 같은걸.”
라울은 우진이 사냥한 놀의 살점을 발라 내 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여전히 스킬은 쓰지 못하지만요.”
“클클, 조급해할 필요 없어. 기본이 잡히면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될 걸세.”
어둠숲을 걸어온 지 삼 일째.
그동안 두 사람은 제법 많은 마물을 사냥했다.
사냥은 대부분 우진의 몫이었다.
그날 이후 라울은 우진에게 검을 잡는 법부터 보폭, 자세 등등…… 사냥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자네 세상은 이제 막 10층을 공략 중이라고 했던가.”
“네.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규모 연합이 동시 공략을 한다고 했습니다.”
현존 최강이라고 불리는 [불새단]의 케르가를 필두로 [적탑]의 적색 마녀 등등… 무려 5개의 클랜이 연합한다는 이야기를 커뮤니티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10층을 공략했을 지도 모르죠.”
“이곳은 딱히 미궁탑을 공략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건 아냐. 공략이 빨리 될수록 세상만 암울해질 뿐이지.”
그의 말에 우진은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봤다.
저 멀리 떠다니는 마지막 100층의 부유성.
‘게임의 결말도 이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게임과 똑같은 세상이 존재하다니.
몇 번을 생각해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럼 [이블 테일]은 어떻게 이곳과 똑같은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걸까.
‘이블 테일은 인간이 만든 게임이 아니야.’
우진은 서비스 초기 대대적으로 광고했던 문구가 떠올랐다.
세계 최초 자율 인공지능 [에단]이 창조한 가상현실게임 [이블 테일].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만든 게임.’
여러 가지 루머들과 말들이 많았지만 게임이 오픈 되고 난 뒤 모든 목소리가 사라졌다.
너무나 완벽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진은 알 수 있었다.
이세계가 정말 진짜라면…….
‘인공지능이 완벽한 세계를 창조한 게 아냐.’
[이블 테일]은 정말로 존재하는 세계를 완벽하게 베낀 것일 뿐이다.‘그렇다면…….’
꿀꺽―.
우진은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자신에게 일어난 이 모든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은 거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에단].’
게임과 이세계, 그리고 현실까지 모두 이어지는 단 하나의 존재였으니까.
‘길이 조금은 보인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다시 돌아가느냐였다.
현실에서는 캡슐을 통해서 게임에 접속한다.
‘여기도 똑같은 현실이라면…….’
돌아가기 위해선 게임에 접속할 연결 기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세계에 캡슐이 있을 리 만무하니까.
“부탁이 하나 있네.”
“뭐죠?”
생각을 마친 우진이 라울에게 물었다.
“10층을 공략할 시점이라면…… 계실지도 모르겠군.”
“……?”
지금까지와는 달리 뜸을 들이는 라울의 모습에 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에 돌아가게 되면 말일세. 중앙 대륙으로 가게 되면 [요르카] 라는 작은 마을이 있을걸세. 그곳에 들러줄 수 있겠는가.”
“중앙 대륙이라…… 그러죠. 갈 수 있는 레벨이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요.”
“그곳에 가면 초록 지붕인 작은 집에 레아라는 여인이 있을걸세.”
우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기를 조심하라고 전해 주겠나?”
“……네?”
뜬금없는 이야기에 우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어머니께서 폐렴으로 평생을 고생하셨거든.”
우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전해 드리죠.”
50년의 간극(間隙).
알 수 없는 미래로 떨어진 자신의 불안감만큼 미래에 머문 자들이 과거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가 돌아가게 될 게임 속이 정말 라울의 과거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보내고픈 안부를 우진은 외면할 수 없었다.
“고맙네. 더 바랄 게 없군.”
힘든 일을 끝냈다는 듯 라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몸을 나무에 기대었다.
“그런 유언 같은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클클, 미안하군그래. 여기서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하거든.”
우진의 핀잔에 쓴웃음을 지으며 라울이 대답했다.
어둠숲 서쪽.
‘아마 고블린들의 영역이었지.’
하나하나는 강한 마물이 아니지만 놈들은 영악하다.
공격 일변도인 대부분의 마물과 달리 놈들은 거리를 벌릴 줄도 알고 도망칠 줄도 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가장 집요하고 끊임없이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마물이 아마 고블린일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고블린까지는 상대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고블린?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런 하급 몬스터가 아닐세.”
우진의 말에 라울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얼굴 없는 괴물.”
우진은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심하게. 여긴 얼굴 없는 괴물의 영역이니까.”
라울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었다.
“40년 전인가? 탑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뮈렌가의 흑마법사가 이곳에서 괴물을 만들어냈지.”
그는 자세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흑마법의 피조물이라 생각했지만…… 탑의 99층까지 공략된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라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달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놈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
꿀꺽―.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얼굴 없는 괴물이란 게 저겁니까?”
[크르르르…….]쇠를 긁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 뒤로 녹슨 검을 든 기사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끼릭―.
불로 지진 것처럼 입과 코가 시커멓게 녹아버린 얼굴에 그저 붉은 안광만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숲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