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85)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85화(85/150)
“하아…… 하아…….”
하늘이 노랬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우진은 의식적으로 [순례자의 십자가]를 들어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바보 같구나. 용의 마법은 부정한 것이 아니다. 신의 힘이 있다 한들 정화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자꾸 그걸 쓰는 거지?]벤시나는 우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
[우습군. 목숨을 아까워하는 녀석이 지금 나와 싸우고 있다니.]“크큭―.”
팔다리 성한 곳이 없었다.
포션은 진즉에 다 쓴 지 오래였고 우진은 당장에라도 감길 것 같은 눈으로 벤시나를 올려다봤다.
“……이만 죽여라.”
[조금이라도 살려고 십자가를 가슴에 대던 녀석이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삼 일이다. 토른 바흐 사람들도 지금쯤이면 모두 도망쳤겠지.”
우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불어오는 바람에 바닥에 깔린 검은 연기가 흩날렸다.
암흑 지대의 영향일까?
공간을 갈라놓은 것처럼 들이마시는 공기의 내음이 달랐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마치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우진은 어느 순간 부터 외부와 단절이 되었다.
심지어 쪽지조차 보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영향으로 인해 쪽지를 발송할 수 없습니다.]몇 번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붉은 경고창뿐이었다.
‘살아 있겠지…….’
우진은 마을 사람들을 구하러 간 페론과 웨든을 떠올렸다.
플레이어인 그들이야 사실 죽는다 해도 부활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들로부터 알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루엔 일행들.
암흑 지대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갔을 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우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뭘 하려는 거지?]“죽이라고 했는데 죽이지 않으니 별수 없지. 다시 또 싸우는 수밖에.”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가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자 벤시나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해 삼 일 동안이나 상대를 해줬다고 생각하느냐.]“날 가지고 놀려고 지금껏 살려둔거든 아니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다는 거니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냐.]“맞아.”
우진은 벤시나를 향해 대답했다.
묘하게 그의 얼굴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과연 지상 최강종이야. 지금으로서는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군.”
벤시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방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너는 지금껏 내가 본 인간 중 가장 특이하군.]“그럴 리가. 물론 대륙인들보다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이방인들도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우진은 기분이 묘했다.
게임 속에 불과한데 벤시나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마치 지금 이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로그램과 문답이라…….’
스스로도 우스운 듯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역시 죽으면 잃는 게 있으니까. 단순히 장비를 드랍하는것 뿐만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지.”
우진은 주위를 훑으며 말했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의 시간도 유한하다. 잃어버린 경험치를 다시 되찾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이 또 필요하니까.”
[유한한 시간은 똑같다라…….]“그러니 이것 봐. 아무도 없잖아. 죽음이 두렵다면 끊임없이 도전했겠지.”
[나약한 변명이로군.]“그래, 인간은 원래 나약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거지. 강해질 수 있거든.”
쿠그그그그―――.
흑룡은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려 우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용 위에 올라서겠다는 헛된 꿈을 꾼 건가.]“용 위에 서는 거?”
꽈악―.
우진은 검을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내 꿈은 고작 그 정도가 아냐.”
파앗―!!!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흑룡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 뭐지?]“집에 돌아가는 거지.”
벤시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아아아아아―――!!!!”
필사적이었지만 한없이 약했다.
모든 체력을 소진한 그는 뛰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느리군.]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벤시나는 그저 무의미한 발버둥처럼 느낄 뿐이었다.
* * *
[근위 기사단이 전진 기지를 구축합니다.] [군왕의 깃발이 세워졌습니다.] [기지 내에 군왕의 효과가 적용됩니다.]“자, 자! 서둘러라!!”
포털을 타고 넘어온 군왕 켈디안은 샤를로가 이끄는 성왕 기사단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진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눌 때쯤 기지 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과연 군왕이로군!! 좋은 방책이군요.”
나가 용병단의 단장인 타치프가 목줄을 한 세 마리 늑대를 이끌며 소리쳤다.
그의 뒤를 1백 명의 용병들이 따르고 있었고 그 옆으로 거대한 마공포가 수레에 이끌려 오고 있었다.
진지 안으로 들어오는 용병단을 보며 근위 기사들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공포 단장 빅터가 기사단의 분위기를 슬쩍 훑으며 켈디안에게 말했다.
“수고는 무슨. 흑룡이 다른 쪽에 쏠려 있어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냈다네.”
“그럼 그게…… 사실이었습니까? 흑룡을 상대로 누군가 싸우고 있다던 이야기 말입니다.”
“이방인이라던데…… 혹시 불새단의 케르가가 온 것일까요?”
“아닐세. 칸이라는 전사라던데? 제3교황청의 대신도인 알테온 님께서 그에 대해서 알아봐 주신다고 했네.”
지휘관들 사이에 있던 알테온이 허리를 숙였다.
‘거물들이 다 모였군. 이거 일이 진짜 점점 커지는데…….’
“군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현재 흑룡과 대치 중인 사람은 저와 같은 이방인입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상태입니다. 아마도 중앙 대륙으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알테온의 말에 막사 안에 있던 지휘관들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 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그런 자가 흑룡과 싸우고 있다니…….”
“설마 그가 검제의 실력이라도 가진 겁니까? 공격대들도 일격에 전멸시킨 용을 상대로 삼 일이나 버티다니…….”
알테온은 그들의 물음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 생각엔 흑룡이 그를 봐주는 듯싶은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근에 검은 안개를 밝힌 자가 그 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검은 안개?”
“어쩐지…… 수십 년이 넘도록 베일에 싸여 있던 미개척 지역을 공략한 자였군.”
“어떤 자인지 궁금한데.”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우진에 대한 궁금증을 표했다.
‘이거…… 이름부터 제대로 알리네.’
그들의 반응을 보며 알테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중앙 대륙에 온 후 윗선과 이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노력을 하는가.
하지만 기껏해야 자신처럼 한 세력에 몸을 담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중앙 대륙으로 갓 넘어온 초짜가 각국의 실세들의 관심을 모두 받고 있었다.
‘뭐…… 대단하긴 하지.’
알테온은 전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애초에 흑룡에게서 삼 일을 버티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정체가 뭐지?’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자신 역시 궁금했다.
전장에 끌려온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흑룡과 싸우는 건 자살 행위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나저나 이 소식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누님께서 난리가 나겠군.’
알테온은 한 사람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게임 종합 포털 [인 게임 스타]의 관리자이자 인기 방송 프로그램인 [게임 스테이션]의 진행자인 임희정.
그녀는 알테온의 친누나였다.
‘잔소리 듣기 전에 먼저 알려줘야 하나…….’
고민도 잠시, 어느새 지휘관들은 모두 막사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격은 오늘 자정. 빅터 경은 그 전까지 마공포의 충전을 모두 완료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타치프, 자넨 용병단을 이끌고 마공포의 수비를 맡게나.”
“그러합죠.”
“명심하게. 상대는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피조물일세.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야.”
“알겠습니다.”
지휘관들은 그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모두가 각자의 왕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군왕은 특출했다.
게다가 연배도 있어 다른 지휘관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그럼…… 흑룡과 대치하고 있는 이방인에겐 어찌 연락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빅터가 물었다.
“방법은 없네. 암흑 지대의 영향인지 영역 안팎으로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장막 같은 것이 둘러져 있거든.”
그의 물음에 켈디안의 반응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암흑 지대로 직접 가지 않는 이상 그에게 소식을 전하는 건 불가능하네.”
“설마…… 그대로 마공포를 쏘실 생각이십니까?”
“불가피하다면.”
켈디안은 단호했다.
어쩌면 진정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개인의 목숨보다 왕국과 대륙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태도였으니까.
“게다가 이방인들은 우리 대륙인과 달리 사당의 축복이 있지 않은가. 승리를 하게 된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할걸세.”
알테온은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분명 맞는 말이긴 했지만 만약 저 안에 플레이어가 아닌 NPC가 있었어도 저들이 저렇게 반응했을까?
플레이어의 죽음을 이용하는 그들의 모습에 알테온은 왠지 씁쓸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때였다.
“샤를로 경……?”
알테온도 생각지 못한 일인 듯,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샤를로를 바라봤다.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희생을 강요할 순 없는 법입니다. 신호를 주신다면 제가 직접 가서 그를 구출하겠습니다.”
‘과연…… 라신의 사도로군.’
이방인과 대륙인의 구분 없이 자신의 신앙에 따라 행동하는 샤를로의 행동은 최고위 성기사인 사도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을 대비해서 라신께서 내게 이걸 준 것일 테지.”
샤를로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말뚝.
[불사자의 말뚝]이었다.“그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볼턴 왕국에선 지원군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나?”
“아닙니다. 조금 전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뮈렌 가문이 참전한다고 합니다. 가문의 삼남이 청기사단을 이끌 것이라 하였습니다.”
“삼남이라…….”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인 뮈렌가(家)의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반색하던 지휘관들은 삼남이란 말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위의 두 형들과 달리 특출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명색이 뮈렌 가문이지 않습니까.”
“흐음―.”
* * *
솨아아아악―――!!!
포털의 빛이 사라지자 한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긴장되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포털 앞에 서서 물끄러미 전장을 바라보는 남자는 기사의 말에 피식 웃었다.
햇빛이라고는 본 적 없는 것처럼 새하얀 피부.
움푹 꺼진 눈과 푸석한 머리카락은 며칠, 아니,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갇혀 산 사람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온 뮈렌은 망토를 여미며 품 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었다.
“영광의 기사가 이번 전투에 참전한다 했었나?”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는 기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적힌 메모를 천천히 훑었다.
[불사자의 말뚝] [주귀의 각인] [카밀라의 녹옥]수첩 안에는 그 이외에도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서 가세나.”
그는 입맛을 다시듯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