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84
185. Prisoner of Love (4)
***
존재를 짓누르는 괴로움 속에서 델은 꿈을 꾸었다.
모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네겐 엔델리온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질이 부족해.
델은 반쯤 체념하여 중얼거린다.
네, 알아요 어머니.
전 부족하지요. 항상 그랬어요.
-너는 왜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아낄 줄 모르는 거니? 스스로가 이 차원계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각해 줄 수 없겠니?
모왕이 말하는 그 자질이란, 엔델리온의 언어로 말하면 Kermathei-asha-kw’aterai.
길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가치가 너무도 높음을 알기에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혹시라도 잃을까 두려워하며, 한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넌 겁이 없어. 없어도··· 너무 없어!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부족해!
자조 섞인 웃음이 흐른다.
네, 그렇죠.
그 결과 지금 같은 처지가 되었네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지른 거니? 엔델리온이··· 그것도 왕족의 무게를 짊어진 자가 범죄를 저지르다니! 공주가 죄인이 되다니!
하지만 전 인정할 수 없었어요.
이런 희생은 멈춰야 해요.
-오늘날을 사는 모든 고대 종족이 당연히 여기고 받아들이는 희생이야. 네가 그걸 방해해서는 안 돼.
아니요, 그건 바르지 않아요.
저는 이름을 얻지 못한 나의 형제자매들을 보았어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회에서 격리당한 채, 훗날 어른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사용될 그들을요.
소모당할 날을 기다리면서 사육당하는 동족들을.
그걸 본 순간 예감했어요. 앞으로의 제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을.
-그건 네 형제도 자매도 아니야. 동족도 아니야. 그들은 그냥··· ‘몸’이야!
아니, 그들은 몸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영과 육이 조화롭게 결합된 인격체라구요.
사람을 용도와 쓰임새에 따라 가치를 달리 매겨서는 안 돼요. 존엄이 계량되어서는 안 돼요.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고, 선택할 수도 없었던 기준으로 분류되어서는 안 돼요.
-하지만 대안이 없지 않니!
저는 언젠가 완벽한 호문쿨루스를 만들 거에요.
그 일에 성공하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늙은이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젊은 동족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날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그 전에 수명을 다하는 고대 종족들은? 언제 현실화될 지 모를 미래가 찾아올 때까지 종족의 원로들이 죽어 나가게 방치하라고? 현재의 시스템은 그걸 막기 위한 희생이야. 어차피 ‘그들’은··· 그 희생을 위해 태어나는 거라고!
장면이 바뀐다.
그녀는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든 장소에 서 있었다.
-죄인을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윤리 재판소.
엔델리온의 공주에게 50만이 넘는 거액의 달란트를 구형하고 판결 내린 이들은 카바이트였다. 재판이 끝나고 형벌을 앞둔 죄인만 남자 그들은 만족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엔델리온의 왕족이 노동교화 신세라니··· 세상 참 알 수 없는 일이군요. 당신을 위해 멋진 의체를 준비했습니다. 공주님의 기나긴 수형자 생활을 함께할 몸 말입니다.
공주는 날카로운 어조로 답했다.
“본질을 가리는 말장난 그만둬요. 의체? 그게 왜 가짜 몸인가요. 그것도 결국 멀쩡하게 살아 있던 누군가의 몸을 강탈해서 만든 혐오스러운···?!”
갑작스러운 정적.
-하하하! 어떻습니까?
항변하던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새로 나타난 ‘것’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카바이트가 그녀를 위해 준비했다는 의체는 공주의 본체에 비하면 너무도 작았다. 다만, 차원계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그렇기에 크기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공주의 눈을 사로잡고 그녀의 영혼을 얼어붙게 만든 건 그것의 종(種)이었다.
자유의지를 잃은 채 눈을 감은 그 몸은, 죄인의 감옥으로 쓰기 위해 영혼이 소거당한 상태인 그 육신은···.
“인간?!”
엔델리온의 공주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공주님!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삐이이이이!
델은 눈을 떴다.
‘아!’
멀어졌던 감각이 파도처럼 다시 몰려왔다. 엔델리온의 본체에 비해 터무니없이 둔감해진 신경계가 정신과 연결된다.
델은 흐릿한 의식으로 깨닫는다. 지금 이 육신의 형태는, 인간이다. 꿈속에서처럼.
지난번 정신차렸을 때는 슈탄의 저택 내부였는데 이번에는 바깥인 것 같았다. 하늘을 보니 밤중이다. 그때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
정신을 짓누르는 무력감이나 고통과는 별개로, 신경을 거스르는 무언가 느껴졌다. 델은 자신이 다시 깬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신호?’
아주 멀리서, 어떤 마도구가 만드는 파동이 먼 거리를 가로질러 그녀에게 닿았다. 그리고 델 안에 있는 어떤 힘의 편린이 신호에 반응하여 공명하는 중이었다. 지난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내 속에 이런 것이 있었나?
돌이켜 보면, 몸속에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 존재함을 깨닫는 건 처음도 아니었다. VIP 도약 코드 같은 것 말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이 더 안배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를 찾기 위한 인식표 같은 건가?!’
그 가능성에 생각이 닿은 순간.
그녀는 위기감을 느꼈다.
‘안 돼!’
있는지도 몰랐던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눈치를 챈 지금은.
파앗!
그녀는 몸속에 남아있던 꼬리표, 외부 신호와 공명하여 위치를 알려 주던 조각을 바로 소멸시켜 버렸다.
비틀!
힘겹게 일어나는 그녀를 누군가 만류했다. 눈동자를 돌린다. 이번에도 그 사제였다. 창백한 피부의 세눈박이.
“아직 생명력이 충분치 않으십니다! 휴식을 더 취하셔야···.”
“그 사람은 어디 있어요?”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 대신 사제는 계속 다른 소리를 하며 사정했지만 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반쯤 혼미한 정신으로 중얼거린다.
“빨리 다음 차원으로 도약해야 해요. 여긴 이미 발각됐어.”
“네?!”
윰투스는 주저한다.
“하지만 공주님은 아직 저번 도약의 여파에서 완벽하게 회복이···.”
“괜찮아요.”
델은 머릿속을 헝클어뜨리는 현기증을 견뎌내며 말한다. 힘겹게.
“크게 다친 건··· 육신 쪽이 아니니까.”
***
“자, 출발하지.”
납치를 하려고 했던 공주가, 오히려 자신을 재촉하는 장면을 민준은 기묘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유리아의 몇 마디 말을 들은 그는 상황을 어렴풋이 추측했다. 그제서야 공주의 차림이 왜 이 모양인지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
유리아 공주는 자신을 궁 밖으로 데리고 나갈 이들과 접선하기로 한 것 같았다. 미혼 여성의 외출은 엄격하게 통제되기에 그 과정은 당연히 비밀스러워야 했다. 그래서 복면과 타이트한 검은색 의복을 준비한 것이다.
‘그들과 교묘하게 엇갈린 거군.’
하필 그녀의 파트너들 역시 인간인 듯싶었다.
민준은 다크바라가 읊은 내용을 복기했다. 유리아 공주. 슈탄 왕실의 대표적인 친인파.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군. 왕실의 금기를 깨고, 성소를 인간에게 노출시키려 한 건가?’
하지만 그들이 도달하기 전 민준이 먼저 도착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깨질 착각이며 해소될 오해였지만, 일단은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이쪽입니다.”
그녀를 데리고 은밀히 방 밖으로 빠져나간다. 민준은 공주와 일정 거리를 두고 걸었다. 경계병들이 그들을 보지 못하는 걸 확인한 유리아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실력자군. 조금 떨어져서 움직인다곤 하지만 여전히 내 능력 영향권 내인데. 그래도 마법을 쓰고 있어.’
궁 밖으로 신중하게 움직이는 사이, 민준은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공주가 기다리던 진짜 인도자들은 그럼 유리아를 어떻게 빼내려고 했던 거지?
답은 곧 눈에 보였다. ‘진짜’들이 잠입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경계병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민준이 침입할 때와는 영 딴판으로, 누가 봐도 노골적인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몇몇은 이미 매수당한 거군.’
덕분에 민준의 행보는 더욱 편해졌다. 공주와 결탁한 침입자들이 들어오기 쉽게 경계병들이 뚫어 준 구멍을 통해 그는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무사히 성 밖으로 나온 그와 공주는 하은성이 기다리는 장소로 향했다.
한편, 그들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어라?’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유령 상태로 돌아다닐 때 느낀 것과 결이 조금 달랐다. 이미 몸과 결합한 상태이므로, 지금은 정신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는 민준의 표현처럼 영체가 흐트러지는 느낌이었다면.
파지직!
지금은 몸 속 마력이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어? 이대로면, 풀리겠는데?’
지금 풀숲 너머 다가오는 사람은 민준이 분명했다. 하은성이 그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폴리모프 주문이 깨져 버렸다.
파앗!
하은성이 빛을 뿜으며 용으로 돌아간 것과, 민준이 공주와 함께 그 앞에 모습을 보인 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억!”
눈앞에 돌연히 나타난 거체를 보며 공주는 경악했다. 입을 쩍 벌리자 그 안에서 톱니 같은 이빨이 번뜩였다.
“저, 저건!”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워낙 잘 먹어서인지 처음 민준을 만났을 때 보다 훌쩍 키가 커진 어린 용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들을 마주했다. 공주가 말을 더듬었다.
“맙소사, 저 용 비슷하게 생긴 것은 대체 무엇이지?”
민준은 담담하게 답했다.
“용 비슷한 게 아니라 용입니다.”
“드래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려고 노력했지만, 공주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영상이나 서적에서만 접해 본 그 무시무시한 종족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우리 차원에 드래곤의 이민을 허가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특별히 임시 체류 비자를 발급받아 외계로부터 초빙했습니다.”
공주는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감탄하며 중얼거린다.
“인간들은 정말 대단하군.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드래곤까지 동원할 줄이야!”
슈탄의 외계 네트워크로는 성사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다시금 깨닫는다. 타고난 신체 능력이 아무리 강해 봤자, 이제 슈탄은 인간을 이길 수 없다. 육신을 제외한 모든 측면에서 밀리는 것이다. 정보와 인맥, 돈이 권력의 핵심이 되는 시대에서 인간은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유리아는 자신의 선택이 바른 것이었다고 확신했다.
‘인간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는 건 시대의 의무야. 슈탄 왕국은 바뀌어야 해. 내가 바꾸겠어.’
그리 다짐하며, 공주는 위풍당당(?)하게 선 드래곤을 보았다. 용의 표정을 읽을 줄 모르는 그녀는 하은성이 주춤거리며 민준의 눈치를 보는 중이라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느끼기에 드래곤의 시선은 오만했으며 기세는 강철 검처럼 날카로웠다.
이해한 듯이 중얼거린다.
“그렇군. 다른 병력은 필요도 없겠군. 놀라운 묘책이야. 저 드래곤 한 명이 성소까지 이동 수단인 동시에, 도착한 다음 현장을 장악할 병력이로군. 상상 밖의 한 수였어.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그럼, 슬슬 출발하실까요?”
“좋아.”
민준과 유리아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은성은 뻘쭘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저 악어 공주가 보물 창고로 가는 열쇠라고?’
열쇠.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였다.
공주가 어떻게 거기까지 인도한다는 걸까?
왜 저 공주가 없으면 거기까지 갈 수 없다는 걸까?
‘설마 정말로 저 악어를 타고 가야 하나? 덩치를 보니 인간 한 명 정도는 충분히 타겠네. 하지만 이 상태의 나는 못 태울 것 같은데··· 어떡하지?’
잠시 후, 하은성은 곧 그 근심이 전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출발하자는 민준의 재촉에, 공주는 주섬주섬 챙겨 온 것을 꺼내 펼쳤다.
열린 상자 안에는 왕가 직계에 전해지는 비보가 있었다.
한편, 탈 것은 악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뒤늦게 납득한 하은성은 묘한 슬픔을 느꼈다. 사냥개 취급과 자가용 취급 중 어느 쪽이 나은지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요원이 자신을 더 많이 부려 먹을수록, 부채도 차곡차곡 탕감될 테니까.
···물론 그 총액이 너무 많다는 문제가 고스란히 남지만 말이다.
어쨌든 심란함을 애써 털어 낸 그는 공주가 든 아티팩트를 흘깃 보았다. 호기심 어린 시선.
‘나비?’
상자 안에 든 그것은 투명한 수정을 정교하게 깎아 나비 모양으로 만든 장신구였다.
브로치 종류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콰직!
“······!”
하은성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왜 저래?!’
공주가 상어 같은 겹니를 드러내며 본인의 손가락을 씹었기 때문이다. 굵은 손가락 끝 비늘이 찢기고 주륵! 핏방울이 흘렀다. 선혈이 수정 나비 위에 떨어진다.
그런데.
‘뭐야?’
파격적이고도 과격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김빠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나비 표면에 피가 몇 방울 묻었을 뿐이고 나머지는 이전과 다름없으며 주변은 잠잠하다.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민준에게 말했다.
“나랑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이능이 발동되지 않는 거야.”
이 아티팩트에도 공주의 마나 응결 능력이 착실하게 영향을 끼치는 중이었다.
그 말을 들은 민준은 하은성에게 그것을 상자째 들고 날아오르게 했다. 용에 빙의된 유령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휘잉!
상자를 가지고 어느 정도 높이까지 날아오르자.
파앗!
그제서야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티팩트가 공주의 능력을 이겨 낼 수 있는 거리는 1km쯤 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멀어지자 투명한 수정 위 맺혔던 핏방울이 안개처럼 퍼지며 안으로 스며들었다. 섬뜩한 혈기로 물든 나비는 생물처럼 날개를 파닥거리며 상자 밖으로 나오더니 한 방향으로 날았다.
허공의 용과 지상의 사람들은 멀어지는 나비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비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민준이 말했다.
“조금 날다가 멈췄군요.”
“그렇다. 인간치고 눈이 좋군.”
공주도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악어의 눈동자는 밤하늘 먼 저편에서 전진을 멈춘 핏빛 나비를 응시했다.
“피를 제공한 직계 왕족으로부터 너무 멀어지면 길 안내를 멈추는 거야.”
왕족이 아닌 엉뚱한 자가 도용하는 걸 막는 시도 같았다. 민준은 감을 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은성을 다시 땅으로 불러들인 뒤 그의 등에 공주와 함께 올라탔다.
한편, 두 사람에게 등을 밟히며 드래곤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뭐야, 누굴 태우는 건 분명 처음인데··· 왜 이렇게 안정감이 들지?’
“여기와 여길 잡으시면 됩니다. 불편하시면 여기도 괜찮고요. 하지만, 여기는 가급적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여기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스치지도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민준은 마치 일상적으로 용을 타고 다닌 사람처럼 능숙하게 공주에게 탑승법을 알려 주었다. 그 둘이 자리를 잡는 순간 하은성은 걱정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안정감과는 별개로, 그의 이성은 불안을 느꼈다.
‘잘 될까? 내가 날다가 잘못해서 둘을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그랬다간 뒷감당이···.’
그 걱정도 잠시.
툭툭!
민준이 말없이 목덜미를 두드리자.
푸더덕!
피막 날개가 공기를 때리는 소리.
힘찬 파찰음이 울리고.
“······?!”
명확한 명령어도, 텔레파시도, 소리 내 발음한 지시도 없었음에도.
하은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본능적으로 날아올랐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헐? 뭐야?!’
그 움직임에 하은성 자신도 놀랐다.
마치 꾹 눌렀던 스프링이 다시 튕겨 나가는 듯한 속도였다.
생각을 하고 몸이 움직였다기보다는, 목을 두드리는 그 손길에 몸이 바로 반응한 것 같다.
휘이잉!
용이 힘차게, 하늘로 솟구친다.
저도 모르게 활공을 시작한 하은성은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복잡한 마음과는 상반되게도 자세는 지극히 안정적이었다.
둘을 태운 드래곤은 허공을 가로지른다. 농밀하게 흐느적대는 달빛이 그를 감쌌다. 두 종류의 색채가 서로 겹치고 스치며 검은 바다를 은은하게 물들였다.
‘날았다, 날았어!’
수단을 막론하고 비행 자체가 처음인 공주는 말을 잃었다. 공기를 찢는 소음도 정적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슈탄의 수도, 곧 그녀가 지배하게 될 도시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아름다워!’
감탄하는 그녀와 살짝 거리를 두고 앉은 민준은 공주와는 반대로 더 높은 곳을 응시했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 변해 버린 이 세계에서, 변하지 않은 건 별자리뿐이었다. 눈에 익은 성좌가 요요히, 발갛게 타올랐다
쉬이이익!
각각의 생각 속에 입 다문 승객들을 태운 채.
용은 나비를 좇는다.
저 작은 것으로부터 너무 멀어져서는 안 되었다. 아티팩트가 움직임을 멈출 테니.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도 안 될 일이었다. 나비가 아예 이능을 잃을 테니.
드래곤의 시선은 밤하늘을 긋는 붉은 선을 놓치지 않았다. 까다로운 비행이었지만 하은성은 무리 없이 해냈다. 나비는 경로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다소 복잡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급진적인 방향 전환을 휙휙 시도했지만, 따라가는 용의 커브링은 안정적이었다. 그가 호선을 그리는 사이에 몸이 지나치게 틀어지거나 뒤집히거나 해서 탑승객들이 불편을 느끼는 일은 전혀 없었다. 승룡감은 지극히 안락했다.
비행이 이어지는 사이 민준은 무심한 손짓으로 용의 목덜미 곳곳을 툭툭 건드리거나 발끝으로 비늘을 살포시 건드리곤 했다. 하은성은 그 자극을 인지하는 동시에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밤하늘에 그리는 유려한 궤도에 심취되었다. 바람의 날카로운 결이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오래, 빠르게, 복잡하게 날아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결과물은 숙련된 파일럿의 묘기비행에 비견할만했다.
그렇게 한동안 상공을 활보하던 하은성은, 인정하기 싫은 가능성을 떠올렸다.
‘뭐야··· 나, 이쪽에도 재능이 있나?’