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55)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55화(55/150)
-우아……!! 저기 언니는 안 춥나 봐요.
“그냥 앞만 봐.”
우진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세츠나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골목길 안쪽을 걸어 들어갈 때마다 남녀를 불문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되었다.
-어머, 어머!
-흐에에엑?!
그들을 지날 때마다 나오는 세츠나의 다양한 반응에 우진은 슬쩍 루엔의 눈치를 봤다.
“와…….”
하지만 그녀 역시 상기된 얼굴로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에 우진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이런 쓸데없는 것까지 만들어놓기는…….”
그때였다.
“쓸데없다니? 뭘 모르시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진짜 가상현실의 묘미인데.”
우진의 말을 들은 건지 건물 창문에 기대어 있던 한 여인이 그를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체험해 볼래?”
기다란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녀는 고혹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꽈악.
루엔이 뒤에서 가지 말라는 듯 조용히 우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사양하지. 현실에서도 충분하거든.”
“헤에…… 괜찮아. 여기 오는 사람들 중 90%는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고. 다들 초짜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거겠지. 뭣하면 커플 방도 있는데?”
“……엑?!”
루엔은 그녀의 말에 당황한 듯 황급히 잡았던 소매를 놓으며 소리쳤다.
“귀여운 동료네? 플레이어? 아님 용병?”
경계하듯 우진의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루엔을 보며 그녀는 피식 웃었다.
한쪽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적갈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루비 색보다 더 짙은 눈동자에서 고혹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그럼 그쪽은 플레이어인가?”
기다란 파이프 담배에 연초를 채워 넣으며 그녀는 우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오래 있었던 모양이지?”
“그럭저럭? 이 거리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이블 테일을 적어도 2년은 해온 자들이니까.”
떠돌이 거리.
중앙 대륙에 도전했다 포기하고 다시 어둠숲으로 돌아온 자들이 모인 곳.
백화곡을 실패자들의 마을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나?”
“대가는?”
“원하는 게 뭐지? 돈?”
“호오?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데. 돈이 많은가 봐?”
“적진 않지.”
우진은 인벤토리 안에서 골드를 꺼내 그녀의 앞에 내어놓았다.
“10골드. 잔심부름치고는 꽤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을 확인하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 너무 순진한 거 아냐? 처음부터 이런 액수를 제시하다니. 거래는 항상 제시한 돈보다 더 많이 주게 된다는 걸 모르시나 봐?”
“그래서 이 정도를 꺼낸 건데.”
“……뭐?”
“일을 잘 처리해 주면 2배를 주고 그보다 더 필요한 정보까지 찾아준다면 3배를 주지.”
“재밌네? 무슨 일인데 이렇게 거창하게 구시는지 궁금해지는데.”
“사람을 찾고 있다. 여기 골목에 주정뱅이 한 명이 있다던데.”
“주정뱅이? 아아…… 그로쉬를 말하는 건가?”
어쩐지 그녀는 흥이 깨졌다는 듯 주머니를 우진에게 도로 던졌다.
“그자를 찾는 거라면 굳이 날 통하지 않아도 될 일이야. 저기 파란색 지붕 보이지? 오늘도 저 가게 앞에 쓰러져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대로 골목 안쪽에 있는 가게 앞에 한 남자가 누더기를 덮고 누워 있었다.
“혹시 저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
“글쎄, 거리에 흔한 NPC 중 하나일 뿐인데……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그렇군.”
우진은 그녀의 대답에 짧게 대답하고는 주머니를 다시 건넸다.
“가져가. 덕분에 그를 찾은 건 맞으니까.”
“됐어. 실패자라도 거지는 아니니까. 고작 이런 일로 10골드? 동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지만 우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돌아섰다.
‘제법 강단이 있네.’
우진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봐야 실패자일 뿐이지만.”
얼핏 보면 제법 멋진 모습이지만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쓸데없는 자존심만 부리는 것이었다.
10골드.
한화로 약 120만 원.
중앙 대륙이라면 모를까, 어둠숲에서 모으려면 결코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뭐, 현질을 하는 거면 별로 어렵지 않은 금액이지만…….’
사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골드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게임에서 골드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더 좋은 장비를 맞추기 위함인데, 몇 년째 어둠숲에만 머물고 있는 그들에겐 장비가 필요할 리 없었으니까.
“……방금 뭐라고 했지?”
우진의 혼잣말을 들은 걸까.
걸음을 멈추고 그녀가 우진을 돌아봤다.
“실례했군. 도발을 할 생각은 없었어.”
“그래? 그걸 도발이라고 부른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것 같군?”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궁금?”
“어째서 계속 이블 테일에 남아 있는 건지.”
우진의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커뮤니티에서 보니 중앙 대륙에 가야 진짜 이블 테일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더군.”
그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나야 가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대단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중앙 대륙을 밟아본 당신들에게 어둠숲은 너무 시시할 것 같은데.”
그녀는 우진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마음대로 생각해. 얼음굴을 공략하신 대단한 양반에겐 패배자로 보이겠지만 말야.”
생각지 못한 답변에 우진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나?”
“물론. 레이드 던전이 열린 지 며칠도 안 됐는데 바로 공략을 한 바람에 활기를 띠려던 거리를 다시 폭삭 망하게 해주신 분인데.”
우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에게 말을 건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마스터. 곳곳에서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있어요.’
루엔이 그의 등 뒤에서 속삭였다.
건물에 숨어 있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하긴…… 생각해 보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레벨 후반일 테니까.’
어쩌면 얼음골이 만들어진 이유가 저들과 같은 실패자들을 위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건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걸 남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되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곳 사람들은 당신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담배를 털고서 돌아섰다.
“이름이 뭐지?”
“그걸 왜 묻지?”
우진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말을 멈췄다 되물었다.
“아무래도 당신이 이 거리에서 내게 제일 우호적일 것 같아서.”
“……미친놈.”
그녀는 우진을 향해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바넷샤.”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서.
“괜찮을까요? 아직도 저희를 보는 시선들이 많아요. 얼음골을 공략해서 아무래도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은데요.”
“얼마든지 그러라고 해. 걸어오는 싸움을 도망치진 않으니까. 우린 우리 할 일을 하면 돼.”
루엔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진의 뒤를 따랐다.
* * *
“……과연 고인물들이네. 이런 식으로 괴롭힐 줄은 몰랐는데.”
우진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입 닥쳐!!”
꾀죄죄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는 남자의 목엔 날카로운 검이 닿아 있었다.
“흐, 흐이익……!!!”
비명을 지르는 남자는 다름 아닌 우진이 찾으려고 했던 주정뱅이 NPC 그로쉬였다.
“조금 전의 대화 다 들었다고. 무슨 퀘스트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너, 이 자식이 필요한 거지?”
그로쉬의 목에 검을 겨눈 남자가 우진에게 소리쳤다.
“NPC를 가지고 협박이라…… 나름 신선하긴 한데. 그래, 원하는 게 뭐지?”
“얼음골에서 얻은 전리품을 내놔. 그렇지 않으면 이놈을 죽여 버리겠어.”
그의 말에 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없어.”
“……뭐?”
“없다고. 전리품.”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해?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고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니! 그게 말이 되냐고!”
스릉―.
우진은 검을 뽑았다.
“쓸 만한 전리품은 같이 갔던 파티원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뭐, 꼴을 보니 진짜라고 해도 믿지 않을 모양인 거 같고.”
그는 무리의 사람들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해봐. 어떻게 될지.”
“이, 이 자식……!!!”
퍼억―!!
그때였다.
검을 겨누고 있던 남자의 몸이 그대로 부웅 떠올라 뒤로 튕겨 나갔다.
“컥……!”
날아간 남자는 가슴에 화살이 꽂힌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 마음대로 하라시는 줄.”
활을 든 채 루엔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에게 말했다.
“연기가 많이 늘었네.”
“헤헤.”
‘뭐, 뭐야…… 밀러를 한 방에?’
‘저 용병 뭐야? 50레벨이 넘는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보며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더 할 생각인가?”
“제, 제길……!”
그들은 쓰러진 동료를 버려둔 채로 황급히 도망쳤다.
“이봐.”
우진은 쓰러진 남자의 검을 들어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크악!!!”
“이제 일어나지? 루엔이 진짜 죽일 생각이었으면 화살이 박힐 게 아니라 뚫어버렸을 테니까.”
꽈드득―.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루엔이 말했다.
“해볼까요?”
“사, 살려주십시오!!”
쓰러져 있던 남자는 허벅지에 검이 꽂힌 채로 엉거주춤 일어나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진심으로 이런 짓을 해서 얼음굴의 아이템을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고인물들이 모인 곳이라더니…… 너무 고여서 썩어버린 건가? 이따위 되도 않는 협박이나 하고.”
수욱―!!
그는 꽂힌 검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
“크악―!!!”
남자는 비명을 터뜨리다 우진의 싸늘한 눈빛에 입을 틀어막았다.
“가라.”
어기적거리면서 일어선 남자는 쩔뚝거리며 힘겹게 우진을 피해 도망쳤다.
“저따위 실력으로…… 중앙 대륙에서 왜 버티지 못하고 쫓겨난 건지 대충 알겠군. 쯧쯧.”
흩어진 그들을 비웃으며 우진이 몸을 돌렸다.
“마, 마스터…….”
그때 포박당해 있던 그로쉬의 상태를 살피던 루엔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왜 그래?”
당황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우진이 다가갔다.
“이 사람…… 죽었어요.”
“……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려달라고 난리 치던 남자가 갑자기 어떻게?
우진은 황급히 그로쉬의 몸을 살폈다.
외상은 없었다.
부욱―!
그가 누더기 같은 겉옷을 거칠게 뜯어냈다.
그러자 그로쉬의 목 주위로 피부색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조금 전 그자의 검이 닿았던 부분이야.’
“……설마 독?”
우진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협박을 하던 남자의 모습은 그로쉬를 죽일 만큼의 깜냥이 되어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검에 독이 있는 것도 모른 채 이용당한 걸지도 모른다.
‘누가 이런 짓을…….’
자신이 그로쉬를 만나러 가는 걸 엿들은 자가 더 있는 걸까.
아니다.
엿듣는 게 아니라 대놓고 들은 자가 있지 않은가.
“바넷샤.”
우진은 조금 전 만났던 여자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