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03
104. Shock and Terror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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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킨슨은 기분이 매우 흡족하다. 드래곤 역사상 최초의 암 환자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그를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대폭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라이벌인 창천을 제거한 것이었다. 그녀가 운영하던 먹음직스러운 기업체들은 대부분 젠킨슨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반(反)드래곤 성향의 야당과 진보 언론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희미한 반향에 그친 것은 물론이다.
또한 심심하면 한 번씩 연락해서 부채 상환을 독촉하거나 여러 심부름을 시키던 친우도 요즘 조용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굳이 연락해서 물어보지는 않았다. 마침 그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큰 사건도 없었다. 그래서 젠킨슨은 자청하여 불구덩이를 쑤시는 대신 간만에 찾아온 안정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여유롭냐면, 한동안 그를 괴롭히던 스트레스성 폭식 충동이 사그라들었을 정도다.
덕분에 코끼리 농장의 가축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달려들던 드래곤의 공포에서 벗어났으며 관리자들도 간신히 한숨 돌렸다는 후문이다. 젠킨슨은 슬슬 예전 식단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고기를 끊고 순수하게 정제된 마나만 흡수하는 클린한 식단으로.
“회장님, 보고드리겠습니다.”
행복한 젠킨슨은 비서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블레어는 호흡을 잠깐 멈추더니, 이내 시선을 서류로 내리깔고 딱딱한 어조로 읊어 나갔다.
“전국 고블린을 상대로 한 무료 건강 검진 및 채혈, 유전자 분석의 진척도는 90%에 가깝습니다. 원양 어선을 타거나, 외국에 팔려 가거나, 노예로 감금되는 등 이유로 행적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수 조사에 가깝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젠킨슨 재단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해외 구호 단체와 협력, 혈청 수집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용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요즘 이쪽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일단 계속 진행 중이었다. 이러다가도 언제 사무실에 들이닥쳐 결과 내놓으라고 독촉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유전자 지도는?”
“데모닉 고블린의 피가 극미량이라도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피실험자 중 3% 정도였습니다. 해당 유전자를 조합하여 순혈 데모닉 고블린의 완전한 DNA 지도를 그려내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알겠네. 지속적으로 보고해 주게.”
“그리고, 다음은···.”
이번에는 상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소식이다. 블레어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실험체 ‘스파이더’에 대한 연구 경과 보고입니다.”
그녀가 내민 종이 안에는 각종 테이블과 복잡한 그래프가 가득했다. 내용을 훑던 드래곤은 곧 핵심을 찔렀다.
“사실상 알아낸 것이 거의 없군.”
그것은 민준이 잡아 온 괴물, 용과 오베르 거미 간 혼혈종에 대한 보고서였다.
그녀를 ‘생산’해 낸 이들의 기술 수준은 현재 지구에서 재현하고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드래곤이 묻는다.
“그녀가 낳은 아이들은?”
“이번에 또 한 명이 이능력을 각성했습니다.”
“그래? 벌써 세 명째잖아. 이번엔 뭔가?”
“정령친화력입니다.”
폴리모프한 드래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령친화력을 발현하는 용족은 거의 없다. 신성력처럼 아예 제로에 수렴하지는 않지만 매우 희귀한 편.
이유는 간단했다. 유령이나, 망령이나, 정령 모두 드래곤 입장에서는 잡귀에 불과했다. 그런 허깨비를 동반자로 여기며 자신과 동등한 수준으로 존중하는 개념을 용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따라서 간혹 정령을 부리는 용이 나타나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용의 피가 섞였는데 정령을 소환했다고?”
자연 상태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하프 엘프와의 혼종이기에 가능했을 터.
“이러다 남은 하나가 신성력이라도 각성하면 전 우주가 경악할 뉴스거리가 되겠군.”
물론 그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블레어는 서류를 보며 말한다.
“이능력을 각성한 아이들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고 합니다.”
젠킨슨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의 유전자가 섞였는데, 안 그런 게 이상하지.”
“이능력에 문외한인 자가 봐도 대단한 수준 같습니다.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어서 가끔 실수하기도 하고 통제가 안 되기도 하는데, 가능하면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교사를 붙이는 게 좋겠다는 건의가 제시되었습니다.”
“아이들 의향은?”
“각자 자기가 각성한 이능력에 큰 관심을 표하고 있으며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구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젠킨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묻는다.
“그 아이들, 남은 수명이 어느 정도 되지?”
“앞으로 10개월 남짓입니다.”
드래곤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원하는 건 다 하게 해 줘.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말이야. 그러니 선생을 붙이게. 제대로 된 자들로.”
허락을 받은 뒤 블레어는 다음 사항으로 넘어간다.
“로드의 동거녀가 무사히 산란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덕분에 미루고 미뤘던 용족 회의의 개최가 곧 선포될 것이다. 젠킨슨은 오랜 근심거리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좀 이야기가 진행되겠군.”
“선물은 무엇을 보낼까요?”
“저번에 그 양반 이혼했을 때 축하 선물로 뭘 보냈지?”
“메데모스 차원산(産) 리치 한 구를 선물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원래 부리던 집사는 재산 분할 때 전처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이거라도 쓰라고 하나 사서 보냈던 것 같다.
젠킨슨은 그때와 겹치지 않을 선물을 궁리하다가 말했다.
“내 레어에서 오리할콘과 미스랄을 적당히 꺼내서 보내. 그 양반 피를 이어받았으면 부화도 빠르고 이앓이도 금방 하겠지. 깨물고 놀 장난감이 필요할 거야.”
거기까지 보고를 마친 뒤 다음 일정을 확인한다. 여당 대표와 면담이 잡혀 있었다. 그대로 자리를 옮기려던 참이었다.
“블레어 님.”
문이 열리고 비서실 직원이 들어온다. 받아 든 종이를 검토한 엘프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드래곤에게 넘긴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
서류를 본 젠킨슨의 표정이 일순 굳더니.
“······!”
곧 경악으로 물든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공석이다가 왜 하필!”
그는 충격에 빠진 채 서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위원회에서 전달한 서신은 간결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비어 있던 위원회 지구대표소의 수장 자리가 이번에 드디어 채워지게 되었음을.
그것만으로도 나쁜 소식이었는데, 인선(人選)을 확인한 순간 드래곤은 공포를 느꼈다.
그의 입술이 가늘게 떨린다.
“···엔델리온?”
더군다나 이번에는 대상의 신분까지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그것도, 공주라고?!”
소름 끼치는 충격이 그의 내면에 균열을 만들었다. 젠킨슨은 가슴 속에 구멍이 파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공허를 뭔가로 채우고 싶은 욕망도.
레드 드래곤은 당장에 그 구멍을 코끼리 고기로 메우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
“형님, 정말 봉인하실 겁니까?”
운전대를 잡은 정팔이 조심스레 물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기세였지만 지금은 안색이 완전히 달라졌다. 피로가 싹 날아간 사실에 주목하는 대신 그는 민준의 심기를 살폈다.
조금 전 민준은 그들 식생활에 혁명을 불러온 후라이팬의 소재를 묻더니 바로 캐시의 집으로 가야겠다며 일어섰다. 정팔도 엉겁결에 따라나서곤 그를 태우고 움직이는 중이다.
민준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정팔아, 잘 생각해 봐. 내가 지금까지 뭘 해야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그걸 까먹은 적이 있었냐?”
“···없었죠.”
“난 굳이 입에 담지 않고 생각만 했더라도 잘 잊어. 성격이 원래 그래. 해야 한다고 결심한 건 빨리 해치워 버리는 편이야. 때를 놓치면 일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아니까.”
수형자 생활 때문에 몸에 밴 습관이다. 요즘은 그나마 낫지만 초기에는 기한에 맞게 생존세를 지불하는 것도 힘들어서 허덕댔으니···.
“그런데 내가 그 후라이팬 봉인하겠다고 결정하고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까먹었다가 다시 떠올리고, 다시 까먹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단 말이야?”
“···확실히 이상하긴 하죠.”
민준은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아까 에고 소드 이야기를 했잖아? 그때 내가 했던 말과 후라이팬에 대해 말했던 내용을 비교해보면 더 이상해.”
“무슨 말씀입니까?”
“에고 소드 이야기할 때 나는 이렇게 단정 지었지. 그런 고도의 화술과 이능력을 구사하는 게 인공지능일 리 없다고. 그 안에 영혼이 깃들어 있을 거라고.”
“그랬죠.”
“그런데 후라이팬에 대해서는 반대로 단정 지었어. 저토록 유려한 언변과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보유한 게 수상하긴 하지만··· 절대로 그 안에 영혼은 없다고 말이야.”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미세한 영혼 파편이거나 반대로 매우 격이 높은 영혼이라는 뜻인데, 전자라면 자아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영혼이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민준의 눈이 놓치는 영혼은 없다고 단정한 것.
“너무 성급하고 근거가 부족한 판단이야. 그런데도 의문을 품지 않았어. 당연한 듯이··· 후라이팬은 인공지능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렇지 않다는 근거가 넘쳐 나는데도. 그리고 내 의심이 맞다면 그 후라이팬에는 우리가 아는 것 말고도 기능이 한 가지 더 있어. 그런 이능력을 인공지능이 통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정팔은 그가 말한 또 하나의 능력이 뭔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입에 담는 것이 꺼려져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캐시의 집으로 향했다.
“어머?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문이 열리고 캐시가 그를 반겼다. 당황한 시선이 민준과 정팔을 차례로 스친다.
“잠깐 들어갈게.”
“네, 들어오세요. 식사 중이었는데 잘됐네요.”
“아니, 밥은 됐어.”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어? 요원님··· 안녕하세요.”
튀김을 입 안에 쓸어 담던 하은성이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뻘쭘하게.
얼마 전부터 둘이 정기적인 점심 모임을 시작한 걸 민준은 알지 못했다. 그는 식탁 위를 흘깃 본다. 둘만 먹기에는 과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이었다.
다음에는 후각에 집중했다. 허기를 못 느끼다가도 맡은 순간 몸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매혹적인 향기였다.
“이상하지 않아?”
캐시가 대꾸한다.
“뭐가요?”
“아무리 뛰어난 후라이팬이라고 해도 말이지, 만드는 음식마다 이렇게 사람 미치게 만드는 냄새가 나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종류에 상관없이.”
정팔은 민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캐시와 하은성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더군다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취향이 있기 마련이야. 먹는 거에는 더 까다로울 수 있지. 하지만 저 후라이팬으로 만든 음식에는 그런 게 없어. 평소에 싫어하던 음식이라도 저것만 거치면 겪어 본 적 없는 진미가 되지. 심지어···.”
하은성을 가리키며 말한다.
“인간식으로 조리한 요리를 용의 육신으로 먹어도 그대로 맛이 느껴진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세상에 그런 용은 없어. 내가 잘 알아.”
그는 또 하나를 지적한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반복해서 먹으면 뇌 내 도파민 분비가 줄거나 수용체가 줄어서 내성이 생길 수밖에 없어. 인간이든 오크든 마찬가지야. 하지만 저걸로 만든 요리에는 그런 한계점이 없지. 역치 변동이 전무해. 먹을 때마다 동일 수준의 쾌감을 느끼는 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민준은 부엌으로 향했다. 방금 튀김 요리를 했는지 기름 범벅으로 된 후라이팬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방금 한 말을 되뇐다.
“그래,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만약에라도···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곽도출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에고 소드의 ‘이능력’을 들은 순간, 그리고 그 검과 후라이팬 간 연관성을 떠올린 순간··· 도대체 왜 지금까지 이걸 착안하지 못했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 요리를 먹은 사람들 정신에 손을 댄 거지.”
민준은 후라이팬의 손잡이를 잡았다. 화르륵! 불꽃을 일으킨다. 기름이 끓으며 기화했고 그 유증기마저 다시 불타올랐다.
곧 불꽃이 사라지고 깨끗한 표면이 드러난 후라이팬을 노려보며, 민준이 으르릉거렸다.
“너, 정체가 뭐야?”
잠깐의 침묵 후.
그의 손을 타고 유쾌한 어조의 정신파가 울려 퍼졌다.
=이런, 눈치채셨군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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