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42
143.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15) >
***
콰릉!
그 시각 대부분의 홍콩 시민들 시선은 한 장소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들 눈길을 끈 이변은 도시 최고봉 오스틴 산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해발 5백미터의 옛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 터에서.
콰르릉!
콰쾅! 쾅!
사방에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평상시 구름의 속도를 산보(散步)에 비유한다면 지금 움직임은 전력 질주에 가까웠다. 산 정상에 강력한 자석이라도 꽂아 박은 듯하다. 무지막지한 자력에 이끌리는 철 가루 뭉텅이처럼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모였다.
한데 거대하게 뭉친 뇌운층은 산발적으로 푸른 섬광을 튀겼다. 그 형체가 완성된 순간, 구름 더미와 산은 서로를 반영하여 비추는 데칼코마니처럼 보였다. 산 정상을 경계로 반으로 접었다가 펼친 그림. 상부는 먹구름으로 칠했고 하부는 그림자와 산림으로 채색했다.
홍콩 시민들은 이 현상이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담하거나 반갑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저 산 주인이 곧 이 도시의 주인임을 잘 안다. 홍콩의 주인은 동족을 포함한 외부인 접근을 금한다는 표시로 종종 기이한 자연 현상을 만들어 냈다.
고룡 앞에 계약서가 나타났다. 민준은 내용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할리스나임이 내밀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서명해라.”
그 찰나.
스윽!
민준의 오른편 허공을 뚫고 손잡이 하나가 솟아올랐다. 그 형태만 보아서는 어떤 무기의, 혹은 어떤 도구의 손잡이인지 간파할 수 없는 애매한 형태였다. 손잡이 윗부분은 아직 아공간에서 안 꺼낸 상태. 민준은 그것을 쥐고 정신파로 명령했다.
‘검.’
그 말에 순응하여 후라이팬은 형태를 바꿨다. 아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금속 팬이 검날로 변한다.
그런 다음에야 민준은 손잡이를 밖으로 잡아당겼다. 투명한 검집에서 뽑아내듯 흑색 칼날이 밑동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 아공간은 예리한 단검을 완전히 토했다.
그걸 보며 레이먼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위원회가 죄수를 위해 그렇게까지 나설 것 같은가? 노예 생활 시작한 지 몇백 년이 지났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로 머리가 안 돌아갈 줄은 몰랐다.”
고룡은 켄티우스에게 턱짓했다.
“켄티우스, 저 멍청한 외계인을 때려눕혀. 내 손을 더럽히기도 싫군.”
레이먼드 웡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켄티우스가 자기 말에 복종할 거라고.
고룡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하물며 저런 어린 용 입장에서는 고룡과 대치하면 백전백패라는 것을 잘 안다.
레이먼드는 자신이 이 결계를 두르고 각오와 집요함을 드러낸 순간 켄티우스가 유산을 포기했으리라 짐작했다. 켄티우스가 저 외계인과 어떤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범죄자 하나를 위해 고룡에게 대항할 가능성은 없다고.
그런데.
“······!”
켄티우스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고룡이 어색함을 느낀 순간.
“싫은데?”
켄티우스의 몸이 황금색 빛으로 물들었다.
“····너!”
고룡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콰콰쾅!
사방을 때리는 굉음.
레이먼드의 저택 천장이 통째로 터져 나갔다. 이어서 이곳에 고용된 이들의 비명이 울렸고, 먼지와 연기가 먹구름과 섞이며 퍼졌다. 산 정상의 매서운 바람이 파편과 부스러기를 부지런히 사방에 뿌리며 옮겼다.
실내에서 대치하던 셋은 순식간에 움직였다. 그들 모두 구름이 잠식한 상공에 떠올랐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주도한 장본인은 켄티우스였다. 세 가지 비늘 색이 뒤섞인 화룡이 날개를 펼치고 꼿꼿하게 노려본다.
그 시선이 도달한 곳에는 분노한 뇌룡이 있었다.
암청색 비늘로 덮인, 뱀같이 길쭉한 육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레이먼드 웡은 두 눈에 불길을 담은 채 소리쳤다.
“이 애새끼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뇌룡은 사슴을 닮은 뿔 사이로 번개를 튀겼다.
두 드래곤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얼핏 일방적으로 보이는 전투였다. 몸집이 작은 켄티우스는 거대한 고룡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레이먼드의 공격이 격해졌다. 고룡은 먹구름 속을 헤집으며 몰아친다. 마치 검은 솜뭉치를 시침질하는 섬광 같았다. 검푸른 실 첨단에 달린 바늘은 이글거리는 번개를 토했다.
고룡은 어린 용을 완전히 태우지 않게 조절해서 벼락을 쐈다. 켄티우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회피했으나 몇 가닥은 그를 적중했다. 전격이 몸을 때릴 때마다 켄티우스는 반쯤 기절했다가 정신을 되찾았다. 머릿속에 울리는 민준의 정신파가 그를 깨웠다. 어린 용이 좀처럼 뻗지 않자 레이먼드는 더욱 분노했다.
“날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마라!”
그는 으르렁거리며 쏘아붙였다.
“로드와의 인연을 생각해 최대한 몸 성히 잡으려고 했으나··· 계속 내 인내심을 실험하는구나!”
켄티우스가 말 같지 않은 소리 말라는 듯 소리쳤다.
“그게 유산을 빼앗으려고 친구 아들을 습격한 자가 할 말인가?!”
“이 새끼가···!”
죽이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반병신 정도는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결심한 뇌룡이 번개 출력을 높이던 순간이었다.
쉬이익!
또 한 명의 적이 빠르게 접근했다. 그 시도를 감지한 뇌룡은 비웃는다.
‘뻔히 보이는 수작을!’
지금까지 그가 민준을 공격하지 않은 건 켄티우스부터 처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외계인을 잊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내가 그리 쉬운 상대인 줄 아느냐!’
사각지대라고 생각했는지 뒤통수를 향해 날아온다. 흑마법사 고유의 소환체,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온몸에 덮은 상태였다.
뇌룡의 예리한 감각은 그림자의 밀도를 포착해 냈다. 용이 아닌 종족치고는 대단한 수준이었으나, 고룡에게 비벼 볼 정도는 아니었다.
레이먼드는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목 뒤에 둥글게 벼락 한 뭉치를 말았다.
엉긴 섬광을 그대로 외계인에게 쏘려던 순간.
“······!”
고룡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팟!
부스터를 터뜨듯이, 날아오던 수형자의 속도와 궤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온몸을 그림자로 두른 민준은 검은 화살이 되었다. 용의 뒤통수를 노리는 듯 접근하던 그가 순식간에 몸을 튼다.
직전까지 켄티우스와 레이먼드 둘 다 열두 시 방향에 있었지만 지금 켄티우스는 민준 기준으로 아홉 시 방향에 위치했고 레이먼드는 그대로 전면에 둔 채였다.
민준은 고룡을 겨냥하던 칼날을 거두었다. 그것을 왼손에 옮긴 뒤 오른손으로 허공을 쥐자 그곳에 은색 후라이팬이 소환되었다. 허공에 엉겼던 번개가 발사 준비를 마친 것은 그때였다.
민준은 씩 웃었다. 그리고 자신을 방어하듯 후라이팬을 세워 넓은 면을 드러냈다.
그를 향해 번개가 내려꽂히기 직전.
“······!”
레이먼드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왜 오리할콘으로 후라이팬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오리할콘이다. 제아무리 마법 금속이라도 고룡의 번개를 완벽하게 흡수할 수는 없다. 하물며 그는 저 수형자를 적당하게 튀겨 버리기에 충분한 번개를 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지직!
최후의 순간 레이먼드 웡은 번개의 궤도를 뒤틀어 버렸다.
뱀처럼 꿈틀거리던 번개는 민준이 든 후라이팬을 타격하는 대신 사방으로 빗겨나간다.
민준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새끼, 눈치는 빨라가지고.”
여전히 민준의 돌격은 멈추지 않은 채다. 막아 세우는 번개가 스스로 피해 갔으니 더 이상 장애물은 없었다.
민준은 휘황찬란한 광휘를 뿜는 은색 후라이팬을 꽉 쥐고 용 대가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라라라라!”
고룡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구름 속을 헤집으며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니는 어린 용보다··· 저 흑마법사가 더 위험하다!
그는 입을 벌렸다. 강렬한 충동이 머릿속을 채웠다. 번개를 뿜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속삭임이 그의 공격을 바꿨다. 고룡은 뇌격을 토하는 대신 민준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대로 씹어 버릴 각오로.
용의 머리와 그림자 괴물이 바짝 접근한 그 순간.
민준이 경쾌한 궤도를 그리며 후라이팬을 휘둘렀다!
콰직!
“······!”
열심히 도망치던 켄티우스는 순간 뺨을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를 느꼈다. 금속보다 단단한 용비늘이 찢어지고 턱을 따라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이건?’
눈앞 풍경 때문에 얼어붙은 켄티우스는 아픔을 잊었다.
민준이 만든 은색 궤적이 고룡의 턱뼈를 으스러뜨렸다. 총알처럼 켄티우스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턱이 부서지면서 튄 비늘이나 이빨, 혹은 뼛조각 중 하나 같았다. 뭉개진 살덩어리와 하악골(下顎骨) 파편이 사방을 타격한 것이다. 마치 클레이모어 산탄처럼.
“카아아아아아아!”
아래턱이 날아갔기에 용의 긴 혀가 그대로 밖에 드러났다. 노출된 목구멍에서 피와 각종 체액이 거품을 만들며 부글거렸다. 용의 비명을 들으며 민준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 번에 보내주는 것이 도의적이나, 지금은 저 용을 죽여서는 안 될 상황이다.
민준의 등에서 그림자가 나뭇가지처럼, 혹은 덩굴처럼 뻗어 나갔다. 검은 채찍 가닥이 용의 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그는 몸부림치는 용의 뒤통수 위에 내려앉았다.
‘아직 항마력이 건재하군.’
몇백 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을 고통과 경악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지만 여섯 번째 뇌가 본능적으로 펼치는 실드는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이대로는 민준이 원하는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좀 더 힘을 뺀다.
그림자 괴수 형태가 된 민준이 혀를 내밀었다. 검게 꿈틀거리는 혓바닥.
푹!
그것이 뇌룡의 뒤통수를 찔렀다.
이제 용은 반쯤 이성을 잃은 채 구름 속에서 몸부림쳤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직접 만든 결계 벽에 수차례 부딪치며 발악한다. 민준은 전달되는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의 등짝에 바짝 달라붙었다.
창천을 잡을 때는 이대로 혓바닥을 두개골 안까지 꽂아 넣고 그 안에 압력을 터뜨려서 죽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래서는 안 된다.
민준은 드릴 내시경처럼 조형한 혀를 두개골 쪽으로 올리는 대신 그 면적을 넓혀서 굵은 빨대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 상태로 용의 경동맥에 박아 넣는다.
왈칵! 왈칵!
마음이 안정되는 리듬에 맞춰 뜨거운 액체가 입 안에 쏟아진다.
그의 공허를 채우는 온기를 느낀 순간, 민준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제야 제대로 살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생동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온수에 느긋하게 몸을 담근 듯, 또는 마른 흙바닥에 단물을 뿌린듯 세포 하나하나가 부풀었다. 설렜다. 기분 좋은 박동이 온몸을 근질거리며 깨웠다. 입 안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자신이 산 채로 피 빨리는 중임을 인지한 고룡이 그제서야 실낱같은 이성을 되찾았다.
‘이··· 이 미친 새끼가!’
하지만 이미 상당한 피를 빼앗긴 뒤.
‘설마, 내 피를 제물로 바쳐서 주문을 만들려고?!’
고룡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상실한 대량의 혈액을, 민준이 흑마법을 위한 제물로 바친 게 아니라···.
그냥 마시는 중이라는 걸.
민준은 온몸에 활력이 도는 걸 느끼며 혓바닥을 뽑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의 하반신에서 그림자가 꼬리처럼 돋아난다. 후라이팬이었던 단검 손잡이를 꼬리 끝에 감았다.
쉭!
꼬리를 채찍처럼 후려쳐, 검날을 용 목덜미에 꽂는다. 방금 전 혓바닥으로 구멍 낸 바로 그 자리였다.
——–!
뇌룡은 미친 듯이 번개를 뿜었다. 온몸으로 푸른 섬광을 발한다.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는 제약은 머릿속에서 증발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수형자는 그 번개에도 굳건하게 버텼다. 창천을 잡았을 때와 비교해도 미미한 충격이었다. 민준은 자신이 힘을 회복하는 중이며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깨달음과 함께 민준은 몸을 웅크렸다. 사냥감을 앞에 둔 야수처럼. 그림자로 감싼 두 다리가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대로 힘을 응축했다가.
폭발시킨다.
민준은 전력으로 달렸다!
“카라라라라!”
민준은 단검을 살갗에 박은 채 드래곤 등 위를 질주했다. 그가 달리는 길을 따라 꼬리가 피부를 갈랐다. 검날 폭은 1센티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탄력있는 외피를 자른 순간 양쪽으로 당기는 힘이 상처를 쫙! 벌렸다. 부풀어 오른 점막에 면도날을 가져다 댄 것 같은 효과였다.
상처가 그의 움직임을 쫓으며 이어지고 그 아래 검붉은 근육이 노출된다. 민준의 발자국을 장식하는 레드 카펫이었다. 비늘 덮인 미답지는 끊임없이 요동치고, 뒤틀리고, 흔들리며,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질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민준은 단검으로 용을 수백, 수천 번 찌르는 것보다 이게 효과가 좋을 거라 직감했고 그 판단은 맞았다.
드래곤의 두 눈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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