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89)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89화(89/150)
치익―――.
캡슐의 뚜껑이 열리자 알테온, 임서준은 피곤한 듯 머리를 헝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야!! 임서준!!!”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달려오는 임희정을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너 왜 갑자기 로그아웃이야? 토른 바흐는?”
“이탈했어. 성도로 가라는 거 차마 못 가겠어서 그냥 나왔어. 포털 앞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보내준 영상 봤지? 아마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샤를로가 죽었어. 게다가 불사자의 말뚝도 사라졌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모르겠어. 말뚝의 사용 시간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효과가 사라졌어.”
“누가 말뚝을 뽑았다는 말이야?”
“아마도.”
“누가?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글쎄. 나도 모르겠어. 뽑은 건지, 뽑힌 건지.”
임서준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흑룡의 힘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그가 말뚝을 밀어낸 걸지도 모르지.”
“플레이어가 했을 가능성은?”
“거기 있던 플레이어는 나 말고 칸이라는 사람뿐이었어. 그 사람 말로는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러 떠난 둘이 더 있다는데 전투 도중까지 오지 않았으니까.”
“흐음…… 그럼 NPC는?”
임서준은 누나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NPC가 말뚝을 가져갈 리가 없잖아. 게다가 그들은 모두 기사라구.”
“기사라고 뭐 다 깨끗한가.”
“누나가 못 봐서 그래. 날 대피시키려고 목숨 걸고 호위까지 붙여줬다니까?”
“그럼 도대체 왜 말뚝이 빠진 건데?”
“……나도 모르지.”
그는 누나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끄응, 난감하네…… 이제 너도 없으니 비전으로 녹화를 뜰 사람도 없는데.”
“지원군이 더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너도 알잖아. 정식 포털이 작동 불가라서 토른 바흐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거.”
“흐음…….”
“너 아직 포털 안 탔다며? 다시 가라.”
“인성 보소? 지금 동생보고 죽으라는 말을 잘도 하시네.”
현실 남매다운 대화였다.
임서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행여나 갈 생각은 하지 마. 누나 캐릭으로는 1분도 못 버틸걸.”
“그 정도야?”
“어. 내성치 빵빵하게 올렸는데도 체력이 쭉쭉 닳더라고. 웬만한 캐릭터는 암흑 지대를 못 버틸걸?”
“그럼 그 사람은?”
“응?”
임희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안에서 삼 일이나 버텼다면서.”
그녀의 말에 임서준 역시 아차 싶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게?”
‘하루도 버티기 버거워 보이는 그곳에서 삼 일이나…… 그것도 흑룡과 싸우면서?’
꿀꺽―.
임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캐릭터지?”
* * *
“청기사단……!! 현재 진형을 유지하라!! 성왕과 근위기사단은 흑룡의 뒤를 노린다!!”
두두두두두―――!!!
분명 각기 다른 왕국의 기사들이었지만 마치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귀찮은 것들……!!]청기사단의 기병대가 흑룡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안 나머지 기사들이 차례차례 흑룡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훌륭하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온 뮈렌은 대단했다.
마치 자신이 전장의 주인인 것처럼 그는 전투를 주도하고 있었다.
‘형들의 검술에 가려졌지만…….’
이름 : 지온 뮈렌
직업 : 뮈렌가의 삼남
레벨 : 60
힘
35
민첩
35
건강
30
신념
95
재주
90
전술
110
종합 포인트 : 395
▶ 레벨 차이가 10 이상입니다. 세부 정보는 확인 할 수 없습니다.
집중의 눈을 통해 본 지온 뮈렌의 능력치였다.
레벨 차이 때문에 특성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저것으로도 충분히 그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의미로 천재였다.
능력치의 종합 수치를 봐도 일반적인 60레벨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수치.
‘전술 수치가 100이 넘는 건 또 처음 보는군.’
그것을 증명하듯 그의 지휘는 눈부실 정도였고 타국의 기사들마저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전술 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책략가라는 의미였다.
비상한 두뇌.
높은 신념.
그리고 뛰어난 재주까지.
언뜻 본다면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지휘관의 자질이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자의 본질이겠지.’
어긋난 두뇌는 악행을 일으키고, 삐뚤어진 신념은 악의를 만들며, 잘못된 재주는 더 큰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
그야말로 최악의 악인이 될 수도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불사자의 말뚝은 얼굴 없는 괴물을 만들어내는 재료 중 하나다.’
말뚝이 지금 놈의 손에 들어간 것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탓이었다.
이세계의 역사에선 미궁탑 10층이 공략된 시기에 흑룡이 나타나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샤를로가 불사자의 말뚝을 가지고 올 일도 없었겠지.’
그의 빠른 성장이 용을 부르게 만들었고, 지온 뮈렌이 [불사자의 말뚝]을 훔칠 기회를 주게 된 것이었으니까.
미래를 알고 있는 우진은 그를 경계하고 있지만 그의 악행을 알 리 없는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빛나는 그의 뛰어난 지휘에 오히려 매료되고 있었으니까.
“성왕기사단!! 병력의 반은 후위로 물러나 언월진의 형태를 취한다!!”
지온의 외침에 기사단의 진형이 바뀌었다.
“청기사단은 전위에서 흑룡을 견제!”
돌격창을 장착한 청기사들이 몸을 숙이며 흑룡에게 진격했다.
콰아아앙―――!!!
수십 개의 창이 흑룡의 몸을 찔렀다.
“공격하라!!!”
청기사단이 양 갈래로 흩어지자 언월진의 성왕기사단이 신성력을 뿜어내며 흑룡을 향해 검을 베었다.
“근위기사단!!”
성왕기사단의 공격이 끝나자 근위기사단들이 일제히 들고 있던 거대한 타워 실드를 바닥에 박았다.
[크아아아아아―――!!!]흑룡의 포효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브레스를 방패로 막아내자 다시 청기사들이 창을 들어 흑룡을 상대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
서서히 흑룡이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콰직―!!!
성왕기사단의 검이 드디어 흑룡의 비늘을 뚫고 상처를 냈다.
살점이 튀기면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됐다……!!”
기사들은 그 광경에 환호를 터뜨렸다.
콰강―――!!!
일그러진 얼굴로 흑룡은 자신을 공격한 성기사의 머리를 그대로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괴물 같은 놈.”
환호도 잠시 기사들은 이를 바득 갈았다.
“흔들리지 마라!! 어느 순간부터 놈은 마법을 쓰지 않고 있다! 지쳐가고 있다는 증거다!!”
지온 뮈렌의 외침이 잠시 흘렀던 정적을 깨트렸다.
“계속해서 몰아쳐라!!!”
와아아아아―――!!!!
그의 명령에 기사들은 다시 공격 태세를 취했다.
콰앙―!!
콰가가강――!!
다시금 전투가 이어졌고 전의를 잃지 않은 기사들은 오히려 더 맹렬하게 저항했다.
“이대로 흑룡이 돌아간다면 좋을 텐데요.”
전황을 보던 우진의 곁으로 루엔이 다가왔다.
“글쎄.”
그녀의 말에 우진은 생각이 많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 방 먹었군.’
5대 왕국의 지원군이 올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어쨌든 용의 출현.
두말할 것 없는 대륙의 위기였으니까.
문제는 볼턴 왕국의 지휘관으로 지온 뮈렌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공격하라!!!”
지온 뮈렌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고, 기사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며 흑룡을 몰아 세웠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럴수록 흑룡은 더욱 거칠게 꼬리를 휘두르며 기사들을 날려 버렸다.
“뭔가…… 이상해요.”
“왜 그래?”
전투를 지켜보던 루엔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잘 싸우고 있는데…… 계속해서 기사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요. 흑룡의 힘이 워낙 강하니…….”
카르란의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에요. 보세요. 청기사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사단들의 수만 줄어들고 있어요.”
“흐음.”
“견제를 맡은 청기사단은 근위기사단이 도착하면 흩어지니 실질적인 전투는 가장 짧아요.”
그녀는 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면 방어를 맡고 있는 근위기사단이 가장 피해가 크고요.”
“그, 그야…… 근위기사들이 방어에 특화된 자들이니 어쩔 수 없이…….”
외삼촌이라서인지 카르란은 루엔의 말에 당황한 듯 설명했다.
“맞아요. 하지만 점점 근위기시단과 성왕기사단의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것도 사실이죠.”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온 뮈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다 지원군이 올 때가 되면 청기사단만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서, 설마요…….”
카르란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지온 뮈렌의 성향을 알고 있는 우진은 흘려듣기 어려웠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냐.’
어쩌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런 진형으로 공격 하고 있는 걸지 모른다.
이유는?
만약 놈의 목적이 흑룡 퇴치가 아닌 [불사자의 말뚝]이라면…….
‘흑룡보다 보는 눈들을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할 테니까.’
“크악……!!”
“아아아악……!!!”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성왕기사단과 근위기사단에서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렸다.
“포기하지 마라!!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륙은 저 괴물의 손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온 뮈렌의 외침에 죽어가는 동료들을 넘어 기사들이 흑룡에게 달려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사들에게서 광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마법이라도 쓴 건가……?”
우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중의 눈을 통해 봤을 때 그의 능력치엔 마력이 없었다.
‘아직 흑마법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는 건데…….’
그럼 그는 어떻게 카르란에게 줄 마검을 만들어낸 것일까.
‘분명 뭔가 있어.’
의심은 가득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그 증거를 찾아야 하지만 지온 뮈렌을 보자 우진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놈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촘촘하게 덫을 짠 것이다.
기사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버리고 있었지만 그런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꽈악―.
우진은 주먹에 힘을 주었다.
히이이잉……!
그 순간, 지온 뮈렌이 말을 몰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카르란, 넌 왜 아직도 여기 있느냐. 분명 대신도와 함께 떠나라 했을 텐데?”
“아, 네…… 그게…….”
몇 가지 저주를 극복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카르란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말을 더듬었다.
“설마…… 아직도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는 우진을 내려다봤다.
“어째서 제가 말뚝을 뽑았다고 의심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우지 않지 않을까요?”
“기사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비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고삐를 잡아당겼다.
“……마스터.”
잔뜩 힘이 들어가 파르르 떨리는 우진의 팔을 루엔이 조심스럽게 감쌌다.
“녀석의 뜻대로 되도록 놔둘 순 없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찾아야지. 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우진의 눈이 번뜩였다.
“니센!”
“네?”
“저 정도 인원에게 마법을 걸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기사들 말입니까……? 저 정도 인원이면 마법진이라도 그리지 않는 이상은…….”
“……그거야.”
“네. 지금은 미궁탑 때문에 달라졌지만 20년 전만 해도 뮈렌 가문의 저택이 있었던 곳이었거든요.”
“그렇죠. 저택은 사라졌지만 공터는 여전히 뮈렌 가문의 사유지라 종종 들른다고 하셨거든요.”
우진은 토른 바흐에 처음 도착했을 때 카르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뮈렌 저택이 있었던 공터.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