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41
142.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14) >
***
고민하던 켄티우스는 이 드래곤과 대화를 더 오래 나눌 필요가 없다고 결론 지었다.
‘미친 용이랑 길게 말 섞어 봤자 시간 낭비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야기를 깊이 공유하기 위해서는 민준의 이야기가 거론되어야 했다. 그가 머릿속에 심어 놓은 암시가 그것을 저지했다. 결국 그는 대충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니··· 난···. 음, 이 말은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해 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 한마디 덧붙인다.
켄티우스 자기 자신을 종족 정체성 같은 당연한 것까지 헷갈리는 정신병자로 격하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무튼 난 너와 달라. 난 내가 드래곤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
레오는 풀이 죽은 표정이 되었다. 조용히 중얼거린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드래곤의 몸을 버리는 방법이라.
켄티우스는 자리를 뜰 타이밍을 재면서 물었다.
“죽고 싶은 건 아니잖아?”
“우습게 들리겠지만 죽는 건 무서워.”
켄티우스는 고심하는 척하며 건성으로 말한다.
“죽지 않고 다른 몸으로 옮겨 타는 방법이라.”
그때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른 이유는 지금 하필 민준과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면 고안해 내지 않았을 아이디어였다. 왜냐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며 그런 걸 친구에게 권유하는 일은 부도덕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켄티우스는 이미 이 대화에 진지하게 임할 의욕을 잃은 상태였고, 말 그대로 뇌 속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뱉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하나 있긴 하군.”
“뭐가?”
“위원회가 그 짓거리를 하고 있긴 하지. 죄를 저지르고 잡힌 수형자들을 상대로.”
“···음?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노예살이하는 자들 말이야? 지금 바로 옆방에 있는 그 요원 같은.”
“그래. 이건 몰랐나 보군. 지금 우리가 보는 그자의 인간처럼 생긴 몸은 본래 그의 몸이 아니다.”
“······?!”
레오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나이가 어려서 견문이 부족하기도 하고 위원회가 부리는 죄인에게 일절 관심이 없던 터라 미처 몰랐던 것이다.
켄티우스는 자신도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은 정보를 그에게 공유해 주었다.
“노동교화형이 선고된 순간, 위원회는 그 죄인의 영혼을 본래 몸에서 강제로 떼어낸다고 해. 그다음, 적절한 의체를 골라서 빙의시킨다고 하지. 유령이나 망령이 영체 감응력자 몸에 깃드는 것처럼 말이야. 여기서 다른 점은, 그 의체에 감응 능력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부분과··· 아직 숨을 거두지 않은 생명체의 생령을 쑤셔 박는다는 부분이지. 이건 위원회 말고 그 누구도 정확한 원리를 밝혀 내지 못했어. 그들이 그런 의체를 어떻게 만드는지,혹은 어디에서 가져오는지도 아무도 몰라. 아마 그 몸에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그렇다면.”
“그래, 원론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연이 없는 기술이라는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위원회는 그 기술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는 분위기야. 노동교화형 말고 다른 목적으로 실행한 기록은 없다. 공식적으로는 말이지.”
켄티우스는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는 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수형자들에게 절대 용의 몸을 주는 일이 없다고 했다. 드래곤 의체를 제작하는 건 위원회에게도 불가능하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적당한 사고를 저지른 다음 위원회의 노예가 된 드래곤은 100% 확률로 용이 아닌 다른 생물의 몸속에 갇히겠군. 기억이 삭제된 상태로 말이야.”
이런 말은 비꼬기에 가까웠다.
이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레오로 하여금 그 허황된 꿈을 버리라고 종용하려는 의도였던 것.
똑똑.
그때, 둘이 있던 방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동양계 남자는 레이먼드의 하인이었다.
“주인님께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다.”
“아? 그래. 출발하지.”
켄티우스는 레오에게 대충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문밖에서 기다리던 민준과 함께 레이먼드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가 사라진 뒤 레오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
켄티우스가 한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
“환영하네. 며칠 사이에 또 보는군. 두 사람 다.”
집무실에서 둘을 맞은 레이먼드 웡은 살집이 적당히 오른, 흔한 중년 인간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민준은 저것이 심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달라붙어서 제작한 3D 렌더링 초상화에 근거한 폴리모프라는 것을 알았다.
광둥 연방 국민들이 정서적, 본능적, 역사적인 이유로 호감과 신뢰를 보낼 만한 생김새를 구현한 것이다.
저 고룡은 연방 정부에 공식적인 직책 하나 갖고 있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홍콩의 지배자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는 국민들이 연방의 실세를 향해 존경과 경외를 표하는 편이 지배하기 낫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앉게. 갑작스러운 호출에 응해 줘서 고맙군.”
그는 로드를 잃은 자식에게 다시 한번 애도의 말을 건넸고 켄티우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응했다.
민준과 켄티우스는 그가 자신들을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태연하게 앉아 있었지만, 실제로 속으로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이나이스가 로드 살해범으로 지목한 고룡. 그리고 민준이 의뢰를 수락하자마자 타이밍 좋게도 그들을 홍콩으로 불러들였다.
무슨 속셈일까?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간단하네. 다들 피차 바쁜 이들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레이먼드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드래곤 로드가 별도로 남긴 뉴욕 사설 금고의 유산, 그것을 내게 팔게.”
“······?!”
상상하지 못한 제안에 민준과 켄티우스의 표정이 굳었다.
“나도 소문은 들었네. 자네가 상속받은 유산을 켄티우스에게 넘겼다고? 하지만 그 말만 들으면 의미가 분명하지 않더군. 모종의 거래를 대가로 완전히 넘겼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걸 임시로 대신 보호한다는 것인지··· 둘이 같이 움직이는 걸 보니 더 혼란스러워졌지. 그래서 그냥 터놓고 둘 다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네.”
켄티우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잠시만요.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로드가 이 수형자에게 남긴 유산에, 왜 당신 같은 고룡이 신경을 씁니까?”
켄티우스는 어이가 없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드래곤들 대부분은 로드가 수형자를 지목하여 남긴 유산이 무엇일지 궁금해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흥미에 불과했다. 그런 것까지 탐욕을 내며 어린 용들과 경쟁하기에는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 틈바구니에 끼어 참전했다간 체면이 깎일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레이먼드는 대놓고 탐욕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민준은 뉴욕에서 자신을 따라붙던 시선에 레이먼드가 보낸 것이 섞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설마하니 다른 드래곤들과 같은 동기였다니.
하지만 그 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왜?
의문 섞인 시선을 받으며 레이먼드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을 아끼려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겠지. 이유를 납득하지 않으면 순순히 넘기지 않을 기세군.”
켄티우스가 답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내가 자네의 부친과 막역한 사이였던 것은 알지?”
“···그렇습니까?”
“그랬어. 그리고 그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전날에도 우리는 만나서 담소를 나눴지. 그러다가 오랜만에 바둑을 두었거든.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를 걸었지.”
민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날은 운이 나빴는지 내가 졌고, 그 대가로 내 보물 창고에서 적당한 것을 하나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지. 그랬더니 로드가 무얼 골랐는지 아는가?”
켄티우스와 민준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레이먼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고대 종족이 만든 아티팩트를 골랐지. 난 내 창고 안에 그런 게 있는지도 반쯤 까먹고 있었어. 물론 그 자체로의 가치는 매우 높은 물건이지만··· 알잖는가? 둘 다 짐작할 그 이유 때문에 난 미련 없이 그걸 로드에게 넘겼지.”
“···그래서요?”
“하지만 그날 자리를 파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네. 내기 바둑 대가로 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야. 충동적인 선택이었지. 그래서 난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걸 다시 사 오기로 결심했어. 날이 밝으면 로드에게 다시 연락하려 했지. 그런데 그런 사고가 벌어진 거야.”
침통한 표정을 짓는 레이먼드. 민준은 면도날처럼 예리한 시선으로 그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대화에 끼어든다.
“그것과 제가 상속받은 유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연관이 있지. 나 역시 고룡으로서 로드의 유산을 리스팅하는 작업에 참여했어. 현장에서 발견된 것들과 그의 레어에 보관된 보물들. 그 모두를 목록화했지. 그런데···.”
그다음 이어진 말은 이나이스가 이미 확인해 준 것과 동일했다.
“어디에도 없었어! 마치 증발한 것처럼. 내가 건넨 그 아티팩트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민준은 혼란스러웠다.
저것은 연기인가?
이나이스는 그걸 다시 회수한 사람이 레이먼드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말이다.
“증인과 상속자들은 로드의 레어와 사설 금고를 조사했지. 그래도 찾을 수 없었어. 물론 다른 상속자들은 그 아티팩트가 사라진 것도 몰라. 그가 죽기 직전 그런 걸 얻은 사실도 모르니 당연하지. 하지만 난 알고 있잖는가?”
레이먼드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지. 다른 이들은 로드의 모든 레어와 금고를 뒤졌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실은 딱 한군데 아직 확인하지 못한 곳이 있어.”
민준이 침음을 흘렸다.
“웨스트 34번가 사설 금고.”
“정확하네.”
레이먼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로드 정도의 드래곤이라면 지구 반대편의 금고 안으로 보물을 이동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지. 내가 아는 그라면, 금고 안에 또 하나의 금고를 넣어 놨을 거야. 표정들을 보니 그 두 번째 금고를 자네들이 아직 열지 못했다는 쪽에 10만 달란트를 걸겠네.”
켄티우스가 반박했다.
“그저 추측이잖습니까. 아티팩트가 그 유산에 포함되지 않았으면요?”
“하지만 다른 선택지를 모두 소거하면 남는 곳은 거기밖에 없어. 난 그 아티팩트를 되사들여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내기 바둑 대가로는 과했어.”
민준은 켄티우스에게 나직이 정신파를 보냈다. 그 지시에 순응하며 드래곤은 전달받은 대사를 읊었다.
“이 수형자가 물려받은 유산은 제가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이 거래에는 응할 수가 없습니다.”
레이먼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대체 왜? 내 조건을 들어 보지도 않고?”
“자세한 이유까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유산이 큐브의 형태였다는 것도, 그걸 아직 열지 못했다는 사실도,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가치 책정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도, 레이먼드가 로드를 죽였다는 의심을 아직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도 모두 언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자세한 이유를 말하기보다는, 적당히 뭉개면서 거래를 거절하려는 심산이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앞에서 굳이 반지의 존재를 언급한 의도는 무엇이며, 그걸 되찾아가겠다고 대놓고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뭐야? 뒤늦게 증거 인멸을 하겠다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그리고 저 말이 사실이라면··· 로드가 정말 죽기 직전에 그 반지를 금고 안에 넣어 두었다면 더더욱 상대에게 넘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반지가 로드의 사인(死因)을 밝힐 단서라면 말이다.
“흠? 그래. 아쉽군.”
이대로 쉽게 물러나려는가 싶었다.
하지만.
우우웅!
켄티우스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그들의 주변 공간이 결빙되며 굳었다.
외부로부터의 차단.
“다음 용족 회의는 90일 넘게 남았어. 그때까지 드래곤 로드는 공석이지. 더군다나 이곳은 나의 영지다.”
레이먼드는 오만하게 웃었다.
“거래를 제안한 것은, 고인이 된 내 친우의 아들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였지. 그 배려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니 어리석군.”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난 이미 온건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걸 거부한 건 너희들이야.”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는 가운데.
민준은 조용히 생각했다.
‘레이먼드 웡은, 뇌룡이었지.’
공교롭게도 그가 가장 최근에 도축한 드래곤과 같은 속(屬)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일련의 프로세스를 그려 냈다. 드래곤의 뒤통수에 혓바닥을 꽂고, 그것을 두개골 안에서 터뜨려 뇌를 뭉개 버리던 감각을 기억하며.
민준의 딱딱한 표정을 공포로 오해한 홍콩의 지배자가 웃었다.
“나는 드래고닉 코드의 무게를 이해하고 위원회와 갈등이 백해무익하다는 걸 아는 상식적인 드래곤이다. 그러니 둘 다 죽일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나는 동시에 손해 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합리적인 드래곤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 앞에서 거래에 응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둘 다 세상 빛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알라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