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4
14. 직장상사를 살해하는 세 가지 방법 (11)
에델리네스의 텔레파시는 당연히 아니었다. 이 망나니 용은 지금 그런 간단한 마법을 펼칠 여력도 없었으니까. 상대의 정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민준의 응답은.
“······.”
못들은 척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더 상세한 용 해부도를 펼친다. 심미학적으로는 낙제점을 받겠지만 용 커뮤니티에 끼칠 정신적 충격 측면에서는 만점을 받을 절단면을 시뮬레이션했다.
민준은 잘 자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각을 잡고 칼날을 세운 순간, 더 강력한 정신파가 머릿속을 때렸다.
=강력하게 권고하네. 이쯤에서 멈췄으면 좋겠군.=
그제서야 민준은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한 부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선명한 빛을 뿌리는 달과 별 말고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의 시선에 망설임은 없었다.
정신파를 뿌린 상대는 약간 당황했는지 짧은 침묵 뒤 말했다.
=······여전히,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민준.=
상대는 먼 곳에서 민준이 있는 장소를 관찰하는 마법을 쓰고 있었다. 그가 놀란 까닭은, 자신이 어떤 앵글로 현장을 보는지 민준이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모니터 안 대상이 시청자를 똑바로 직시하는 것과 같았다.
민준은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회장님.”
젠킨슨 회장은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의뢰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줘서 고맙네. 에델리네스가 획득한 조건부 지구시민권은 방금 박탈되었네. 이제 본래 있던 차원으로 강제추방될 걸세. 자네가 애써준 덕분이야.=
노란 머리 한국인도 있고, 한국계 미국인도 있듯이 한 사람의 소속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척도는 시민권이다.
마찬가지로, 지구시민권을 획득한 드래곤이라면 이 세계의 주민으로 인정받지만 그것이 없는 드래곤은 그저 외계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에델리네스는 이제 외계인이다.
젠킨슨 회장이 원하는 것은 그녀의 혐의를 입증하여, 이 세계에서 쫓아내 버릴 빌미를 만드는 것이었다.
“말씀대로 공무는 완료되었습니다. 이대로 연행해야겠죠. 그런데 문제가 있네요. 저는 지금 에델리네스가 완벽하게 무력화됐다는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저기 눈동자 뒤집힌 것 좀 보게. 분명하고도 명백해. 에델리네스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상태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죠. 더군다나 상대가 용일 때는요. 회장님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가 마무리가 확실한 부분 아닙니까?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꼭 날개를 잘라야겠나?=
“네. 팔과 다리도요.”
앞으로 그 어떤 개념 없는 드래곤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도록.
=······자네의 고용주로서는 양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 하지만, 한 명의 용으로서는 자네를 여기에서 막아야겠어. 그것이 엘더 드래곤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민준은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증거 없이 동족을 의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증을 제게 맡겼으면, 회초리를 드는 것까지 제게 일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초리 드는 것까지는 맡긴 것이 맞네. 그래서 혐의가 확실해진 뒤에도 ‘분풀이’하고 있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지. 그러나, 따끔하게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넘어서 종아리를 잘라버리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겠는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거군. 민준은 욕을 삼키며 말했다.
“이 새끼는 ‘제 영역’을 침범했습니다.”
=그것이 자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아네.=
“제가 거기에 민감한 걸 알면 다음 행동도 이해하십시오.”
=종족의 문제네. 나도 어쩔 수 없어.=
사실, 민준이 하려는 행동은 아슬아슬한 선타기다. 즉사는 피하겠지만,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알 수 없다. 끝내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도 없지 않다.
젠킨슨 회장은 고심하다가 마침내, 꺼내기 싫었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민준, 날 더 이상 치졸하게 만들지 말아주게. 꼭 드래고닉 코드를 여기에서 언급해야겠나?=
“······!”
실질적으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드래고닉 코드에 따르면 용족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것은 같은 용족 뿐이다.
젠킨슨 회장은 여차하면 용족회의에 민준의 일이 안건으로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정당방위 및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간주하여, 이민국의 실질적 수장이 아니라 한 명의 엘더 드래곤의 입장으로 다루겠다는 선포.
민준은 화를 더욱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가시가 돋은 말을 뱉는다.
“정말로, 드래곤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쉽군요. 특히나 회장님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민준, 우리 더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 보세. 지금 이 마법회선은 우리 둘 말고 아무도 듣고 있지 않네.=
그러자 민준은,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분노를 일시에 터뜨렸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대를, 마치 똑바로 응시하듯이 허공에 소리쳤다.
밤이 내려앉은 산자락에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으면, 애초에 자네가 애들 관리를 잘 했어야 할 거 아니야!”
=······.=
텔레파시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민준은 비서가 건넸던 젠킨슨 회장의 서신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 나와 연을 맺은 소중한 친구에게.
거두절미하고 부탁하겠네. 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망나니가 누군지 찾아주게. 내가 전면에 나설 수 없으니 자네에게 의뢰하고 싶네.
내 청을 들어준다면 이백 년 전 성간슬라임 소탕 작전 때의 빚은 없는 것으로 하겠네.’
그 아래에는 일정 금액의 달란트와 지구 화폐에 대한 약조가 있었다.
서신에 언급된 이백 년 전 일은, 둘이 각자의 이유로 지구에 오기 전의 사건이었다. 즉, 젠킨슨 회장은 민준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면목이 없군.=
에델리네스는 이 둘의 관계를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민준이 이민국 계약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신분이 합법적이고 자연스럽게 외계 범죄자를 처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면이기 때문이다. 한편, 젠킨슨 회장은 그가 담당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뛰어난 해결사가 필요했다.
이런 둘의 니즈가 자연스레 한 지점에서 만난 것뿐이며, 민준은 원하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다. 그에게는 다소의 불편함이 생길 뿐이지만, 젠킨슨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민준은 명료한 어조로 말했다.
“젠킨슨,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편지를 통해 의뢰받은 내용은 이미 완수했다. 지금부터는, 내 개인의 문제야. 내 영역을 건드린 병신을 처단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나 또한 개인으로서 간곡히 부탁하겠네. 오랜 친구로서, 내 청을 부디 들어주지 않겠는가?=
함의하는 바는 간단했다.
민준의 2백년 전 빚이 탕감되는 것에 더하여, 젠킨슨 회장의 빚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그가 저렇게까지 나오는 것은, 엘더 드래곤으로서의 책무 때문이다. 민준이 이대로 망나니 드래곤의 윤곽을 밋밋하게 다듬어버리면, 살아 남더라도 회복에 수십 년이 걸린다. 소문이 퍼질 것이다.
조항이 만 개가 넘는 드래고닉 코드를 민준이 모두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지역 책임자인 젠킨슨이 곤란해진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역시,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 하는군.’
민준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젠킨슨은 그 의중을 짐작한다는 듯이 한 마디 보탰다.
=물론, 앞으로 어린 용들을 상대로 한 교육은 철저하게 진행할 것이라 약속하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용족들이 지구로 넘어올지 알 수 없으니 말일세. 재발 방지를 위한 프로세스를 철저하게 확립하겠네.=
젠킨슨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실, 민준은 회장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본래의 계획을 반쯤 폐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빚을 하나 교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시간 끌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는 밤하늘을 노려보며 말한다.
“남들 눈에 띄는 형태의 사적제재가 곤란하다는 거 아니야? 통나무가 된 용이 실려 나가는 장면을 원치 않는 것이고.”
=그렇다네.=
“하지만 난 이 정도로는 분이 안 풀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어서 원하는 바를 말하라는 듯 권한다.
민준은 말했다.
“이 새끼 피를 좀 뽑아가야겠어.”
=······.=
“걱정 마, 흑마법으로 공양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그냥 일반적인 마법으로 채혈해 가겠어. 어때?”
마법적 방법이므로, 김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다소의 생명력까지 빨리겠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수명이 좀 줄 수도 있지만 티는 안나겠지.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둘 사이 공백을 채웠던 침묵 중에 가장 긴 것이 흐르고.
결국 젠킨슨 회장은 결정을 내렸다.
처음 그를 만류할 때 했던 말을, 다소 다른 감정을 실어서 되풀이한다.
=······여전히,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민준.=
***
잠시 기다리니 현장 정리를 맡은 이민국 요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몹시 조심스러운 자세로 다가와 민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가 까딱 고개를 끄덕이자, 즉각 군말 없이 전투의 흔적을 지우고 널브러진 에델리네스를 수습했다. 저 드래곤의 심문은 젠킨슨이 파견한 용족이 대신 진행할 것이다.
요원들은 돌바닥에 박힌 비늘 조각을 뽑아내 별도 컨테이너에 조심스럽게 담고, 용의 피에 젖은 토양을 통째로 파서 보관했다.
용의 체액과 장기, 외피 등의 거래는 법률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지만 암시장에서 드물게 팔리기도 한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서 수습된 것만 다 합해도 몇십 억원 치는 되겠군.’
그래 봤자 민준이 챙긴 신선한 용혈의 가치에는 비할 바 없다.
냉동하지 않고, 마법적인 수단으로 생명력까지 담은 상태로 채혈한 용혈은 가장 강력한 마법 시료다. 그는 이것을 암시장 등에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뜩이나 귀중한 이 보물은 민준의 손을 거치면 몇 배로 가치가 뛸 것이다. 사용처는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띠링!
○계좌 정보 (죄수식별번호: 아시프-666)
-‘오랜 벗’님이 수형자 계좌에 10,000달란트를 입금하셨습니다.
젠킨슨 회장이 사재를 털어서 그의 계좌에 차원공용화폐를 입금했다.
지구화폐와는 달리, 저것은 드래곤이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엘더 드래곤은 꽤나 큰 성의를 보인 것이다.
-현재 계좌 잔액은 31,523 달란트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계좌 내 달란트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순간 법정이자가 부과되며 과도한 연체 시 즉결 처형될 수 있습니다.
-‘죄수식별번호: 아시프-666’님에게 책정된 퇴직금(즉시석방 보석금)은 5,124,990 달란트입니다.
‘계좌 잔액이 50% 증가했군.’
오늘 받은 달란트는 에트렐라 같은 잡범을 50명은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액수다.
민준은 지구 은행 계좌에도 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뒤 일정 금액을 정팔의 계좌에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아··· 형님! 방금 문자 와서 확인했습니다.”
액수를 봤는지 목소리에 기쁜 감정이 가득하다.
“김연주 전무는?”
“사무실에 그대로 같이 있다가는 곤란해질 것 같아서, 별도 장소에 연행했습니다. 경찰서는 당연히 아니고요. 용은··· 처리된 거지요?”
“그래.”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무리 형님이라도···.”
그의 질문을 잠시 막으면서 말했다.
“주소 불러 봐. 이 일, 슬슬 마무리하자.”
“네, 김연주도 직접 심문하실 거죠?”
젠킨슨의 개인적 의뢰는 해결했지만 장태준 사장의 행방을 찾는 본래의 의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용족들이 에델리네스를 심문하는 동안, 민준도 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골치 아픈 용도 치워 놓았으니 훨씬 일이 쉬워질 것 같다는 예감을 느끼면서 민준은 이동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의 예감은 잘 맞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