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ing Out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97)
로그아웃이 너무 어렵다-97화(97/150)
“아, 왜애! 얼음 군도 정보 알려주기로 했잖아! 비전에 녹화된 것도 모두 누나한테 보냈었잖아!”
임서준은 누나인 임희정을 향해 소리쳤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가 없잖아. 내가 말했었지? 바로 다시 토른 바흐로 가라고. 그런데 네가 안 갔잖아.”
“그, 그거야…….”
“뒤늦게 접속하니 상황은 종료. 흑룡을 어떻게 퇴치 한 건지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됐다고.”
“끄응…….”
‘내가 보낸 영상으로 특집 방송을 두 번이나 했으면서…… 찾아보니 조회 수 엄청 나왔더만. 치사하게…….’
임서준은 입술을 삐쭉거렸다.
“그래도 내 덕분에 그 사람 얼굴도 찍었잖아. 방송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돼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우리뿐일걸?”
“뭐가 우리뿐은 우리뿐이야? 전멸했던 공격대 사람들 중에 본 사람도 있다던데.”
“하, 하하…….”
그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래도 일이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야. 불사자의 말뚝도 찾아서 제3교황청으로 다시 돌아왔다면서.”
“응. 이번 일 때문에 얼마 전에 열렸던 원탁회가 다시 열릴 거 같아.”
“수장들 머리 깨지겠네. 내로라하는 클랜들이 다들 눈치만 보다 생전 처음 보는 뉴비가 영웅이 되었으니 말이야.”
“맞아. 덕분에 꽤 소란스러워질 것 같아. 호의적인 클랜도 있지만 사실 반대인 클랜들이 더 많거든.”
임희정은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공격대들에게 꽤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었나 봐. 결과적으로는 모두 전멸하고 혼자 살아남았으니…… 그들도 할 말은 없지만.”
“너희는?”
“우리는 호(好)에 가깝지. 어쨌든 그 덕분에 불사자의 말뚝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진짜야? 지온 뮈렌이 악마와 결탁하고 있었다는 거.”
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누가 들을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몰라. 악마의 힘을 쓰긴 한 것 같은데…… 볼턴 왕국에서 공식적인 수사가 이뤄질 거라고 하던걸.”
“흑룡도 흑룡이지만 악마라니……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야.”
“이제 겨우 미궁탑 10층을 공략했을 뿐이니까.”
“불새단도 이번 일로 체면을 좀 구겼을걸. 넘버 원 공격대가 묵묵부답이었으니까.”
임서준도 그 말에 동의했다.
“뭐…… 원래 미궁탑에 특화된 사람들이라 대륙 일엔 관심이 없긴 해도…….”
흑룡의 등장은 정말 위기였으니까.
커뮤니티에서도 케르가의 외면을 질타하는 글이 있었지만, 반대로 강요하지 말라는 옹호도 많았다.
“우리 쪽에선 차라리 샤를로 경의 빈자리를 그 사람으로 채우자는 얘기도 있어.”
“허…… 진짜야?”
“교황께서 꽤 그에게 호기심이 있거든.”
임희정은 그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교황 요한 7세.
그는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였다.
이단심문관 출신으로 라신 교단 이외 다른 교단들을 배척하는 강경파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안 좋은 소문이 있지만, 그래도 요한 7세가 교황에 오른 뒤 라신 교단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기사단을 가지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광의 기사와 성왕기사단의 대부분을 잃었으니…….’
요한 7세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태였다.
“끄응…….”
교황에게 불려가 갖은 욕을 먹었던 임서준은 그날의 일이 떠올라 두통이 오는 듯 관자놀이를 짚었다.
‘에휴, NPC에게까지 혼나면서 게임을 해야 하다니…… 더러워서 원.’
“교단이 토른 바흐의 영웅을 찾고 있다라…… 꽤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겠는데?”
“재밌긴…… 그래서 골치 아파 죽겠는데.”
“왜?”
“대륙에 교단이 라신 교단만 있는 게 아니니까. 교단이 움직인다는 건 다른 교단들도 똑같다는 말이지.”
중앙 대륙에는 라신 교단 이외에 나머지 두 신을 모시는 하덴 교단과 므하 교단이 있었다.
“설마…… 하덴 교단도?”
“맞아.”
그의 대답에 임희정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므하 교단이야 가끔 순례자들이 돌아다녔지만 하덴 교단은 완전히 활동이 없었잖아?”
“맞아. 교황에게 눈엣가시 같은 하덴 교단이 움직이면 분명 마찰이 생길 거야.”
“이야…… 하덴 교단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게 얼마 만이지?”
“누나가 알지 않아? 내가 이블 테일을 시작했을 땐 한 번도 없었으니까.”
“딱 한 번이었어. 지금은 게임을 접었는지 보이지 않는데, 과거에 케르가만큼 유명했던 플레이어.”
“……패스파인더(Pathfinder)?”
그녀는 동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알. 그 사람이 하덴 교단의 신도였지. 너 같은 뉴비는 모르겠지만 그때 진짜 재밌었어. 성배전쟁이라고 3개 교단이 전면전을 벌였거든?”
“뉴비라니. 나름 사제 랭킹 1위인데.”
전쟁 인원만 무려 7천여 명.
플레이어 수도 2천 명이 넘게 참가한 [이블 테일] 역사상 가장 큰 대규모 전투였다.
“동맹이었던 므하 교단이 몰래 라신 교단과 손을 잡는 바람에 하덴 교단은 거의 괴멸 직전까지 몰렸었지. 그때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아마 하덴은 대륙에서 사라졌을걸.”
“그걸 막은 게 그 바알이란 사람이고?”
“맞아. 두 교단이 하덴 교단을 스도 협곡으로 몰아 세웠지. 그런데 알고 보니 몰아붙인 게 아니고 하덴이 그곳으로 그들을 끌어들인 거였고.”
임서준은 입술을 씰룩였다.
성배 전쟁을 종결시킨 스도 협곡 대학살.
유명한 전투였다.
임서준도 비전으로 녹화되어 있던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을 정도니까.
“바알은 정말 특이한 캐릭터였어. 엄청난 퀘스트 클리어 속도도 그랬지만, 그가 쓰는 스킬들이 모두 평범하지 않았지.”
알려진 건 레인저 클래스라는 것뿐.
하지만 그는 기본적인 단검과 활 이외에도 독이라든지 투척 무기뿐만 아니라 권각술에까지 능했다.
“알지. 협곡 안에 바알이 설치해 놓은 독 함정이 있었잖아. 그가 쓴 독으로 무려 1,500명이 죽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살상 능력이었다.
협곡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식 밖의 위력이었다.
“맞아. 신기하게 지금까지도 그가 쓴 독이 뭔지 알아내지 못했어.”
그렇게 케르가와는 다른 의미로 플레이어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바알이 사라지자, 하덴 교단 역시 종적을 감추었다.
“바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함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제2차 성배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러게. 교황 그 양반은 악마보다 이단을 더 증오하니까.”
악마를 살려줄지언정 다른 교단의 신도들은 즉결 처단할 사람이었다.
“부디 왕국 전쟁으로 번지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성배 전쟁을 겪어봤던 임희정은 비록 게임이라도 전쟁이 대륙에 끼치는 엄청난 영향들을 잘 알고 있었다.
“성배 전쟁 당시 왕국 하나가 이단으로 찍히면서 박살이 났었지.”
그 바람에 그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플레이어들마저 엄청난 고통을 받았었다.
‘게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독하게 현실적이란 말이야.’
“조용했던 중앙 대륙이 시끄러워지겠어.”
“말은 그렇게 해도 누나, 지금 엄청 즐거워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럼, 그럼. 지금까지 불새단이 미궁탑 공략하는 것 말곤 별다른 특이점도 없었잖아.”
중앙 대륙이 고인물이 되어버린 이유.
3년 전 성배 전쟁이란 큰 전쟁이 끝난 뒤부터 랭커들은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굳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지 말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이익만 챙기자는 암묵적인 룰.
그로 인해 10대 클랜이 구성되고 원탁회가 창설된 것이었다.
“그렇게 2년이야. 아무 일도 없이 그냥 현 상황만 유지하며 사는 게.”
임희정은 불만 가득한 태도로 말했다.
“울드아 연합이라든지 몇몇 클랜들이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 진행도는 미비해.”
하지만 그 평온이 드디어 깨졌다.
“용의 등장, 요정족의 출현, 그리고 악마까지.”
수년간 보이지 않았던 전설 속 존재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었다.
공식 홈에는 분명 적혀 있는데 찾을 수가 없으니, 사람들은 패치를 안 하고 그냥 올려놓은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단 한 사람이 중앙 대륙에 넘어오면서 갑자기 시작된 거잖아. 올드 유저로서 바라던 순간이지만…… 클랜들이 그를 우호적으로만 보진 않을 거야.”
분명 10대 클랜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가능하면 우리 클랜에 영입하고 싶다.”
“으흠, 글쎄. 레인저 랭킹 1,000위 밖인 허접이 제안해 봤자…… 어…… 우악!!!!”
날아온 베개를 맞은 임서준은 그대로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닥쳐라, 동생. 며칠 전에 스킬 업 해서 이제 998위라고.”
“그거나 그거…… 켁!!”
임희정은 쓰러져 있는 동생의 얼굴에 베개를 지그시 누르며 주먹으로 옆구리를 신나게 때렸다.
“그만! 그만!!”
“그러니까 앞으로 쓸데없는 소리는 삼가도록.”
“끄응, 그러니까 누나야말로 언제까지 부캐만 할 거야?”
버둥거리는 동생을 뒤로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특별 방송이 있어서 다녀올게.”
“웬 특별 방송?”
“불새단 특집 방송. 오늘 케르가가 뭔가 발표를 한다고 하더라고. 아마 늦을 거야. 설거지랑 빨래 확실히 해놔. 알겠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후다닥 집을 나섰다.
“칫…… 묻는 말엔 대답도 안 해주고.”
임서준은 혼자 남은 방에 애꿎은 베개만 툭툭 칠 뿐이었다.
* * *
[요르카 마을]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우진은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추게 했다.
-냄새…….
아직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알 수 없는 악취가 느껴졌다.
세츠나는 괴로운 듯 코를 틀어막았다.
“아마…… 마광산 채굴기에서 나오는 냄새일 겁니다.”
치이이익―!! 치이이이익――!!
광산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증기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진은 몸을 낮추고서 마을을 살폈다.
“여기에 살면 멀쩡한 사람도 병에 걸리겠군.”
마을 안에는 분명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죽은 도시처럼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그런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포털도 마을 밖에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안내를 한 카르란도 마을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마스터, 저기 보이십니까?”
페론이 마을 입구에 세워진 팻말을 가리켰다.
“사유지 선언입니다. 포털이 마을 밖에 세워진 이유를 알겠네요.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둔 모양입니다.”
페론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붉은색 경고창이 나타났다.
[현재 마을은 플레이어의 사유지입니다.] [무단 침입 시 주인의 결정에 따른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뒤가 켕기는 게 있으니 이런 짓을 해뒀겠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우진은 매캐한 냄새를 뚫고 마을 안으로 잠입하기 위한 루트를 찾기 시작했다.
“형님, 저기요!”
웨든의 목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광산에서 인부가 등에 뭔가를 짊어진 채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부의 뒤를 쫓았다.
촤아악―――!!!
인부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터로 가서는 상자 안에 있는 오물을 쏟아냈다.
“……웁.”
지금까지 잘 참았던 우진마저도 이번만큼은 참기 어려운 듯 고개를 돌렸다.
저벅― 저벅―.
하지만 오물을 쏟아낸 인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비틀거리며 다시 마을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말 좀 묻겠습니다.”
인부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황급히 우진이 그를 붙잡았다.
“……?!”
우진의 목소리에 인부는 진심으로 놀란 듯 들고 있던 상자마저 떨어뜨리며 몸을 허우적거렸다.
“죄송합니다.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닙니다.”
격한 남자의 반응에 우진은 일단 그를 진정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어…… 어어어…….”
남자는 대답을 하려는 건지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 뭐지?’
알아들을 수 없을 어눌한 말투에 우진은 당황스러웠다.
“어버…… 어…… 어버버…….”
그 순간, 남자가 입을 벌려 뭔가를 보여주었다.
혀가 잘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