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72)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72화(72/150)
“제16회 원탁회에 오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새하얀 로브를 입은 남자가 서른이 넘는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정기 회담의 인원이 저번과 똑같다는 것에 매우 기쁜 일입니다.”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농담이었지만 둥근 원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빛의 신 라신을 따르는 제3교황청의 대신도, 알테론은 머쓱한 듯 이마를 긁적였다.
대륙 통합 랭킹 89위.
힐러 3위인 그였지만 홀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위압감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웃자고 하는 소린데 다들 반응 좀 하자고. 사회자의 말도 틀린 건 아니잖은가. 저번 모임 땐 무려 3명이나 갈아엎어졌으니까.”
적정을 깨뜨린 건 거구의 남자였다.
그는 대륙 통합 48위, 광전사 1위인 바크만이었다.
“그 3명 중 둘을 자네가 망가뜨렸으니 괜히 찔려서 그런 건 아니고?”
“망가뜨리긴 개뿔…… 죽자고 덤비는데 죽여줘야지. 경험치 아까운 줄 모르고 개기잖아.”
‘개기긴…… 자기가 먼저 싸움을 걸었으면서.’
‘저 괴물이 클랜 3개를 박살 내고 마석 광산 채굴권을 빼앗았으니 앞으로 룬을 얻는 건 더 어렵겠어.’
‘쯧쯧…….’
호탕하게 웃는 바크만을 향한 가시 돋친 시선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왜? 불만 있음 이따 따로 만나든가.”
그 시선을 느낀 듯 바크만이 뒤를 훑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진 마시죠. 처음 원탁에 참가 하시는 건 알지만 관리자들이 규칙을 분명 설명드렸을 텐데요.”
그런 그에게 한 여인이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우습게 보이시나 보죠?”
“크흠…… 딱히 그런 건 아니오.”
그의 덩치에 반도 안 되는 가녀린 몸이었지만 그녀의 한마디에 놀랍게도 바크만의 태도가 변했다.
‘과연…… 월영의 수장답군.’
가녀린 모습이지만 이곳에서 그녀를 쉽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륙 통합 랭킹 8위, 카나에.
암살자 1위이자 살수 집단인 월영의 수장인 그녀는 이번 모임에서 가장 높은 랭커이기도 했다.
“크흠, 이번 원탁회의 안건은 간단합니다.”
알테론은 분위기가 정리되자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 불새단이 미궁탑 10층을 공략한 사실을 다 아실 겁니다.”
탁―.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호오…… 드디어.’
‘얼마 전 단독 인터뷰에서 말했던 그건가?’
‘저걸 원탁회에서 공개할 줄이야.’
‘케르가, 여우 같은 녀석…….’
속내는 서로 달랐지만 탁자 위에 놓인 아이템에 시선이 쏠리는 건 똑같았다.
“불새단에서는 3개의 보상템 중 하나를 원탁회에만 따로 공개하겠다고 하셨죠.”
이름 : 뱀의 각피
등급 : S
설명 : 무한(無限)의 베라덴에게서 떨어진 껍질.
“대륙 7대 영물 중 하나인 베라덴과 관련된 퀘스트 아이템입니다. 현재 수집된 정보에 의하면 유니크 클래스와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번 회담에 참가한 [불새단]의 대표 데이빗이 말을 이어갔다.
“유니크 클래스의 가치는 모두 잘 아실 겁니다. 시작 가격은 1,000골드부터입니다.”
“1,500.”
“2,000.”
“2,500.”
홀 안에 있던 사람들은 데이빗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금액을 올리기 시작했다.
“끄응, 경매를 할 거면 그냥 거래소를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여기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제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원탁회가 처음인가 보지?”
제인의 옆에 앉아 있는 노인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삼촌과 한 번 온 적이 있어요.”
“삼촌? 아하, 그래. 자네가 이번 월드 퀘스트를 수주했다는 아이로구만.”
노인은 제인의 앞에 놓인 [울디아 연합]의 팻말을 보고는 아는 체했다.
“네. 덕분에 분에 넘치는 대표로 여기에 오게 되었네요.”
“클클, 하여간 재밌는 자들이라니까.”
제인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노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갈라하드라고 하네.”
“……!!”
제인은 그의 이름을 듣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레이지 마스터?!”
“민망하지만 그런 별명도 가지고 있긴 하지.”
“만나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영광까지야…… 늙은이가 주책인 거지.”
레이지 마스터.
일반적인 오행 속성의 마법이 아닌 빛 계열의 마법을 쓰는 갈라하드에게 붙여진 이명이었다.
빛 계열 마법은 워낙 컨트롤이 어렵고 마법의 개수도 다양하지 않아 극히 마이너한 속성.
대륙 통합 랭킹 178위.
마법사 랭킹 23위.
절대로 약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회담에 모인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모자란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쉽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는 [이블 테일] 최강자라 불리는 케르가를 상대로 콜로세움 투기장에서 이긴 단 3명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겉모습과 달리 투기장 매니아인 그는 마법사가 대인전에 약하다는 편견을 바꿔준 선구자였다.
“그나저나…… 나도 지루하군. 경매를 하지 않을 순 없지만…… 사실 미개척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말이지.”
“엇?! 갈라하드 님도요?”
“자네도였군.”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한 것이 기쁜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는 매번 하나 보죠?”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거든. 앞으로 몇 개 더 물건들이 올라올 테니 지루해하지 말게.”
“거래소와 무슨 차이가 있는데요?”
“일단 금액의 단위가 다르지.”
“10,000!!!”
갈라하드의 말을 증명하듯 어느새 단위가 바뀌었다.
“마, 만 골드? 저게 도대체 얼마죠?”
“클클, 사실 말이야. 지금 부르고 있는 금액들은 사실 저들이 하는 게 아니라네.”
“……네?”
“저들의 뒤에 있는 스폰서들이지.”
대형 클랜일수록 필수적으로 스폰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반년에 한 번 열리는 회담에서 스폰서들은 직접적으로 아이템에 투자하곤 했다.
“으흠…… 확실히 엄청난 가격이라서 놀랍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모여서 경매를 할 필욘 없을 것 같은데요.”
“사실은 여기서 일어나는 거래 모두 스폰서들의 자금 세탁과도 관련이 있거든.”
“뭐, 뭐라고요?”
제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래소에 하는 경매는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금액이 잡히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면 그럴 일이 없지.”
갈라하드는 그녀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왕 돈을 쓰는 거 최고의 아이템을 사는 게 좋으니까. 애초에 이 원탁도 스폰서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거거든.”
“……실망이네요. 전 또 뭐 대단한 회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돈세탁을 위한 모임이라고요?”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게. 그들의 지원이 있어야 미궁탑을 공략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제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게임은 게임답게 해야죠.”
“하하, 맞네. 이것저것 현실까지 생각하니 이 모양이 된 거지. 다행이야. 자네가 같은 사람이 월드 퀘스트를 얻었으니 말이야.”
갈라하드는 웃었다.
“아니지. 자네라서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검은 안개를 공략한 사람 말이에요. 제 느낌엔 케르가 님의 기록을 갈아 치우던 루키 같은데.”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도대체 그럼 칭호가 몇 개일까요? 기존에 있던 던전의 타임 어택뿐만 아니라 신규 던전까지 모두 그 사람이 공략한 거라면…….”
“클클, 글쎄.”
갈라하드는 턱을 쓸어 넘기며 피식 웃었다.
“나보다 강할지도.”
“에이, 농담도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 겨우 50레벨이 되었을 뿐인데요?”
“자넨 칭호의 위대함을 아직 모르는가 보군. 예전에 말이야. 케르가가 오기 전 중앙 대륙엔 진룡문이라는 아주 큰 길드가 있었다네.”
“진룡문이요?”
“8년 전이니 자네는 모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케르가가 중앙 대륙으로 넘어왔을 때 그들과 마찰이 있었던 적이 있지.”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듯 갈라하드는 어쩐지 조금 상기된 모습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진룡문의 플레이어와 갓 50레벨이 된 케르가가 붙었거든.”
“설마……?”
“결과는 그의 완승이었어.”
그의 말에 제인의 눈빛이 떨렸다.
“어둠숲 3대 던전의 칭호를 가지고 온 케르가가 그렇게 대단했는데. 그자는 과연?”
꿀꺽.
막연하게 궁금하다 생각했을 뿐이었던 그녀와 달리, 갈라하드는 앞으로 있을 중앙 대륙의 변화를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어?’
그 순간, 제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란스럽게 경매 소리가 끊이지 않던 그곳에 정적이 흘렀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인은 가레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봤지? 쉽지 않은 자들이라니까.”
갈라하드는 제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재밌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야. 새로운 바람을 말이야.”
그게 피바람일지 순풍일지는 모르지만.
* * *
퍼어어억―――!!!!!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컥!!!”
리키의 몸이 그대로 날아가 우리에 처박혔다.
“이 새끼가……! 미쳤어!!!”
“미친 건 네놈들이지. 뭐? 상납금을 내지 않아서 가뒀다고? 무슨 개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우진은 쓰러진 리키의 멱살을 움켜잡아 들어 올렸다.
‘무, 무슨 힘이…….’
“당장 감옥 문 열어.”
“모, 못 해!! 녀석이 자경단에서 장비를 빌려가서 잃어버렸다고! 계약서까지 작성한 일이었어!!”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럼 저 녀석의 몸에 난 상처들은 뭐지?”
오싹.
그 순간 리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그건…… 본보기로…….”
“본보기?”
“어차피 통각 조절이…….”
“아픈 건 둘째 치고 저 정도로 두들겨 패면 멀쩡한 정신도 망가질 거란 생각은 안 해봤나?”
“모, 몰랐…….”
“모르면 직접 당해보든가.”
퍼억―!!!!
우진이 검집으로 쓰러진 리키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으, 으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아니, 자 잠깐……!”
“왜? 아니면 알고서 그런 건가?”
스릉―.
날카로운 검날이 리키의 목에 닿았다.
“그럼 진짜 죽여 버린다.”
“흐, 흐이익!!!”
리키는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도망치려 했다.
“크아아악……!!!”
어기적 기어가는 리키의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자 그는 비명과 함께 몸을 뒹굴었다.
콰앙―!!!
그 순간, 감옥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멈춰!!!”
“이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몰려든 자경단원들이 우진을 향해 무기를 겨누며 소리쳤다.
“여기가 어딘데?”
서걱.
우진은 그런 그들을 향해 보란 듯이 리키의 목을 그어버렸다.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사람을 감옥에 처넣고 감금하는 거지?”
저벅― 저벅― 저벅―.
리키의 시체를 지나 우진은 자경단원을 향해 걸어갔다.
“흐아아아!!!”
선두에 서 있던 자경단원이 우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그의 검이 우진의 어깨에 박혔다.
혼신을 다한 공격이었지만 우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단원을 바라봤다.
퍼억―!!!
우진이 어깨에 박힌 검의 검날을 잡은 채로 뽑아 천천히 단원 쪽으로 밀어붙였다.
“어? 어어……?”
자신의 검이 서서히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자 단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쿵―!!
우진의 힘에 자세가 무너진 단원이 바닥에 쓰러졌다.
“크, 크윽!!”
안간힘을 썼지만 검날은 마치 단두대의 날처럼 점점 더 자신을 향했다.
“크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푸욱―!!!
검날은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툭―.
우진은 멍하니 서 있는 단원들을 향해 잘린 머리 발로 찼다.
치이익…….
굴러가던 머리가 연기와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그의 분노만큼이나 무거운 공기가 주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