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27
128. 드래곤이 새끼를 숨김 (5) >
콰르르! 쾅!
굉음이 울렸다. 고요했던 도심 공기를 찢어발기며.
모두가 정신파를 멈추고 굳었다. 민준은 어둠을 뚫고 그 광경을 직시한다.
폭발은 묵직한 질량을 가지고 확산되었다. 관찰자들은 빌딩 꼭대기에서 유리창과 콘크리트, 철근을 휘날리며 피어나는 거대한 덩어리를 보았다. 그것은 젠킨슨을 닮았다. 여러 겹의 날개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목, 두 팔과 다리, 길게 뻗은 꼬리까지.
화룡(火龍).
젠킨슨이 경악한다.
=···아!=
ICC를 부수고 나타난 그것은 처음에는 해츨링 크기였다가, 순식간에 수백 살 먹은 젊은 용의 모습으로, 그걸 넘어 젠킨슨 또래의 고룡의 사이즈로, 곧 그것마저 넘어선 거대한 규모로 변했다.
민준은 저것이 폴리모프를 갑작스럽게 해제한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 형태로 방 안에 있던 로드가 갑자기 드래곤의 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결과 빌딩 최상층부가 통째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엘더 드래곤의 거대한 육신은 무기력하게 추락했다. 길고 날카로운 창 위에 꽂히는 짐승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그 짐승은 너무 무거웠고, 창은 그걸 뚫을 만큼 충분히 견고하지 않았다.
길쭉한 건물이 용체에 깔린다.
테러를 대비한 외벽 물리 결계는 용의 무게까지 견디지는 못했다. 고층 결계부터 짓눌려서 터지듯 부서진다. 그 결과 자연 상태 붕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이야기 속 바벨탑처럼, 홍콩 최고층 빌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추락하는 용에 깔려, 빌딩은 머리부터 으스러진다. 생물로 치면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차례로, 비늘 뽑히듯 파편을 흩날렸다. 그것을 손질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거친 손길이었다. 건물이 으깨지는 지점을 따라 불꽃과 연기가 직선으로 이어진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그 도화선 끝에 존재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추락하는 드래곤보다 무거운 단 하나의 것이었다.
용이 땅을 들이박았다.
——!
심장이 멎을 듯한 굉음이 한 번 더 울렸다.
쿠르르릉!
지면이 꿈틀거리며 흔들린다. 구룡반도를 덮친 땅 울림이 한참 이어졌다.
붕괴 지점에는 파편이 사방을 휩쓸었다. 폭풍 속에 철골과 유리가 우박처럼 튀었고, 근처 건물에 기관총을 갈긴 듯한 참혹한 흉터를 남겼다. 그리고 그것과 대비되는 속도로 분진이 뒤따라서 자욱하게 깔렸다. 천천히 대지를 잠식한다.
다시 이어지는 폭발.
쾅! 콰콰쾅!
산더미 같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ICC 주변을 일그러뜨리던 마력장이 사라진 것은 그때였다.
말을 잊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드래곤들이 정신을 차렸다. 붕괴에는 겨우 몇 초가 소모되었지만 체감은 몇 년이나 흐른 듯했다.
=빨리!=
민준과 용족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날아올랐다. 소방관이 된 것처럼, 빌딩 근처에 마법을 쏟아붓는다. 화재는 금방 진압되었다. 하지만 무너져 버린 건물은 복구할 수 없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 폭발의 원인이 되었을 드래곤은.
“······.”
처참하다.
민준은 가라앉은 대지에 축 늘어진 드래곤을 보았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몸에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로드!=
젠킨슨이 절규했다. 다른 드래곤들이 쏘아 내는 정신파가 소란스럽게 하늘을 물들였다.
민준은 석상처럼 굳은 채, 끔찍한 모습으로 널브러진 골드 드래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오늘 새벽까지 함께 술잔을 나누던 남자, 드래곤 로드가 그곳에 죽어 있었다. 몸이 기이한 형태로 꺾인 채였다. 북서쪽으로 뻗은 긴 꼬리는 방파제를 넘어 바닷물에 잠겼고, 머리는 남동으로 내팽개쳐 한때 오스틴 로(路)였던 도로 잔해에 파묻혔다. 한쪽으로 쏠린 열두 장의 날개는 홍콩섬으로 통하는 해저 터널 입구를 완전히 쓸어 버린 상태였다.
민준은 발아래를 한참 응시한다. 붕괴에 휩쓸려 갈기갈기 찢기고 금이 간 주변의 고층 건물이 그 모습을 함께 내려다보았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마천루는, 지구 최고령 드래곤과 휘말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묘비처럼 보였다.
***
엔델리온의 공주는 새벽에도 깨어 있었다.
청동색 촉수가 움직이자 그 자리에 검 한 자루가 나타난다. 그녀의 몸에 비하면 털 한 오라기에 불과한 작은 물체였다. 물론 엔델리온에게는 체모가 없지만 말이다.
관찰하며, 다시 생각한다.
‘정신체 반응은 없어. 에고 소드가 아니야.’
민준은 은밀하게 이 검을 보내며 확인을 요청했다. 비밀 서신 속 내용을 떠올린다.
-이게 지금까지 사람을 여럿 홀린 건 확실해. 마지막 숙주는 네가 준 후라이팬 덕분에 분자 단위로 붕괴되어서 심문이 불가능했어. 그런데 그 직후 이 검을 검사하니··· 아무 이상 없더군.
델은 이미 검을 가지고 여러 실험을 해 보았다. 결과는 민준이 말한 것과 같았다.
-내 생각은 이래. 애초에 이 검에 아시프-1 파편 같은 것이 깃든 게 아니라, 평범한 저주가 걸려 있었는데, 그 효력이 다한 거지. 마지막 공격이 그만큼 치명적이었던 것 아닐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네가 직접 검사해 보는 게 좋겠어. 내가 눈치채지 못한 비밀도 엔델리온의 기술력으로는 발견할 수 있을지도.
델이 지구에서 할 수 있는 실험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공주는 이걸 조용히 모차원에 보낼 생각이었다. 큰 기대는 걸지 않았지만 한 가지가 걸렸기 때문이다.
공주는 속으로 뇌까린다. ‘그 후라이팬’의 공격을 받고 검이 형태를 유지했다고? 완전히 으스러지는 대신에?
물론 민준이 무의식중에 천재적 감각으로 개체 선별적 공격을 가하거나 확률 조작적 왜곡장을 펼쳤을 수도 있다. 그 후라이팬에 지원되는 기능이니까.
‘하지만 그런 건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혹시 모르니 일단은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소장님,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흰 깃털로 덮인 외계인이 면담을 청한다. 델은 그것에 응했다.
문이 열린다. 그녀에 비하면 개미나 다름없는 작은 생물이 들어왔다. 그녀가 지구에 파견될 때 위원회 중간 간부가 함께 딸려 보낸 직원이다. 본부에서 일하던 자이지만 고대 종족은 아닌 정직원.
델은 정신파를 울렸다.
=무슨 일이죠? 도테스.=
문을 열고 들어온 도테스는 직경 6km의 촉수 생물 앞에 몸을 굳혔다. 여러 번 본 광경이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녀 앞에 설 때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올라온다. 자신을 이곳에 파견한 게드윅이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차라리 도테스와 비슷한 사이즈의 털 달린 선형 생물이 낫지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말한다.
“지구의 드래곤 로드가 사망한 사실이 방금 확인되었습니다.”
도테스는 상관의 반응을 살핀다.
그는 엔델리온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지시를 들은 뒤 그들의 신체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눈동자 움직임이나 경련, 촉수의 꿈틀거림, 표피의 색상 변화 등을 읽는 것이다.
파견 전 나름 철저하게 공부했다고 자신했던 도테스는 델을 보고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지금 그녀의 태도는, 다른 종족으로 치면 완벽한 무표정에 해당했다.
저 공주는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항상 그랬다. 감정이란 게 없는 종족인 것처럼. 정물(靜物)처럼 고요하고 얼음처럼 차갑다. 엔델리온의 불같이 뜨거운 정서를 아는 입장에서는 기이하게 여길 정도였다.
심지어 이런 큰 뉴스를 듣고서 동요의 기색조차 없다.
‘왕족의 특성인 건가?’
의아해하는 도테스 앞에서 공주가 말한다.
=알겠습니다. 관련 정보를 전송해 주세요. 검토한 다음 조치할 부분을 지시하지요.=
“이미 보내 두었습니다. 그럼···.”
도테스가 나간 뒤 촉수는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거대한 홀로그램이 맺힌다. 금색 비늘로 덮인 화룡(火龍) 사진과 영상이 뜨고 자세한 설명이 뒤따랐다.
엔델리온은 오늘 사망한 드래곤 로드의 프로필을 다시금 살폈다. 그리고 눈길이 한 곳에 멎었다.
-···지구의 드래곤 중 손꼽히는 강경론자로 분류됨. 주의 요망.
로드가 죽었으니 드래곤들은 대표를 새로 선출해야 할 것이다.
엔델리온은 자료에서 그 후보가 될 만한 자들의 리스트를 눈으로 흩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녀의 사념은 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
“벌써 날이 밝았어. 상속자들은 아직도 다 안 온 거야? 대체 로드의 시신을 언제까지 길바닥에 방치할 셈이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민준의 질문.
“나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네.”
초췌한 안색의 젠킨슨이 한숨을 쉰다.
당장 아프리카로 날아가 코끼리를 물어뜯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면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며칠 후 치러질 예정이었던 용족 회의 개최 여부는 불확실해졌다. 당장 새 로드부터 뽑아야 할 판인데 그게 하루아침에 결정될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드래곤은 귀가하는 대신 여기에 남았다. 누구도 시신에 손대지 못하도록 마법을 걸어 놓은 채.
자처하여 증인이 된 그들은 지금 로드의 상속자들이 모두 모이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애초에 회의 참석 대상이 아니라 홍콩에 안 왔던 이들까지 말이다.
참고로, 용족 회의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드래곤은 주로 해츨링과 그들의 어미다.
“상속자 중 해츨링이 꽤 있어. 아이들이 움직일 수는 없으니 곁에 붙어 있던 모친들이 보호자 자격으로 대신 올 거야. 레어에 떼어 놓고 오기 불안하니까 철저하게 결계를 치느라 늦어지는 거지.”
그 말을 들은 민준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둘은 ICC 붕괴 현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근처 건물 옥상에 있었다. 그들 외에도 현장을 감시하는 드래곤들이 곳곳에 흩어진 상태다.
민준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현실로 여기기 힘든 것이 그곳에 있다.
숨이 끊어진 금색 고룡의 시신이.
과거와 현재의 두 자아가 섞이면서 민준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
시신은 그 거대함 때문에 생물의 잔해라기보다 지형지물, 혹은 건축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주변 교통은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용들과 민준을 제외한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
홍콩을 영지로 둔 고룡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발표 직전 헬리콥터나 드론을 띄워 용의 시신을 촬영하려고 했던 방송국 및 개인들은 고룡의 분노에 직면해야 했다.
한편, 사건 규모에 비해 사상자 수는 많지 않았다. ICC 내 거주 시설은 호텔 하나며 그곳은 사전에 로드가 통째로 빌려 놓았었다. 늦은 새벽이라 오피스 층은 거의 비어 있었기도 했고.
드래곤의 시신은 손대지 않은 채, 휘말린 자들을 발굴하고 주변 건물 부상자를 구조하는 작업은 새벽에 이미 끝났다. 붕괴 규모를 보면 기적에 가까운 속도였다. 수백의 드래곤이 직접 나섰으니 지체란 있을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움직인 목적을 들여다보면, 용외 종족 구출보다 사태 본질을 밝히기 위한 감식 행위에 더 가까웠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군.”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보던 젠킨슨이 다시금 한탄했다. 그 얼굴에는 허탈과 상실감이 가득했다.
드래곤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읊조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로드는 지구 드래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자이며, 통념처럼 용의 나이는 힘과 비례하는 편이다.
그래서 젠킨슨은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부 드래곤은 ‘로드 자살설(說)’을 읊조리고 있지만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헛소리였다.
민준이 어두운 안색으로 말한다.
“로드를 암살할 자라고 하면 결국 고대 종족밖에 없지 않겠어?”
“그렇긴 하지만···.”
입에 담기 싫은 가능성이었다.
젠킨슨이 반문한다.
“이렇게 대놓고 수작을 부릴 상황이 아닐 텐데?”
자칫 잘못하면, 다른 차원과 연계한 대규모 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일.
“정말 놈들이 한 일이라면 철저하게 증거를 숨겼을 거야. 그럴 자신이 있으니 손을 썼을 테고.”
그것이 위원회의 방식이었다.
하필이면 타이밍도 치명적이다. 민준은 어제 로드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팟!
그때 빛이 번쩍이며 하늘에 용이 또 하나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시신을 보며 절규한다.
=로드!=
민준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고인의 전처 중 한 명.
그렇다는 건 함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도 의미했다. 거기까지는 기억했지만, 아이가 로드의 몇 번째 자녀인지까지 떠올리지는 못했다.
“레파스라르, 저 여자가 낳은 애도 아직 해츨링이지?”
“그래. 그녀도 상속자의 보호자 자격을 갖췄어.”
드래곤 로드의 시신이 아직도 현장에 방치된 이유는 그들 특유의 장례 의식 때문이다.
장태준이나 창천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지켜야 할 규칙.
함부로 못 건드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용의 시신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룡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값진 드래곤 하트는 물론이고 비늘, 뼈, 혈액, 각종 장기까지··· 어느 차원에서나 최고의 귀물로 취급받는다. 용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용이 죽었을 때 유족들은 그 시신을 땅에 묻지 않는다. 불가능한 도전일수록 흥분하는 전 차원 도굴꾼을 유혹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불에 태우지도 않는다. 지옥 불에 던져도 완전히 연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곳에 숨겨 두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낭비하기에는 시신이 품은 가치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래곤의 장례 의식은 다른 종족이 보면 기겁할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절차는 간단하다. 고룡이 숨을 거두면 직계 상속자들이 모여서 시신을 토막 내고 동등하게 분할하여 나눠 가진다.
‘로드,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젠킨슨은 다시금 아래를 응시하며 슬퍼했다.
그처럼 시신이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 상황은 비정상적 사건이 겹친 결과였다. 본래 저 정도 나이를 먹은 드래곤이면 자연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죽음의 순간을 미리 알아차린다. 그에 맞춰 유족들을 불러 모은 뒤 레어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다.
지금은 순서가 반대가 되어 버렸다. 상속자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누구도 시신에 손을 댈 수 없다.
잠시 침묵하던 민준이 생각난 듯 묻는다.
“외계의 상속자들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부분은 이미 확인했네. 지구로 망명 오기 전 다른 차원 자식들과는 철저한 정리와 정산을 끝냈다는군.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대가가 오갔을 거야.”
“지구 상속자만 모이면 된다는 거군. 지금까지 몇 명이나 왔지?”
“성년이라서 홍콩에 미리 와 있던 상속자가 열한 명. 그리고 상속자 해츨링의 보호자 자격으로 뒤늦게 도착한 드래곤이 네 명이야.”
“그럼 세 명만 더 오면 되겠네.”
“아니야, 두 명이지.”
“음?”
민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바로 어제 들은 이야기이니 착각할 리 없었다.
“세 명 남은 거 아니야? 용족의 상속권은 자식에게만 허락되잖아.”
“그래, 그러니 두 명 남았지. 드래곤 로드가 지구에서 낳은 아이는 모두 열일곱 명이야. 이번에 산란된 혼외 자식까지 합한 수지.”
“······?!”
“여태 상속자와 보호자 열다섯이 왔으니 둘만 더 오면 돼. 합해서 열일곱이잖나.”
민준은 혼란에 빠졌다. 바에서 들은 로드의 말을 분명 기억했다.
-지구에서만 열여덟 명이야.
그는 단언했다. 지구에서 낳은 자식이 모두 18명이라고.
설마 자기 자식 숫자를 헷갈린 것인가?
‘그럴 리가.’
불가능하다. 로드는 그럴 드래곤이 아니다.
그렇다고 민준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는 문제.
확인차 다시 묻는다.
“내가 저번에 참석한··· 로드의 마지막 이혼 파티 말이야. 그거 몇 번째였지?”
“열여섯 번째였지.”
한 번 혼인을 할 때마다 아이를 한 명씩 낳았다. 열여섯 번 이혼을 했으니 열여섯 명이 태어났고, 동거녀와 낳은 알까지 포함하면 열일곱. 그럼 계산이 맞다.
‘그런데 로드는 나한테 왜 열여덟이라고 했지?’
의혹이 부풀어오른다.
‘설마?’
하필이면 숨을 거두기 몇 시간 전 민준에게 그리 말한 이유는?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지구에 숨겨 놓은 자식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왜 용도 아닌 민준에게 넌지시 암시했는가? 젠킨슨 같은 동족도 모르는 비밀을?
물론 이것 역시 말실수일 수 있다. 다른 드래곤에게는 숨기던 비밀을 엉겁결에 민준에게 발설···.
‘말도 안 돼. 그건 아니다.’
민준은 고개를 젓는다.
‘그리 허술한 사람이 아니야.’
그럼 결국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로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민준이 가장 혼란을 느끼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그는 드래곤이 자신의 새끼를 숨겨야 할 이유를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