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76)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76화(76/150)
“요, 요정이요……?”
니센은 우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네요. 전 토른 바흐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 숲에 요정이 있다는 얘긴 처음입니다.”
“원래 있던 게 아닐 수도 있지.”
“네? 그럼…….”
“니센, 혹시 숲에서 이것 말고 또 달라진 걸 본 건 없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니센은 우진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그때였다.
세츠나가 우진을 벗어나 샘물 앞에 내려앉았다.
“할 수 있겠어?”
-어떤 요정이 샘물을 만들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그녀는 웅덩이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세츠나가 ‘토른 바흐의 요정샘(A급)’에 담겨 있는 기억을 흡수합니다.]‘……뭐? A급?’
우진은 알림에 뜬 내용을 보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솨아아악―――!!!
웅덩이 안에 있는 빛 가루가 순식간에 환한 빛을 뿜어내며 세츠나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거…….
샘의 기억을 흡수한 그녀는 당황스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왜? 그래?”
-그냥 요정이 만든 게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요정이 아니라니?”
-페어리 퀸의 가루예요.
“페어리 퀸?”
-네.
[세츠나가 고대의 지혜를 사용합니다.] [고서(古書) ‘이종족 도감(C등급)’에서 흡수한 기억을 끄집어냅니다.]세츠나의 손에 황금으로 빛나는 책이 나타났다.
그녀는 황급히 페이지를 넘기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예요.
안쪽 페이지엔 여왕의 얼굴이 그려진 삽화와 함께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무슨 내용이지?”
-요정은 과거 아케도니아에서 가장 번창한 이종족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금정전쟁(禁精戰爭) 이후 모습을 감췄다고 적혀 있네요.
“금정전쟁이라…… 어둠숲이 엘프의 땅이던 시절을 말하는 건가.”
우진의 혼잣말에 루엔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워낙 오래된 일이라 엘프들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응? 아…… 뭐, 책에서.”
그녀의 물음에 우진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사실 금정전쟁에 대해서는 이세계에서 그녀에게 들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정들도 원래는 어둠숲에 있던 종족들인데, 그 전쟁 이후 엘프들과 함께 중앙 대륙으로 터를 옮기게 되었다고 해요.
“정확히는 옮기 게 아니라 옮겨진 거지만요.”
루엔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놀랐는지 손사래를 치며 우진에게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아냐. 그게 사실이잖아.”
“마스터가 하신 일도 아닌걸요.”
“네가 나를 나무라려고 한 말이 아니란 것도 알아.”
“……감사해요.”
전쟁의 패배 이후 엘프들이 중앙 대륙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이유는 간단했다.
포로이자 노예.
루엔이 용병으로 전락하게 된 것도 이러한 사유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그녀는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더 모진 상황인 엘프들도 많았으니까.
“언젠가 너는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
미래의 그녀를 봤으니까.
우진은 적어도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그녀의 병을 치료해서 흩어진 엘프들을 모으리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강한 엘프가 될 거다.”
-뭐예요? 뭐예요? 두 사람?
세츠나가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와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긴 뭐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래서 요정을 찾을 수 있는 거야?”
-헤헷, 해볼게요. 이번에 새로 배운 능력을 쓰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아. 그렇지. 그게 있었구나.”
멋쩍은 표정을 짓던 우진은 세츠나의 대답에 황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세츠나는 볼튼 가문의 영지를 공략하고 15레벨이 되면서 새로운 스킬을 배웠다.
▶ 골렘 스킬 : 집중의 눈
▶ 엘프 스킬 : 산책길
▶ 성령 스킬 : 은빛 불꽃
▶ 스킬 : 집중의 눈 -간파(Lv3)과 같은 효과를 내며 읽어 낸 정보를 계약자와 공유할 수 있다.
▶ 스킬 : 산책길 -스킬 시전 시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낸다.
▶ 스킬 : 은빛 불꽃 -전신을 환하게 빛나는 빛으로 감싼다.
두 번째로 익힌 스킬들은 보조 계열의 것들이라 할 수 있었다.
[산책길을 사용합니다.]▶ 주위에 남아 있는 흔적을 찾습니다.
세츠나가 스킬을 시전하자 솔잎 향같이 상쾌한 바람이 일었다.
“오…….”
그녀의 손이 닿아 있던 샘물에 녹아 있던 가루들이 서로 엉켜붙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솨아아악……!!
가루들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따라 오세요!
세츠나는 그 모습에 다급히 소리치며 있는 힘껏 날아올랐다.
“가자.”
우진과 일행도 그녀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 *
스윽―.
우진이 떠난 자리가 일렁이더니 누군가 숲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은신 아이템을 챙겨오길 잘했군.”
다름 아닌 콜슨이었다.
‘마을에 도착했더니 이미 에이츠 녀석이 와 있어서 난감했는데. 몬스터 웨이브 덕분에 발목이 잡혀서 다행이야.’
“그런데 왜 여기에 온 거지?”
두르고 있던 망토를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고서 그는 조금 전 우진 일행이 살피던 물웅덩이를 바라봤다.
“아까 보니 그 엘프 년에게 이걸 먹이던데…… 좋은 건가?”
콜슨은 우진과 싸웠던 그날을 떠올렸다.
상식 밖의 강함.
‘그런 힘을 얻는 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콜슨은 샘에 머리를 처박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 안에 강력한 마력이 담겨 있습니다.]“……어?”
그 순간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저릿한 느낌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 마력을 보유한 사람이 복용 시 신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소량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컥…… 커헉……!!”
그가 배운 [권풍]은 기와 마력을 동시에 소모하는 레어 스킬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력은 컨트롤을 할 만큼의 양도 안 되는 소량일 뿐.
[당신의 마력이 물의 마력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자, 잠깐…….”
콜슨은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마력 혼돈이 일어납니다.]“크아아아아!!!”
그의 온몸에서 비늘 같은 각피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콰앙―!! 콰가가강―――!!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돌아오는 건 마을에서 일어나는 전투 소리뿐이었다.
“사, 살려…… 꺼…… 꺼억…….”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콜슨은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었다.
* * *
-여기예요!!!
날아가던 빛 가루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지자 일행의 눈앞에 일렁이는 막이 나타났다.
“이런 게 숲에 있었다니…….”
빛 가루가 묻지 않았다면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 투명한 막을 보며 니센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우우웅…….
마치 호수의 수면을 세워놓은 것처럼, 빛 가루가 묻어 있는 막에 손가락을 대자 막이 출렁거렸다.
슬라임을 만지는 것처럼 매끈하면서도 끈적한 느낌.
[요정의 문을 발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발견한 정보는 길드에 등록하여 대륙 지도에 적용 시킬 수 있습니다.] [발견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어?”
그때였다.
솨아아아악―――!!!
일렁이던 막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일행을 삼켰다.
“웁……! 우웁……!!
막 안에 갇힌 일행이 허우적거릴 때, 그들의 앞에 작은 날개를 가진 자들이 나타났다.
윙…… 윙…….
파르르 움직이는 날개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막이 사라지자 물에 빠진 것처럼 푹 젖은 일행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주, 죽는 줄 알았네!!”
카르란이 목을 움켜잡았던 손을 풀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숲은 지금까지 봐온 숲이 아니었다.
형형색색의 넝쿨과 꽃들이 빼곡하게 피어 있는 이풍경은 낙원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따끔.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던 카르란의 코끝을 가시 같은 것이 쿡! 찔렀다.
“아얏.”
한 발 물러서서 보니 그건 가시가 아니라 손가락 한마디만 한 아주 작은 검이었다.
-어디서 한눈을 팔지? 너희는 누구냐.
정갈하게 넘긴 머리와 초록색 눈동자.
세츠나와 비슷한 크기였는데 남자의 얼굴은 그야말로 그림 속 미공자처럼 아름다웠다.
“우아.”
카르란이 신기한 듯 요정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을 때,
스캉―!!!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헉, 헉……!!”
종이 한 장 차이로 우진이 그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날카롭게 베인 바닥을 보며 카르란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칸이라고 합니다. 동료의 치료를 위해서 당신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진이 주저앉은 카르란을 뒤로한 채 요정의 앞에 다가갔다.
-치료?
요정은 그들을 훑어봤다.
“근처에 있던 샘물을 마시고 마력 혼돈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운 좋게 죽진 않았지만 각피가 온몸을 뒤덮었습니다.”
니센은 우진의 말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황급히 벗으며 얼굴을 보였다.
“찾아보니 그 샘물이 요정의 가루로 만들어진 요정수라고 하더군요. 혹시 치료가 가능할까요.”
-치료야 가능하지.
“오…… 저, 정말인가요?!”
니센이 요정의 말에 반색을 하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물론. 요정수는 독이 아냐. 오히려 잘만 쓴다면 매우 훌륭한 치료제이기도 하니까.
“그, 그럼……!!”
-하지만 우리가 치료해 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네?”
차가운 요정의 반응에 니센은 당황한 기색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뭔가 느낌이 싸한데.’
어쩐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우진은 니센을 뒤로 물리고 대신 말을 이었다.
“의무가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 같군요. 요정의 가루 때문에 물이 변했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이렇게 된 거죠. 당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럼 너희 인간은?
“무슨 말입니까?
-요정의 숲을 불태우고 성도(聖都)인 와이즈 윙을 부숴놓고 책임을 문 적이 있는가?
차르릉―――!!!
그의 외침과 함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요정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당장 꺼져라.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뭐?
“금정전쟁에 대한 건 유감이지만 그건 선대의 일이다. 그 일에 대한 책임이 후대의 우리가 고통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순 없어.”
-웃기지 마!! 그 이후부터 요정들은 지금까지 숨어 살고 있다고!! 선대의 일을 후대가 갚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왜 지금껏 고통받아야 하는 건가!!
꽈악―.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의 요정들을 보며 우진은 조용히 검의 손잡이 위에 손을 얹었다.
팽팽한 긴장감.
“그들을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마스터.”
그때였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루엔이었다.
“파울러. 당신도요.”
-날…… 아는가?
루엔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적의 가득했던 요정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금정전쟁은 저도 겪어보지 못한 오래전 일이지만…… 그 당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요정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페어리 나이트, 파울러.”
-설마…….
파울러는 루엔의 눈을 본 순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울딘의 핏줄이 아직 살아 있을 줄이야.
우진은 차분히 그를 설득하는 루엔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과연…… 태생에서 우러나오는 건가.’
평상시에 싹싹한 모습과 달리 지금의 루엔은 기품과 위엄마저 느껴졌다.
-꺄흑…… 멋져.
세츠나도 같은 생각인지 마치 그녀에게 취한 듯 두 손을 맞잡은 채 눈을 반짝였다.
“울딘의 자격으로 페어리 퀸을 뵙길 청합니다.”
힘이 들어간 루엔의 목소리가 요정의 숲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