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56)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56화(56/150)
“바넷샤? 이 거리에 그런 사람은 없는데?”
“적갈색의 머리카락? 내가 여기 3년 차인데 그런 색깔의 머리를 한 사람은 못 봤는데.”
거리의 사람들에게 바넷샤에 대해서 수소문을 했지만 마치 짠 것처럼 어느 누구도 그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일부러 숨기는 것 같은데.’
그들의 반응에 우진은 찝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 거리를 너무 쉽게 본 모양이야.”
“어쩌죠? 차라리 마스터께서 말씀하셨던 그 꼬마를 찾아볼까요?”
“아니. 괜히 움직였다가 녀석들의 눈에 들면 좋지 않아. 마지막 단서까지 잃을 순 없으니까.”
루엔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우진은 중앙 대륙으로 가기 위해 떠나는 페론이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떠돌이 거리 말입니까? 웬만해서는 가시지 않으시는 게 좋을 텐데…… 혹시라도 난처한 일이 생기면 왕휘문을 찾아가십시오. 제 이름을 얘기하시면 도움을 줄 겁니다.”
‘다들 입을 맞춘 모양이야. 이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겠지.’
우진은 페론이 알려준 장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끼이이익-
떠돌이 거리를 조금 더 벗어난 외각은 거의 폐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 부서져 가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계십니까.”
슬쩍 주위를 훑어보니 엉망이긴 하지만 사람이 지낸 흔적이 보였다.
우진은 즐겁게 하려는 게임에서 굳이 이런 극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뉘시요?”
건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페론의 소개로 왔습니다. 혹시 왕휘문 님이십니까.”
둥근 안경을 낀 백발의 노인은 우진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블란 클랜의 페론?”
“맞습니다.”
“그렇군. 얼마 전에 백화곡에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의 동료인가?”
‘정말 비밀이 없군.’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백화곡은 제법 큰 도시였고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가는 곳인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백화곡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오래 게임한 것은 아니다 이건가.’
우진은 떠돌이 거리에 있는 실패자들에 대해 조금 흥미가 생겼다.
“그래, 무슨 일인 겐가.”
“거리에서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 NPC를 죽였네요.”
“이 거리에선 흔한 일이지.”
왕휘문이란 노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마치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도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이블 테일]과는 생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직업을 알 수가 없군.’
그 역시 중앙 대륙을 밟았던 자라면 1차 전직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법사나 주술사는 아닌 것 같은데…….’
히든 클래스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죽은 NPC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플레이어라면 사당에서 부활을 할 수 있지만 NPC는 다르다네.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NPC들이 생성된다네.”
왕휘문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이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이 이방인인 이유겠지. NPC들은 이곳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자들이고 우리는 죽음이란 인과율에 벗어난 자들이니까.”
“하지만 용병들은 부활할 수 있잖습니까.”
“용병은 계약자가 있으니까. 일정 골드를 소모하는 것으로 계약자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일세.”
“난감하군요.”
“죽은 NPC를 부활시킬 순 없지만 최소한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있네.”
“그게 뭡니까?”
“간단해. 사령술을 쓰면 되는 거지.”
“흑마법을 말하는 겁니까?”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네. 흑마법의 사령술은 시체를 부활시켜 수족으로 부리는 것이지. 그렇게 부활한 자들은 자아가 없어.”
“그럼……?”
“점성술사들이 쓰는 사령술을 말하는 걸세. 그들은 영혼을 불러내지. 일정 시간 동안 소환한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거든.”
‘점성술사라…….’
우진은 왕휘문의 말에 살짝 고민이 되었다.
전투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산직도 아니었기에 사실상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혹시 그쪽이 점성술사입니까?”
왕휘문의 복장에 혹시 하는 기대감을 갖고 우진이 물었다.
“나는 아닐세. 하지만 이 거리에서 점성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긴 하지.”
“그게 누굽니까?”
“바넷샤. 저기 삼거리를 지나 왼쪽에 거대한 건물이 보이는가? 그곳의 주인이지.”
그의 대답에 우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대로 놀아났군.’
아마 그로쉬를 죽인 사람도 그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흐음. 이 거리에 발붙이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모를 순 없지.”
“어떤 사람입니까?”
“그야말로 최고의 점성술사지. 중앙 대륙에서도 찾아와 그녀에게 점괘를 묻기도 하니까.”
의외의 대답이었다.
우진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며 왕휘문이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이 떠돌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중앙 대륙에서 쫓겨난 것이 아닌 스스로 온 사람이거든.”
“어째서죠? 중앙 대륙이 훨씬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텐데요.”
“끝없이 위협을 받았다고 하더군. 그녀로서는 오히려 이곳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지.”
“으흠…… 점성술사가 희귀한 직업이긴 해도 특별 한 건 아닌데 왜 그럴까요?”
“그녀가 특별했던 것이겠지.”
‘레어 클래스?’
가능성은 있었다.
점성술사는 1차 전직의 일반 클래스였다.
그리고 일반 클래스는 각각 상위의 레어 클래스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수요도 적은 점성술사니 레어 클래스라면 확실히 희귀할 수 있지.’
왕휘문의 대답에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녀와 엮이지 않게 조심하게. 적이 많은 만큼 아군도 많은 법이니까.”
“이미 엮인 것 같습니다.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진은 품 안에서 골드 두 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됐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쿵-
거절하는 그를 보며 우진은 동전 하나를 칼로 찔러 흠집을 내었다.
“이건 나중에 중앙 대륙으로 와 저를 만나실 때 쓰십시오.”
“하하, 설마 이걸 증표라고 주는 겐가?”
“네. 맞습니다.”
왕휘문은 자신만만한 그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복장을 보니 당신도 흔한 클래스는 아닐 것 같아서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여태까지도 가지 않았던 중앙 대륙으로 다시?”
“제 소문이 들리면 조금 생각이 바뀌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황당하지만 왕휘문은 우진의 태도가 싫지 않은 듯 피식 웃으며 소매 안에 돈을 넣었다.
“패기가 있군. 과연 얼음굴을 공략한 사람다워.”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우진은 그의 말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페론은 중앙 대륙으로 떠났습니다.”
“허허, 놀랍군. 우리들을 보며 뒷배가 없다면 절대로 진출하지 않겠다고 했던 녀석이…….”
“얼음굴을 공략해서 용기가 생겼나 보죠.”
“그 얼음굴을 공략한 사람이…… 바로 자네고? 이러면 페론의 뒷배가 당신인 건가? 자신보다 낮은 레벨을 믿고 중앙 대륙으로 혼자 간다라…… 말이 안 되는데?”
왕휘문은 슬쩍 그를 바라봤다.
“그렇군. 자네 그거 부계정이지? 중앙 대륙에 따로 캐릭이 더 있는 게 분명해.”
“계정은 이거 하나뿐입니다. 저도 계정을 새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군요.”
부계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접속기기에 신체 정보를 한 번 더 등록해야 하는데 그건 현실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흠? 왜? 만들면 되지?”
그의 상황을 알 리 없는 왕휘문이 되물었지만 우진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여튼 나중에 다시 볼일이 있음 좋겠군요.”
우진은 인사를 끝으로 낡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 * *
“중앙 대륙에서 도망친 지 몇 년이나 지났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다시 올까요?”
길을 걷던 루엔이 우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진즉에 하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것도 틀리지 않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그들은 중앙 대륙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우진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쉬움이 남아서가 아닐까.’
실패자가 아니라 여전히 기회를 노리는 자들.
만약 그렇다면…….
“그쪽과도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끼이이익-
우진은 왕휘문이 말한 건물의 문을 열며 말했다.
“또 만나네?”
문이 열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서 있었고, 그사이로 탁자에 앉아 있던 바넷샤가 우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놀랐다기엔 너무 기다린 모습인데.”
“그럴 수밖에. 낮에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거든. 밀러 그 멍청이가 당신에게 아이템을 빼앗으려다 그로쉬를 죽였다면서?”
그녀는 우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기가 꾸민 일이면서.’
우진의 입장에서는 되도 않는 연기였지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왕휘문에게 들었다. 그쪽이 영혼을 불러낼 수 있다면서?”
“맞아.”
“알고 있겠지만 그로쉬의 영혼을 불러내고 싶다.”
“점성술에는 많은 재료들이 필요하지. 특히 영혼 소환은 중앙 대륙에만 있는 재료들도 써야 하거든.”
“그냥 원하는 걸 말해.”
재료가 없어서 뜸을 들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우진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로쉬를 찾는 이유.”
“별거 없어. 그냥 커뮤니티에서 케르가가 올렸던 글을 보고 와본 거야. 미개척 지역인 검은 안개와 그자가 관련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그 말은 검은 안개에 도전하려 한다는 거군?”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기 전에 어둠숲에서 할 수 있는 업적이니까.”
“퀘스트는?”
“없어.”
그의 대답에 바넷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말 단순히 케르가의 글을 보고 움직인 거야? 고작 그 몇 년 전 글 때문에?”
“그게 왜 이상하지? 몇 년 전에 알려진 NPC의 정보를 두고 지금껏 도전하지 않은 너희가 이상한 거지.”
“이 자식……!”
“건방진 놈!”
“검은 안개가 그렇게 쉬운 곳인 줄 알아?”
바넷샤의 주위를 지키던 자들이 우진의 도발에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우진은 그런 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봤다.
“당신, 아무래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로쉬가 검은 안개의 중요한 단서를 가진 것 같은데…….”
바넷샤는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협상은 결렬인 거 같군. 확실하게 검은 안개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지 않으면 나도 도와주지 못해.”
“여기 있는 놈들은 죄다 날로 먹으려 하네.”
“……뭐?”
“전리품을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검은 안개 퀘스트를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나도 없는 걸 구해 오라고 지랄들이니 원.”
저벅. 저벅. 저벅.
우진은 무리를 뚫고 거침없이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자기 힘으로 얻을 생각은 안 하고 남의 것을 빼앗을 생각만 하고 있네.”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우진은 말했다.
“너희들이 빼앗길 수 있단 생각은 안 해봤냐?”
“우리가? 빼앗길게 뭐가 있지? 급한 건 당신뿐일 텐데.”
“없긴 왜 없어.”
우진은 그녀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네 목숨.”
꿈틀-
바넷샤의 얼굴이 구겨지고,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죽음의 문턱을 겪었던 우진에겐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푸하하하!! 지금 나랑 장난해?”
쩌적……! 쩌저저적……!!
그 순간, 우진의 발아래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한기가 그들을 덮쳤다.
“커, 커헉!!”
“크아악……!!!”
▶주위의 생명체를 1분간 얼어붙게 만듭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대로 마치 동상처럼 얼어붙었다.
“루엔.”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퍼억—!!!!
“……!!!”
바넷샤의 옆에 있던 호위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계속해.”
[연사를 사용합니다.]루엔의 화살이 얼어붙은 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퍽— 퍽—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넷샤의 얼굴에 새하얀 얼음가루들이 튀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어……?”
얼음 가루들이 녹아 축축하게 젖은 얼굴로 바넷샤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 그로쉬의 영혼을 불러.”
꿀꺽.
바넷샤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