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76
177. Love yourself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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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다는 하인에게 안내를 일임했고, 일행은 귤레쉬라는 슈탄을 따라 움직였다. 악어를 닮은 외계인이 경쾌한 투로 지껄였다.
“인간 여러분들은 운도 좋으시네요. 하필 이 저택을 찾아오다니! 시기적절하게도 위대한 웨폰 마스터, 솔라다 님이 여기 계시는 타이밍에요. 그 덕에 근방에서 여기보다 안전한 장소는 없다고 봐야죠.”
슈탄이 발음하는 위원회 공용어의 음색은 기묘했다.
사실 그들의 성대 구조는 이 언어 음운 규칙과 맞지 않는다. 억지로 쥐어짜는 목소리는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발화(發話)는 유창한 걸 보니 이미 겔랑코 차원은 언어까지 식민화를 마친 상태인 것 같다. 타 종족과 대화할 때 왕족 등은 통역을 거느리고 고유어를 고집하지만, 평범한 계층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공용어를 쓰는 것이다.
그 외에도 민준은 옛 기억과 배치되는 부분을 발견했다. 저택 안에 돌아다니는 슈탄은 전부 남성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다. 8백 년 사이 슈탄의 사회 문화는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미혼 남녀의 접촉을 철저하게 차단한 것.
‘목적은 아마도 출산의 통제군.’
민준은 슈탄 여성이 한 번 유정란을 낳고 부화시키면 그 후 몇십 년 동안 배란이 멈춘다는 지식을 떠올렸다.
다시 말해 어머니가 된 여인은 한동안 알을 다시 낳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유정란이든, 무정란이든 간에.
‘의도가 노골적이야.’
오기 전 훑은 데이터를 되짚었다. 근래 슈탄의 혼인율은 소폭 증가하는 추세인데, 그에 따라 향후 단기적으로는 금값이 상승하고 장기적으로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깊숙이 살펴보면 이런 변화는 최근 범차원적 금값 하락 사태 직후부터 두드러졌다. 금값 변동에 따라 출산율도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런데 이 저택 부엌에는 슈탄용 조리도구와 식재료밖에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문제없습니다. 그런 건 전부 챙겨 왔으니.”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아내분께서 저런 악독한 저주에 걸리시다니. 곁에서 보는 저도 끔찍해서 말이 안 나오는데 배우자 입장에서는 어떤 심정이실까요? 감히 짐작을 할 수도 없군요.”
민준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거짓말은 최대한 말을 아껴야 완벽해짐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살짝 턱을 떨궜다. 시선에는 우수와 심려가 묻어 나왔다. 그걸 본 귤레쉬는 묘한 표정으로 인간 부부를 번갈아 본다. 방금 전 솔라다가 그랬듯.
“뭐,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아시겠지만 슈탄은 인간처럼 결혼을 쉽게 할 수 없는 종족이라서 말입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같이 직업도 하찮고 벌이도 시원찮은 데다가 이능력도 없는 작자가 괜히 결혼이라도 덜컥 했다가, 부인이 아프기라도 하면 뒷감당할 능력도 없으니까요. 차라리 홀몸이 편할지도 모르겠군요.”
위장 부부를 연기하고 있음에도, 민준은 그 말이 고깝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다른 분들은 참 조용하시군요? 말 한마디 안 하시고. 참, 그러고 보니 성함도 못 여쭤봤는데.”
귤레쉬는 눈동자를 연신 굴리며 말꼬리를 흘린다. 민준은 적당한 가명을 댄 뒤 설명을 덧붙였다.
“따라오는 저 둘은 노예입니다. 제 물건을 훔치다 들켰는데, 처음엔 응보로 손을 자르려다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몸 쓰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혀를 잘랐지요.”
“그렇군요. 과연, 현명하십니다.”
8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회 문화적으로 퇴보만 계속한 겔랑코였기에 가능한 설명이었다.
한편 민준에게 노예라고 소개받은 이들은 각각 기절했거나,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종(從)으로 인식하고 있거나, 공용어를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아무 반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시골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 부근 유적지에 관심이 있어서 조사를 좀 해 보려고 했지요. 그러다가 간악한 흑마법사에게 그만···.”
귤레쉬는 걸음 속도를 늦추며 몇 가지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민준은 아내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정중하게 재촉했다. 결국 하인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주방을 쓰실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문이 닫힌 뒤 민준은 소리가 새지 않도록 결계를 쳤다. 그리고 슈탄용 침구의 완충재에 스며든 수분을 마법으로 건조시킨 뒤, 업고 있던 전처를 거기 내려놓았다. 다음에는 대충 묶어 놓았던 촉수 매듭을 다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작업에 열중한 사이 하은성은 가까스로 긴장을 풀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윰투스에게 묻는다.
“저기, 아저씨?”
“왜 그러십니까?”
“아까 그 악어 머리들, 그거 맞죠? 슈탄. 염탐할 때 보니까 이 주변에는 그렇게 생긴 애들밖에 없던데.”
채권자에게 말 걸기는 무서우니 그나마 만만한 사제에게 비벼 보는 것이다.
윰투스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맞습니다. 이쪽 차원 연합 왕국을 구성하는 종족 중 하나이지요. 과거와 비교하여 수는 매우 줄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까지 오간 대화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하은성은 상황이 궁금했다. 그는 유심히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키가 제일 크고 덩치도 좋은 그 슈탄인이 여기 주인이라는 거죠?”
“그런 것 같았습니다.”
“집이 이렇게 큰 걸 보니 그 사람도 귀족? 부자? 뭐 그런 건가 보네요. 어쩐지, 생긴 것도 범상치 않았어.”
전부 악어 머리이긴 했지만 그 장신의 슈탄은 유달리 눈에 띄었다.
평범한 황구(黃狗)들 사이 섞인 도사견이랄까?
덩치는 물론이요, 얼굴 이목구비 역시 남들과는 두드러지게 달랐던 것이다. 지구인 눈으로도 놓칠 수 없는 명백한 차이.
“그 사람이 여기 있는 슈탄 중에 제일 위엄 쩔더라구요. 악어지만 멋있어. 클라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잠자코 듣던 민준이 갑자기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솔라다의 외모를 이쪽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뭐? 개중에 그 녀석이 제일 멋있다고? 참 희한한 심미안(審美眼)이군.”
그 말을 들은 하은성은 화가 치밀었다. 설사 세상 만인이 자신의 미적 감각을 비난해도, 절대 민준에게만큼은 지적질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래? 자기는 촉수 좋아하면서.’
촉수 여인과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타인의 심미안을 탓하다니,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하은성은 여전히 둘의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앓아누운 촉수와 요원 사이 오간 대화만으로도 사연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사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드라마 한 편 찍은 상태다.
민준이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윰투스가 묻는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 공복이실 텐데.”
“아직 타이밍이 아닌 것 같군. 일단 저 녀석들부터 먹이고.”
민준은 조리 도구를 챙겼다. 그때까지도 하은성은 감정을 감히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그래, 빚진 놈이 죄인이지.’ 민준이 나가자, 하은성은 기다렸다는 듯 윰투스에게 묻는다.
“아저씨는 혹시 아세요? 저 두 사람, 정확히 무슨 관계였는지.”
윰투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애매한 반응이었다. 모른다는 것인지, 알지만 말할 수 없다는 것인지.
하은성은 자신의 추측을 늘어놓았다.
“지금까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여기 자고 계신 분은 촉수 나라의 공주님이라는 거잖아요? 요원님과는 깊은 사이였구요. 정식으로 결혼했으면 아마 신문에 날 일이죠. 하지만 저는 금시초문이란 말이에요? 그럼 부부는 아니었을 테고.”
그 ‘촉수 나라 공주’가 한때 수형자 신세였고, 민준과는 결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혼까지 마쳤다는 진실은 평범한 20대 지구인 상상력으로는 범접 못 할 영역이었다.
“종족도 차이나고 신분도 차이나고. 당연히 여자 쪽 허락을 못 받았겠죠? 근데 이야기 들어보면 같이 살았던 것 같단 말이야?”
와, 심지어 혼전 동거였어.
그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유교 청년의 가치관이 자꾸 회초리를 들려 했다. 험난한 가정사에 대한 반향 때문인지 하은성은 그 방면으로는 꽤나 보수적인 편이었다.
“성격이 괴팍하긴 해도 그쪽(?)에는 완전 철벽 치는 스타일 같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 파격적인 사람이었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알려지면 세상이 다 뒤집어질 세기의 사랑 아니에요?”
알려진다면, 아마도 하은성이 상상하는 규모 이상으로 뒤집어질 것이다.
듣고 있던 윰투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그분께서 세속에 어떤 인연을 맺으셨는지 제가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스스로 말씀하지 않는 이상 심력을 기울여 추측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하은성은 머쓱해졌다. 남의 사생활에 지나친 관심 가지지 말라고 지적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윰투스는 기절한 반인반촉수 여인을 보며 말했다.
“허나 이것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뭔데요?”
하은성의 눈이 반짝였다.
“그분이 저 여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공주는 그분을 위해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 확실합니다. 당신이나 저 같은 종족은 짐작할 수 없는 괴로움과 두려움을 극복한 거지요.”
“짐작할 수 없는 괴로움과 두려움이요?”
“겪어 보지 않은 이가 출산과 요로결석의 아픔을 가늠할 수 없듯이, 그녀가 느꼈을 감정 역시 다른 종족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엔델리온의 언어에는 이런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어차피 제 발성 기관으로는 제대로 발음할 수 없겠지만 억지로 음역하자면 이 정도가 되겠네요. ‘Kermathei-asha-kw’aterai.’”
마지막에 윰투스가 읊은 말은 하은성의 귀에는 막힌 하수구가 뚫리며 물 빠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지구 언어로는 마땅한 단어가 없어요. 자기애? 자존심? 자존감? 전부 조금씩 다릅니다. 길게 풀어서 설명하면 ‘자신의 객관적 가치가 너무도 높음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혹시라도 잃을까 두려워하며, 한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정도가 되겠군요.”
“그게 자존감 아니에요?”
“자존감은 스스로에게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여 사랑하는 마음이지요. 하지만 저 단어는 자신의 객관적 가치를 알기에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 말에는 엔델리온이라는 종족이 이 세계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한 자기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하지요.”
하은성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드래곤들의 자뻑 비슷한 건가요? 우리가 우주에서 최고다?”
“용족의 프라이드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엔델리온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지요. 자신이 세상을 낙원으로, 더 좋은 세계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그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변고가 생기면 전우주적인 손해라고요.”
하은성은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와, 자의식 과잉도 저 정도면 레전드네.
지들이 중요한지 안 중요한지를 왜 지들 스스로 결정해? 그게 무슨 객관적인 가치야?
“그래서 그들은 종종 덩치에 맞지 않는 겁쟁이들이라고 비난받지요. 몸을 사려도 너무 사리거든요. 고위층이 아니면 차원 도약도 잘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우주적으로 너무나 소중한 ‘나’에게 혹시라도 사고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범차원적 손실이니까.”
“그건 이상하네. 고위층은 더 몸 사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그들 중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겠지요. 그 위험을 끌어안는 자들이야말로 고귀한 존재라는, 오래된 신념이 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도약선을 타는 것도 큰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인데, 저 공주는 맨몸으로 차원 도약을 했단 말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 앞에서 저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다른 종족이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감정이라고 합니다. 엔델리온이 아닌 이상 이해할 수 없는, 미쳐 버릴 것 같은 괴로운 마음이라고요. 마음으로 느끼는 통증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윰투스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런 두려움까지 극복하고 공주는 그분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지요. 이유요? 간단합니다.”
하은성은 답을 알 것 같았다.
서로 사랑하니까?
하지만 윰투스의 대답은 달랐다.
“왜냐면, 그만큼 그분이···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네?”
왜 갑자기 결론이 그쪽으로 튀어?
“곁에서 그분을 모시다 보면, 매일매일이 경외와 감탄의 나날입니다. 가시는 걸음마다 기적이 꽃망울을 터뜨리지요. 더군다나 이번에는, 엔델리온의 공주가 본능적인 공포를 극복토록 인도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그분이 꿈꾸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됩니다. 세상의 섭리마저 뒤틀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빛.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신봉하는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갑자기 성령 충만한 어조로 읊조리기 시작한 사제를 보며, 하은성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저 외계인의 이마에 붉은 핏기가 몽글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다들 정상은 아니야.’
인간을 사랑하는 촉수도, 촉수를 사랑하는 인간도, 촉수를 사랑하는 인간을 숭배하는 외계인도.
전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은성은 한탄한다. 나 같은 정상인이 어쩌다 이런 이상한 사람들 틈에 끼게 되었을까? 아무튼 민준과 만난 다음에는 사후(死後)가 편할 날이 없다.
‘나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갑자기 끌려온 외계에서 비정상인들과 움직이게 되었으니, 횡액을 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라도 제정신을 잘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짐하는 하은성의 귀에 공주가 흘리는 가냘픈 신음 소리가 들렸다.
“신이··· 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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