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69
170. Hate to Hate (8) >
***
8백 년 전 수형자로 눈뜬 후 지금까지.
민준은 은닉하거나, 도주했거나, 실종된 타깃을 추적하여 회수, 고문, 말살하는 일에 종사해 왔다.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서 그리했다. 그보다 이 일을 오래 한 수형자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민준은, 추적하는 방법 대신 추적에 잡히지 않는 방법에 집중하려고 한다.
최고의 추적자는 언제든지 최고의 도망자로 변신할 수 있다.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말이다. 사실 그것이,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럴 마음을 먹는 것.
***
윌리엄 에반스는 파란색 알약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오늘 두 개째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지. 위원회 소속 의사의 말을 기억하며 단호하게 삼켰다.
‘젠장. 어쩔 수 없이 쫄게 되는군.’
차오르는 긴장감.
‘그 녀석, 아시프-666이 온다면 오늘일 거야!’
아쉬탈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에는 임무로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구로 파견지를 옮기고 나서 생긴 그의 악명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수형자 통신망을 확인한 윌리엄은 기절초풍했다. 비록 가짜 몸이긴 하나,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초대형 요로결석이나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급성 고환염은 악몽 같은 이야기였다. 통증은 그대로 남을 테니까 말이다.
그 아시프-666이 적이라니. 처음 들었을 때도 경악했지만 점차 두려움이 현실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과 싸워야 할 수도 있다고?’
심지어 탈옥범이 되었으니 이제는 정말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을 것이다.
리미트를 제거한 그와 마주쳤다간 결석과 고환염이 차라리 축복처럼 느껴지겠지. 염려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대로 시간이 조금 지나니.
“······.”
차가운 얼음이 녹는 듯하다. 개운한 청량감이 머릿속에 퍼졌다.
약빨이 들기 시작한 것.
‘이제 좀 진정이 되는군.’
정신이 맑아지고 임무에 집중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친다.
일하자. 일. 열심히 달란트 벌어서 자유를 되찾아야지!
가빴던 호흡이 정돈되었다. 그가 목표 의식에 집중하며 되뇌고 있을 때였다.
“딸각대는 소리. 인간 손톱보다 작은 타원형의 무언가군요. 삼켰다는 건··· 그게 바로 알약인가요? 수형자들이 보급받는다는.”
유리벽 너머의 목소리.
윌리엄은 실수를 깨달았다. 마이크를 켜 놓은 것이다. 동시에 용의 청력에 감탄한다. 소리로 물체의 형태까지 짐작할 수 있다니, 박쥐가 따로 없군.
“그래, 이게 그 약이야.”
인정해야 했다. 레오라는 이름의 드래곤, 그가 감시해야 하는 예비 수형자와의 대화는 꽤나 흥미로웠다. 중증의 정신병자답지 않게 태도는 차분했고, 직접 지구에 살아 본 사람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윌리엄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했다.
그 대가로 윌리엄도 수형자에 대한 레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극비로 치부되는 정보는 빼놓고 말이다. 수형자가 먹는 약은 먼 옛날에는 비밀이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공공연한 이야기다.
“그거 먹으면 정말 기분이 나아져요?”
“효과는 확실해.”
하루에 한 알 의무적으로 먹는 것 외에도 부가적 효능을 위해 오늘처럼 과복용하기도 한다.
윌리엄은 이밖에 다양한 이유로 초과 복용을 하는데, 대표적으로 비극적인 소식을 접할 때가 그렇다.
그가 지구로 파견되는 계기가 된 전 동료 이야기 같은.
이곳에서 브래들리로 불렸다는 정신감응력자는 퇴직금을 고작 1만 달란트 남기고 세상을 떴다. 불의의 사고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운이 빠지고 한동안 무엇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러면 약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 가서 고생한다 하지 않았어요? 장기 복역자의 증상을 억제하는 방법은 그 약밖에 없는데, 정작 필요할 때 내성이 생길 수 있다면서요. 뭐라고 했죠? 뇌가 끓어서 귀 밖으로 흘러나오고, 영혼이 가려워서 긁어 떼어내고 싶은 느낌이라고 했나?”
“대충 그렇다고 하더군. 난 아직 못 느껴 봐서 몰라.”
“흐음, 그런데 좀 아쉽긴 하네요.”
“뭐가?”
용은 중얼거린다.
“그런 부작용만 없다면 수형자들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거잖아요. 달란트를 영원히 갚지 않으면 영영 안 죽는 거 아니에요? 위원회가 주는 대로 의체를 갈아 치우고 영혼을 옮기면서 말이에요.”
영생이라니.
윌리엄은 콧방귀를 뀌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행복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영생이란 결국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옥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영원토록 고통받는···.
“······.”
윌리엄은 잠시 머릿속 일부분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잠깐,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
용이 또 무슨 말을 웅얼대는 바람에 그의 생각은 끊겼다. 하지만 한 번 단절된 생각의 실마리를 굳이 추적해서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아시프-666··· 예민준 요원이 최고 기록인데 8백 년 정도라고 했죠?”
“그래.”
“대다수 수형자들은 그 전에 이미 정신이 붕괴되기 시작하구요?”
“장생종은 더 잘 버틴다고 하더군.”
“네, 그건 들었어요. 그래서 기대가 커요.”
나도 장생종이니까. 용은 씩 웃는다. 그 얼굴을 보며 윌리엄은 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개또라이 새끼.’
“그런데 이상하긴 하네요.”
“뭐가?”
“장생종에게 8백 년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닌데, 그 전에 정신이 무너진다고요?”
“그러니까. 수형자 중 장생종 비율은 위원회밖에 모르겠지만 적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지금까지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드래곤만 해도 상당하니까. 엘프 같은 종족도 포함하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런데도 아직 최고 기록이 그 모양이야.”
“정말 이상하네.”
용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혹시 정신이 마모되는 이유가 너무 오랜 시간 자유를 잃는다거나 임무 스트레스를 받는 거 말고··· 다른 부분에 있는 거 아닐까요?”
“나중에 위원회에 직접 물어봐.”
당연히 답은 없겠지만.
“아무튼 아쉽네요. 그 부분만 해결되면 현실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부작용 없는 영생이요.”
그때였다.
“······!’
유리 벽 너머의 드래곤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한 방향을 응시한다. 보이는 것이 없을 것임에도 그런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윌리엄의 표정도 굳었다. 그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낮게 말한다.
“시작되었군.”
“···그렇군요.”
용이 의미를 곱씹었다.
“그들이 넘어오기 시작했군요.”
레오도 대략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위원회가 파견한 정식 병력, ‘조세징수사령부’ 예하 부대가 지구로 도달하는 시간이 임박한 것이다.
목표는 탈옥범이다. 사령부의 존재 목적 중 그런 것도 있음을 지구 수형자들은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면 합리적인 업무 분장이긴 했다. 탈옥은 정기적으로 내야 하는 생존세를 더 이상 납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니까.
그런 탈세범을 때려잡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끄응.”
윌리엄은 다시금 긴장을 느낀다. 그리고 알약 하나를 더 털어 넣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고생했다
***
“시작되었군.”
아시프-680, 505.
지구에서는 데미안 파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수형자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파직! 지지직!
인바운드 슬롯(Inbound slot). 다른 차원에서 입항하는 도약선을 위해 준비된 그 공간에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차원벽을 관통하던 그것이 드디어 여기 도달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목전이다.
데미안은 생각했다. 선발대가 탑승한 저 배가 완전히 이 차원으로 넘어오면···.
‘그제서야 나는 한숨 돌릴 수 있겠군.’
뉴욕 터미널을 지키는 수형자 중 최연장자 축에 드는 그는, 위원회 지시에 따라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을 위해 위원회가 약속한 보상은 달콤했다.
‘이게 내 마지막 임무가 되는 거야. 그대로 퇴직하는 거다. 자유가 눈앞에 있어!’
눈에 불을 담고 모니터를 응시한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위원회는 이번 작전에 ‘탈옥범’이라든가 ‘아시프-666’ 같은 키워드를 일절 노출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을 방어하라는 임무만 하달했지만 행간의 의미를 모르는 수형자는 없었다.
적으로 돌아선 아시프-666은 지구 수형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공포였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아무리 놈이라도 조세징수사령부 앞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지.’
차원 도약이 완료된 순간 바톤 터치다.
그렇기에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녀석이 뉴욕을 노린다면 타이밍은 지금밖에 없어. 병력이 도달하기 전 마지막 기회니까.’
아시프-666에게 호감 같은 것은 없다. 데미안도 그와 반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괄약근에 힘을 주게 된다. 지금처럼.
‘개새끼! 천하에 다시없을 호로 새끼! 천벌을 받을 새끼!’
그 밖에도 형언할 수 없는 욕설을 머릿속에 나열하다가, 독기 서린 시선으로 상황판을 쏘아보았다. 거기엔 터미널 전체의 병력 배치도가 펼쳐져 있었다.
‘놈은 외계로 도망치려고 할 거야. 위원회도 그렇게 추측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릴 전 세계 터미널에 분산 배치한 거고.’
그게 목적이라면 도약선을 유도하고 송출하는 주요 시설은 공격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사령부 병력의 도약이 시작된 슬롯(Slot)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차원과 차원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구역 말이다.
출항용과 입항용 슬롯의 구분은 운영 주체가 임의로 하는 것이며, 해당 구역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입항과 출항이 모두 막힌다. 다시 말해 들어오는 문은 부수고 나가는 문은 멀쩡하게 두는 식으로 정밀 타격을 할 수는 없다.
준비는 완벽하다. 이미 시작된 도약을 막는 것도 불가능.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긴장을 풀었다.
‘어떠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 볼 테냐?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터미널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콰쾅!
밖에서 울려 퍼지는 폭발음.
묵직한 충격이 지휘실 안까지 전해졌다. 유리창이 파르르 흔들린다.
데미안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아시프-666!’
***
쾅! 콰쾅!
무차별 폭격과 같았다.
뉴욕 터미널 곳곳에 화염 폭풍이 불고, 전격이 내려치고, 불길한 색의 가스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수형자들은 긴급히 대항할 태세를 갖췄다.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라니··· 정말 뉴욕으로 왔군. 젠장!”
“아니, 결계는 어떻게 부수고 공격하는 거지?!”
“마법사! 빨리 추적해 봐. 놈이 어디서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거야?”
“안 돼. 찾을 수 없어. 흔적이 전혀 없다고!”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공습은 진행 중인데 공격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다.
위치 추적이 불가능하다.
수형자들이 당황한 사이 터미널의 각종 시설을 차례로 마법이 휩쓸었다. 오늘 출항 일정이 없는 빈 도약선을 계류시킨 정비창 밑 대지가 푹 꺼졌다. 부서진 아스팔트와 흙더미가 건물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순식간에 지하로 파묻혀 버린 도약선을 보며 수형자들은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위원회의 가장 비싼 재산 중 하나를 저렇게?
대체 재물손괴죄로 달란트가 얼마나 추가 책정될 것인가?
“이 새끼, 정말 나중 일은 생각 안 하고 저지르는군!”
그렇게 투덜거릴 여유는 길지 않았다.
“으, 으아악! 도와줘! 살려 줘!”
“흑마법?! 흑마법이다!”
터진 방둑에서 쏟아지는 파도처럼 어둠이 사방을 덮었다. 그리곤 이지를 지닌 생물처럼 몸을 틀며 수형자들을 삼켰다. 마법과 초능력으로 대항하려 했지만, 손으로 해일을 막는 것처럼 헛된 시도였다. 쓰나미 같은 그림자는 그들을 덮어 버리고는 다시 증식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더 이상 침략자의 정체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저건 흑마법사가 부리는 그림자 괴물이다. 그런데 그들 눈에 익숙한 괴물 형태를 초월하여, 압도적인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저런 게 가능하다는 걸 그들은 오늘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저 현상을 가능케 할 자도 한 명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시프 666.
그가 지금 이곳에 있다. 당연했다. 저런 소환수는 멀리서 통제할 수 없는 종류니까.
그런데.
“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소환수는 있는데 소환사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탐지 마법도 술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사이 흑마법으로 볼 수 없는 대규모의 공격 마법도 터미널의 각종 시설과 결계를 야무지게 박살 내고 있었다.
“미치겠군!”
아시프-666이 흑마법 외에도 재주가 많은 건 유명하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지휘실.
데미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여기 모인 날고 기는 수형자 중 누구도 아시프-666의 옷깃 하나 못 스치는 중이다.
일단 보여야 가까이라도 갈 것 아닌가?
공격 마법은 쏟아지는데 역추적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 더군다나 터미널을 지키기 위해 펼친 결계 역시 무용지물로 종잇조각처럼 찢어지고 있었다.
“여태 모두가 속고 있었군. 설마 위원회까지 우롱한 건가?”
그의 상식으로, 이런 일은 고룡 수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합동 주문을 펼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놈이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마지막에 중얼거린 그 말은 맞기도 했고, 동시에 틀리기도 했다.
데미안은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실제로 고룡 수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리라고는 말이다.
“아시프-666, 넌 대체···!”
간신히 긴장이 풀렸던 엉덩이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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