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77)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77화(77/150)
-울딘의 자격이라…… 선조들이 통곡을 하겠군. 고작 엘프가 요정족을 만나는 데 그 이름까지 들먹이다니 말이야.
파울러는 검을 거두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안 될까…… 요?”
-바보 같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수룩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루엔에게 파울러는 당황한 듯 소리쳤다.
-지금까지 별말씀 없으신 걸 봐선 허락을 하신 모양이다. 따라와라.
파울러가 손짓을 하자 주위에 있던 요정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괜히 한 번 시비를 건 거군.’
파울러의 모습을 보며 우진은 피식 웃었다.
문을 넘을 때 이미 그들은 루엔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확인이 필요했던 거다.
같이 있는 엘프의 위치를 말이다.
‘포로인지…… 동료인지.’
지금까지 [이블 테일]에서 요정족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커뮤니티에도 요정을 언급한 글이 없었으니까.
수년 동안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종족.
지금껏 왕래가 없었으니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한지도 모를 것이다.
‘생각 역시 과거의 시대에 머물러 있을 테니…… 인간을 불신하는 건 당연하겠지.’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파울러는 따라 걸어가던 우진이 물었다.
-뭐지?
루엔을 대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태도였지만, 그들의 상황을 이해한 우진에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혹시 탑에 대해서 아십니까.”
-……탑?
그의 반응으로 충분했다.
‘역시…… 아예 세상과 단절되어 살았던 모양이군.’
그 순간,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발동했다.
그는 요정족과의 거래를 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오래전 정체불명의 탑이 대륙에 나타났습니다. 탑 안에는 마물도 있지만 무수한 보물들도 있죠. 그래서 많은 모험가들이 그곳을 공략 중입니다.”
-흥, 결국 욕망의 탑이라는 것이군. 좋은 일이야. 많은 인간들이 그곳에 도전하면 좋겠군. 그러다 자멸해 버리게.
냉소적인 그의 반응에 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탑이 요정족에게도 기회가 될지 모르죠.”
-기회?
그의 말은 파울러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그래서 우진은 조금 더 천천히 대답을 미루기로 했다.
내색하지 않은 간절함이 밖으로 표현될 때까지 말이다.
“페어리 퀸을 만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영악한 인간 같으니.
그렇게 말했지만 파울러의 태도는 확실히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숲을 지나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을 때 파울러는 날갯짓을 멈추고 바닥에 내려왔다.
-페어리 퀸을 뵙습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자 루엔 역시 허리를 숙였다.
-인간이 이곳에 들어온 건 수백 년 만에 처음이군요.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
범상치 않은 느낌에 우진이 고개를 들자 그곳엔 광휘를 뿜어내는 여인이 있었다.
갑옷을 입은 세 요정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그녀는 우진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요정의 숲을 찾았는지 궁금했는데…… 환요라…… 보기 드문 존재가 함께하고 있군요.
그녀는 세츠나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귀여운 아이네요. 아직 많이 성장해야겠지만 말이죠.
-가, 감사합니다.
왈가닥스러운 원래 모습과 달리 잔뜩 긴장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세츠나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왕님. 그의 동료가 요정수를 마셔서 마력 혼돈의 치료를 원한다 합니다.
-흐음……. 최대한 주의를 했는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페어리 퀸은 니센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사과를 드려야겠네요. 요정수는 요정족에게 꼭 필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정의 숲에선 만들 수가 없답니다.
그녀는 여왕답지 않게 니센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과거 요정족과 엘프가 공생 관계였던 것도 그 때문이지요. 요정족은 숲에 요정수를 만들고 엘프는 그 요정수로 마력을 키웠죠.
‘루엔에게 효과가 있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우진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계속 들었다.
-허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숲에 샘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게 필요한 니센이 치료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의 물음에 여왕은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로서는 행운이겠군요. 마력 혼돈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엘프의 마력이 필요한데 마침 이곳에 당신이 있으니까요.
“그, 그럼…….”
여왕은 루엔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바람이 일자 여왕의 손끝에 작은 구체 하나가 만들어졌다.
여왕의 손짓을 따라 구체가 허공을 부유하며 니센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헉……!!”
스며든 구체는 니센의 혈관을 따라 빠르게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전신의 혈관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사라지자 얼굴을 뒤덮고 있던 비늘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니센은 매끈하게 돌아온 자신의 얼굴을 움켜잡으며 여왕을 향해 머리를 박고 절을 했다.
-…….
하지만 파울러는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굳은 얼굴이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후대 스스로 깨우쳐 호의를 베푼다면 감사할 일이지만 우리가 선대의 책임을 후대에 요구할 순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숲의 입구에서 있었던 일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파울러에게 한 번 더 경고를 주고서 그녀는 자신들에게 악의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니센이라고 하였나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 당신은 엘프의 마력과 요정수를 몸 안에 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당신의 마력은 샘물처럼 늘어갈 겁니다.
페어리 퀸이 부하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작은 펜던트가 달린 팔찌를 건넸다.
-강대한 마력은 천운이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인 인간의 몸은 유한한 것.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하겠죠.
그녀가 니센의 손목에 팔찌를 채웠다.
-언젠가 당신이 마력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될 때까지 이것을 가지고 있으세요.
“가, 감사합니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앞으로 그대가 이런 일이 없도록 샘물을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대신 필요하다면 샘물을 써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니센은 오히려 그녀의 말에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견습 마법사인 그로서는 요정수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행운일 테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끝날 게 아닌 것 같은데.’
우진은 시스템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니센을 만나라고 한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니센의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면, 그의 치료를 빌미로 뭔가를 얻으라는 의미.
그것이 요정족에게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과연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라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요정수? 아니야.’
하급 용마석도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되는 시점에서 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라면 시스템이 자신을 강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시나리오를 위한 초석.’
요정의 숲에 도달한 뒤부터 우진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고 결국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요정족은 지금까지 [이블 테일]에 알려지지 않은 이종족이다.
우진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영원히 숨어 지내실 겁니까.”
우진이 먼저 수를 던졌다.
-무슨 뜻이시죠?
“당신의 말대로 선대의 실수를 후대가 책임질 필요 없듯이, 당신들도 과거처럼 계속 숨어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무책임한 말이네요. 책임은 지지 못하지만 기회는 줄 테니 알아서 하라?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어떻게 해서든 악용하려는 인간들뿐일걸요.
“적어도 저희는 아닙니다.”
그 순간 여왕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저의 마스터이십니다. 그를 믿어도 된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울딘의 후예가 따르는 자라…… 흥미롭긴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종족의 미래를 걸 수는 없는 일이죠.
여왕이 우진에게 말했다.
-당신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희를 거둘 영지가 있습니까? 저희를 지킬 군사가 있습니까?
“아뇨. 영지도 군사도 없습니다. 저는 이제 막 중앙 대륙에 온 일개 모험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당신을 믿으라는 겁니까?
“자고로 투자란 그 씨앗을 보고 하는 법이니까요. 이미 나무가 되었을 땐 늦습니다.”
-씨앗이 나무가 될지…… 썩어 사라질지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적어도 떡잎이라도 피어야 알지 않을까요?
기회다.
우진의 눈빛이 빛났다.
“무엇을 보여 드리면 될까요.”
-토른 바흐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군요.
우진의 물음에 여왕은 차분한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요정들과 달리 여왕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는 건가.’
조용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검은 구름은 마물들을 소환합니다. 헌데 이번 구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더군요.
“그거라면 알고 있습니다. 미궁탑을 공략할수록 소환되는 몬스터의 난이도가 오른다고 하더군요.”
그의 대답에 여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혹시…… 이번 검은 구름 아래 어떤 마물들이 있었는지도 보셨나요?
“글쎄요…… 거기까진.”
-만약 이번 검은 구름에서 마을을 지킨다면 저도 당신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띠링―!
여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림이 울렸다.
[연계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명 : 저주받은 니센 → 토른 바흐 수호]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음?’
지금까지와는 달리 선택을 묻는 창이 나타났다.
-이 잎이 요정의 숲으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여왕은 작은 잎사귀를 꺼내 우진에게 건넸다.
‘몬스터 웨이브는 미궁탑을 공략하는 시점부터 계속 중앙 대륙에서 일어나는 이벤트일 뿐이야.’
라울의 말을 기억하면 60층이 공략되고 난 이후부터 강력한 몬스터들이 소환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초반이니 그리 어렵진 않겠지.’
“알겠습니다.”
우진은 여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이번 몬스터 웨이브엔 참가하지 말아야 할 존재도 있습니다.
“참가하지 말아야 할 존재……?
-아마도 당신을 만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이네요.
“……저를요?”
우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여왕을 바라봤다.
[흑룡(黑龍) 벤시나.]여왕의 말에 우진의 뺨이 살짝 씰룩였다.
-그가 마물을 이끌고 검은 구름과 함께 토른 바흐에 올 것입니다.
“다음 대륙으로 가면 용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 순간, 하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과연…….”
여왕은 그가 용 군주 퀘스트를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 자격을 위한 시험인 것이다.
‘쉽지 않겠군.’
우진은 흐릿하게 보이는 결계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하지만 결정은 이미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